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관하여 - 인생의 참주인을 찾는 깨달음의 길
사쿙 미팜 지음, 안희경 옮김 / 판미동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은 요즘 살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언제는 살기 좋다고 외쳤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이 궁하다는 것 말고 다른 때와 다른 게 뭐가 있는지 잘 이해가 안 되고,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세상사람 누구도 돈이 풍부했다고 느꼈던 시절은 없었을 것같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부자대로 돈이 더 많은 부자를 보며 가난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돈 천 만 원이라도 안정되게 들어오는 사람들은 돈 오천만원을 버는 사람 보면서 자신은 불행하다고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단지 요즘은 몇 년 전보다 돈 벌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뿐이다. 특히 주식이나 재테크니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닐 게 거의 다 없어졌으니 말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자기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외부 환경을 믿지 못하니, 세상의 변화를 쫒지 못하니 믿을 거라고는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누구냐는 것이다. 허구헌날 남들이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그들의 표정에서 희열을 얻던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돌아갈 집이라고 자신을 돌아보니 그게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상황이다.

어떤 사람은 지금 같은 상황을 우리 스스로가 자초했다고 한다. 자기가 가진 힘과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며 거기서 삶의 기쁨과 경제적인 안정을 찾은 게 아니라, 현실로 존재하지도 않는 돈의 부풀림에 목숨 건 결과 아니냐는 것이다. 100원에 산 집이 200원이 되는 세상, 가만히 앉아 돈이 커가는 것을 보며 세상살이 편하다고 외치고 있었으니 그게 얼마나 오래가겠냐고 한다. 재테크. 어쩌면 인간이 만든 유령이 아닌가 싶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인간의 마음속에서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끼게 만든 장본인이자. 있지도 않은 허상을 실제 세상이라고 현혹시켜 자신의 존재 자체를 하나씩 갉아먹어버리는 그런 것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일정한 모습을 가진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 나를 편하게 해주고, 고통과 슬픔, 아픔 모든 것이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의식일 뿐이라는 말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게 해 준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삶인가? 그리고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이들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면서.

책을 덮은 지금도 분명히 기억나는 내용이 있다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일정의 관계 속에서 자라며, 이 결과는 내가 어떤 씨앗을 심고 키웠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 머릿속에는 하루에도 수천 번 오만가지 생각이 흘러지나간다. 그 중에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잡아 내 안에 심느냐에 따라 어떤 열매가 맺을지 결정된다는 것이다. 고통과 아픔, 분노, 후회의 씨앗을 심고 거기에 지속적으로 양분을 주면 열매는 당연히 분노와 고통의 열매 아니겠는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고통을 잡고 늘어지면 거기서 기쁨이 생기리라 기대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논리지식과 인과관계를 고민하는 우리 스스로가 고통을 심고 기쁨의 열매를 바란다는 그 말은 무척 충격적인 말이었다. 내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를 괴롭힌 사람을 잊지 않고 복수하겠다고 마음먹고 산다면 언젠가는 그 뜻을 이룰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진정한 기쁨이 존재하냐 는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죽였다고 해서 얼마나 충만한 기쁨 속에서 살아갈까? 조금 심오한, 우리가 지나가는 말로 개똥철학 같은 말이지만 저자의 말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정신적 지도자들이 쓴 책을 볼 때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이들의 말은 인간의 모습을 초월하여 신의 경지에서 세상을 살아가자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런 느낌을 받을 때마다 신의 경지에서 살려면 그냥 영혼의 차원에서 머물지 무엇 때문에 인간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인간은 인간만의 삶이 있고, 그것이 바로 저자가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현재 아닌가. 그렇다면 구지 나를 초월해 살아가는 삶, 즉 인간의 모습을 초월한 영적인 삶, 에 대해 애착을 가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래 살아봐야 100년의 세월, 아마 영원불멸한 영혼의 눈으로 볼 때는 눈 깜빡할 사이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시간일 것이다. 이 찰나의 순간마저 육체를 가졌기에 느껴야 하는 희노애락을 외면한다면, 그래서 명상을 하고 신과 같은 수준이 되어야 한다면 그건 이미 인간의 삶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인간을 초월한 삶, 죽은 후에 얼마지 가질 수 있는 그 삶을 왜 인간의 모습을 가진 현 상황까지 이토록 추구해야 하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