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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 대로 산다는 것 - 구겐하임 문학상 작가 앤 라모트의 행복론
앤 라모트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일단 책 내용이 재미있다. 남자인 내가 봐도 한 여성의 삶을 살며시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마음에 와 닿은, 그리고 솔직한 저자의 글 솜씨와 말씨가 무척 친근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그리 행복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볼 때는 문화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는 행동들, 어린 시절 남자들에게 팬티와 벗은 몸을 보여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 대마초나 마약 같은 것에 취해 남자들 사이에서 정신을 잃은 것과 같은 모습들은 내용을 읽다보면 거북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내가 남자의 시각으로, 여성의 정형화된 모습을 머리에 넣은 채 책을 읽기에 그런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저자는 패미니스트도, 혁명가도, 진보주의 여성도 아니다. 단지 자신 행복하게 살겠다는 마음을 갖고 나름대로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뿐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마음가는대로 산다는 것’이란 제목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용은 재미있고, 읽는데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책에 소개된 다른 사람들의 평가처럼 그녀의 삶 속에서 무언가를 느낀다거나 깨닫는 그런 감정을 받지는 못했다. 그저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한 여성, 좋은 환경은 아닌 가정에서 태어나 자신의 삶을 한발 한발 내딛으며 살아간 삶의 단편을 봤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의 느낌도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나 주제에 대한 몰입보다는 내용의 구성을 유심히 봤다. 누구나 다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삶. 물론 이 말이 우리도 이런 삶을 살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누구나 가족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알아가는 청소년 시절, 그리고 ‘나’라는 독립된 존재를 알게 되는 청년시절, 아이를 갖고 가족이란 것을 느끼게 되는 발달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서 이 책만큼 재미가 있을까? 평론가들이 그 책을 보며 “당신의 가슴에 응어리진 몇몇 문제들에 묘하게 들어맞는 열쇠를 제공하는 고백록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구성을 자세히 들여다 본 것이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우선 이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야기의 내용들이 하나마다 결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짧지 않은 생의 이야기 중에서 뭔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잘 대변할 수 있는 내용 말이다. 처음에 내용을 보면 저자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에 빠져들면 ‘아!’ 이런 심정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내 삶을 남에게 이야기하다보면 장편소설처럼 되기 때문이다. 긴 인생이야기를 하나씩 쪼개는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예를 들어 스토리텔링 책을 보면 영웅이란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역시 영웅이라고 한다. 영웅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뭔가 부족한 한 인간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그때 어떤 상황, 어떤 사람의 도움으로 자신의 내재된 힘을 깨닫고, 이를 물리친다. 물론 혼자가 아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말이다.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영웅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그 사람 삶의 모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당연히 아니다. 이야기에 나온 것은 문제 하나를 해결한 것일 뿐이지 그는 계속해서 다른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남녀가 싸우다 화해하고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것으로 영화가 끝났다고 치자. 그들은 영원히 행복할까?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래서 둘이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난다. 내가 부족한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너무 내 삶을 장편으로 생각하며 앞 뒤 이야기가 하나의 연결 구도를 갖게 하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지고, 마치 한편의 서사시를 보는 듯한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또 하나는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 자신의 이야기 사이에 다른 이야기를 집어넣는다. 그 이야기가 왜 들어갔는지 모른 채 내용을 읽다보면 왠지 모르게 내용이 풍부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 이야기가 저자의 생활과 직결된 이야기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이런 돌발적인 이야기에서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저자가 그만큼 하나의 이야기를 선택할 때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와 잘 어울릴 수 있는 외도. 그래서 글 잘 쓰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