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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 2008년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주영선 지음 / 문학수첩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인간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을까?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이라도 속으로는 어떤 생각인들 못하겠냐만 서도 나를 위하는 정도가 지나쳐 상대를 위협할 정도가 되면 문제가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위협이 한 인간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삶에 대한 희망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 정도의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조용한 마을.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나이든 사람들만 남아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조그마한 마을이 있다. 이곳에 보건소가 하나 생기는데 그곳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중요한 것은 보건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건강을 관리하고, 아픈 곳을 고쳐주는 장소를 넘어 마음의 세력 싸움터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자, 그런 소장의 태도 때문에 결국 보건소장은 그 마을을 떠나게 된다.
나이가 60 넘으면 육체는 약해지지만 정신만 살아남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것은 소유욕과 과시욕뿐인가?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 같다. 어떻게 보면 할 일없는 교도소에서, 바쁘지 않은 직장에서 세력싸움이 더 심해지고 사람과, 조직 간의 암투가 성행해 지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이제 농촌은 우리가 예전에 생각하던 곳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이 아니라, 도시사람과 비교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교육과 문화시설에서 소외된, 그리고 정부의 시책을 하나라도 더 따내려 꼼수를 부리는 농민들이 존재하는 그런 곳 말이다. 겉으로 볼 때는 시원한 바람과 청정의 물이 흐르는 곳이지만 그 땅을 한 삽만 파보면 불만의 구더기가 넘쳐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른다. 내 자신이 농촌에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바로 도시인이 만든 것은 아닌지. 그리고 정부의 정책 자체가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 아닌지 짐작해 본다.
책 내용을 보면 ‘민원’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마을 주민들의 겪는 불편함을 고쳐달라고 정부기관에 제출하는 ‘불만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불만의 시작이 어디고, 누구이며,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문제는 다음 이야기이고, 일단 민원이 발생했다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갖는 현재의 실정이다.
국회의원은 자신의 표를 위해, 기관장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래 공무원은 당연히 힘이 없으니 말이다. 이제 예전처럼 정부가 군림하고, 가진 것 없는 농민은 정부의 무지에 의해 피해보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얼마 전에 농촌기업문제 때문에 한 기업을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당시 그들의 말이 기억난다. “우리 농업에 경영과 마케팅을 도입하는 것은 좋죠.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정부, 지자체가 우리 물건을 팔게 해 줘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농산물이 원래 부족해요. 따라서 수입하지 않으면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정부가 외국산을 수입해서 우리 것이 팔리지 않게 한 다음, 경쟁력을 높이라고 하는데 그게 말이 되나요?”
언뜻 듣기엔 무척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 농업을 살리기 위해 더 좋고, 싼 농산물을 수입하지 않고, 우리 것만을 써야 한다면, 그건 전 국민의 1%를 위해 전체 국민이 더 많은 지출을 감내해야 한다는 말 아니겠는가. 우리 것을 보호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남들보다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나는 이런 사고방식이 바로 우리 농촌의 현실 아닌가 싶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남들이 와서 나를 괴롭혔어. 그래서 나는 그것을 이기기 위해 전투를 해야 돼.“ 전투의식에 똘똘 뭉친 우리 농촌의 현실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어느 정도 현실에 기반을 둔 내용이라는 전제에서 말이다.
자폐증처럼 외부로 나가지 못하고 자신 안에서 곪고 있는 우리 농촌. 누구도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발 벗고 나서지 않는 현실. 그저 민원이 발생하면 머리 아프니 대충 땜질하라는 정부의 발언, 농산물이 안 팔리니 정부가 사주고, 비료 값이 오르니 비료 값 대주고, 돈이 없다고 하니 지원 자금 대 주는 식의 정책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의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