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결혼을 위한 레시피
케이트 캐리건 지음, 나선숙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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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중요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결혼하는 순간 잊어버린 질문이다. 아마도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고, 남편, 가장의 역할은 돌아가신 아버지처럼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가족을 버리지 않고 그들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

결혼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어머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버지는 요즘 돈으로 수십억 원의 부도내고 어디론가 가 버렸고, 그 후 여자 혼자 몸으로 자식을 키운 장한 분이다. 당시 어머니는 가진 것을 다 털어내고도 모자라 거의 10년 동안 빚을 갚아야 했다. 버시는 대로 약간의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만약 어머니에게 오빠(나에게는 외삼촌)가 없었다면 우리 세 식구는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학교선생님이 아버지를 뵙자고 하면 “애 아빠가 지금 외국에 나가 있어서요.”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애비 없는 자식이란 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내가 어릴 때는 당연하고, 결혼할 당시에도 이혼가정의 자식은 조금 문제가 되었다. ‘애비 없는 자식’이란 말이 ‘욕’같이 들렸고, 상대방 부모도 실눈 뜨고 바라봤다. 그러다보니 자식의 결혼을 생각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이혼은 물론이고, 재혼 같은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이혼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배다른 자식이 둘이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아버지 이름이 우리 호적에서 없어진 것은 그 분이 돌아가신 다음으로, 내 손으로 직접 그 이름을 지웠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변했는지, 아니면 이혼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부부가 평생 함께 사는 것이 ‘천연기념물’ 취급받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결혼, 부부라는 것이 무엇인지.

결혼! 나 같이 결손가정에서 자란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무척 어려운 단어다. 안다고 해봐야 부부가 싸우다 잠시 화해하여 폭풍전야 같은 고요함이 유지된다. 어느 날 눈 떠보니 아버지가 집에 없다. 근데 집에 사람들이 찾아와 돈 달라고 난리를 치더니 집을 남에게 줘야 한다며 조그마한 집으로 이사한다. 그 후 어머니와 친척들은 만나기만하면 집나간 아버지 욕을 해댄다. 뭐 이런 시추에이션 아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건 결혼이란 몇 년 동안의 연애감정 속에서 자식 낳고, 시간이 지나면서 싸우기 시작해서 상태가 심해지면 누군가 한 명은 떠난다. 몸이 떠나던 마음이 떠나든 뭔가 하나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어떻게 살든지 불행하기는 매 한가지란 생각이다. 물론 이 말은 자식의 시각에서 부모를 보며 하는 말이다.

결혼 초기. 나는 ‘사랑에 빠진 맛’으로 살았다. 일하러 가서도 아내 생각만 나고, 빨리 집에 가서 ‘사랑스런’ 아내를 부둥켜안고 싶었다. 저녁밥도 대충 먹고 침실로 골인, 노는 날이면 뭔가 재미있는 곳으로 놀러갈 궁리만 했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자 애 재롱 보느라, 귀여운 아이를 낳아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으로 몇 년의 세월이 그냥 갔다. 어머니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태어났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말을 지나가는 말처럼 여러 번 했으니까.

그러나 세월이 흘러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지고, 성격이나 나쁜 버릇도 어느 정도 알게 된 후, 게다가 결혼이 단 둘 만의 삶이 아니라 양가 가족까지도 함께 붙어오는 것이란 것을 절감하게 되는 순간 나는 다른 곳을 찾기 시작했다. ‘뭐 좀 더 재미있는 것 없을까?’ ‘나한테는 지금 화끈한 것이 필요해.’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인가?’ 이런 생각들이 서서히 사람을 유혹하면서 내 발걸음을 집에서 가능하면 먼 곳으로 이끌었다. 시쳇말로 사랑이 식은 것이다. 게다가 직장생활도 안정되고, 월급봉투도 두툼해지자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하긴 엄밀히 말하면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으니까 말이다. 그저 한 집에서 살고, 나를 가장 잘 알고, 문제가 있으면 함께 고민하는 사람. 자식 때문에 언성 높이고, 용돈을 좀 더 달라고 아부해도 되는 사람. 최소한 내가 입을 것과 먹을 것은 걱정 안하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아내다.

당신은 어떤가? 아직 결혼을 안 해봐서 잘 모른다고? 그럼 이 책을 봐라. 결혼생활의 진수를 알게 될 것이다. 상대를 바라보며 심적인 전쟁을 벌이는 내면의 진실을.

이 책에는 두 여자가 나온다.

한 명은 잘 나가는 30대 후반의 푸드 저널리스트로 미국의 상류사회에서 인정받는 캐리어우먼 ‘트레사’이고, 또 한 명은 ‘한번 결혼은 평생 결혼’이라는 전통 속에서, 부모가 결정한 결혼하게 된 트레사의 외할머니 ‘버나딘’의 이야기다. 두 명 다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었는데, 트레사는 결혼자체를 잘못했다고 엄청 후회하고 있고, 외할머니 버나딘은 처녀시절 만났던 한 남자를 잊지 못한 채 언젠가는 자신을 찾아오리라 믿으며 살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몇 십 년의 시차가 있다.

두 명에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두 사람의 남편 모두 아내를 위해 산다. 아내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아내가 원하는 것은 모든지 해 주려고 노력한다. 자기 곁에 가까이 오지 말라는 말까지도 말이다. 무척 운 좋은 여자들이다.

또 하나는 두 사람의 남편 모두 아내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는 다가가지 않는다. 대단히 맘 좋은 남편이다.

세 번째는 두 남자 모두 남편으로서는 무척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아내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녀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준다. 문제가 있다면 트레사, 버나딘 모두 자신이 원하는 사람, 즉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남자, 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남편이 아닌. 지극히 재수 없는 남자들이다.

물론 남편들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단점이 있었는데, 트레사의 남편은 지적, 경제적 수준이 아내보다 못하고 (트레사가 살던 아파트의 관리인이었다), 외할머니인 버나딘의 남편은 나이가 무척 많다. 게다가 버나딘에게는 말 한마디 상의 없이 부모에게 결혼을 승낙 받았다. 버나딘 입장에서는 팔려간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여자의 고민은 ‘내가 그(남편)를 사랑하는가?’였고, 대답은 완벽하게 “아니다"라는 점이다. 한 여자(트레사)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남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며 딴 곳을 두리번거렸고, 버나딘은 첫 사랑만이 자신의 반려자라고 믿으며 남편과 거리를 두고 산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비상식적인 내용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우선 트레사, 나이 38세의 여자가 아무리 결혼이란 절차를 밟았다한들 완벽하게 잘못한 결혼이란 것을 인정하면서 결혼생활을 끌고 가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남편의 밥 먹는 모습, 걷는 자세, 손톱 발톱 깎는 것, 게다가 친구들과 어울릴 때마다 신경 쓰게 만드는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외할머니 모습 또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처녀시절, 아무리 열렬히 사랑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바다 건너 사는 남자를 위해 남편이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두 여자의 이야기 속에서 결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 것 같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저자가 자신과 할머니 이야기를 자서전처럼 쓴 것으로 알았다. 이들의 심리가 마음에 와 닿았기에 소설인 줄도 모르고 읽었다는 말이다. 결혼이란 아무리, 정말 열렬히 사랑해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사랑이 식을 것이고, 그때부터 심적인 갈등이 시작되는데, 이 책이 바로 사랑 없는 결혼생활 부분부터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책 내용은 결혼에 도달하는 상황에서 시작하지만 말이다.

나는 최소한 10년 이상 결혼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책의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한두 번은 경험했을 것이고, 이들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도 몇 번은 해 봤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질문이다. ‘이 사람이 진정한 내 짝인가?’ ‘나는 이 사람과 결혼했지 가족과 결혼한 건 아니지 않는가?’ ‘나에게 맞는 짝은 따로 있는데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그/그녀는 왜 저런 행동을 하지? 내 수준에 안 맞게.’ ‘나도 뜨거운 사랑을 불태우고 싶다.’ ‘진정한 내 사랑을 다시 찾고 싶다.’ ‘어떻게 헤어지자고 말을 해야 하나.’ ‘이렇게 늙어갈 수밖에 없는 건가?’ 등.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 책에서 묘사한 두 여자 행동과 비슷하다. 어떤 때는 강하게 거부하고, 어떤 때는 현실과 타협하고, 또 어떤 때는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서글퍼지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이다. 물론 순간순간의 행복을 느끼면서 말이다. 단지 상대방의 복잡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기에 평온하고 행복하고 만족해 보일 뿐이다.

내 아내는 어땠을까? 아마도 그녀 역시 주인공들이 던진 질문들을 자신에게 수도 없이 물어봤을 것이고, 순간순간의 외로움에 둘러싸여 고민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도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럼 나는? 당연한 것 아닐까. 우리 둘 다 좀 더 행복한 삶을 원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결혼했다면 언제까지나 상대방을 열렬히 사랑해야만 하는가? 그래서 남편, 아내를 보는 순간, 거기에 취해 행복하다고 소리쳐야만 그것이 완벽한 결혼인가?

사랑이라는 게 무엇일까? 사랑과 결혼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스캇 펙 말대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자손 번식을 위한 유전자의 장난이라면 구지 결혼이란 제도가 필요 없을 것 같다. 우수인종을 만들려면 순수혈통보다는 다양한 유전자의 혼합이 더 유리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혼이라는 구조를 만들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한 순종과 헌신, 봉사, 신뢰, 믿음을 베풀어야 한다고 규정지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유전자의 유혹으로 인해 낳은 자손을 안전한 상황에서 양육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사회가 그 기능을 가져가기 시작하자 결혼에 대한 규율과 구속력이 해체되고 있는 것이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쨌든 나는 이 책에서 사랑과 결혼간의 관계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사랑해야만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했기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감정이 없어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사랑해야만 헌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헌신할 때만이 사랑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로써 말이다.

‘뜨거운 사랑, 사랑에 빠졌다’는 개념이 결혼을 성립시키는 조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오랜 세월, 부모와 함께 살던 세월에 자식과 함께 사는 세월을 더한 기간보다 더 긴 세월(거의 40~5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부부라는 관계를 유지하는데 그리 중요한 요인은 아닐 수도 있다. 거기에는 사랑과 함께 인내, 봉사, 헌신, 수용, 존경, 충성 등의 기질과 가장 중요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더 소중한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랜 결혼생활동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버나딘은 남편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사랑과 결혼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린다.

“제임스(버나딘의 남편)는 나의 인생이었다....마이클 터피(버나딘이 평생 그리워하던 남자)에 대한 내 사랑은 환상이었다. 내가 제임스와 함께 한 것이 진짜 나의 것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랑, 희생하고 타협하고 공유하고 견뎌야 하는 사랑, 실체가 있는 질기고 부드러운 사랑, 이것이 진짜다. 만질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으며 안아주고 보호해 주는 사랑, 항상 달콤하지는 않아도 친근한 맛과 향이 있는 사랑, 때가 되면 물처럼 필수적인 것이 되는, 삶과 호흡일 뿐인 사랑....

제임스는 인생을 같이한 사람이므로 내 인생의 사랑이었다. 하나가 사실이었듯 다른 하나도 사실이었다. 남편은 나의 빵과 버터였고, 나를 지탱해 주는 양식이었다. 그리고 마이클은? 그는 그냥 잼이었다....

완벽한 결혼은 죽음이 두 사람을 갈아놓을 때까지 삶의 대부분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정말로 세상에 없는 것은 쉬운 결혼이다....

결혼에서의 사랑은 불 꺼진 모닥불 가운데 숨어있는 금덩이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까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찾는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제임스는 나에게 사랑을 주었으므로 우리의 결혼생활에서 행복했다. 그래서 결국, 나도 모르게 내가 남편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못해 그리고 전혀 완전하지 않게.

하지만 삶에서 완전한 게 뭐가 있을까? 죽음을 제외하면.”

나는 이 말에서 ‘뜨거운 사랑’보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하는 것이 더 완벽한 결혼이라는 그녀의 말에 고개가 끄덕인다. 버나딘이 평생 그리워한 ‘마이클 터피’는 특정인물이기보다 그녀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순간의 욕망이었고, 현재의 지루함을 잊기 위한 망각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잼’이었다.

올바른 결혼에 대한 레시피는 없다. 사람마다 결혼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삶에 대한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의식적이든 아니던 간에 서로를 의지하며 산다는 것,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곁에 있어준다는 것뿐이다. 이는 순간의 열정은 없지만, 대신 '평상심'과 '고요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둔 삶으로, 완벽한 결혼을 '열정'과 '사랑에 빠진 상태'과 동일시하는 상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사랑의 표현방식이다.

우연이든 필연이었든간에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세상한파를 겪으며 50~60년의 세월을 함께 살아가다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 배웅을 해 준다는 것. 순간적인 쾌락이 지배하는 요즘 세상에서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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