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 - 바다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스티븐 캘러핸 지음, 남문희 옮김 / 황금부엉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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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가 생각하는 고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끝이 어딘지 잘 모르겠다. 내가 경험한 고통 자체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또 육체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이 가장 큰 고통같이 느껴지지만,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눈물 섞인 말을 듣다보면 그것이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 같기도 하다. 게다가 돈이 모든 것인 양 생각하기 쉬운 현대사회에서 돈 문제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보면 그 또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고통의 크기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차라리 어떤 고통이 더 큰 고통인지 판단하는 것 자체를 중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객관적인 크기보다 고통 받는 사람이 느끼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여러 권의 책을 읽다보면 요즘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기계발전문가들은 자신의 고통 하나를 통해 강사나 저술가로 변화한 사람들이 가끔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아니 가끔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내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만 봐도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스티브 도나휴, <내 인생을 바꾼 스무 살의 여행>을 쓴 브라이언 트레이시, 얼마 전에 서평을 썼던 책인 <위대한 반전>의 플립 플리펜, 자기계발서의 원조와 같은 <성취의 법칙>을 로버트 콜리어와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를 쓴 앤서니 라빈스, 영성분야의 스터디 셀러인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의 에크하르트 툴레 등이 바로 고통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이를 사람들에게 저술과 강연을 통해 전파하면서 유명해 진 사람들이다. (이 외에도 나열하라면 A4용지 몇 십장을 쓰고도 부족하겠지만)

이 책 역시 일반사람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저자만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고, 저자는 이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즉 구명보트 하나로 막막한 대서양에서 76일 동안이나 표류함으로써 몸무게는 20kg이나 빠졌고, 땅에 내려 제대로 걷기까지(오랜 시간 바다 위에서 생활하다보니 딱딱한 땅에 익숙해지지 못해) 거의 한 달여 시간이 걸린 상황까지 갔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사실 조금 덤덤했다. 타고 가던 배가 침몰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조그마한 구명보트 하나에 의존한 삶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거기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잘 몰랐다. 두려움, 안타까움, 목마름, 배고픔, 인내 등 우리가 평소 자주 듣는 이야기 이상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표류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저자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해 낼 수 있겠는가? 큰 바다라고 해봐야 하와이에서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한가로이 칵테일 마시던 경험이 전부였던 내가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며 나도 모르게 서서히 저자의 급박한 상황과 심리적인 동요, 그가 탄 구명보트의 허술함 등이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저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다.

저자의 상황은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망막한 대서양 한 가운데에서 보이는 것은 짙푸른 바다, 거기에 지름 1.5m, 두께 15cm의 둥그런 고무보트에 혼자 앉아 잘 듣지도 않은 태양열 증류기와 약간의 음식(일주일 정도 먹을 수 있는 분량)과 창살, 나이프 등 몇 개의 소지품만 가진 채 타고 있었다.

한 번 생각해 보라. 경포대에서 이런 보트를 타고 어디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나 전복되지 않은 채 떠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만약 큰 파도가 밀려온다면 그것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볼 것인지, 게다가 하루에 250ml(일반적인 컵 한잔 분량)의 물만 먹으며 버틴다면 말이다.

저자의 표류기 중에 가장 가슴을 저미며 봤던 부분은 구명보트의 바닥에 찢어져 바람이 새는 장면이었다. 자신이 잡은 물고기가 도망가면서 보트에 상처를 낸 것이다. 바람이 빠지는 상황에서 그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조금전만해도 15cm이었던 바닥이 6cm로 급격히 줄어들면서 자신의 몸 자체가 물속으로 쑥 빠지는 그런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어라도 지나가면 아마도 물밑으로 쑥 내려와 있던 그의 다리가 먹이인줄 알고 물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결국 바람 빠진 구명보트를 정비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씩 생각해 보며 수리에 필요한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책에서 자주 말한다. 항상 이성과 감정이 싸우는데 그럴 때마다 이성적인 판단을 위해 자신의 몸을 학대했다고. 항상 몸을 움직임으로써 나약해지려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 결과 구조되었을 때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육체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는 죽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쉬울 것 같아 살기 위해 모든 힘을 다 썼다고 한다. 멋지지 않은가. (물론 저자 입장에서는 이런 표현 자체가 듣기 거북하겠지만 말이다.)

만약 자신의 고통 때문에 삶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세상을 원망하며 모든 것을 내 던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면 이 책을 보라. 그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 주변에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축복받은 삶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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