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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패턴 - 루스 베네딕트 서거 60주년 기념, 새롭게 탄생한 문화인류학의 고전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8월
평점 :
문화라는 것은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우리가 평소 별 생각 없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거의 모든 것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바로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를 모를 때는 그저 나 혼자의 생각이라 느꼈던 것도 문화를 알고 보면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뭐 이런 것이다. 대학 들어가려고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것은 대한민국 학생문화의 하나일 것이다. 또 학교를 마치면 취직을 해야 하고, 안정된 자리를 차지한 후,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기르다 퇴직하는 그런 삶의 모습도 하나의 문화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문화는 예술이고, 연극이고, 전통 어쩌구 하는 선을 훨씬 뛰어넘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요즘은 과거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훌쩍 뛰어넘는 사람들이 많다. 앞에서 말한 삶의 방식을 거부하는 모습이다. 즉 직장을 다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취직을 해서 경제력을 얻었으면 당연히 결혼하는게 아냐? 라는 모습을 거부하고 나홀로 산다는 사람이 무척 많다. 거기다 삶의 기쁨을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자신의 성장,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에서 얻고자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바라보며 나는 세상의 이단자라거나, 남다른 삶을 산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면 이런 삶을 선택한 사람 수가 적지 않다. 그 수가 남의 눈에 띌 정도가 되니, <마이크로트렌드>라는 책에서 ‘나홀로족’이란 용어가 나오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이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도 하나의 문화라는 것이다. 그런 문화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선택한 삶을 보다 좋게 만들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모습을 만들어 냈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문화라는 단어보다는 트렌드라는 말을 더 쓰는 것 같다. 예전과는 달리 사람들의 삶이 무척 다원화되다보니, 게다가 하나의 문화가 오랜 세월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몇 십 년도 안 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다보니 이제는 차라리 ‘경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오래전 문화라는 단어를 만든 서구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들 중심으로 바라봤다. 스스로의 삶을 정중앙에 놓고 그것과 유사한 삶은 문명,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미개, 자신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야만이라 표현했다. 게다가 책상 앞에 앉아 남들이 찾아놓은 자료를 갖고 부분적인 사실을 확대해석해 전체라고 결론지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 오른 영화가 하나 있는데, 예전에 봤던 <로빈후드>라는 영화다. 그 영화를 보면 아랍인이 영국으로 주인공과 같이 왔는데, 아랍인이 쓰는 물건, 예를 들면 망원경이나 화약, 산모처지 기술 같은 것을 보며 로빈후드는 놀란다. 그 때 아랍인이 한 말이 있다. “정말, 누가 야만인인지 모르겠네.” 당시 유럽인들은 아랍사람들의 생활방식도 태도를 보고 야만인이라 평가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저술할 당시 문화인류학에 대해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 물론 저자의 이야기는 지금은 거의 상식적인 내용이다. 대학교의 교양과목 시간에 배우고 있고, 또 문화라는 말 자체가 거의 일반화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 역시 저자와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우선, 하나의 문화를 기준으로 다른 문화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문화란 특정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기에 해당 지역을 떠난 곳에서 일괄적인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사실 더운 베트남과 추운 에스키모의 문화를 동질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두 번째, 문화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사회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집단이 아닌, 외부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채 오랜 시간동안 유지된 조그마한 집단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영향을 주기 때문에 특정의 문화요인을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그마한 집단 몇 개를 조사해서 그들 문화 속에 간직된 동질요소와 이질변수를 구분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이 출간된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이 책을 보면 무척 의미 있는 내용들을 접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문화에 대한 태도문제 때문이다. 자국의 문화를 우월하게 보는 경제대국의 시각, 자신들의 문화만이 인간을 올바르게 살게 할 수 있다는 독단적인 자세, 가난한 나라를 ‘가난’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마치 열등한 문화에서 그 원인은 찾으려는 학자들 등등 아직도 우리는 문화 우월주의가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틀렸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는 이 책을 보며 문화에 대한 원점의 시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