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7년 전, 거의 7~8년 동안 책을 안 봤던 내가 다시 독서를 시작할 때다. 당시 책을 보게 된 이유는 직장이 불안해져 퇴직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해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또 20대, 30대에 그토록 열심히 책을 봤건만 마음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독서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싶었고.

당시 나는 회사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그때 운 좋게 찾은 것이 ‘장정일의 독서일기’다. 저자가 책에서 얻은 지식을 특정주제에 따라 정리한 책으로 6권까지 나온 책 중에서 두 권을 봤다.

그리고 7년이 지난 며칠 전, 다시 장정일의 책을 봤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는 저자의 생각이나 다른 책의 요약내용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봤지만, 지금은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장정일식의 공부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는 점이다. 저자의 글쓰기 패턴을 살펴보면 거기에 직장인들의 독서경영방법과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시각을 정립하는 남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책의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전개시키는 나름대로의 사고패턴이 있다. 그의 글 쓰는 방법과 순서는 이렇다.

우선, 저자가 글 쓰는 이유가 먼저 나온다.

저자 자신이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라고 말한 것처럼 글 첫마디에는 이 주제를 왜 선택했는지, 그 주제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를 간략히 설명한다. 어떤 때는 자신의 경험을, 어떤 때는 책이나 신문에서 본 짤막한 기사를 갖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글을 쓰거나 강의안을 만들 때 세 가지를 먼저 결정하라고 한다. 첫째, 내가 이 글을 왜 쓰는가, 둘째, 서두를 어떻게 꺼낼 것인가, 셋째, 결론을 어떻게 내릴 것인가이다. 특히 서두는 독자가 글을 더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부분이기에 무척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완성되면 중간부분은 결론에 맞춰 적합한 소재(글감)만 결정하면 된다. 본문은 결론의 증명부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본 내용을 이끌 핵심도서 한 권을 설명한다.

물론 책을 요약하는 것은 아니고, 책의 핵심주제를 서두의 문제의식과 연과지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면서 핵심도서의 저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 그 저자가 쓴 저서 몇 권을 갖고 그의 취향이나, 세상관 등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형식이다. 이는 독자에게 해당 저자를 알게 함과 동시에 장정일 자신의 독서 내공을 강하게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 장정일은 이런 책도 읽었어!’ 하는 느낌이다. 당신도 앞으로 글을 쓸 때 이런 방식을 사용해 보라. 다음에 전개될 글에 대한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세 번째, 이제 본론으로 넘어간다.

우선 두 번째인 서론에서 언급한 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부분의 특징은 해당 도서의 내용을 자주 인용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엔 장정일 자신의 생각보다는 해당도서 저자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고 쓰는 것 같다. 자신의 말로 말이다. 하지만 내용자체가 부드럽게 넘어가기에 읽는데 재미를 느낀다. 아마도 이 부분이 글쓰기 솜씨인 것 같다. 자신의 주장과 인용문을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기술 말이다. 따라서 장정일과 같은 글쓰기를 하려면 이 부분을 많이 연습해야 한다.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을 연결시키는 부분이다.

네 번째, 갑자기 다른 책 또는 주제로 넘어간다.

이 때 다루는 책은 전체 주제와 연관성이 있기는 하지만, 별 상관없는 책도 있다. 그러다보니 처음엔 당황하기도 한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를 알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주로 보는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독서일기>를 읽는 이유 중의 하나가 어떤 논리를 알자는 것보다 다양한 책의 내용을 섭렵하자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주제의 혼합은 내용에 다채로움을 심어주고, 독자에게 잠깐 쉬어간다는 느낌을 줌과 동시에 저자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다. 책의 핵심내용과 연관 있는 것 같으면서도 별 상관없는 말,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결론으로 넘어가는 이런 내용들은 내용 전체를 살아있게 만든다. 따라서 글을 재미있게 쓰려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이 있는데, 미치 앨봄의 쓴 책이다. 전체 내용은 시간에 따라 진행하면서, 각 절마다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 간지처럼 붙어있다. 그것들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이 글이 왜 여기에 들어갔지 하는...) 책의 흐름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두개의 영화를 한꺼번에 보는 느낌이랄까. 구본형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런 방식을 썼던 것 같다.

다섯 번째, 다시 처음 책으로 들어온다.

이때부터는 맨 앞에서 언급한 핵심도서의 내용을 다시 집중적으로 인용하면서 서두에서 언급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부분을 읽어보면 장정일 개인 의견인지, 아니면 핵심도서 저자의 생각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많다. 따라서 저자를 비판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흠잡을 거리를 주는 부분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말은 자기 생각처럼, 불리한 말은 남의 말을 인용하여 면피하려고 한다는 평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점이 ‘독서일기’ 와 같은 책이 가진 본질적인 한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중요한 것은 저자 생각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전달하는가의 문제이지, 튀는 문장만이,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운 글만이 최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섯 번째, 마침내 결론에 도달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가끔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데, 꼬리 빠진 참새 같다고 할까, 서론과 본론에 비해 결론은 무척 간단하게 끝난다. 아마 저자 스스로가 독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더 많은 비중을 두어서 그런 것 같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에서 다르고 있는 공부의 내용은 그야말로 하나의 시안에 불과하고,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공부란 내가 조금 하고 그 다음에는 당신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책을 읽어줄 젊은 독자들이, 내가 이 책에서 다룬 주제와 내용을 보고 나서 여기서부터는 내가 더 해 봐야지‘하고 발심할 뿐이다.”어쩌면 이런 생각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온라인서점에 등재된 책 평가를 확인해 봤다. 재미있는 것은 평가점수가 무척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100점 만점도 부족해서 교리서처럼 책을 찬양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좌파에 마스터베이션하는 책을 왜 돈 주고 사야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아마 저자의 시각이 피부미용사 같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겉으로 봐서는 매끈한 피부를 가진 것 같은 여성, 그러나 피부측정기를 대고 그곳을 보면 울퉁불퉁한 달 표면 같다. 게다가 땀구멍에 피질이 쌓여있고, 이것이 털에 붙어 고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언뜻 봐서는 별 문제없는 사회, 그러나 그곳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순간, 우리 눈앞에 평소 알지 못한 수많은 문제가 펼쳐진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저자의 글은 바로 이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의 글을 보며 좌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보수, 진보와 같은 평이 나오는 것 같다.

장정일의 글쓰기는 말로 표현하면 간단하다(물론 직접 쓰는 것이 쉽지 않지만). 책을 보다 궁금하거나 좀 더 알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그것과 관련된 책을 몇 권보고 책들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뽑아 정리한다. 공통점은 공통점대로, 차이점은 차이점대로 정리한 다음,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이다. 가끔 자신이 본 책 내용을 인용하면서.

그러나 장정일처럼 글을 써 보라면 많은 사람들이 주춤거릴 것 같다. 알고 보면 간단한 구조의 글인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가 글 솜씨 자체와는 관계없는 다른 곳에 있다고 본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 그것을 증거 할 다른 사람의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뭔가 생각이 있어도 그 말에 적합한 인용 문구를 찾지 못하면 글쓰기 자체를 포기한다. 안타깝지 않은가. 자신의 좋은 생각을 인용문구 하나 때문에 포기한다는 것이.

나는 인용이란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지 반드시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요즘엔 ‘인용을 중심으로 한 책’과 ‘자신의 생각만으로 저술한 책’이 분명히 구분되는 것 같다. 과거처럼 인용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책도 있다는 의미다. 

‘인용을 중심으로 한 책’은 다른 책의 내용을 증거자료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이어 책을 만든 것이다. 예를 들면 강만준의 글, 공병호의 10년 후 한국, 그리고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 같은 책이다. 그러나 인용을 중시하지 않는 책은 자신의 생각을 느낌 그대로 정리한 책이다. 얼마 전에 히트한 <이기는 습관>도 바로 그런 종류의 책 아닌가. 인용을 중심으로 한 책은 지적인 맛을, 자기 경험과 이해를 중심으로 한 책은 감성을 건드리는 맛으로 보면 된다. 게다가 인용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그렇게 이해했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건가! (물론 특정 저자가 자기 책에서 A라고 한 것은 B라고 쓰면 안 되겠지만)

두 번째는 책과 책 사이의 연관관계를 잘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책의 세부내용에 치중하다보니 숲 모양보다 나무만 봐서 그런 것 같다. 대부분의 책은 구성 자체가 저자의 주장과 그것의 증거자료로 되어 있다. 책 분량이 몇 백 페이지가 되어도, 저자의 주장은 A4용지 한 장정도면 충분히 정리할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증거자료와 세부설명이다. 근데 세부내용은 동일한 주장의 책이라도 모두 다르다.(이 부분이 같으면 완전히 복사본이다) 그렇기에 세부내용에 초점을 맞추면 책과 책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다. 책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저자가 말하고자 한 핵심주제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책과 책 간의 연관성을 찾아 이를 서로 연결시킨 책으로 책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배가시키는 좋은 사례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닌 셋도 되고 넷도 될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이런 것이 낫 설고 어려운 이유는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이 학생들의 머리(찻잔)에 선생, 교수가 물을 따라주는 주입식방식이기에 그런 것 같다.

독서를 통해 무엇인가 배우고, 자신만의 시각을 확립하려면 책만 읽어서는 안 된다. 책에 들어있는 정보들을 연결해 자신만의 논리로 다시 짜 맞춰야 한다. 즉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사례가 바로 장정일의 독서일기다. 

다만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은 하나의 주제를 정해 독서일기를 쓴다고 해서 그 주제로 검색된 책만 보라는 의미는 아니다. 도리어 평소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내용이나 문구가 나오면 그걸 정리하는 것이 더욱 좋다. 이것이 더욱 설득력 있고, 더 다양한 시각을 우리에게 보장해 준다. 이제는 통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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