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소원 - 살아가는 동안 꼭 이루고 싶은
게이 핸드릭스 지음, 이정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다섯 가지 소원>을 읽어보다 문득 내 앞에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봤다.

어느 날 저녁. ‘죽음’이 내게 다가와 나를 저승으로 데려가기 전에 이런 질문을 했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당신 인생은 완벽한 성공이었나요?”

아마도 지난 몇 십 년의 삶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것이고, 나는 내 삶이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것이다.

“아니요. 저는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완벽한 성공과는 거리가 멀죠.”

그러면 ‘죽음’은 또 다시 물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완벽하지 못했다면, 그럼 완벽한 성공이 되기 위해 바라는 것은 뭐였죠?”

나는 슬픔에 잠긴 표정을 지으며 말할 것 같다.

“너무 외롭게 살았어요. 항상 혼자 살았던 것 같아요. 물론 나를 사랑해 준 어머니, 동생, 아내, 아들도 곁에 있었지만 항상 나 혼자 세상을 사는 것 같았어요. 국민학교 4학년 때 다른 학교로 전학하면서 친구가 없어 그때부터 외톨이로 보냈고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친구가 한두 명 있었는데, 그나마도 지금은 어디서 뭐하고 사는지도 몰라요. 고등학교 졸업식 때 누가 와서 축하한다고 악수를 청했는데 저는 그가 누군지 몰라 누구냐고 물었죠. 그 친구 왈 ”야. 너랑 같은 반이야.“ 1년 동안 같이 공부한 반 친구를 몰라볼 정도면 할 말 다한 거죠. 대학교 때는 봉사활동 한답시고 나이든 어른들 사이에서 살다보니 과 친구들과는 자주 어울리지 못했고, 공부를 더하겠다고 다시 들어간 대학에서는 도서관에만 처박혀 살았죠. 직장 다닐 때는 항상 일만 생각했고,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주겠다.’는 식으로 대했어요. 저는 항상 사람관계는 정확한 게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거든요. 그러다보니 남들은 고향친구, 죽마고우 이야기하며 신나게 떠들 때 저는 항상 가만히 앉아있어야만 했죠. 직장 때 알던 사람들도 회사 떠나면 다 잊어버렸기에 항상 처음부터 시작했다고 할까.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았어요. 저도 제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잘 모르겠지만요. 그러다보니 살면서 많이 외로웠죠. 특히 마음이 아프고 세상살이가 절망적일 때는 혼자라는 것이 너무 서글펐어요. 모든 것을 저 혼자 이겨내야 했으니까요.”

‘죽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할 것이다.

“그래요. 그것이 왜 그리 중요한가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왜 중요하냐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평소 갖고 있는 생각대로 이야기하면 이럴 것이다.

“사람관계는 무척 중요하죠. 친구관계이든, 애인관계이든, 하다못해 부부관계, 부모자식관계도 모두 사람관계니까요. 사람들은 성공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달렸다고 하지만 자기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죠. 게다가 세계제일의 갑부가 되고 대기업 총수가 되었다한들 자기 혼자 골방에 앉아서 무척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겠어요. 저는 사람과 사람간의 열린 만남만큼 행복감을 주는 건 없다고 봐요.”

내 말을 들은 ‘죽음’은 그 말이 이루어진 것처럼 현재형으로 말해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후회한 내용을 문장을 바꿔 말할 것이다.

“내 인생은 완벽한 성공이에요. 항상 마음을 열고 어떤 형식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며 살아요. 그들의 기쁨과 아픔이 내게 있는 그대로 전달되고, 나도 그들에게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죠.”

만약 ‘죽음’이 내 말을 듣고 다시 태어난다면 그걸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할 자신이 있냐고 물으면 나는 순간 멈칫하겠지만, 곧 바로 “예‘라고 대답할 것같다.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 생각난 것은 내 일생을 통해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들, 정말 이렇게 살고 싶었는데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이 또 없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둘. ‘현재 내 앞에 놓인 일과 사물 속에 몰입하면서 살아있다는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것.’

셋. ‘안정된 자리와 직책 속에서 내가 연구, 탐구하고 싶은 것을 맘껏 공부하는 것.’

넷.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을 저술이나 강의를 통해 남에게 부지런히 전달하는 것.

다섯. ‘내 가족, 어머니, 동생, 아내, 아들과 서로 깊이 아끼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

여섯. ‘일 년에 두 번 정도 나 혼자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으로 여행하는 것.’

일곱. ‘매일 땀 흘리며 운동하는 가운데에서 육체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것.’

여덟. ‘신과 함께 한다는 느낌 속에서 사는 것.’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가상의 이야기지만 ‘죽음’의 질문에 대답하는 동안 정말 이렇게 살고 싶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고, 이렇게 살수 있다면 죽음 앞에서도 ‘나는 완벽한 삶을 살았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왜 그렇게 살지 못할까? 어쩌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수만은 없다’는 일반적인 통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앞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한 가지 느낀 게 있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삶, 완벽하게 성공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바라는 여덟 가지의 삶’ 중에는 특정의 자격증이나 학위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도 있고, 일정수준 이상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들은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다.

첫 번째의 사람관계는 당연하고 두 번째인 ‘현재를 느끼는 것, 네 번째인 ’ 책 쓰고 강의하는 것(물론 이것은 누군가 요청해야 가능한 것이지만), 다섯 번째인 ‘가족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 그리고 여섯 번째인 여행하는 것, 이것도 비용 을 따져봐야겠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게이 핸드릭스는 <다섯 가지 소원>에서 자신의 성공된 삶은 ‘나는 완벽하게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이를 통해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원하는 삶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저자가 말한 자신의 다섯 가지 소원은 이렇다.

첫 번째.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다

두 번째.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나의 진실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상대방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아 그것이 마음을 항상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내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자신보다는 상대방이나 세상의 이목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 신성함과 우주의 진리를 이해하고 싶다

다섯 번째.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현명한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저자의 소원들을 보며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삶의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특히 두 번째 소원 ‘나의 진실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나도 무척 공감했다.

이 소원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상대방에게 전하지 못한 진심을 전해주고 그 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것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소원인데, 그는 이 소원을 실천하기 위해 그 동안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진실’ ‘지키지 못한 약속’ ‘직접 전하지 못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 ‘갚지 못한 돈’의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가장 내키지 않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가장 어려운 것을 먼저 해내면 나머지 일들은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무리하는 행동의 효과에 대해 말한다.

“(목록의 일을 갖고)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하나씩 매듭지을 때마다 내 안 깊은 곳에서 신선한 에너지가 솟구쳐 나오는 것이었다, 마무리 지은 일이 새빨간 거짓말을 실토하는 것처럼 쉽지 않는 일이었을 때 특히 거기서 분출되는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다시 태어난 듯 한 기분이었다....마무리하는 행위는 우리와 우주의 인연을 축복한다. 우리가 우주에 조금씩 더 가까이감에 따라 우주는 우리에게 더 친숙한 공간이 된다. 마무리하는 일에 점점 능숙해 지면서 나는 미처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고 행복한 비명을 지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나는 이런 일들이 우주가 내게 보내는 윙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때마다 나도 감사하며 우주에 윙크를 보낸다.”

나는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 인생의 중요한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그려볼 수만 그런 삶을 사는 게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하며 나오는 ‘완벽한 삶’에 대한 대답은 남이 주어야만 가능한 것, 즉 갑부가 되고, 유명스타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 등‘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완벽하게 성공적인 삶’의 모습이며, 사랑하고, 감동하고, 나눠같고, 이해하고, 존경하고, 열정을 불사르는 그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독자에게 제안한 방법, 즉 죽음을 생각하며 자신에게 묻는 ‘나의 완벽하게 성공한 삶의 모습’은 기존의 사명이나 비전 수립방법보다 간단하면서도 자신의 욕구를 즉각적으로 이끌어 내준다. 아마도 ‘죽음’이라는 상황을 가정한다는 것 (이 점은 사명작성법과 유사), 깊이 생각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따지지 말라는 의미다) 바로 대답하라는 것, 그리고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다는 특징 때문인 것 같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바라는 완벽한 삶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고, 그런 삶을 살겠다는 자신의 의지라는 내용이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소원을 실현했다는 만족감에 숨을 들이쉬고, 모든 것이 마무리된 삶의 축복 속에서 숨을 내 쉬는 것이다. 한편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숨을 들이쉬고 내 쉴 때 마다 소원을 실현해 나갈 의지를 다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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