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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평점 :
우리에게 확실한 것이 하나있다면 그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인지 모르기에 평소 이 점을 잊고 사는 것뿐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언제 죽을지 안다면 어떨까? 그게 행운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아마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다.
40대 중반 당시, 마음이 무척 괴롭고 세상살이가 허무하다고 느꼈을 때가 있었다. 하늘을 보면 저기 어딘가에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건가 궁금했고, 내가 죽으면 과연 무엇이 되는지 궁금했다. 당시 나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죽음’ ‘임사체험’에 대한 책을 열심히 봤다. ‘신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본 것도 이때다. 그 때 심정은 만약 죽음이 별로 외로운 것이 아니라면 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고려했었다. 아마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 차라리 모든 것을 잊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때 책을 보며 느낀 것은, 물론 책에 나온 내용들이 백 프로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이란 것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고, 지금 이 순간은 뭔가 색다른 것을 경험하기 위해 집을 떠난 상황이라고 할까? 어쨌든 지구별로 잠시 여행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생각은 이랬다.
‘그래. 까짓 거 잠시 놀러왔다고 생각하지 뭐. 근데 이왕 놀러왔으면 좀 더 많은 것을 느껴봐야 하는 것 아냐? 여행가서 돌아갈 때 생각해 봐야 나중에 후회할 게 뻔한데...’
그 때부터 삶에 대한 두려움과 허무함이 조금씩 사라졌고, 얼마 안 있어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어차피 여행 온 거라면 좀 더 재미있게 살자는 마음이었다. 파도를 두려워하면서 파도타기를 즐길 수는 없고,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롤러코스트를 탈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당시 생각은 ‘나는 아직 죽으려면 멀었다’는 전제 속에서 좀 더 세상을 즐기겠다는 느긋함이었다. (요즘은 그 때 생각을 많이 잊어버려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하지만 만약 내일이 이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라면, 그리고 다시는 찾아올 수 없는 단 한 번의 여행이라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내 앞에 놓인 돌멩이 하나,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길거리를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창밖에서 너울거리는 나비의 날개 짓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쓸 것 같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사는 모리교수가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죽음을 생각할 때면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었다.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오랜 시간 고통과 함께 살다 돌아가셔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잠자듯이 이 세상을 떠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평소와 같이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잔 마시고, 일하고, 저녁상을 앞에 놓고 가족과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다가 그 날 밤 조용히 내가 온 것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고통도, 아쉬움도, 슬픔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나를 이 세상에 보낸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종교를 갖고 있어 이런 표현을 썼다.)
하지만 이 책 <마지막 강의>을 보니 그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를 보내는 사람도, 내 자신도 별다른 고통 없이 삶을 정리하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최소한 내 가족과 벗들에게 뭔가 남길 시간은 필요한 것 같았다. 특히 이 말 한마디는 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내 곁에 있어줘서 정말 행복했어.’
이 책의 저자인 랜디 포시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암 때문에 몇 달 못산다. 지금쯤은 죽었을지도...) 자신의 죽음보다는 세상에 남을 가족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가 가장 힘들어 한 것은 아버지를 잃어버릴 세 명의 아이들 문제다. 아직 어려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할 수 없는 아이들이 불쌍하고, 한편으로는 누가 자신을 대신해 아버지 역할을 해 줄 것인지, 또 철이 들어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민 끝에 이런 문제를 강의로 풀고자 했고, 이 책은 바로 이런 용도로 만들어 졌다. 자신이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개인적으로 녹음하거나, 집에서 비디오로 녹화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함께 듣고 있는, 그리고 그들도 인정하는 말을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책 내용은 죽음을 직면한 사람이 썼다고 보기에는 재미있고 발랄하다. 책을 읽다보면 ‘이 사람이 정말 곧 죽을 사람 맞아?“ 하고 의심할 정도다. 저자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랑스럽고 추억에 남은 내용들을 강의하듯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배운 지혜들을 가식 없이 이야기한다. 절대적인 진리라기보다는 부모에게 배웠고 자신이 옳다고 믿은 삶의 방식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듯이 단순명쾌하게 전달한다.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고통 속에서 헤매다가 죽었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그리고 세상 부모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 생각에 부모의 임무란, 아이들이 일생동안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꿈을 열정적으로 좇을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향한 나의 꿈은 매우 확실하다. 나는 아이들이 꿈의 성취로 가는 자기만의 길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없을 것이므로, 한 가지 분명히 해 두고 싶다. 얘들아. 아버지가 너희들이 무엇이 되기 바랐는지 알려고 하지 마라. 나는 너희들이 되고 싶은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바로 그것을 이루기를 바랄 뿐이다.”
(이건 다른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보며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낸 ‘신’의 마음도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신‘에 대한 복종, 의무, 맹세가 아닌 오로지 자신의 영혼을 키우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러나 역시 그도 죽음을 앞에 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글 중간 중간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의 단면을 보게 된다. 세상을 더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야한다는 것에 대한 괴로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둔 채 혼자 떠나야한다는 슬픔이다. 그는 평소 자신의 죽음을 별로 의식하지 않으려 하지만, 가끔 그것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 때는 자신도 운다고 한다. 특히 혼자 샤워할 때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와 아내의 포옹장면을 보다 그만 울고 말았다.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내용은 저자가 강의를 거의 끝마쳤을 때였다. 아내의 생일을 위해 참석자들에게 생일축하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노래가 끝났을 때 저자는 아내를 무대 위로 불러냈다. 저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녀를 무대 위로 불러내고, 그녀가 나를 향해 걸어오자, 억누를 수 없는 충동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녀도 그랬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키스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입술에 그리고는 볼에. 청중은 계속해서 박수를 보냈다. 우리에게도 박수소리가 들렸지만 마치 그들이 여기 말고 어디 먼 곳에 있는 듯이 여겨졌다. 서로에게 안겨있던 그 순간 재이는 무언가 내 귀에 속삭였다.
‘제발 죽지 말아요.’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대사였다. 하지만 그게 그녀가 한 말이었다. 나는 그저 그녀를 더욱 더 세게 껴안을 뿐이었다.“
나는 그 동안 죽음에 대한 책을 여러 권 봤는데 그런 류의 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내용이 몇 개 있다. 첫째는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마라는 말이다. 그런 걱정은 그 때가서 해서 늦지 않기에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맞이하라고 한다. 둘째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표현하라는 말이다. 특히 남을 속이거나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은 오래 가지 못하기에 결국엔 솔직함보다 더 큰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셋째는 자신 앞에 놓인, 자신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항상 감사하라는 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삶이 주는 축복이고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불평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거기서 무엇인가를 얻으라는 것이다. 넷째는 문제가 있거나 장애물이 있으면 고민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라는 말이다. 안된다고 가만히 앉아 걱정하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해결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책에도 이와 같은 내용들이 어김없이 나온다. 자신의 삶을 아이들에게 전하고자 했기에 심오한 문장이나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결론은 앞서 저자와 같은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도 이게 삶의 본질인가 보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저자가 한 말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더 이상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는 순수한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가장 인간다운 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이 책에서 무엇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변할 것이다. “내가 얻은 가장 값진 선물은 나에게는 아직 가족과 벗들에게 내 사랑을 전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 시간이 랜디 포시보다 더 많을지는 몰라도.”
나는 그런 점에서 랜디 포시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Thanks. Randy Paus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