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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쿠르트 호크 지음, 강희진 옮김 / 토네이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책 내용이 전체적으로 무척 한가롭고 여유롭다. 뭐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책 속에서 힘들게 살아온 반평생을 뒤로 하고, 남은 생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한 중년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아내와 함께 하는 아침식사. 황혼을 바라보며 마시는 차 한잔, 그리고 정원을 넘나드는 조그마한 동물 이야기. 세상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뭔가가 정지된 것 같은 삶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바라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봤다. 현재 내 나이 50, 아직도 책상 앞에서 뭔가를 한답시고 낑낑대고 있지만, 그래도 꿈이 있다면 바로 이 책에 나와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내 앞에 놓인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삶이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빠름이 싫어진다. 몸의 동작이 느려져서가 아니라 빠르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도심지가 머리 아프고 사람들의 조잘대는 소리가 공해처럼 들린다.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힘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런 모습 속에서 고요함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즐거움의 다는 아니기 때문이다. 도리어 고요함 속에서 느끼는 안도감이랄까, 이런 삶의 즐거움을 조금씩 알게 된다.
책에 나온 내용들이 모두 마음에 와 닿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이지만, 특히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읽으면서 나 역시 저자와 하나가 되어 조그마한 동물들과 미소를 나누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다람쥐. 정원의 호두나무 하나를 두고 다람쥐와 인간간의 싸움이라고 할까. 서로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고, 그러다 결국엔 사람이 주는 호두를 먹게 되는 다람쥐. 그들은 저자나 저자의 아내가 주는 호두를 먹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에게 먹을 것을 줘서 고맙다고? 아니면 원래 자신 것인데 인간이 빼앗아 간 거라고? 어쨌든 뭐가 되었든지 간에 인간과 다람쥐간의 눈치싸움은 읽는 나로 하여금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했다.
저자의 생활이 무척 부럽다. 나보다 거의 30여년 더 살은 저자이지만 과연 내가 그 나이되었을 때 저자처럼 살 수 있을지,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은 유일한 질문이었다. 그러다보니 항상 내 곁은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히는 일, 경제력, 미움, 질투 등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저자의 삶에서 부러운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해 보자면 하나는 여유로움이다. 세상이 흘러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저자의 마음이다. 또 하나는 삶에 대한 호기심이다. 이는 자기 곁에서 벌어지는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관심을 갖고 관찰하는 마음이다. 저자는 이런 삶에서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가장 부러운 것은 오늘 하루를 최대한 누리겠다는 저자의 삶에 대한 의욕이었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고, 거기서 기쁨을 찾아내는, 그리고 그러한 사소함을 글로써 표현할 수 있는 저자의 풍요로운 감성이다.
내가 저자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과연 나는 저자만큼 풍요롭게 살 수 있을까? 저자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삶의 아름다움과 오늘의 소중함이 어떤 것인지 저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면,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좀 더 멋진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이것은 단지 생각뿐이고, 오늘 당장 저자와 같은 시각으로 자신과 주변을 바라볼 수 없다면 저자 나이 아니라 그 이상을 살아도 지금과 별반 다를 것 같지 않다. 책을 읽으며 느낀 서글픔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