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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작가로서 대성할 수 있는 기본자질을 가졌다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요즘처럼 많은 컨텐츠가 필요한 세상에서 남보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뭔가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쓴 다음 그것을 읽어보면 낮 설게 느껴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내가 쓰려고 했던 것이 이런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장도 이상하고,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갑자기 주제가 이상한 곳으로 빠져버려 내가 써 놓고도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글 쓰는 법’에 대한 책이 있으면 우선 손이 간다. 이 책을 한번 읽어보고 나도 대박 터지는 글을 한번 써 볼까. 잘해서 10만부만 팔리면 인세만 갖고도 몇 년을 놀고 먹을 수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책을 보고 나면 항상 남은 것은 허탈감이다. 일단 써라. 무조건 쓰고 봐라.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다. 속에 있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글은 쓰다보면 늘게 되어있다. 그러니 우선 써라 다.
그 동안 이런 내용의 책을 몇 권보다보니 책에서 말하는 내용에 나도 모르게 길이 들어 일단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문장이 나가는 대로,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써 나갔다. 나중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지경이 되어도 그냥 써 나갔다. 그리고 그 결과가 요즘 쓰고 있는 서평이다. 처음에는 책을 읽고 A4용지 한 장을 채우겠다고 시작한 글이 조금씩 늘어나 요즘엔 4장 아니라 5장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우선 글을 쓰기 전에 무엇을 쓸 지 주제를 잡고, 그 주제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 채울지 간단하게 구상한 다음 글을 쓰니 용지 몇 장 채우는 건 별로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근데 이 책은 글 쓰는 것을 배우겠다고 보는 나를 무척 헷갈리게 한다. 기존에 봤던 책들과 내용이 판이하게 다른 데 다가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창조력을 키울 때 필요할 것 같은 말만 계속 하고 있다.
이 책을 덮을 때 머리에 남은 것은 세 가지다.
우선 글을 쓰지 마라. 이것은 글을 쓰려면, 남들이 좋아하는 내용의 소설을 쓰려면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봐야 하기 때문에 그런 시각이 생길 때까지 세상을 이리 저리 살펴보라는 의미 같다. 사실 이 말은 무척 의미 있는 말이다. 남들과 똑 같은 눈으로, 똑 같은 표현방식을 통해 글을 쓴다면 다른 사람들이 구지 그 글을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는가. 만약 이 말이 맞다면 소설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말이 될 것 같다. 아니면 엄청 노력하지 않으면 소설가가 될 수 없다는 말이 되던가.
두 번째는 당신이 아는 것을 써라. 소설을 쓴다고 해서 그 곳에 나온 모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다 경험해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들이 하는 말, 소설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히 아는 것을 쓰라는 말이다. 그래야만 현실감이 있고, 앞뒤가 맞는 스토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우선 베껴라 다. 모든 창조물은 일단 기존에 있는 것을 모방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소설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그는 몇 개의 소설을 예로 들면서 기존에 나온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으로 용해시켜 보면 다른 내용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자신도 과거 소설을 배울 때 좋은 몇 명의 소설가를 선택해서 그들이 만든 상황, 주인공의 모습, 문체 등을 그대로 베끼면서 공부했고, 당시의 노력이 지금의 저자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는 상대의 글을 베끼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안에서 또 다른 자신만의 모습이 만들어지고, 이를 확대시키다 보면 새로운 내용과 문제의 글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마음에 와 닿은 말이다.
이 내용을 보니 그 동안 많은 책을 읽었으면서도 내 나름대로 담고 싶고, 배우고 싶은 저자 한 명 선택하지 못했던 것이 무척 후회가 된다.
글을 처음 쓰는 사람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책. 하지만 저자가 한 말을 가만히 되씹어 보면 소설 쓰는 법을 알려주는 방법에서 이 이상 더 자세히 알려주기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은 자신이 하기 나름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