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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프쿠아처럼 체험을 팔아라! - 성장의 새로운 조건
레이 데이비스.알란 샤더 지음, 유영희 옮김 / 파인트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오늘 낮에 맥주 몇 병을 사러 할인매장에 갔었다. 그런 곳에 갈 때마다 나오는 첫 마디, ‘어디 한가한 게는 없나?’ 내 돈 내고 물건사면서 기다리는 건 정말 싫다.
근데 오늘은 계산대 앞의 손님 줄이 평소보다 더 길었다. 줄이 줄어드는 느낌도 안 들고 말이다. 10분이 지났을까. 카운터가 보이는 곳까지 가자 뭔가 계산이 잘 안 되는지 짜증난 표정으로 서 있는 손님이 눈에 들어왔다. 계산원은 뭐라고 혼잣말 하고 있고, 양복 입은 담당직원까지 출동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손님이 준 포인트카드를 카드리더기가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계산원은 포인트카드만 계속 리더기에 긁어 대고, 담당직원은 “이상하다. 왜 안되지?” 하며 서 있었던 것이다. 내 앞에서 계산한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겪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갑자기 담당직원이 웃었다. “아! 옆 카운터도 그런 걸 보니 전산망이 조금 불안전하네요.!” 마치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계산원도 이제야 뭔가 해결되었다는 듯이 손님을 보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매장 전산망이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손님은 짜증을 내며 “그냥 주세요.” 하고는 계산원 손에서 포인트카드를 뺏듯이 받아 가 버렸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계산원이 다음 손님에게도 포인트 카드를 달라고 하더니 열심히 리더기에 긁고 있다는 점이다. 포인트카드를 리더기가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 게다가 담당직원도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었다. 마치 “이건 내 책임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는 회사에서 정한 규정대로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손님에게 뭐로 결재할 거냐고 묻고, 반드시 포인트카드를 달라고 하고, 다음에 현금영수증 필요하냐고 묻는 그 절차 말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계산원에게 크게 말했다. “저는 포인트카드 없고요. 현금영수증도 필요 없습니다.” 안 되는 포인트카드 긁느라고 쓸데없이 시간 소비하기 싫어서 였다. 또 계산도 현금으로 했다. 괜히 신용카드도 안 읽힌다고 몇 번씩 긁어댈까 봐 말이다.
웃긴 이야기 같지만, 나는 이런 상황에서 무려 3개의 다른 생각을 했다.
아마 내 나이가 30대 초반이었으면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하면서 하루종일 투덜댔을 것이다. 쓸데없이 시간을 잡아먹은 매장이 괘씸해서 말이다. 하지만 40대 초반이었다면, 한 십 년 여 동안 여러 가지 신규사업을 진행하면서 오만가지 사고를 다 당해 봤기에 “아! 전산시스템이 고장 났구나. 오늘 또 누군가 시말서 쓰겠네!”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 [움프쿠아처럼 체험을 팔아라]를 본 오늘, 그것도 매장 오기 바로 직전에 책을 덮은 상황에서는 계산원과 담당직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봐요. 당신들 지금 고객에게 포인트를 적립시켜 주려는 거죠. 그러면 전산이 되든, 안 되는 포인트를 적립시켜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넥타이를 맨 당신. 담당직원이라고 계산원 옆에서 폼 잡고 서 있지 말고, 고객의 포인트카드 넘버를 빨리 받아 적어요. 수첩이든 손바닥이든 아니면 당신 얼굴에라도. 그리고 나중에 전산망이 고쳐지면 그 때 포인트를 적립시켜 주고 고객에게 연락해 주면 되잖아요. 안 그런가요!”
이 상황에서 말을 계속했다면 아마도 내 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을 것이고, 나중엔 화를 참지 못해 “국내 빅3 할인점에 근무한다는 사람이 그 정도도 머리도 안 돌아가나!!” 고 소리쳤을 것 같다. 맨 날 입으로는 고객감동을 외치면서, 조그마한 것 하나 고객입장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그들이 한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움프쿠아처럼 체험을 팔아라]를 쓴 레이 데이비스. 그가 앞에서 말한 상황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나 같이 말했을 것 같다. “우리는 고객에게 포인트를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럼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것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세요.” 라고 말이다.
고객에게 남다른 체험을 주는 것이 움프쿠아뱅크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그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은행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내부에서 일하는 직원공간, 동선, 행원들의 업무 구조까지도 함께. 고객과 만나는 은행 내부에는 고객담당 직원만 남겨두고 나머지 결재, 정산하는 사람들은 모두 고객이 볼 수 없는 뒤 쪽으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그는 직원들에게 은행의 부가 상품을 판매하는데 신경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 왜?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매출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직원들이 상품을 판매하는데 너무 치중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일반적으로 소매업 종사자들은 판매에만 너무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서비스가 훌륭하다면 판매는 저절로 따라 오는 법이고 반대로 판매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쏟으면 단골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글을 보며 과거 약국 사업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당시 나는 매출을 높이기 위해 약사들에게 판매교육을 시켰고, 별의 별 판촉, 마케팅 방법을 다 동원해 그들을 판매전선으로 몰아 부쳤다.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뻔한 것.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약 팔려고 약사가 된 게 아닙니다.”
만약 그 때 내가 그들에게 매출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고객의 건강만을 생각해달라고 부탁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들은 양 손들고 환영했을 것이고, 당연히 매출은 보너스처럼 따라왔을 것이다.
론 레이 데이비스가 완벽한 CEO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도 CEO 재임 초반에는 중간 관리자들을 무척 피곤하게 만들었을 것 같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즉각 해결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담당자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지시하고도 남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임원이나 팀장과 같은 중간관리자에게 알리지도 않고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이, 그가 가진 핵심가치가, 그가 설정한 비전(세계최고의 은행)이 조그만 동네의 지역은행을 몇 년도 안 되어 전국 은행으로 키웠다. 이 책을 보면 잘 되는 기업과 잘 안 되는 기업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건 CEO의 팔자 탓도 아니고, 운이 나빠서도 아니다. 경영자 스스로가 뭔가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업의 비전에 핵심이 되는 어떤 일이 제대로 처리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그 일이 업무의 일부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저자가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한 내용이자, 사업을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이다.
“사람들은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놀이공원에 가고, 안락함과 고급스러운 체험을 위해 호텔을 찾는다. 이와 같이 모든 기업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고객에게 하나의 ‘체험’을 판매한다. 저렴한 가격 정책을 꾀하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회장 허브 켈리허는 오로지 저렴한 가격 하나만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특별한 고객 체험을 만들어 내는데 집중했다.”
[독서경영 Point]
초기의 사업계획서를 다시 들여 다 보고,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현장을 찾아 다니며 아래의 질문들을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내 사업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갖고 있는가? 이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고 있는가?
그 비전은 고객에게 어떤 체험을 주고자 하는 것인가? 그리고 고객이 실제로 그것을 느끼는가?
직원들은 이 비전을 분명히 알고, 실천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를 확신할 수 있는가? 그리고 경영자인 나는 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