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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사랑도 기술이다
볼프강 베르크만 지음, 윤순식 그림 / 지향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아는 것이 병인가? 아니면 사람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지는 건가? 예전에는 부모로써 정성을 다하면 아이는 알아서 크는 것으로 알았지만, 날이 갈수록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데 된다. 쉽게 말하면 아이를 키우는 것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연 중에 교육 받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컸을까? 내 어머니는 나를 어떻게 키우셨나? 아니 나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이 자란 친구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 우리 부모들은 아이 키우는 기술은 별로 배운 적이 없는 세대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술 먹고 주정부리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나 부모가 대학교 교수랍시고 클래식 들으며 큰 아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구지 차이가 있다면 부모 덕분에 누구는 결혼하면서 집 한 채 얻어 살고, 누구는 자신이 벌어 생계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아이를 안다는 사람들은 부모의 역할과 그들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아이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것은 어떤 부모든지 다 마찬가지의 마음, 아이가 잘 될 수 있다면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서라도 자식이 필요한 것을 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과 지식, 훈계는 부모로 하여금 자식을 키우는 것이 기쁨을 주는 것이기 보
다는, 이웃사람과의 경쟁이자 자신을 대신한 아이들간의 경쟁구도로 몰고 가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봤을 때 무척 속이 후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아이 키우는 지식들을 웃기는 소리라고 하며, 자식은 진정한 사랑만 있으면 알아서 큰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리어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보다는 아이의 마음이나 행동을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라고 한다.
아이가 고집 피우는 것은 부모와 함께 있을 때의 만족을 표현하는 것이며, 그들이 부모의 손을 내치는 것도 자신의 관심거리가 눈 앞에 있어서 이지, 부모를 미워해서는 아니라고 한다. 도리어 그런 상황에서 아이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교육학’적인 지식이 문제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아이는 나름대로 좌절과 슬픔, 상실감을 느끼면서 스스로 자라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도리어 이러한 자연스러운 과정을 부모가 알아서 미연에 방지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고, 아이가 세상에 혼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뿐이다. 거기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어려움과 슬픔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얻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을 보면서 내 아이에게 미안했던 것은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믿음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분명히 규정한다. 엄마에게는 안정과 정서적인 면을, 아빠에게는 힘과 보호자로서의 면을 요구한다. 자신이 다칠 상황에서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버지이고 자신이 어려울 때 그것을 함께 헤쳐나갈 힘을 주는 것도 아버지이다.
나는 이 점에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것을 자인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가 아버지를 찾을 때 그 곁에 없을 때가 많았고, 설사 있다손 치더라도 엄마에게 많은 부분을 맡겼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이고, 부모 역시 아이에게 즐거움의 대상이다.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관계, 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이다. 이런 관계에서 아이의 감정과 느낌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바라볼 수만 있다면, 설령 완벽한 부모는 못되더라도, 최소한 아이의 기쁨과 즐거움을 망치는 부모는 되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아이를 기르는 기술은 그만 이야기하고,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부모 스스로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은 어떨까? 즉 공감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