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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바이올린
진창현 지음, 이정환 옮김 / 에이지21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가슴 속에 꼭 안아본다. 저자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것 같다. 눈을 감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저자가 살아 온 긴 여정이 눈 앞에서 영화처럼 한 장면씩 지나간다.
1930년대 일제의 강점기 하의 어려운 시기. 도시와는 거리가 먼 시골 학교의 운동장. 어머니 바지에서 새 고무줄을 빼내어 만든 비행기를 신나게 날리는 한 소년의 모습이 떠 오른다. 왜소한 소년, 하지만 자식과는 달리 몸집이 큰 어머니는 참고서가 필요하다는 자식의 말 한마디에 아버지 몰래 쌀 한 가마니를 내 주신 분이다.
그는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떠나는 아들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울고 계신 어머니. 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 자신이 먹는 주먹밥 하나를 노려보는 굶주린 사람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하루하루의 일본생활. 똥을 치우는 위생 원. 그의 눈에 보이는 불쌍하고 처량한 한국인의 모습들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던 그에게 바이올린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갖게 만든 대학교에서의 한 세미나. 최첨단의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스트라디바리의 신비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그 때부터 바이올린 제작자로서의 길을 간다.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무도 제자로 받아주지 않는 현실. 몇 년을 스승을 찾아 헤맸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지친 육신과 좌절감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는다. 돌 캐는 일을 하며, 그 곳에서 나온 판자로 집을 만든 저자는 혼자 바이올린을 만들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은 미친 사람이라고 가까이 오지는 않는다. 아마 그 당시 그에게 바이올린조차 없었다면 그는 분명히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항상 공평한 것. 그에게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 줄 한 명의 여자가 나타났다. 공사장에서 나온 나무와 판자로 허름하게 지은 집을 마다하지 않는 그녀. 자신이 만든 바이올린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 그는 그녀와 결혼하게 되고 그 때부터 더욱 강한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한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그 험난한 길을 가지고 했을까? 일말의 가능성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그 길을 무엇을 의지하며 걸어갔을까? 한국인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나? 먹고 살기 위해 꺼낸 마지막 카드였던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가?
콩쿠르 대회장인 필라델피아 대학. 심사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에 대해 각각 세공과 음향의 두 가지 부분, 합계 여섯 부분의 대상자를 뽑는 행사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대상자가 결정되었다.
“더 위너 이스...미스터 진창휸” “더 위너 이스…미스터 진창휸” “…미스터 진창휸” “…미스터 진창휸” “…미스터 진창휸”
그는 무려 여섯 분야 중 다섯 분야에서 수상했다. 그리고 8년 후, 미국의 바이올린제작자 협회에서 전세계에 다섯 명 밖에 없는 ‘마스터 메이커’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결국 그는 바이올린 제작 분야의 거두로써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는 그 당시를 이렇게 말한다.
“그 때 나는 온몸에서 핏기가 사라지는듯한 감각을 느꼈다. 진창휸은 나의 이름을 영어로 읽은 발음이었다. 나는 내가 수상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천천히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내가 수상을 한 것이다. (중략) 내가 수상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는데, 정말로 내가 수상을 했다. 졸다가 깨어난 만큼 처음에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사후생(死後生)]에서 인간이 죽은 후 영혼이 가는 길을 이야기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자신이 왔던 곳, 신에게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나 신에게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은 신의 찬란한 빛 앞에서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순간적으로 되돌아 본다. 그 때 많은 영혼들이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한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자신 앞에 놓여진 수 많은 어려움과 고통, 괴로움들이 모두 영혼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한 것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집이 불탄 일, 남에게 버림받은 일, 병 때문에 괴로워했던 일, 그 모든 것이 영혼인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한탄하며 보낸 지난 삶을 가슴 아파한다.
진 창현. 그의 삶은 거대한 돌산을 캐며 앞으로 나아간 세월이다. 좌절과 배고픔, 고통 속에서 바이올린 하나를 의지하며 살아 온 삶이다. 비록 어려운 세월이었지만, 그렇기에 그는 인간으로서 맛 볼 수 있는 가장 깊은 감정들을 거의 다 맛 보았다.
자식을 위해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은 어머니의 지고한 사랑,
주먹밥 하나가 진수성찬처럼 느껴졌던 어린 시절의 배고픔,
위생 원밖에는 할 게 없었던 한국인을 바라보며 느낀 절망감,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아무도 자신을 받아 주지 않는 상황에서의 좌절감,
전쟁에 참가하는 한 병사가 이제 자신은 필요 없다고 주는 돈을 받을 때의 동질감,
자신을 이해하고,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아내에 대한 사랑,
남편 때문에 고통 받는 여동생을 바라보면서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움,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며 통곡할 수 밖에 없었던 가슴 깊이 응어리진 한 맺힘,
그리고 마스터 메이커로서의 자부심.
이 책은 한 인간의 성공담이기 이전에, 가장 뜨거운 삶을 살았던 영혼의 찬미가였다. 그의 영혼이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 했다.
“내 영혼은 신 앞에서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을 거야. 나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달성했어. 비록 육신은 힘들었지만 그것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 삶일 뿐이야. 나는 그것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됐어. 이제 나는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아. 너도 이제부터라도 네 영혼을 생각하며 살아.”
감고 있는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내가 왜 우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 영혼이 흘리는 눈물 같다. 아름다운 한 영혼의 모습을 보며 감동했기에,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 자신의 육신이 안타까웠기에 흘리는 눈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