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생 - 죽음 이후의 삶의 이야기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최준식 옮김 / 대화문화아카데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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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주문


죽음에 대한 견해는 역사와 시대에 딸라 달라지겠지만, 최근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다. 죽음은 뇌의 작동이 멈추면 정지되는, 일종의 물질의 완전한 소멸이라는 주장과 육체라는 물질은 멈추지만 그 차원을  너머서는 새로운 생으로의 출발이라는 관점. 이 상반된 견해는 자칫 과학과 신학-비과학-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퀴블러 로스는 정신의학을 전공한 '과학자'로서 두 번째 주장을 견지한다는 데 특이점이 있다. 즉, 과학의 지평에서도 죽음은 신학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고 부각함으로써 과학과 신학의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담당한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관찰하고 근사 체험을 연구하면서 죽음은 고치가 나비처럼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통로일뿐, 단순한 소멸로 규정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녀는 죽음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죽음은 그저 한 집에서 더 아름다운 집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고치(몸)가 회복불능 상태가 되면 나비(영혼)이 태어나는 1단계를 먼저 거치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고치가 나비로 변하는 1단계에서는 물질적 에너지를 얻게 되고, 2단계에 이르면 정신적 에너지를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때 정신적 에너지를 받으면서 새로운 인식 능력을 갖게 되는데, 주변 사람들의 행동, 상황 등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되고, 더불어서 육체 이탈과 더불어 온전한 몸을 갖게 된다는 것. 또한 두 번째 단계에서는 시공간 감각이 사라지면서 생각의 힘만으로도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 그 누구도 고독하게 죽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때는 에테르체라는, 물리적인 몸이 아닌 새로운 몸을 갖게 되어 장애나 불구가 없고 고통이 없는 완전한 조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소개한다.

 

두 번째 단계를 거치면서 죽음은 또 다른 삶으로의 변화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영원한 존재로 변화하기 전 터널이나 다리를 거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후 터널이나 다리  끝에서 빛에 에워싸이게 되고 장엄하고 조건없는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이 빛 을 본 후 돌아오지 않으면 고치와 나비의 연결이 단절된다고 본다.

 

완전한 사랑의 세계, 하나님이든 무엇이라고 부르던 그 출현 앞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반추하게 되고 온전한 '앎'을 획득하면서, 자신의 지난 삶이 우리의 성숙을 위해 존재했던 편린이었음을 이해하게 되는 3단계를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의 연구를 통해서 근사체험에서 나타나는 경험이 스스로 간절히 원하던 소망사고의 투사가 아니냐는 의문에도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사고 소식을 몰랐는데도 미리 인지했던 경우나, 시각장애인이 급박했던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한 경우 등을 사례로 들어 반박한다.

 

그녀가 주창한 죽음학의 백미는 단연, 과학자로서 죽음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죽음의 상황, 종교, 인종, 연령 등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의 죽음은 우리의 성숙, 새롭고 완전한 세계에 적합한 인격으로의 변화를 위한 단계라는 따스한 시선을 고수한다. 그녀에 따르면우리는 모자이크 조각처럼 각자 맡은 사명이 있고, 그 사명안에서 성숙함을 완성하면 사후생을 위하여 떠나는 것. 이해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과학자의 올곧은 연구는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삶의 닻이 되고, 신앙의 뿌리 깊은 정수를 가리키는 나침반이 된다.

 

책의 말미에는 이 책의 역자인 최준식 한국죽음학회장의 '한국인의 죽음관'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철저한 현세 중심의 죽음관에서 비롯되는, 삶에 대한 빈약한 인식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죽음에서 출발하는 삶의 소중함과 가치, 삶에서 확장되는 죽음의 의미와 의의를 되짚어보는 성찰을 통해 확장된 세계관이 필요한 이 때, 개정판이 더없이 반갑다.

논리적으로 죽음의 경험은 출생의 경험과 같다. 죽음은 다른 존재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천년 동안, 죽음 후의 세상과 관계된 일들을 무조건 믿어야 했다. 그러나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한 이해는 믿고 안 믿는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앎의 문제다. 죽음에 대해 제대로, 그리고 정말로 알기를 원하는가. 나는 말할 준비가되어 있다. 이런 건 알고 싶지 않다고 해도좋다. 어차피 한번은 죽게 마련이고, 그 때는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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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을 용기 - 정신과 전문의가 찾아낸 기적의 금연 치유력
전지석 지음 / 스토리3.0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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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간결하고 가독성이 높으면서도 독서의 유익이 충분하다면 더할 나위 없는 실용서의 조건일텐데, 이 책은 금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참신함까지 포함하는 장점을 지녔다.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이면서 동시에 애연가로서 금연에 성공한 자신의 경험담을 되살려 금연에 대한 정신의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책은 유혹, 착각, 자기파악, 치유, 자유의 5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흡연과 금연의 심리, 시도, 성공과 실패의 변곡점에서 작동하는 정신 기제의 세밀한 부분을 묘사한다. 경험자가 아니면 제시할 수 없는 싱싱함이 살아있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금연에 접근하는 방법론적인 장점은, 무엇보다 기존의 공포, 협박의 기저에서 출발하는 생의학적 접근의 문제점을 드러나게 하는 것인데, 금연을 일종의 의지박약의 문제인 것처럼 협소하게 치부하는 시선을 날카롭게 포착해낸다는 것.

 

흡연자로서의 경험을 되살려 분석한 <착각> 장은 담배는  독해야 성공한다든지, 인간 관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거나 스스로 담배를 원한다는 등의 금연 회피 심리를 정확하게 드러낸다. 또  흡연의 효과에 천착하거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흡연해도 괜찮다는 안일함, 금단증상에 대한 두려움도 제시함으로써 금연 정책의 출발점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울, 두려움, 자기 연민 등에서 확대되는 흡연 행위를 분석하고, 새로운 자아,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금연의 심리를 증폭시키자는 주장이 흥미롭다. 다만, 저자가 증보판을 낸다면 흡연과 금연의 일반론에 덧붙여 성별, 연령 사회적 지위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흡연자의 심리 양태를 사회적, 구조적 측면과 연계하여 분석하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독자로서의 욕심도 생긴다.

꿈과 목표의 부재와 흡연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분명 관계가 있습니다. 담배에 중독된 이상, 꿈과 담배를 맞바꾸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담배에 상당한 양의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기 때문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시간 자체도 상당하지만 어디서 담배를 사야 할지, 언제 어디서, 때로는 누구와 담배를 피울지 고민하는 시간까지 따진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을 담배와 관련해 흘려버리고 있는 셈이니까요. 어쩌면 인생에 있어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담배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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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읽는 현대 철학 - 30개의 키워드로 현대 철학의 핵심을 읽는다
남경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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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계보 중 현대 철학을 위주로 소개하면서도 그 핵심을 깊이 있게 정리한 책을 찾아보았는데, 독자의 요청에 따라 책을 기획하고 편집한 것처럼 안성맞춤이니 이보다 더 즐거운 독서가 있을까.

 

 이 책의 장점은 현대 주요 철학자의 사상을 30개의 키워드로 압축하고, 중심 사상을 간단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내용을 쉽게 인식하도록 편집한 데 있다. 더구나 각각의 철학을 단순하게 정리하면서도 사상이 담고 있는 무게의 축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대목은 에드문트 후설. 마네의 화풍과 현상학의 접점에 흥미를 가지고 읽은 까닭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코로나19가 보여주는 현 상황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겠다 싶은 호기심도 몰입을 자극했다.

 

후설은 의식의 주체와 의식의 대상을 확연하게 구분하는 실증주의에 맞서 누구의 눈에든 똑같이 보이는 외부 대상은 없다고 보면서 외부의 대상은 언제나 본질의 일부만 의식에게 보여줄 뿐이라고 주장한다. 외부의 대상을 열심히 관찰한다고 해서 객관적 진실을 얻는 것이 아니고 외부 대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관찰을 시도한 후 이를 의식안에서 종합하여 진실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가 의식하는 방식에 대한 통찰도 염두해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경험을 경험이도록 하는 지향성을 인식하고, 의식에 의해 주어진 현상을 의식하며 주체와 대상을 파악해야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후설의 주장을 실체화하는 사례로 피카소의 그림을 소개하고 있는데, 2차원의 화폭에 3차원의 그림을 담기 위해서는 앞 모습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향에서의 관찰을 총체적으로 그려넣을 수 밖에 없고, 그러므로 기괴한 것 같지만, 그것이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라는 것이다.

 

후설의 틀로 현재 코로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비판하자면, 지나치게 의학적 관점에서의 대응이 두드러진다는 것. 바이러스는 실험실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도처에서 각자가 처한 환경과 맥락에서 마주하는 것인데, 의학적인 관찰과 판단으로만 코로나 현상을 진단할 수 있을까. 다양한 학문, 다양한 사람들이 관찰하고 경험한 코로나를 통해 하나의 총화된 그림을 그려나가고 다시 사회적 대안으로 투입하는 경로를 만들지 못하는 한계 속에서 후설은 포스트 코로나를 풀어갈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뮬레이션의 도입으로 가상 현실의 재현 체계를 비판한 보드리야르도 흥미롭다. 가상보다 더 실재같은 가상 현실을 통해 현실을  파악하고 사용가치보다 기호가치를 선호하며 상징을 교환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소비하는 정치, 경제에 대한 의식을 다시 한번 성찰하게 한다. 민주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리의 재현 체계나 개념,  빠른 트렌드 변화 열풍의 민낯과 속살의 문제점을 엿보게 한다.

 

당연시되는 것을 의문시하라며 현대의 신화를 파헤친 바르트나 역사를 단층으로 나누어 구조적 변화를 개념화한 브로델, 물신화에 잠식된 이성의 한계와 출구를 고민한 아도르노도 눈길을 끈다.

 

쉽고 간단한 사례와 연결하여 각각의 개념을 정리하고, 철학과 사상의 한계와 시사점을 성실하게 정리해낸 저자에게 감사하다. 저저의 목적대로 현대 사상을 남김없이 파악할 수는 없어도 교통 안내서처럼 대강의 길눈을 얻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철학 혹은 사상을 사전식으로 공부하거나 핵심어로 요약해서 읽는다는 것은 사실 옳은 방법이 아니다. 어딘가 모르게 수험 공부를 다시 하는 것 같아 언짢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어떤 사상의 내용을 요약하기보다 현대의 지적 흐름 속에서 각 사상의 좌표를 찾으려 한다는 점, 또한 이 얄팍한 책만으로는 현대사상의 총체를 온전히 이해하리라고 기대하는 독자는 아마 없으리라는 점으로 변명을 삼고자 한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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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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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고통이 인간의 사상과 철학을 어떻게 바꾸어나가는지 알고 싶다면, 카뮈를 추적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노력도 침투되지 못하는 처절한 비극 앞에서, 버티고 살아내야할 이유조차 찾지 못할 때, 무엇을 해야할까, 아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문자답처럼 써내려간 소설을 단순한 무신론적 이야기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체를 아우르는 실체를 알지 못하지만, 미세한 세포가 마지막까지 제 맡은 바에 충실한 것처럼 그렇게라도 버텨보자, 일종의 격려 서신 같은 소설. 페스트의 전체적인 인상은 그렇게 남았다.

 

소설은 1940년대 어느 해 현대 도시인 오랑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의사 리유는 4월 16일 진찰실 근처에서 죽은 쥐를 발견하고 미셸 영감에게 알리는데, 그는 병원에서 쥐가 죽을 일 없다면서 누군가 죽은 쥐를 가져다놓은 장난을 친 것이라고 펄쩍 뛴다. 그러나 리유는 저녁에 다시 피를 토하고 죽는 쥐를 보고서 마음에 걸려하고, 병환 중인 아내를 멀리 요양 보낸다. 그 즈음 오랑에는 서서히 페스트가 확산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시는 봉쇄를 단행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페스트의 확산, 시민들의 당혹스러움과 행태, 망각과 회피, 저항과 패배, 작은 승리와 행운, 시작될 때와 마찬가지로 이유없이 사그러드는 감염병이 이야기가 전반을 관통한다. 인간의 노력, 의지와는 관계없이 페스트는 갑작스럽게 시작되고, 오랑은 섬처럼 고립되면서, 재앙 앞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리유처럼 철저히 사실에 기반하여 자신의 일에 충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앙으로 인해 자신의 범죄가 은폐되고 번민을 면제받아 오히려 기뻐했기에, 페스트의 퇴각 앞에서 절망하는 코타르 같은 인물도 있다. 오랑으로 취재차 들어왔다가 함께 역경을 겪는 랑베르는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지만 마침내 페스트 시민연대인 보건대에 가담한다.

 

파눌루 신부도 빼놓을 수 없다. 페스트는 신에게 대항한 악한 적들을 물리치는 기제가 될 것이며 올바른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교하지만, 아무 죄가 없는 판사의 아이가 페스트로 죽자 신을 사랑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어린 환자의 사망 앞에 흥분한 리유와 기꺼이 구원을 두고 연대한다. 파눌루 신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한다고 다독이지만, 리유는 어린아이들조차 주리를 틀도록 창조한 세상에는 동조할 수 없다고 거부한다. 그렇지만 그는 어쨌든 죽음과 불행을 거부하는 방향성에서 파눌루 신부와  함께 서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작가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장면은 파눌루 신부의 임종인데, 분명 페스트에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페스트의 전형적인 임상 증상을 보이지 않은 그의 사망 원인은 '병명미상'

 

보건대의 서기를 맡은 그랑은 소위 별 볼일 없는 사람이지만 적확한 문장 하나를 위해 고심하는 인물로 소설에서는 '영웅'으로 그려진다. 그는 보잘 것 없지만 선량한 마음 하나로 소외된 코타르와 소통하고 맡은 바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다. 타루는 검사였던 아버지를 통해 재판을 목도하고 인간이 처한 현실을 직관하는 인물. '피고'라는 편리한 개념을 붙이고 사력을 다해 죽이고자 하는 아버지의 구형을 마주한 후, 기울어진 세상에서는 모든 논리가 잘못 되어 있어 누군가를 죽게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 몸 한 번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며 마음의 소리에 집중한다. 보건대의 연대 속에서 리유와 우정을 나누고 페스트로 죽지만, 오히려 그의 죽음은 리유의 슬픔을 위로한다. 타루의 죽음은 숙환으로 홀로 세상을 뜬 아내의 부고 소식으로부터 리유를 지켜낸다. 누구나 겪는 죽음, 슬픔, 절망 앞에서 리유만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각성시키는 것.

 

책의 말미에 소개된 카뮈의 연대기를 읽다보면, 페스트의 성공 이후 그는 우울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의미를 모르더라도 성실함과 연대가 절망의 시대와 삶을 푸는 열쇠라고 믿었던 그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찬사와 갈채보다는 실질적인 행동과 저항으로 나서는 수많은 연대를 기대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카뮈의 정직함은 파고처럼 몰려드는 페스트의 범람 속에서 영혼, 신, 삶과 죽음의 의미 등 모르는 것들에 천착하기 보다는 우선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집중하는 현실적인 대응책을 고스란히 제시하는 데 있을 것 같다. 두려움에 호들갑 떨지 않고 담담히 살아내는 것,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고 할 수 었는만큼 주변을 살려내는 것. 그는 구원이 가진 실질적인 뼈와 살을 매만지고 싶은 욕망을 페스트를 통해 투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파눌루와 대척점에 서 있으면서도 가장 가까이 서 있었던 리유 같기를 희망하면서.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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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칸트인가 -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서가명강 시리즈 5
김상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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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계 교수님의 철학사를 읽다가 대학시절 '철학' 교양 과목을 배우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칸트의 철학을 조금이라더 더 알아보자는 의지가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칸트에 대한 소개에서, 칸트는 <논리학>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원해도 좋은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을 던지면서 인간과 세계의 의미를 정립하는 한편 <순수 이성 비판>의 해설판을 저술하면서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미래의 모든 형이상학에 대한 서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기술했는데, 이 보다 더 크게 호기심과 열정을 자극하는 대목은 없었다.

 

다행히 문외한에 가까운 독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만큼 <왜 칸트인가>는 충분히 친절하고도 적확한 체계성을 갖추고 있어 독서의 즐거움은 물론 지적인 배움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저자는 칸트의 저작과 철학을 '혁명과 전회'와 연결하면서 시작하는데, 칸트는 인식의 출발점을 사물에서 주체로 바꾸었으며, 덕의 윤리에서 의무의 윤리로 전도시켰고, 심미적 취향과 보편성, 그리고 기계론적 자연관에서 유기체적 자연관으로의 이행을 선도하면서 철학의 대 영토를 발견했다는 평가를 부연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책의 구성을 칸트의 3대 비판서를 기초하여 4부로 분할했다. 1부에서는 <순수이성비판>을 근간으로 인지혁명을 통한 마음 모델의 혁신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실천이상비판>에 대하여 인격의 존엄성과 도덕적 판단, 최고선에 대하여 고찰한다. 3부와 4부에서는 <판단력비판>을 파고들어 미와 자유, 보편성 등에 대하여 설명하고, 자연의 목적론적이고 유기체적인 자연관에 대해 개진한다.

 

1부에서는 칸트 전후로 나뉘는 인식론의 대상 변화부터 출발한다. 칸트 이전에서는 사물이 주체의 인식 여부와 관계 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인식이란 사물을 그저 모사하는 데 그쳤다면 칸트는 사물이 아니라 주체를 중심에 둔다. 주체와의 관계, 인식 속에서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관점으로 옮겨가면서 철학은 새롭게 진보한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즉, 세계가 주체에게 인식되는 작동 기전을 밝히는 데 칸트의 초점이 모아진다. 칸트는 거울처럼 사물이 단순하게 비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우리 마음의 인식이 합쳐져 현상이 나타난다는 주장을 펼친다. 칸트의 탁월함은 주체가 인식할 수 없는 물자체, 주체가 경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현상계, 그리고 물자체와 현상계 사이를 나누면서 이어주는 초월론적인 차원이 있다고 명명한다. 인간의 경험을 경험이게 하는 선험적 원리가 초월적 차원에 존재하고 있으며, 인간의 경험 이전에 주어진 선험적 원리 때문에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가 언제나 동일해진다는 주장을 펼친다.

 

칸트의 철학은 세 가치 차원과 연결지어 인식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인식과 사유의 영역을 분별하며 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을 나누며 한계를 설정하는 '비판'이 된다.

 

칸트는 우리 마음의 인식 능력을 감성, 상상, 지성, 이성으로 구분하고 각각 시간과 공간/도식/양, 질, 관계 및 양태의 범주/ 영혼, 우주, 신의 이념들로 범주화했다.

 

 먼저 감성에 속하는 시간과 공간의 경우, 칸트는 시공간이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을 수용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본다. 지성은 감성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능동적으로 종합하는 능력으로 직관을 개념화하는 작업으로 규정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를 차용해 지성의 범주를 12개로 확장하고 이의 상위범주를 양과 질, 관계와 양태로 구분하면서 지성 안에 속한 범주들이 서로 연합하고 판단하면서 하나의 통일된 대상으로 조직해낸다고 보았다.

 

도식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고, 감성과 지성의 협동을 가능하게 하는 초월론적인 차원에서 생산된 선험적 그림으로, 추상적인 개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거나 개념을 직관화하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은 추론의 계열을 만들어 감으로써 지식 전체를 체계화하는 능력으로, 다양한 경험적 차원의 지식이 결국은 영혼, 우주, 신으로 수렴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부 자연에 대한 모든 지식은 우주로, 도덕 실천에서 일어나는 모든 판단은 신으로, 그리고 심리적 사건들은 영혼으로 귀결되면서 체계적 질서를 갖는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이성의 이념들은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사유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즉, 감성, 지성, 상상력은 인식을 위한 능력이며 이성은 사유를 위한 능력이라는 것.

 

이성은 지식의 획득이 아니라 현상계를 넘어선 사유를 위한 의무에 매진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한편, 관심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 욕망, 즉 나는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희망해야하는가를 사유하면서, 마음의 인식 능력을 각각의 질문에 맞게 기능적으로 활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2부에서 다루어지는 <실천이성비판>의 핵심은 윤리학의 중심을 도덕법칙, 즉 법으로 대치하면서 선은 기쁨이나 행복의 원천이 아니라 도덕법칙에 일치하는 행동이며, 도덕적 의무를 지키며 자유와 정의를 추구하는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또한 존경이라는 선험적 정서를 통해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춘 도덕법칙이 되는 정언명법,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규칙이 무엇인지 탐색하려는 의지, 도덕적 행위인 의무, 자신이 스스로 따라야할 법칙을 스스로 제정하는 능력인 자율이, 서로 기능하며 윤리적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3부에서는 <판단력 비판>의 전반부를 탐색하면서, 미학을 거론한다. 칸트는 사실에서 개념을 끌어내는 반성적 판단력을 소개하면서, 기존의 원리를 비판하고 새로운 상위 원리를 추측하면서 합목적성이 밝혀지거나 지각함으로써 즐거움을 향유하는 규칙 창조적 판단이라고 설명한다. 칸트는 예술가, 작품, 감상자를 검토하며 미학에 접근하는데, 먼저 예술가를 자연을 대신해 예술적 재현의 규칙을 새롭게 제정하는 창조적 인간이기에 천재로 부른다. 그리고 예술적 작품에는 영감의 원리인 감성적 이념이 현시되어 있어 감상자로 하여금 수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열림의 경험을 제공한다고 정리한다. 또 감상자는 무관심한 만족감, 개념없는 보편성, 목적없는 합목적성, 개념없는 필연성을 통해 나타나는 주관적 합목적성에 따라 심미적 판단을 한다고 정립한다.

 

4부에서는 <판단력 비판>의 후반부를 통해, 칸트를 통한 자연관의 변화를 설명한다. 칸트는 생명 현상의 충분한 설명을 위해, 기계적 자연관과 동시에 양립할 수 있는,자연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는 유기체론을 지지한다.  인간의 유한성을 근거로 경험이 가능한 것은 현상계뿐이며 영혼, 신, 우주같은 이념들로 구성되는 예지계로부터 이성을 지도하고 규제하는 원리이자 합목적성과 체계성을 바탕으로 한 유기체론에 대한 가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칸트 철학의 위대함과 시사점을 보여준다는 데 가장 큰 장점을 발휘한다. 관점과 질문의 변화가 철학의 대전환을 일으킨 놀라운 사실뿐만 아니라 칸트의 표현대로 근대 학문의 기초와 시작점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더불어 칸트에 대한 다양한 조망 및 해설과 연결되는 또 다른 독서에의 의지에도 불을 붙이는데, 그만큼 각각의 장이 체계적이고 밀도있게 정리되어 이 책을 출발점으로 삼아 혼자서도 지식의 분지를 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준다.  

칸트는 오늘날 인공지능 연구가 따를 수 밖에 없는 마음의 모델을 처음 제시한 철학자다. 마음을 일종의 정보처리 장치로 접근하는 이런 관점은 이론적 판단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칸트의 첫 번째 비판서에서 처음 제시되었다가 심미적 판단과 목적론적 판단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세번째 비판서에서 더욱 심오한 깊이를 획득하면서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에 칸트가 점덤 더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이런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인공지능 시대에 망각하기 쉬운 도덕적 가치와 심미적 가치에 대한 물음을 과학-기술적 가치에 대한 물음 못지 않게 중시했다는 데 있으며, 그런 물음에 접근하는 모범적인 사례를 남겼다는 데 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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