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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극한의 고통이 인간의 사상과 철학을 어떻게 바꾸어나가는지 알고 싶다면, 카뮈를 추적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노력도 침투되지 못하는 처절한 비극 앞에서, 버티고 살아내야할 이유조차 찾지 못할 때, 무엇을 해야할까, 아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문자답처럼 써내려간 소설을 단순한 무신론적 이야기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체를 아우르는 실체를 알지 못하지만, 미세한 세포가 마지막까지 제 맡은 바에 충실한 것처럼 그렇게라도 버텨보자, 일종의 격려 서신 같은 소설. 페스트의 전체적인 인상은 그렇게 남았다.
소설은 1940년대 어느 해 현대 도시인 오랑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의사 리유는 4월 16일 진찰실 근처에서 죽은 쥐를 발견하고 미셸 영감에게 알리는데, 그는 병원에서 쥐가 죽을 일 없다면서 누군가 죽은 쥐를 가져다놓은 장난을 친 것이라고 펄쩍 뛴다. 그러나 리유는 저녁에 다시 피를 토하고 죽는 쥐를 보고서 마음에 걸려하고, 병환 중인 아내를 멀리 요양 보낸다. 그 즈음 오랑에는 서서히 페스트가 확산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시는 봉쇄를 단행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페스트의 확산, 시민들의 당혹스러움과 행태, 망각과 회피, 저항과 패배, 작은 승리와 행운, 시작될 때와 마찬가지로 이유없이 사그러드는 감염병이 이야기가 전반을 관통한다. 인간의 노력, 의지와는 관계없이 페스트는 갑작스럽게 시작되고, 오랑은 섬처럼 고립되면서, 재앙 앞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리유처럼 철저히 사실에 기반하여 자신의 일에 충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앙으로 인해 자신의 범죄가 은폐되고 번민을 면제받아 오히려 기뻐했기에, 페스트의 퇴각 앞에서 절망하는 코타르 같은 인물도 있다. 오랑으로 취재차 들어왔다가 함께 역경을 겪는 랑베르는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지만 마침내 페스트 시민연대인 보건대에 가담한다.
파눌루 신부도 빼놓을 수 없다. 페스트는 신에게 대항한 악한 적들을 물리치는 기제가 될 것이며 올바른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교하지만, 아무 죄가 없는 판사의 아이가 페스트로 죽자 신을 사랑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어린 환자의 사망 앞에 흥분한 리유와 기꺼이 구원을 두고 연대한다. 파눌루 신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한다고 다독이지만, 리유는 어린아이들조차 주리를 틀도록 창조한 세상에는 동조할 수 없다고 거부한다. 그렇지만 그는 어쨌든 죽음과 불행을 거부하는 방향성에서 파눌루 신부와 함께 서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작가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장면은 파눌루 신부의 임종인데, 분명 페스트에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페스트의 전형적인 임상 증상을 보이지 않은 그의 사망 원인은 '병명미상'
보건대의 서기를 맡은 그랑은 소위 별 볼일 없는 사람이지만 적확한 문장 하나를 위해 고심하는 인물로 소설에서는 '영웅'으로 그려진다. 그는 보잘 것 없지만 선량한 마음 하나로 소외된 코타르와 소통하고 맡은 바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다. 타루는 검사였던 아버지를 통해 재판을 목도하고 인간이 처한 현실을 직관하는 인물. '피고'라는 편리한 개념을 붙이고 사력을 다해 죽이고자 하는 아버지의 구형을 마주한 후, 기울어진 세상에서는 모든 논리가 잘못 되어 있어 누군가를 죽게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 몸 한 번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며 마음의 소리에 집중한다. 보건대의 연대 속에서 리유와 우정을 나누고 페스트로 죽지만, 오히려 그의 죽음은 리유의 슬픔을 위로한다. 타루의 죽음은 숙환으로 홀로 세상을 뜬 아내의 부고 소식으로부터 리유를 지켜낸다. 누구나 겪는 죽음, 슬픔, 절망 앞에서 리유만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각성시키는 것.
책의 말미에 소개된 카뮈의 연대기를 읽다보면, 페스트의 성공 이후 그는 우울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의미를 모르더라도 성실함과 연대가 절망의 시대와 삶을 푸는 열쇠라고 믿었던 그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찬사와 갈채보다는 실질적인 행동과 저항으로 나서는 수많은 연대를 기대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카뮈의 정직함은 파고처럼 몰려드는 페스트의 범람 속에서 영혼, 신, 삶과 죽음의 의미 등 모르는 것들에 천착하기 보다는 우선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집중하는 현실적인 대응책을 고스란히 제시하는 데 있을 것 같다. 두려움에 호들갑 떨지 않고 담담히 살아내는 것,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고 할 수 었는만큼 주변을 살려내는 것. 그는 구원이 가진 실질적인 뼈와 살을 매만지고 싶은 욕망을 페스트를 통해 투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파눌루와 대척점에 서 있으면서도 가장 가까이 서 있었던 리유 같기를 희망하면서.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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