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 - 절망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차동엽 신부의 생의 찬가
차동엽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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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삼성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전 절두산 성당 박희봉 신부님께 24가지 질문을 보내게 되고, 이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적임자로 여겨진 정의채 신부님께 건네진 편지의 복사본을 받게 된 후 차동엽 신부님이 질문을 재구성하여 답한 일종의 질의 응답서라고 할 수 있다. 


이병철 회장은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으며 신은 왜 우리에게 고통과 불행을 주었는지, 종교는 과연 필요한지, 영혼은 무엇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지, 신앙이 없어도, 악인도 부귀를 누리는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지, 기독교 믿음이 강한 공동체에서 왜 범죄가 많고 공산주의가 득세할 수 있었는지 등 죽음에 직면해 평소 궁금해 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이 질문들에 직독직답하는 대신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질문을 Big Q로, 동시대인으로서 느끼는 질문을 Real Q로 표현하고 생명의 몸살, 고독한 영혼의 초월 본능, 내 인생의 비밀 코드, 피할 수 없는 물음 등 4가지의 소 주제 하에 질문을 재구성하고 배치해 답변을 이어나간다. 


생명이 깃들면서 시작되는 고통, 불안과 두려움, 분노, 선악과 부의 누림 등을 먼저 훑은 후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마주하는 고독, 사회적 현상 등을 분석한다. 이후 신과의 조우를 추적하면서 삶의 의미와 연계시킨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앞두고 천국과 지옥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진정 자유로운 삶과 지구의 종말 등 인생과 세상의 종결 지점에서 파생하는 절박한 질문들에 대해 응답한다. 


공학도 출신의 신부님은 자신의 장점을 살려 인과론식 현실적 실례와 초월적 신앙을 적절히 조화하여 이해하기 쉽게 각 장의 답변을 채워나간다. 


다른 여느 신학 서적과 달리 고통의 문제를 물리적이고 과학적인 결과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고통의 문제는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3차원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겪는 자연 발생적인 결과라고 규정하면서, 다만 고통은 보호, 단련, 정신적 성장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설명한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고통 속에서 희망을 품고 희망을 말할 때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힘들 때는 잠깐 짐을 내려 놓고 정지 시간도 누려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현실을 바꿀 수 없어도 현실을 보는 눈을 바꿀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불안과 두려움은 희망을 가진 인간이 가진 특권임을 선언하면서 인간이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불행을 겪더라도, 이것들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도록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부에 대하여는, 부는 악이라고 단순히 인식하는 것이 아닌, 선을 행할 기회로 간주해야 하며 행복은 발생하는 것이지 쟁취하는 것이 아니기에 행복을 먼저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단언한다. 


또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물질로만 채워질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점을, 인간 존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면서 설명한다.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서, 학문의 깊이와 결과에 빗대어 숱한 역사의 심판 속에서도 기어이 살아남은 종교의 기능과 진정성을 일축하는 어리석음에 선동되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강하게 주장한다. 


천국과 지옥, 부귀한 악인의 득세 등과 관련하여 파스칼의 갈무리도 들려준다. 천국과 지옥을 확률로 생각하도록 권고하면서, 죽어 보니 천국도 있고, 하나님도 있다면 생전에 어떤 편을 선택해야 지혜로운 것인지 냉정하게 살피도록 한다. 범죄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조사하면 비종교인에게서 범죄 비율이 높게 나온다는 통계를 들면서 오히려 종교로 인하여 범죄가 억제되고 있는 측면이 있음을 실증한다. 


신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목적론적, 우주론적 논증을 소개하면서 칸트의 실천이성을 빌려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을 소개한다. 특히 물리학을 예로 들어 우주는 현재 11차원까지 파악되었다는 사실과 대비하여, 3차원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체험가능성과 파악불가능성의 괴리가 무한대로 커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신의 창조는 자연 세계를 통해서, 또 죽음의 현장에서 남긴 증언 등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는 점,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 수단 가치가 아니라 목적 가치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창조와 진화에 대한 대담도 흥미롭다. 베이컨의, 약간의 과학은 사람을 하나님에게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만, 더 많은 과학은 그를 하냐님께 다시 돌아가게 만든다는 고백이 어우러져 있다. 


고통받지 않는 하나님은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없다는 본 회퍼의 신앙을 통해, 배신하고 타락할 수 있는 자유의지까지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역설을 되새긴다. 


너무 진중하지 않으면서도 성마르지 않게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대해 꼼꼼하게 답변하기에, 평소라면 쉽게 사유하기 어려운 문제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기쁨이 있다. 다만, 24가지 질문에 대하여 고지지식할 정도로 순서대로 응답하는 서술 방식은 어떠했을까 싶기도 하다. 질문의 배치와 재구성 방식으로 편집된 탓에 어쩔 수 없이 답변 내용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배반, 모반, 심지어 거부까지 감수하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갖는 속성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속성상 함께 아파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중략..하나님께서 스스로 고통을 모르면서 인간의 고통에 동참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인간과는 무관한 존재로 만들어버립니다...중략..이를 나치 시대에 암살범으로 몰려 처형당한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통 받지 않는 하나님은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시키지 못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역설입니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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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 연습 : 국내 최초 완역본 - 단조로운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로렌스 형제 지음, 임종원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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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궁극적인 결과는 성화라고 얼핏 듣기는 했지만, 성화의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늠하기에는 일천한 믿음을 갖고 있기에 항상 그 구체적인 실상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물론 성경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성화의 모습을 어느 정도 추상할 수는 있었지만, 일상에서 하릴없이 부유하고 있는 습관적인 또는 문화적인 믿음(?)을 관통하는 어떤 모범을 마주하고 싶은 것은 모태 신앙을 가진 나에게는 어떤 갈망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로렌스 형제는 나의 오랜 소원을 한번에 성취해 준 본보기인 동시에 나의 믿음이 표류하는 까닭을 정확히 짚어주는 메트로놈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이 책은 맨발의 까르멜수도회에서 부엌 일이나 잡다한 일들을 맡아 행하던 로렌스 형제와 드 보포르 대수도원장이 주고 받은 편지, 그리고 로렌스 형제가 남긴 메모 등을 모아 그의 사후에 출간한 것으로, 어떻게 소박하고 굳건한 믿음으로 일생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임재를 맛보는 영광된 삶이 가능한지 보여준다. 


로렌스 형제는 가난한 가문에서 태어나 잠시 전쟁에 나가 군 복무를 하기도 하고, 은행가의 사환으로 근무하기도 했지만, 세속을 떠나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수도원에 귀의한다. 세상의 이력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그는 수도원에서도 허드렛일을 맡아 처리하는 데 그의 믿음에 수도원장은 물론 주변 성도들이 감탄한다. 한마디로 그의 믿음은 꾸미는 말이나 위선적인 행동을 벗어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지 않은 방법은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었으며, 믿음의 실력은 결국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내가 아니라 한나님의 입장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며 하나님께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가르친다. 


로렌스 형제의 글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의 모든 믿음의 발로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일 것 같다. 주인의 말을 듣는 종의 위치에서 수행하는 복종을 넘어서서 사랑하기에 나를 버리고 주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순종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그의 행적을 쫒으면 당연하게 터득할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그가 골방에 앉아 몇 시간 씩 기도하는 대신 일상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하나님이시라면 이 상황에서 내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묻는 질문보다 오히려 그의 대화는 수많은 기쁨과 감사, 영광스러움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차 잇었다는 점. 


심리학적 긍정성과 다른 점은, 그는 싫고 좋은 것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하나님께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모든 언동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병상에 누워 있을 때도 그는 그의 육체적 고통과 그에 대한 자신의 대응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까 고민하느라,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정말 아픈 것인가 의심할 정도였다니 영성이 육체의 고통에만 몰입하지 않도록 어떻게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추측할 수 있을 정도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계시고 오직 믿음만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며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는 것에 익숙하라는 당부와,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우리를 정화시키시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의 문을 두드리는 한편 하나님을 아는 것을 본분으로 삼으라는 격려는 잠잠하면서도 강력한 일침이 된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순간에도, 심지어는 불신앙과 죄악을 저지르는 순간에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대화해야 하며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급함과 충동성을 버리고 부드럽고 차분하게 행동하며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려야 하며 나의 모든 수고를 받아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이러한 모든 행위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항상 어떤 미덕이 필요하고 어떤 죄악에 쉽게 넘어지는지 주의 깊게 살피라고 다진다. 


하나님을 혼자 계시게 하지 말라는 역설에서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이 느껴진다. 그는 천상의 보좌를 버리고 죄인과 함께 하고 싶어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기에, 그 믿음의 행보는 도전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기의 믿음을 살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시때때로 너무나 적은 믿음을 보여 주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각종 규율과 행실에서 믿음을 취하는 대신, 날마다 변덕스럽게 오락가락하는 수준 낮은 헌신에 기대는 모습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기본 정신이요, 아주 높은 수준의 완전함으로 우리를 인도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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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힘 -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지리의 힘 1
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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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주장에 빗대어 본다면 이 책의 저자는 지리, 즉 땅이 우리의 정치, 경제, 역사 등 삶의 좌표를 상당 부분 결정한다고 단언한다. 산맥, 하천망 등 지리적 요인은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는 것이며, 기후, 인계, 통계, 문화, 지역, 천연 자원에 대한 접근성 등 또한  총체적으로 지정학적인 지리적인 요인에 포섭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요인들을 바탕으로 국제적 현안을 접근할 때 현상의 실체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책 전반에 걸쳐 사례를 들어 실증한다. 


저자는 해양 강국을 꿈꾸며 다양한 민족을 통합하고 영유권 분쟁을 마다 않는 중국의 속내, 지리적으로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한편 막강한 해군력, 에너지 자급 자족 등을 내세우며 패권을 휘두르는 미국, 지리의 이점과 단점에 따라 이합집산하면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유럽연합, 넓은 지형과 풍부한 천연 자원이 있어 주변국을 상대로 경제 전쟁을 필살기로 내세우지만 부동항이 없어 해상권 장악에서 미흡한 러시아, 높은 산맥과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발전이 저해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된 후 풍부한 자원과 광활한 지리적 요건이 오히려 분쟁의 요건이 되고 있는 아프리카, 종교와 지리, 강대국의 계산속 때문에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중동,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과 경쟁에 영향을 미친 지리적 특성, 북극을 둘러싼 각국의 첨예한 경제 및 외교의 실상 등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지정학적 세계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한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입장은 아무래도 눈길을 뗄 수 없었다. 한반도의 위치와 군사 기지 등의 지정학적 현실을 살피다보면 한반도 긴장에만 집중할 수 없는 것이 대만과 중국의 갈등이 가시적으로 촉발되는 시점에서 제주도를 기점으로 강대국 간 전선이 우리 나라에서 형성될 수도 있다는 추론마저 들었다. 북한의 위협 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긴장 상태를 면밀하게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각성할 수 밖에 없다. 


저자가 2편을 통해서 드러낼 지정학적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통찰력 있는 대담한 시각과 근거 중심의 설득력 높은 자료들이 어떤 하모니를 보여줄 것인지 기대된다. 또 저자가 책의 도입부에서 언급했듯이 단순히 지리뿐만 아니라 인구 특성, 기후, 문화 등의 지정학적 측면을 고려할 때 세계 각 지역의 운명을 어떻게 예측하고 진단할 수 있을 것인지 보다 총체적인 연구서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실제로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오늘날 국제 문제를 다룬 보고서들에서 자주 도외시되는 것이 바로 국내외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물리적 현실이다. 확실히 지리학은 무엇 못지 않게 왜 라는 질문의 근간을 이룬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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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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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삶에 대한 희구가 어느 때보다 높게 솟구치는 요즘인데, 우리가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고 있다니 저자의 진단은 얼핏 보면 어떤 도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은 이미 상당히 진척되기라도 한 것처럼 "왜"일까 그 이유를 따져 물으니 도저히 책을 펼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도처에서 '고통스럽다'는데, '고통을 추방하고 있다'는 지적은 열뜬 이상주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우리의 생에서 자연스럽게 배태되는 고통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나아가 성과주의와 결합하면서 어떻게 각색되고 재편되는지 명확하게 기술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고통을 피해야 한다는 공포에 휩싸여 고통을 감수할 용기를 잃어버리고 삶의 영역에 드리워진 고통을 외면하는 데 놀라운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해 당사자 간의 고통을 피하려는 움직임은 진통 정치로 이어져 탈민주주의를 가속화하고, 권력을 스마트하게 변모시킨다. 물리적인 힘으로 대표되던 권력의 속성은 푸코가 지적한 규율과 감시 제도 속에서 고통 없는 권력을 행사한다. 여기에 더해 성과주의를 덧입은 개인은 스스로를 규율하고 감시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내면의 독재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 


또 고통을 직면하여 그 의미를 일깨우고 성찰적 삶을 돌아보도록 추구해야 할 예술과 문화는 소비 및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적당한 즐거움만 주는 데서 그치면서 동일한 것의 변주만 생산해내고 있다고 소개한다. 


긍정 심리학은  고통 회피의 사명을 충실하게 실천한다고 본다. 즉 모든 초점을 기분과 감정에 맞추고 그 궤도에서 일탈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힘껏 몰아낸다. 덧붙여 디지털 아비투스를 갖춘 현대인은 머무름이나 성찰, 서사를 통해서 고통에서 만들어내는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미미해져 모든 것들을 타자화하면서 마침내 무감각한 상태로 나아간다. 이러한 무감각은 현대인의 최고 목표인 행복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방해물 같은 존재이기에 기분의 고양을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탐닉하고 더 큰 자극을 추구하며 마침내 중독의 험로로 나아간다는 것. 


니체가 고통 속에서 더 나은 건강을 찾은 것과 달리 우리는 고통을 피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보니 우리의 고통은 육체적 의미로만 축소되고 고통의 문제는 결국 의학의 문제인 것처럼 한정된다고 진단한다. 작가는 고통을 피하려는 노력 탓에 건강은 지상 목표가 되어가고 진통과 마취는 당연한 건강 기제로 작동한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바이러스가 나타나자 코로나 사회 속에서 삶의 모습은 순식간에 면역을 앞세우며 생존의 삶으로 변모했다고 서술한다. 오직 생존을 위해서 바이러스의 고통을 피하려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면서 건강 전문가가 현상의 진단을 독점하는 한편 삶은 생과 사의 측정 가능한 도식 내지는 데이터로 치환되었다는 점을 또렷하게 인식시킨다. 


저자는 고통의 억압과 은폐는 삶의 변화, 발전, 창조의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사랑, 소통, 연대, 공감을 하지 못하도록 작동하기에 결국 우리는 상실하며 고립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고통의 추방은 더 좋은 삶에 대한 고민을 위축시키고 삶의 의미는 오로지 죽음이 아니라는 것으로 안심한다는 역자의 후기야 말로 고통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다루는 전략이 가져오는 가장 큰 폐해일 것이다. 


고통의 포효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대상화하므로 고통을 은닉하고 회피하기 때문이라는 지적, 가슴을 후벼파는 일갈이다. 

행복장치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사회의 탈정치화와 탈연대화를 초래한다. 각자가 스스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행복은 사적인 문제가 된다. 고통 또한 개인적인 실패의 결과로 해석된다. 그래서 혁명 대신 우울이 있다...중략..진통사회는 고통을 의학적 문제로, 사적인 문제로 만들어 탈정치화한다. 이를 통해 고통의 사회적 차원을 억압하고 은폐한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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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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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자 마자 바로 책을 찾아보았다. 불안과 불화, 불확실성과 혼돈이 침착된 세계는 여전히 출렁이는데, 문학은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호기심도 일었고, 내게는 생소한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라는 이력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놀랍게도 작가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살아감과 죽어감이 무엇인지 요한네스라는 인물을 통해 대담하게 그려냈다. 의미와 이유를 찾는 데 익숙해진 현대인이 정말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가르치기라도 하듯 작가는 소박한 어부의 일대기를 통해 의미가 아니라 존재를, 이유가 아니라 생과 사의 근원을 탐색하면서 자의식 과잉 탓에 존재 자체가 어려워진 의식의 틈새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1장에서는 요한네스의 탄생이 그려진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요한네스는 올라이의 아들로 태어나는데,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와 분리되어 추운 세상으로 혼자 나와 모든 사람들과 분리되어, 언제나 혼자로 살면서 모든 것이 지나가면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리라는, 올라이의 독백 속에서 탄생한다. 올라이는 태어나서 살고 죽어가는 그 모든 것이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무 이상의 무엇이 드리워지는데 그것이 신의 영혼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요한네스의 탄생 순간, 공간을 파고드는 소리와 고요함은 뒤섞여 서로 연결되면서도 떨어져 새로운 고요한 소음으로 나아간다. 작가는 생명의 탄생 시점에 드리워진 일상의 소리들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표현하면서 서로 어우러지면서도 독립적으로 배치되는 시공간의 역설적인 질서를 명민하게 드러낸다. 


2장에서는 어느 날 요한네스가 침대에서 일어나 겪은 기묘한 일상이 주제가 된다. 평소와 달리 몸이 가볍다고 느끼는 요한네스는 오랜 친구 페테르를 만나고 꽃게를 사러 올라오는 안나를 마주친다. 또 오래 전 죽은 아내 에르나와 조우한다. 소천한 게 확실한 페테르센을 만나는 가 하면, 젊어 세상을 떠난 누이 마그나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주변인들과의 만남 뒤로는 요한네스의 어부로서의 삶이 배경이 된다. 그는 지나온 모든 일상 속에서 그들을 다시 일상의 한 단편으로 만나게 된다. 살아 생전 서로 머리를 잘라주었던 페테르와 다시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방금 보였던 에르나가 갑자기 사라지는 데 놀라고 막내 딸 싱네가 자신을 모른 채 스쳐 지나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막내 딸 싱네가 죽은 요한네스를 발견하고 의사를 부르고 사위를 부르는 동안 요한네스는 다시 찾아온 페테르를 만난다. 


페테르는 죽음을 지각한 요한네스를 배로 이끌어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는 인물로 현신하는데, 이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새로운 몸을 잠깐 돌려받았다고 고백한다. 페테르는 다음 세상은 어떤 장소가 아니며 너와 나의 구분이 없으면서도 요한네스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거기에서는 언어가 사라지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모든 것이 하나이면서도 서로 다른, 그러므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담백한 줄거리를 더욱 진중하면서도 웅장하게 진동시키는 문학적 재미는 아무래도 문체일 것 같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마침표를 찍지 않고, 대화나 생각은 쉼표로 구획하면서 주인공의 일대기, 즉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는 문장으로 이어나간다. 독서의 재미를 더하는 장치는 제목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요한네스의 삶을 그리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종결하고 낮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럼에도 요한네스의 낮은 일곱 남매를 키우고 아내와 사별하며 친구와 마을 사람들과의 일상이 반복되는 시간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요한네스의 삶에서 낮은 그저 지나가는 시간이었을 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살고 죽는 그 과정은 요한네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생의 전환 과정에 포섭되므로 낮 시간 동안의 그의 삶은 존재 양식에 충실했던 것으로 이해되어 어떤 알 수 없는 충만감이 가슴에 차오른다. 


살고 죽는 것의 숭고함이 타자화 되고 삶에 대해 지나친 의미화를 추구하는 천착이,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요즘, 이 책이 주는 울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유별난 구석이 있었지만,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걸 저도 알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속을 게워내야 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요,싱네는 생각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하늘에 흰 구림이 떠간다, 그리고 오늘 바다는 저리도 잔잔하고 푸르게 빛나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요한네스,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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