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유럽사 1 -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까지, 개정판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역사
김상훈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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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일단들을 모아 연혁을 추적하고 흥망성쇠를 기록하는 역사만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쉽게 충족되기 어려운 분야가 있을까, 일념은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했던 것 같다. 시험처럼 특정한 목표를 앞두고 익히다 보니 단편을 억지로 엮어낼 수는 있었지만, 어떤 배경을 깊이 있게 이해하거나 스스로  교훈을 맞뚫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저자의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한 두 가지 역사적 사건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대신 각국의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며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에 설득된 까닭이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설득은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저자는 개별적인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역사적 흐름으로 이어지는 맥락 간 관계를 추적하는 데 그악스러우면서도 융통성을 발휘하여 스스로의 약속을 꼼꼼히 메웠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유럽사에서 늘상 헷갈렸던 부분이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과 프랑크 왕국, 신성로마제국의 탄생과 이슬람의 침략 부분 등이었는데 나름 맥락을 잡고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그리스와 로마의 식민지 건설의 목표가 달랐다는 점은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인데, 그리스는 늘어난 피지배층의 수용과 공물의 상납지를 확보하기 위해 해안 지역에 식민지를 만들었고, 농업의 발달로 농지를 마련하기 위해 로마는 내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게르만 민족의 이동 이후 노르만 민족의 이동에 따른 러시아의 건설과 슬라브 민족의 남하에 따른 동구권 국가의 탄생 배경 역시 흥미로웠다. 


이 책의 장점은 역사를 단순히 시간 순서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공간, 민족, 정치, 종교, 경제의 다양한 배경을 사안들과 접목시켜 입체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지각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가령 봉건제도의 탄생을 식민지 개척의 역사와 연결하면서 분권화가 강화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을 제시한다. 


또 두 권이기는 하지만 짧은 지면 탓에 모든 것을 교과서처럼 담기는 어려운 한계가 있으나, 중요한 역사적 전환의 국면에서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지 유추할 수 있도록 친절한 이야기 형식으로 소개함으로써 의외로 많은 역사적 가르침을 상기하게 한다. 즉 경제적 축적과 평등이 사회 전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또 시대와 사회를 관통하는 명분이 정치에 있어서 얼마나 민감하게 작동하는지, 기득권층의 이합집산이 이성적인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지만 훈족의 등장처럼 도무지 상상하지 못했던 요인들이 역사의 궤를 완전히 틀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 능긍할 수 밖에 없다. 


그 밖에 민족 분쟁, 종교 전쟁, 각국의 패권 전쟁의 시초가 되는 연관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저자의 주장대로 그동안 유럽사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마이너 리그 격인 역사를 간과하지 않고 다루어준 점도 두드러진다. 덕분에 로마 제국 초기에 영향을 끼친 에트루리아나, 초기 철기 문명이 시작된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 문화, 발트해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와 스웨덴의 대립, 강대국 사이에서 거듭된 영토 분할의 피해국이 된 폴란드 등 기존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한번의 독서로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다각적으로 구성된 역사적 실체를 맛봄으로써 더 확장된 공부에의 의욕을 북돋우는 데 도움이 된다. 

세계사 공부의 기본은 이와 같습니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각국의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며 연관성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무턱대고 한두 가지 역사적 사건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세게사 흐름의 큰 틀을 놓칠 수 밖에 없습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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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래는 행복하다 - 인생의 샬롬을 이루어 가는 21일 묵상
류인현 지음 / 두란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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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효율과 성과, 능률과 성취를 기반으로 삼는 치열한 세상 가운데 은혜의 복음에 붙들린 성도들이 어떻게 살고 또 살아내야 할지 21일간의 묵상을 제시함으로써 잠잠히 가르친다. 


구원, 속죄, 은혜의 복된 소식이 부, 명예, 건강, 성취 등의 기복으로 변질되면서 죄로부터의 구원에 따른 영생과 부활은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소위 세상 부귀 영화도 놓치지 않는 끈덕진 욕심을 갈라 터뜨린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저자가 묵상한 내용을 '느리게 그리고 행복하게, 소박하게 그리고 풍요롭게, 자유롭게 그리고 용기있게'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파트에 7가지 주제를 배치하여 총 21일동안 묵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러한 체계 덕분에 독서의 부담감을 줄이면서도 각 내용은 알차고 단단해 밀도있게 느껴진다. 


저자는 제목을 붙일 때 '고래'를 선택한 이유로 혹등고래의 삶을 제시하는데, 그에 따르면 혹등고래는 다른 고래보다 느리지만 춤을 추고 노래를 많이 부르면서 일상을 즐기는가 하면, 바다의 수호 천사를 자처해 물개며, 다이버 등을 천적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한다. 거기에 바다의 유기물을 순환시켜 플랑크톤의 광합성을 돕기도 하고 나무 1천 그루만큼 탄소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죽고 나면 심해 생물에게 먹이로 제공해준다고 하니, 동물계의 예수님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시선은 세상이 추구하는, 효율 및 성과 사회가 압박하는 주된 테제인 '자기'로부터의 벗어나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 행복 강박, 자기 추구의 매몰은 결국 자기 연민으로 이어져 은혜의 복음이 허락하는 진정한 삶 살기를 가리우고 있다는 진단이다. 성장과 성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따르면서 다시 사랑하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쉼을 잃어버리고 자족이 엷어진 까닭은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돌보는 소박함을 잊어버린 까닭이라는 주장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존재적 가치를 되찾고 주어진 삶을 참되게 사는 방법은, 서로 사랑하면서 우정을 나누고 공감하며 감사하고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는데, 복음 안에서 흠결 없는 참 이치가 아닐 수 없다.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들어 구체적인 자아, 이상적인 자아에는 집중하면서도 우리의 상황이나 성취와는 아무 상관 없는, 하나님 안에서 진실한 평안을 얻는 진정한 자아를 등한시 한다는 지적이나, 스티븐 버글라스의 <성공 신드롬>에 따른, 모든 것을 성취한 성공한 이들이 걸리는 병인 네 가지 증상, 즉 오만, 지독한 외로움, 파괴적인 모험 추구, 간음 등을 소개한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모든 것을 뒤로 남겨두고 오직 성취의 목적만을 향해 나아갈 때 마주하는 결과가 얼마나 허망하고 두려운 것인지 생각하면, 복음과 함께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소박하고 느리면서도 함께 어우러지는 참된 삶으로 진척하지 못하는 행보를 회개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지만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것,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오래 참음이다. 기다리다 보면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나 주를 바라보고 믿는 사람은 강하고 굳은 마음으로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주 앞에서 오래 참을 수 있다. 아무리 억울한 일, 어려운 일을 당해도 믿음을 지키고 주 앞에서 오래 참으면 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안심할 수 있다. 결말을 알면 인생은 쉽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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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생각의 출현 - 대칭, 대칭의 붕괴에서 의식까지
박문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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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흩어져 있는 조각을 맞추어 논리적 산물을 획득하는 데 있을 것이다. 다만, 추리의 결과가 진위 여부로 정확하게 판별될 때 희열은 극대화 된다. 존재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은 흡사 추리와 닮아 있는데, 추리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극명하게 갈리는 관점의 교차가 아닐까 싶다. 안타깝게도 진위 여부를 현세에서 확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서 때로는 논란이 증폭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지적 호기심을 배가하는 원인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진화론에 회의적이지만, 이 책을 읽고 오히려 창조론이 내세우는 창조의 순서와 진화의 차례가 흡사해서 다시 한번 놀라기도 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생명의 시작도 세포가 아니라 우주 대폭발, 빛의 창출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은 어떤 전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창세기에서도 하나님은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셨다)


저자는 생각의 출현을 철저하게 진화와 물질적 관점에서 조망하면서 생명 탄생의 기원을 우주에서 출발하여 다시 우주에 빗대어 뇌가 발현하는 생각의 확장, 창조성을 밝혀내고자 한다. 


대칭성이 깨지면서 우주의 외연이 만들어지고 이 때 만들어진 잔류물들이 지구에서의 생명 탄생의 초석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후 생명의 초연으로 세포가 등장하는데, 단세포들이 모여 다세포가 되고 다세포들은 다시 계통별로 연합해 기능화되었다고 소개한다. 세포들의 역할 구분의 이면에는 DNA가 자리잡고 있으며 특히 뇌의 신경 세포는 수초화, 시냅스, 신경전달물질 등의 구조화 및 미세 조정 등을 통해 운동을 명령하고, 감각을 수용하는 최고의 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 즉 의식의 출현은 철저하게 이러한 뇌세포의 화학적 반응, DNA의 변주, ATP에 의한 에너지 합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운동과 감각으로 축약할 수 있는 거대한 기계적 시스템의 산출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두엽, 두정엽, 후두엽, 측두엽을 비롯해서 시상, 편도체, 해마, 소뇌 등의 해부학적 구조와 기능을 해부도나 도표를 활용하여 제시하고,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을 간추려 소개함으로써 주장의 체계성을 갖춘 것이 무엇보다 탁월하다. 우주의 기원과 물리학의 학문적 성과를 연계하여 창의적 사고의 확장성을 설명한 부분도 인상 깊다. 


좋은 책의 요건이 독서 후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이 책은 그 기준을 가뿐히 통과하지 않을까. 


가장 먼저 드는 질문은 우연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일 것 같다. 우주의 잔류물들이 모여서 우연히 세포를 만들고, 세포들이 진화해 왔다면, 왜 어떤 존재들은 거기에서 진화를 멈추고(?) 더 진화하지 않은 걸까, 혹은 왜 못한 걸까. 


또 단순히 DNA의 변주에서 출발하여 세포들의 화학적, 물리적 반응의 결과물로 의식을 설명한다면 무의식, 양심이나 영혼 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만 범위를 좁혀서 생각한다 하더라도, 거대한 기계적인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의식이 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가, 문화, 환경, 역사 등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질문과 더불어 통찰을 제공해주는 점도 있는데, 우주의 작은 먼지 하나부터 빛 한 줄기, 나뭇잎 하나, 개미 한 마리까지 생명을 관통하는 그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각 개체의 생명을 넘어서 개체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전체의 생명이 있다는 것, 온생명의 개념을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  


또한 세포의 연대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적 결합이나 연합일 수도 있지만 세포의 각자도생을 연합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것, 즉 오히려 기계적인 시스템으로 생명을 이해하는 것의 오류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데, <건강의 배신>이 보여주는 면역 세포들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생명의 유사성 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데 종류가 다르고 계통이 다른데도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각자에게 적합한 일정한 원리와 법칙에 의해 생명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기제가 작동하도록 하는 화학, 물리적 반응을 궁극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여튼 쉽게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저자의 꼼꼼함과 바지런함 덕분에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다양한 학문의 현 좌표를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지식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독자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이다.  

생명현상 역시 대칭성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우주 대칭이 깨어져 네 가지 힘이 분화되어 전자기 상호작용이 출현한 후에야 지구 생명현상이 발현으로까지 연결되니까요. 대략 35억 년 전에 지구상에서 태초의 생명현상이 일어났죠. 그 무렵에 생명 진화 역사에서 중대한 랑데부가 하나 있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라는 하나의 생명체가 커다란 아메바성 생명체와 세포 내 공생 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세포 생명체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죠.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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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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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상당 부분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삶'에 대한 소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각종 생존에 대한 분투기로 가득 차 있다. 정치, 경제, 건강, 사회, 문화의 모든 소식은 추적하면 결국 생과 접목되어 있다. 물론 죽음의 소식도 분명 존재하지만, 삶의 소식처럼 다채롭고 구체적이지 않다. 물론 문학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죽음은 흥미로운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대게는 죽음은 '삶의 종결'이라는 큰 맥락에서만 주로 다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선택하면서, 모두가 경험하고, 경험해야 할 죽음이지만, 이토록 죽음에 대해서 무지할 수 있을까, 어떤 소소한 각성 같은 것이 일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물리적인 지면 탓에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죽음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동기화는 충분해지는 느낌이다. 


저자는 법의학자로서 살아오면서 고민한 내용을 담백한 어조로 전달한다. 책은 크게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우리는 왜 죽는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등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법의학이란 무엇이며 법의학자는 어떤 일을 주로 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검시와 부검을 통해 사망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만이 아니라 검찰, 경찰, 법원, 보험 회사 등의 자문을 맡는다는 점이 새롭다. 철저하게 증거로 대변하는 학문이다 보니 사건의 추적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부침도 수긍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선구자적 역할을 자처한 몇 몇 학자로부터 법의학 분야가 발전해온 과정을 읽다 보면 소명 의식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는 한편 선진국과 비교하여 열악한 기반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2부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간단하지만 죽음의 역사를 통해 어떻게 죽음을 의학으로 일임하게 되었는지 설명한 대목이다. 과거 영혼 불멸과 필멸 등 죽음을 영혼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과학이 발달하면서 주로 죽음을 유물론적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의학이 주도하게 된 과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죽음의 주도권을 의학이 가지면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영, 혼, 육의 존재에서 육의 존재로 축소되고 어떤 기계의 소멸처럼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은 여전히 우리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이기에 죽음에 대한 문제를 왜 의학에만 떠넘겨서는 안되는지 어떤 단초를 발견한 느낌이다. 


3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죽음 중에서도 특히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의 문제, 연명의료, 죽을 권리,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 등에 대해 기술한다.


일본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써 유행하는 종활, 근엄한 장례식이 아니라 유쾌한 장례식을 준비하는 저자의 준비, 과학의 발달로 더는 죽을 수 없는 세대의 도래 등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사회적 준비와 수용에 대한 부분이 더 할애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독사를 넘어서 무연고사가 많아지고, 국회에서는 사회적 개념 확립과 지원을 위해 고립사라는 법적 용어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죽음의 양태마저 누군가만 향유할 수 있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조바심이 들었다고 할까. 

모두가 한 사람 개인으로서의 죽음이지만 이 한 사람의 죽음이 갖는 사회적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어떤 죽음은 그 죽음으로써 사회적인 시스템을 바꾸고,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살인 사건에서의 죽음 또한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을 드러내면서 삶의 가치를 새롭게 질문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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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 천국을 향한 순례자의 여정
존 번연 지음, 박영호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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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신앙 생활을 하면서 <천로역정>은 운 좋게도 몇 번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주일 학교 때도 간단한 내용을 접했고, 몇 해전에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보기도 했다.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가장 많이 인쇄된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우화 형식의 내용이라는 점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가장 어리석은 편견인데, 천성을 향해 가는 주인공의 여정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탓에 우화 속에 숨어 있는 메시지를 진득하게 읽어볼 생각을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읽지 않을 수 없는 매가지에 몰린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빨리 읽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동시에 지금이라도 읽게 된 행운에 대한 감사가 흘러나왔다. 


<천로역정>은 존 번연이 자신이 겪은 회심의 과정을 바탕으로 구성한 일종의 우화로, 청교도 운동에 열정적이었던 그가 감옥 생활을 하면서 쓴 책이다. 1부에서는 크리스천의 천국을 향한 여정을 다루고, 2부는 그의 아내 크리스티아나와 네 아들의 순례길에 집중한다. 


멸망의 도시에 살던 크리스천은 복음 전도자를 만나 진노를 피하라는 안내를 받고 주위에 설파하지만 가족까지 그를 비방하자 홀로 고민하다가 천성을 향해 길을 떠난다. 처음에는 무줏대와 외고집이 그와 함께 호기심에 함께 하지만 이내 그들은 포기하고 되돌아가고, 크리스천은 혼자서 짐을 잔뜩 지고 길을 떠난다. 여정의 시초에서 만난 세상의 지혜자는 그에게 짐을 벗기 위해서는 도덕을 찾고 율법이나 예절을 고수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그 날카로운 지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면서 다시 복음 전도자의 도움으로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는 그의 안내에 따라 좁은 문에 다다라 문을 두드리고 거기서 율법과 복음의 은혜가 어떤 관계인지 청소를 통해 배운다. 율법이 닦을 수록, 청소를 한다지만 먼지를 일이키는 것과 같다면, 복음은 먼지를 가라앉히는 물과 같다는 점을 듣게 된다. 다시 힘을 가다듬은 그는 구원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이르고 거기에서 짐을 벗게 된다. 이후 멸망의 도시의 왕인 아볼루온과의 결투에서 가까스로 승리한 그는 신실을 만나 함께 허영의 시장에 가게 된다. 모든 것이 거짓 진리의 허영 뿐인 그곳에서 유일하게 진리를 구하다가 그들은 엉터리 재판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고 신실은 사형 선고를 받는다. 처형된 신실과 달리 기적적으로 그곳을 빠져 나온 크리스천은 이후 소망을 만나게 되지만 경계심이 풀려 넓은 길로 갔다가 의심의 성에 사는 절망 거인 부부에게 걸려든다. 거기서도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하게 되는데, 기쁨의 산에서 지식, 경험, 경계, 성실의 목자들을 만나 천성의 일부를 보게 된다. 


이후 무지, 무신론자 등을 만나면서 주춤하지만, 끝끝내 천성의 바로 앞 기쁨의 땅 쁄라에 이르고 요단 강 앞까지 이른다. 믿음에 따라 깊이가 달라지는 요단강 앞에서 그는 두려움에 빠지지만 소망의 확고하고도 끈질긴 도움으로 천성에 입성하게 된다. 


크리스티아나 역시 남편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천성으로 향해 나아가는데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러 은밀한 도움을 받아 끝내 천국에 이르게 된다. 


천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인물은, 존 번연이 실제 신앙 생활 가운데 만났던 이들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신앙을 망치고 열매 맺지 못하도록 하는 다양한 양태에 이름을 붙여 신앙의 성장 과정 중 어디에서 출몰하게 되는지 정확하게 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더욱이 나의 신앙은 지금 어떤 양태로 변질되고, 어떤 방해를 받고 있는지 따끔한 경고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그 바탕에는 다양한 장면마다 그에 맞는 성경 말씀과 인물들의 양태가 소개되어 있기 때문. 


이 책의 강점은 소명, 중생, 회심, 믿음, 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로 이루어진 구원의 서정을 말씀을 따라 분명하게 그려내면서도 우화 속에 나타난 다양한 인물이 나타내는 의미를 분명하게 분석하고, 신앙의 제 문제들을 함께 토론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책의 말미에 연구 지침서를 실었다는 것이다.


또 존 번연의 일대기를 세밀하게 수록하여 이 책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존 번연이라는 위대한 작가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소중한 믿음의 대가들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이를 모두 엮어 명작 탄생으로 이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승전결 형식의 스토리가 뚜렷하지 않아 내용을 한꺼번에 각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책의 서두에는 크리스천의 여정을 그림으로 그려 제시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각 장이 어느 지점, 어느 좌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장면인지 쉽게 그려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성도가 읽어야 할 기독교 고전을 넘어서 인간이 육적인 존재에서 영적인 존재로 나아가는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게 하는 한편, 인간의 실존이 어떤 상태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데서 출발하므로 왜 이해와 논리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다. 

저는 제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무거운 짐으로부터 편안함을 얻는 것입니다...중략..저쪽을 보시오 저 도덕이라는 마을에는 율법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살고 계십니다. 그분은 매우 판단력이 뛰어나고 당신처럼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짐을 벗도록 돕는 능력이 있어 명성이 뛰어난 분이지요. ..중략 크리스천은 율법 씨의 집을 찾아가 도움을 얻기 위해 길을 바꿨다. 그런 그가 힘들게 언덕까지 갔을 때 그 언덕은 매우 높아 보였고 길가에 솟아 있는 언덕 측면이 상당히 돌출되어 있어 언덕이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더 앞으로 나아가기 두려웠다...중략..그가 길을 바꾸어 오는 동안 등에 진 짐이 더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갑자기 언덕에서 불꽃이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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