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생각의 출현 - 대칭, 대칭의 붕괴에서 의식까지
박문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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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흩어져 있는 조각을 맞추어 논리적 산물을 획득하는 데 있을 것이다. 다만, 추리의 결과가 진위 여부로 정확하게 판별될 때 희열은 극대화 된다. 존재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은 흡사 추리와 닮아 있는데, 추리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극명하게 갈리는 관점의 교차가 아닐까 싶다. 안타깝게도 진위 여부를 현세에서 확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서 때로는 논란이 증폭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지적 호기심을 배가하는 원인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진화론에 회의적이지만, 이 책을 읽고 오히려 창조론이 내세우는 창조의 순서와 진화의 차례가 흡사해서 다시 한번 놀라기도 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생명의 시작도 세포가 아니라 우주 대폭발, 빛의 창출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은 어떤 전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창세기에서도 하나님은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셨다)


저자는 생각의 출현을 철저하게 진화와 물질적 관점에서 조망하면서 생명 탄생의 기원을 우주에서 출발하여 다시 우주에 빗대어 뇌가 발현하는 생각의 확장, 창조성을 밝혀내고자 한다. 


대칭성이 깨지면서 우주의 외연이 만들어지고 이 때 만들어진 잔류물들이 지구에서의 생명 탄생의 초석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후 생명의 초연으로 세포가 등장하는데, 단세포들이 모여 다세포가 되고 다세포들은 다시 계통별로 연합해 기능화되었다고 소개한다. 세포들의 역할 구분의 이면에는 DNA가 자리잡고 있으며 특히 뇌의 신경 세포는 수초화, 시냅스, 신경전달물질 등의 구조화 및 미세 조정 등을 통해 운동을 명령하고, 감각을 수용하는 최고의 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 즉 의식의 출현은 철저하게 이러한 뇌세포의 화학적 반응, DNA의 변주, ATP에 의한 에너지 합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운동과 감각으로 축약할 수 있는 거대한 기계적 시스템의 산출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두엽, 두정엽, 후두엽, 측두엽을 비롯해서 시상, 편도체, 해마, 소뇌 등의 해부학적 구조와 기능을 해부도나 도표를 활용하여 제시하고,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을 간추려 소개함으로써 주장의 체계성을 갖춘 것이 무엇보다 탁월하다. 우주의 기원과 물리학의 학문적 성과를 연계하여 창의적 사고의 확장성을 설명한 부분도 인상 깊다. 


좋은 책의 요건이 독서 후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이 책은 그 기준을 가뿐히 통과하지 않을까. 


가장 먼저 드는 질문은 우연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일 것 같다. 우주의 잔류물들이 모여서 우연히 세포를 만들고, 세포들이 진화해 왔다면, 왜 어떤 존재들은 거기에서 진화를 멈추고(?) 더 진화하지 않은 걸까, 혹은 왜 못한 걸까. 


또 단순히 DNA의 변주에서 출발하여 세포들의 화학적, 물리적 반응의 결과물로 의식을 설명한다면 무의식, 양심이나 영혼 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만 범위를 좁혀서 생각한다 하더라도, 거대한 기계적인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의식이 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가, 문화, 환경, 역사 등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질문과 더불어 통찰을 제공해주는 점도 있는데, 우주의 작은 먼지 하나부터 빛 한 줄기, 나뭇잎 하나, 개미 한 마리까지 생명을 관통하는 그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각 개체의 생명을 넘어서 개체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전체의 생명이 있다는 것, 온생명의 개념을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  


또한 세포의 연대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적 결합이나 연합일 수도 있지만 세포의 각자도생을 연합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것, 즉 오히려 기계적인 시스템으로 생명을 이해하는 것의 오류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데, <건강의 배신>이 보여주는 면역 세포들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생명의 유사성 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데 종류가 다르고 계통이 다른데도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각자에게 적합한 일정한 원리와 법칙에 의해 생명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기제가 작동하도록 하는 화학, 물리적 반응을 궁극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여튼 쉽게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저자의 꼼꼼함과 바지런함 덕분에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다양한 학문의 현 좌표를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지식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독자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이다.  

생명현상 역시 대칭성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우주 대칭이 깨어져 네 가지 힘이 분화되어 전자기 상호작용이 출현한 후에야 지구 생명현상이 발현으로까지 연결되니까요. 대략 35억 년 전에 지구상에서 태초의 생명현상이 일어났죠. 그 무렵에 생명 진화 역사에서 중대한 랑데부가 하나 있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라는 하나의 생명체가 커다란 아메바성 생명체와 세포 내 공생 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세포 생명체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죠.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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