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에 훤해지는 역사 - 남경태의 48가지 역사 프리즘
남경태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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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책이 출간되고 있지만,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독자에게 신뢰를 제공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므로 다소 딱딱한 인문학의 껍질을 손수 벗겨내어 속살을 먹기 좋게 잘라 융숭하게 대접하는, 근사한 기술을 지닌 저자의 소중함은, 떠나간 자리를 더욱 짙은 그리움으로 물들게 한다. 둔탁한 책상에서 거대한 암기 덩어리들로 다가왔던 학창 시절의 역사를,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 교양의 분야에 걸맞게 배치하고 의미화한 저자의 치열함 덕분에, 몸 편히 기대고 누워 평안한 독서로 역사의 가르침을 탐독할 수 있었다. 새삼 감사하다.

 

역사 시간에 우리의 혁명-항거는 왜 이렇게 족족 실패했는지, 관군 대신 백성들이 직접 나서 싸운 전쟁이 왜 이렇게 많았는지 답답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정치 분야부터 가려웠던 곳을 막힘 없이 긁어주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지배이념을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에게 내면화함으로써 통치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지배자의 권위를 정치뿐만 아니라 종교적 의미로까지 확장시켰던 절대성의 철옹성이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고 할까. 삼권분립을 외치면서도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기보다는 행정부에 기대어 대통령을 왕처럼 인식하는 우리의 정치 의식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혈통 정치가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참화를 통해 북한의 세습정치, 재벌의 경영 세습 등이 갖는 불안정성, 중앙집권체제의 단일 소유권 독점이 갖는 강고함의 취약점, 불법 쿠테타 정권의 권력욕과 레임덕에 대한 분석도 신랄해서 기억에 남는다.

 

신항로 개척과  금융제도의 발달, 세금을 의무가 아니라 권리의 통로로 인식한 서양과,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한 동양 사회의 차이점, 계약과 신용에 대한 동서양 인식의 비교, 수탈을 당하면서도 충성을 다하게 한 이념의 배태가 낳은 권력지상 사회의 면모, 분열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자본주의의 본질 등은 경제의 역사가 시사하는 바를 성실히 다루었다.

 

사회를 다루는 장에서는, 상식을 위해 싸운 미국 독립의 혁명 정신, 좌파와 우파의 기원과 공식화의 필요성, 대동단결의 위험성과 파시즘, 중화세계에서 꽃피우는 서열주의,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대하는 섬세한 전환에서 시작되는 강국의 면모, 상하 개념과 역할 배분 개념의 차이가 낳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제도가 아닌 문화를 개선해야 하는 이유 등을 거론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탐색한다.

 

국제 상황의 변모도 세심하게 다루고 있는데, 서양 문명이 외부로 진출한 방식, 역사 자체의 흐름 속에서 그 경로를 따르는 역사의 전개 방식, UN과 교황의 유사점, 중세 발명품의 운명, 새로운 프레임의 등장과 변혁, 기후변동과 역사, 국경에 대한 인식과 통일 문제, 미국이 강국이 된 이유, 사회주의 등장의 이론과 현실의 괴리 등도 흥미롭다.

 

융합 방식 및 충돌과 정복 방식의 동서양 문명 비교, 노마디즘과 정착민의 정신, 해외 진출의 상반된 방식과 그 결과, 달력과 주권, 중화주의에서 비껴난 일본의 독자적인 역사, 진리와 천리의 철학 비교, 고전의 해체와 독해, 심층을 바로보는 안목과 구조주의 인식, 사용가치-교환가치-기호가치의 개념, 신학과 과학의 분리, 종교의 첨단성, 예술과 상업성, 호모루덴스의 중요성은 문화를 형성한 역사의 근간을 또렷이 보여준다.

 

교육을 관통하는 역사의 프리즘은 대학입시와 과거제, 대학 등록금 문제, 아비투스와 교육, 소비자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 국사가 아닌 지역사여야 하는 이유 등을 살펴본다.

 

현재의 좌표로 밀어온 역사의 파도는 눈에 쉽게 보이지 않으므로 더더욱  인식하기 어려운데, 저자 덕분에 쉽게 파도 위를 올라타고 파고를 넘나든 느낌이 든다. 언제 또 어디서 저자처럼 쉽고 풍성한 이야기로 채근질하는 글들을 만날 수 있을까.

어느 나라나 사회에 관해 가장 절약적으로 알게 해주는 방법은 뭘까? 다시 말해 최소의 비용과 시간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게 해주는 지식은 뭘까? 바로 역사다...역사에는 생략이나 비약은 없어도 지름길은 있다. 단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어도 전체 과정에 소요되는 기간과 노력을 줄일 수는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역사적 두께를 채우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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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를 위한 동화 속 젠더 이야기 - 남자다움, 여자다움에 갇힌 나다움을 찾아 떠나는 동화 속 인문학 여행 십 대를 위한 인문학
정수임 지음 / 팜파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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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성교육용 동화는 이제는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동화를 소재로 청소년에게 접근하는 도서는 여전히 난망한 상황이라, 출간 자체가 반가운 책이다.

 

저자는 국어교사의 전문성을 살려 독서를 기준점으로 삼되, 젠더의 관점으로 동화 읽기를 통해 남학생, 여학생이 겪는 성적 편견, 차별, 성적 대상화 등 다양한 주제를 연계해나간다. 겸손하게도 이 책이 동화를 읽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라는 고백도 덧붙이고 있다.

 

편지글 형식에, 남녀 주인공들과 별 반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언니, 형을 등장시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기술함으로써, 청소년 독자가 읽을 때 도덕적 훈계나 일종의 지침처럼 느껴질 수 있는 심리적 거부감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전반부는 여학생, 후반부는 남학생이 마주하는 젠더 문제를 배치하고, 각 장의 도입부는 동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기술했다. 이후 주인공과 언니, 형이 편지를 주고 받으며 특화된 주제를 확장해가가고, 끝부분에는  각 장별로 연결되는 개념이나 용어를 설명하고 있다.

 

여학생 대상으로는 <라푼젤>, <빨간 모자>, <백설 공주>, <피터펜>, <작은 아씨들>, <선녀와 나무꾼>, <빨간 구두>, <오즈의 마법사>를 소개하고, 각각 여성에게 묻지 않는 인생 목표, 여성의 평화로운 삶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만들어지는 모성애, 여자들이 겪는 문제의 해결사로서의 남자, 나의 것이 아닌 여자의 몸, 허영과 아름다움의 기준, 페미니즘을 주제로 연결한다.

 

남학생 대상으로는 <피노키오>, <미녀와 야수>, <개구리 왕자>, <플란더스의 개>, <푸른 수염>, <80일간의 세계 일주>, <행복한 왕자>, <춘향전>을 소개하고, 남자다움, 결혼에 대한 남자의 환상, 가부장제, 핑크택스, 금기를 지키는 여성과 벌주는 남성, 남성중심의 주인공, 동성애, 사랑에 대한 환상 등을 화두로 삼는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충분한 시사점과 젠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영민하게 조력한다. 다만 여학생과 남학생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동화에 대해 남학생과 여학생의 시선을 대조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령 몸은 어느새, 여자 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나의 것이 아닌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부성애 역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의문을 품을 수도 있으니까.

 

또 추후 개정판이 출간된다면 성별을 떠나서 다양한 주제의식을 뽑아내는 읽기 방식도 제안하면 어떨까 싶다. 가령 라푼젤은 꼭 사다리를 창밖으로 내달아 밖으로 탈출해야만 할까, 라푼젤의 노래에 반해 성안으로 들어온 왕자는 과연 잘못한 것이 있을까, 처럼 기존의 젠더 교육에서 질문하던 것을 뒤틀어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기준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나 판단은 그것이 옳을지라도,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젠더 교육의 한 방향성일테니까. 누군가 처한 현재의 개개의 삶을 충분히  존중하고 이해하는 방식에서부터 출발하는 시선, 부가되면 어떨까.

하지만 만약 처음부터 동화책을 의심하며 읽는다면 어떨까?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고, 세상에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안다면 조금 더 단단하게 세상과 맞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 속에서 소개하는 여러 편의 동화들이 그런 길을 열어주었으면 한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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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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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해와 폐허로 남은 사실을 목도할 때 가장 먼저 평안을 찾는 손쉬운 방법은 아마도 때마침 존재한 외부의 적을 찾아내 온통 죄과를 뒤집어 씌우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찾아낸 적이 누가 봐도 탐욕스럽고 흉물스러운 모습이라면 감사하기까지 하다. 치우치기 십상인 주관적인 해석은 타인의 객관적인 인정까지 덧붙여져 견고한 확신으로까지 변모하고 시간의 혜택까지 덧입게 되면 애초부터 희미했던 진실은 흔적을 찾는것조차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눈을 부릅뜨고 사실을 헤집어 비탄한 진실까지 파고드는 것은, 단순한 용기를 넘어서 인간이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는 숭고한 어떤 괴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할 수 있더라도 피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도망치고 싶은 그런 작업을, 똘똘 뭉친 연대의 시선에서 비껴나 홀로 싸워나가는 치열한 탐구를, 뉘라서 도맡고 싶을까.

 

치누아 아체베는 이런 놀라운 작업을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통해 꼼꼼하고 투박하게 묘사해냈다.

 

병약한 아버지-남자답지 못하다는 손가락질을 받던-아래에서 최고의 남자로 우뚝서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가를 이뤄낸 오콩코는 부족의 신념과 문화를 온전히 숭상하고 예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일상의 몸짓, 판단, 예견 등은 모두,  부족의 굳건한 유산으로부터 유래한다. 그 유산을 비판적 성찰 없이 받아들은 그는, 단적으로, 자신이 수양 아들처럼 길러온 이케메푸나를, 자신이 나약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두려워 죽이는 데까지 나아갈 정도다.

 

가장으로써 당연히 가족들을 부양해야하지만, 가풍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때로는 가혹하게 대했고, 두려움, 외로움 등을 숨기며 늘 당당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썼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부족의 자랑스러운 일원으로 살던 그는, 마을에서 존경받던 에제우두의 장례식에서 그의 총알이 우발적으로 에제우두의 아들을 쏘면서 마을을 떠나게 된다.

 

처가로 떠난 그는 다시 맨 몸으로으로 일을 하면서 가세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던 중 오콩코가 살던 우무오피아에는 백인들이 새롭게 접근하는데, 많은 남자와 여자들은 새로운 체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들이 짓는 교회, 교도소, 경제 활동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게 된다.

 

처음 온 브라운 신부는 우무오피아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신신당부하고 조심하지만, 부족의 일원이었던 에노치는, 백인들의 종교에 경도된 나머지, 우무오피아의 대지의 신을 경배하는 연례의식에서 전령인 에구구의 가면을 벗겨냄으로써 부족의 분노를 일으킨다. 브라운 신부의 뒤를 이어온 스미스 신부는, 중무장을 하고 교회를 흙더미로 부순 우무오피아 에구구들을 용서하지 않고 사법당국에 고발을 하고, 이들은 곧장 재판을 받고 수감된다.

 

벌금을 지불하고서야 겨우 풀려난 오콩코는 수감중에 수치를 당했고, 훌륭한 남자들이 사라졌다며 분노하고, 앞날에 대해 결정하는 집회에서  백인들과의 전쟁을 결정하는 대신 타협을 택한다면 자신이 대신 복수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장터에서 집회가 열리는 동안 뜻하지 않게 백인들의 전령들이 비집고 오자, 오콩코는 그 자리에서 누가 말릴 겨를도 없이 분노의 화신처럼 전령을 도끼로 내리친다. 이후 치안판사가 그를 검거하기 위해 집으로 왔지만, 그는 집 뒤의 나무에 목을 맨 후였다. 그의 시신을 끌어내리라는 명령에 우무오피아 사람들은 그가 남자는 스스로 죽어서는 안된다는 대지의 신을 거슬렀기 때문에 그에게 손을 댈 수 없다고 답하고, 치안판사는 부하들을 시켜 그의 시신을 끌어내린다.

 

치안판사는  전령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겠다면서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이라는 제목까지 미리 생각해두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서 작가는, 마치 카메라처럼 현상과 사실을 그대로 비추고 묘사하는 데 주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처럼 평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 상이한 인격들이 역사적 시공간에서 마주할 때 어떻게 무너지고, 교섭하는지 담담하면서도 대담한 시선으로 포획한다. 그러므로 침탈은 단순한 수탈이 아니라 내부의 붕괴와 외부의 압력, 내부의 부활과 외부의 침잠으로 자연스럽게 교차되고 연결되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한 인간의 일대기가, 그리 나아보일 것 없는 정복자의 평정으로 단순히 평가되는 마무리는, 단선적인 역사관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통렬하게 지적한다.

 

자기 내부의 연약함을 드러내면서도, 강인한 자부심을 드리우는 소설의 기법은 생경한 아프리카 소설 읽기의 매력을 한껏 고양시킨다. 또 아프리카 문화와 문학의 풍성함까지 맛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의 신을 버리고 당신들의 신을 따른다면 버림받은 우리 신과 조상님들의 화를 어떻게 면할 수 있는가요? 그대의 신들은 살아 있지 않으며 사람을 해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나무고 돌멩이입니다. 이것이 마을 말로 옮겨지자 비웃음들이 터져 나왔다...하지만 거기에는 이에 마음이 사로잡힌 한 젊은이가 있었다. 이름은 은워예로 오콩코의 장남이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삼위일체의 이상한 논리가 아니었다. 그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새로운 종교의 시, 뼛속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이 그를 사로잡았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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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의학자 - 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해부하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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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일지라도, 새로운 관점으로 "낯섦"의 프리즘을 관통해서 보는 것은 언제나 싱싱한 설레임을 안겨준다. 이 책은 이러한 공식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미술 감상의 새로운 방법론을 소개한다.

 

특히 현직 의사의 시선으로 미술 작품을 소개하면서, 의학의 역사, 질병과 함께하는 작가의 삶, 시대와 역사, 신화와 성경 등 숨은 이야기가 곁들여져 있어 흥미진진하게 읽어갈 수 있다.

 

요즘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페스트는 명화를 통해 감염병을 대하는 인간 군상들과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죽음의 화살을 막아줄 수호신으로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격찬했던 것이나 불확실한 페스트의 만연에 대항할 뚜렷한 무기가 없자  대신 희생양을 찾아냈던 인간의 광기, 감염병의 대재앙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전락했던 인간의 모습 뿐만 아니라 봉건귀족의 몰락과 함께 민족주의의 출현이 대두된 배경이 묘사되는데, 코로나 19가 보여줄 미래를 과거의 모습을 통해 반추하는 계기도 된다. 현실의 잔혹함 앞에 무릎 꿇지 않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해결 방안이라는 알베르 카뮈의 진단에 대해서도, 저자처럼 적극 동감하게 된다.

 

스페인 독감과 에곤 실레의 가족사, 비극적 운명 앞에서도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뭉크, 아폴리네르와 마리 로랑생의 삶은 생의 숙연함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나폴레옹과 위암 추정, 디프테리아로 짧은 생을 마감한 쇠라,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압생트 중독, <돌아온 탕자>와 이별로 얼룩진 램브란트 등 예술과 인생의 얽힌 실타래를 엿보는 재미도 돋보인다.

 

다양한 작품과 정신건강 문제를 이어 설명하는가 하면, 서양미술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성경과 그리스 로마 신화도 다시 한번 복습하게 되는데, 미술과 의학의 접목을 통해서 새로운 인식의 세계가 열리는, 독서의 즐거움과 미술 감상의 재미가 한껏 어우러진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은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이 교류하는 학문입니다. 명화는 의학에 뜨거운 온기를 불어넣습니다. 이 책은 의학의 주요 분기점들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명화라는 매력적인 이야기꾼의 입을 빌려 의학을 쉽고 친근하게 설명하려 노력합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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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 보어 : 확률의 과학 양자역학 지식인마을 5
이현경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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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그 근간이 되는 과학의 패러다임 변화에는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전공자가 아니기에, 가볍게 읽고도 대강의 내용을 훑어보고 싶은 책을 찾아보았는데, 내용까지 알차서 안성맞춤이다.

 

이 책은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 핵심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병렬되어 있어 우선  가독성이 좋다. 이 책 전반에서 가장 흥미로는 단어는 아무래도 "경향"이지 않을까 싶다. 뉴턴의 고전 역학 세계에서 확실히 "존재"하던 물질이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단지 "존재하려는 경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세계를 바라보는 근간 자체를 뒤흔드는 획기적인 전환점일 수 밖에 없다.

 

이전에는 주어진 시간 안에서 위치와 속도를 알면 입자의 경로를 명확히 계산할 수 있어 결정론적 사고로 세상을 관측할 수 있었던  반면 이제는 예측 값 주위에 어떻게 분포해 있는지, 어떤 수치가 나타날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만 계산 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열린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강조했듯이 현실의 모든 사건은 본질적으로는 우연이지만, 확률은 필연적이라는 점.

 

학창 시절에 배운 열역학 에너지 법칙의 놀라운 함의는 흥미진진하기까지 했다. 에너지가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변한다는 개념을 생각해 낸 막스 플랑크의 혁명적 사고가 이렇게 경이롭게 느껴질 줄이야.

 

아인슈타인은 통계역학을 연구하면서 가열된 물질의 에너지가 빛 에너지로 바뀌는 방식을 연구하면서 빛 에너지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해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빛의 양자 개념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실제로는 실험장치를 쓰지 않고 이론적 가능성을 따져 이어 맞추면서 마치 실험을 한 것처럼 머릿 속에서 결과를 유도하는 사고 실험을 통해 상대성 이론을 개발한다. 아인슈타인은 숨겨진 변수만 알 수 있다면 모든 현상을 예측할 수 있으며 무질서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함께 어울려 시공간을 이룬다고 보면서 시간은 영원할 수도 있고, 시작과 끝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에 단초를 제공하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신이라면 시간을 초월한 그 밖에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데까지 철학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또 하나의 원인이 반드시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가 복잡한 비선형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복잡계 이론의 개발에도 단서가 된다.

 

미술에서는 피카소나 달리, 마그리트가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고를 한다. 4차원의 3차원 투시를 하는 것 같은 피카소의 그림이나 빛의 속도로 달리면 시간이 멈추고 길이가 없어지는데, 달리는 이 원리를 그림에 활용한다. 마그리트는 앞에서도 뒷모습이 보이는-두께가 없어지는-길이 수축의 원리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반면 맞수격인 보어는 플랑크의 양자 개념을 이용해, 원자 내부에서 전자가 특정 값을 지닌 궤도상만 작용하는 체계로 파악하면서 현재의 전자 구름 이론을 도출하는 징검다리 이론을 개발한다.보어는, 새로운 이론은 이전의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했던 모든 현상을 다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응원리와, 입자를 파동 또는 알갱이로 생각하면서 배타적인 모델로 측정할 수는 있지만 원자의 구성 입자들이 나타내는 현상을 완전히 기술하려면 두 모델 모두가 필요하다는 상보성의 원리도 주창한다.

 

한편 하이젠베르크는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불확정성의 원리를 주창한다. 전자를 관찰하기 위해 광선을 내보내면 광선 속 광자가 전자에 충돌하면서 전자의 위치를 얻어낼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광자가 전자에게 자기 운동량의 일부를 전달하기 때문에 전자의 운동량 자체가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 중 하나인 불확정성의 원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이 동시에 확정된 값을 가질 수 없다는 것으로, 미립자의 세계에서는 입자가 파동의 성질도 겸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러한 불확성의 원리에 따라 카를 포퍼는 <열린 사회에 그 적들>에서 인류의 운명과 역사는 결정되거나 닫혀 있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고 주장했고, 관찰하고자 하는 대상이 관찰 수단에 의해 변화한다는 사실을 통해 '죄수의 딜레마'같은 게임 이론이 착안된다.

 

기초적인 상식이 부족해 혼돈을 느낄 즈음, 앙자론을 생각하면서 혼란을 느끼지 않으면 양자론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보어의 탄식은 오히려 희망이 된다.

 

양자론에서는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적, 즉 계단 모양의 그래프로 그려질 수 있는데, 이것은 DNA 구조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며, 반도체도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으로 양자 도약을 활용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최근에는 입자 대신 모든 물질의 근원을 초끈으로 생각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여러 입자들은 한 가지 끈이 어떻게 진동하느냐에 따라 다른 질량과 물리량을 갖는다는 것에 착안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인식하게 됐다.

 

이 책을 읽고 난후 얻은 최고의 결론은 과학, 예술, 경제,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인식의 확장을 위해 함께 경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빠르게 변화하고, 복잡하게 얽혀가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가는 데, 과학도 한 몫을 성실히 담당한다.

양자역학은 어떤 현상을 구현할 때 오직 확률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확률이라는 것이 엄격한 결정론적인 방식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를 해석해보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본질적으로는 우연인데, 그 확률은 필연적이란 뜻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연과 필연의 삼각관계에 놓여있는 것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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