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쇼펜하우어 인생론 ㅣ 범우고전선 14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1991년 2월
평점 :
품절
위로와 위안, 행복과 긍정이 넘쳐나는 시대야말로, 쇼펜하우어의 직설적인 일갈 앞에 전면으로 마주서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알콩달콩 확실한 즐거움을 찾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고 자위할 때, 벼락같은 호통으로 우리의 삶은 단지 맹목적인 생의 의지가 확장된 구현의 한 형태일 뿐이라는 철학자의 단언은, 사라져가는 통증마저 다시 명징하게 되살려낼만큼 예리하다.
쇼펜하우어의 인생관은 분명한데, 삶은 즐거움을 누리도록 우리에게 부여된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고역으로 갚아야할 의무나 과업으로 인식해야한다는 것이다. 파리가 태어나는 것은 거미에게 잡혀 먹히기 위해서이며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번뇌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라고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면서, 인간이란 생의 의지가 맹목적으로 드러난 욕구 덩어리라고 명료하게 정의내린다.
인간의 삶이란 궁핍과 권태의 양극단을 오가는 것과 다름 없으며, 특히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이 결국은 육체적인 쾌락과 고통을 근간으로 이루어지며, 동물처럼 간단하게 현재적 쾌락에 만족하지 못하다보니 쾌락을 추구한다면서 중독에 이르고, 필요 이상의 망상적 쾌락을 꿈꾸면서 야심, 명예 등을 쫓아 한 무더기의 권태를 부여받는다는 것. 압권은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실상 행복하지 못하며, 누구나 거의 파선당해 항구로 돌아오면서 죽게 되는 마당에 이르면, 행복했던 일이든 불행했던 일이든 별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주장.
그는 결국 식욕과 성욕이 인생의 요란스런 소동의 기저를 이루는 두 축이며, 거기에 권태가 부수적으로 따를 뿐이라고 간결하게 정리한다. 사랑에 대해서도 다음 세대의 생산이라는, 생의 의지가 갖는 목적은 감추어져 있다보니, 인간은 사랑의 욕구 충족을 위해 자유 의지를 발현하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결국은 생의 의지에 따르는 무의식적 노예가 될 뿐이라고 지적한다.
평생 미혼이었던 철학자는 개보다도 여자에 대해 낮은 평가를 내리는데, 여자의 미덕은 우매하고 근시안적이어서 큰 어린아이와 같을 뿐이며 이성의 힘이 약해 남자보다 현재에 더 충실하다는 관찰을 덧붙인다. 흥미로운 점은 남편의 신분이나 간판을 내세우는 이유는, 여자들이 누구나 할 것없이 가사에 종사하고 있어 피차 비슷한 처지에 있다보니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어떤 남자의 사랑을 받고 있느냐 밖에는 차별점이 없다고 비꼬기도 한다. 위대한 철학자가 편견에 사로잡혀 주체적으로 독립된 여성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이러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우리의 죽음이 자연에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는 점을 기억해야한다면서, 죽음으로 명멸하는 것은 형상일 뿐, 우리 속에 숨어서 끊임없이 작동하고 활동하는 의지 속에 우리가 다시 깃들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쇼펜하우어는 특히 음악을 찬양하는데, 단지 현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 자체를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극찬한다. 음악은 의지의 몸부림을 표현하는 것으로, 음악을 듣다보면 자신의 생애가 어떤 영원한 꿈이고 죽음은 이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고 고백한다.
쇼펜하우어의 위대함은, 아마도 고통의 의무로서 부과되었다는 삶의 의미를 견고히 파헤친 까닭일 것이다. 그는 불행과 궁핍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인식한다. 고통 속에 놓인 인간으로서 서로를 인식하게 되면, 인간은 설사 피해를 입힌 사람이 있더라도 오히려 동정하게 되며, 이 의식이 확장되면서 모든 생물에 대한 무한한 자비심도 확대될 수 있다고 풀이한다. 특히 세계와 인생의 고통과 번뇌를 깨닫게 되면 오히려 불안과 초조에서 벗어나고 확고한 안식, 내적 명랑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절망의 나락에 부딪히면서, 마침내 살려는 의지가 피워낸 모든 것이 허상임을 깨닫게 될 때 진정한 심적인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것.
일부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면도 있지만, 인생의 대전제를 역전시킴으로써 다시 딛고 일어서는 힘을 부여하는 매서운 훈계는, 쓴 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통과 고뇌를 받아들이고, 한계를 긍정하며 명멸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현재에 충실하도록 하는 쓴 소리야말로,공허한 긍정, 들뜬 행복론을 끌어내리는, 진정한 격려와 힘이 되는 철학이 아닐까.
세계의 영: 여기 네가 고생을 달게 받아야 할 일이 있다. 너에게는 거기에 정력을 기울이는 것이 곧 생존하는 것이 된다. 다른 모든 생물도 그렇지만. 인간: 그런데 내가 대체 생존에서 무엇을 얻고 있단 말입니까? 생존을 요구하면 궁핍에 시달리고, 요구하지 않으면 권태에 사로잡힙니다. 나에게 이런 고역과 번뇌를 주면서 어찌하여 그 대가는 이처럼 보잘 것 없습니까?...중략..세계의 영: 나는 잘 알고 있다. (옆을 돌아보면서) 저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 줄까. 생존의 가치는 오직 그를 타일러 그 생존을 원치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그가 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미리 생존 자체로부터 예비적인 단련을 받아야 한다. - P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