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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와해와 폐허로 남은 사실을 목도할 때 가장 먼저 평안을 찾는 손쉬운 방법은 아마도 때마침 존재한 외부의 적을 찾아내 온통 죄과를 뒤집어 씌우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찾아낸 적이 누가 봐도 탐욕스럽고 흉물스러운 모습이라면 감사하기까지 하다. 치우치기 십상인 주관적인 해석은 타인의 객관적인 인정까지 덧붙여져 견고한 확신으로까지 변모하고 시간의 혜택까지 덧입게 되면 애초부터 희미했던 진실은 흔적을 찾는것조차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눈을 부릅뜨고 사실을 헤집어 비탄한 진실까지 파고드는 것은, 단순한 용기를 넘어서 인간이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는 숭고한 어떤 괴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할 수 있더라도 피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도망치고 싶은 그런 작업을, 똘똘 뭉친 연대의 시선에서 비껴나 홀로 싸워나가는 치열한 탐구를, 뉘라서 도맡고 싶을까.
치누아 아체베는 이런 놀라운 작업을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통해 꼼꼼하고 투박하게 묘사해냈다.
병약한 아버지-남자답지 못하다는 손가락질을 받던-아래에서 최고의 남자로 우뚝서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가를 이뤄낸 오콩코는 부족의 신념과 문화를 온전히 숭상하고 예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일상의 몸짓, 판단, 예견 등은 모두, 부족의 굳건한 유산으로부터 유래한다. 그 유산을 비판적 성찰 없이 받아들은 그는, 단적으로, 자신이 수양 아들처럼 길러온 이케메푸나를, 자신이 나약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두려워 죽이는 데까지 나아갈 정도다.
가장으로써 당연히 가족들을 부양해야하지만, 가풍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때로는 가혹하게 대했고, 두려움, 외로움 등을 숨기며 늘 당당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썼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부족의 자랑스러운 일원으로 살던 그는, 마을에서 존경받던 에제우두의 장례식에서 그의 총알이 우발적으로 에제우두의 아들을 쏘면서 마을을 떠나게 된다.
처가로 떠난 그는 다시 맨 몸으로으로 일을 하면서 가세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던 중 오콩코가 살던 우무오피아에는 백인들이 새롭게 접근하는데, 많은 남자와 여자들은 새로운 체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들이 짓는 교회, 교도소, 경제 활동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게 된다.
처음 온 브라운 신부는 우무오피아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신신당부하고 조심하지만, 부족의 일원이었던 에노치는, 백인들의 종교에 경도된 나머지, 우무오피아의 대지의 신을 경배하는 연례의식에서 전령인 에구구의 가면을 벗겨냄으로써 부족의 분노를 일으킨다. 브라운 신부의 뒤를 이어온 스미스 신부는, 중무장을 하고 교회를 흙더미로 부순 우무오피아 에구구들을 용서하지 않고 사법당국에 고발을 하고, 이들은 곧장 재판을 받고 수감된다.
벌금을 지불하고서야 겨우 풀려난 오콩코는 수감중에 수치를 당했고, 훌륭한 남자들이 사라졌다며 분노하고, 앞날에 대해 결정하는 집회에서 백인들과의 전쟁을 결정하는 대신 타협을 택한다면 자신이 대신 복수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장터에서 집회가 열리는 동안 뜻하지 않게 백인들의 전령들이 비집고 오자, 오콩코는 그 자리에서 누가 말릴 겨를도 없이 분노의 화신처럼 전령을 도끼로 내리친다. 이후 치안판사가 그를 검거하기 위해 집으로 왔지만, 그는 집 뒤의 나무에 목을 맨 후였다. 그의 시신을 끌어내리라는 명령에 우무오피아 사람들은 그가 남자는 스스로 죽어서는 안된다는 대지의 신을 거슬렀기 때문에 그에게 손을 댈 수 없다고 답하고, 치안판사는 부하들을 시켜 그의 시신을 끌어내린다.
치안판사는 전령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겠다면서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이라는 제목까지 미리 생각해두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서 작가는, 마치 카메라처럼 현상과 사실을 그대로 비추고 묘사하는 데 주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처럼 평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 상이한 인격들이 역사적 시공간에서 마주할 때 어떻게 무너지고, 교섭하는지 담담하면서도 대담한 시선으로 포획한다. 그러므로 침탈은 단순한 수탈이 아니라 내부의 붕괴와 외부의 압력, 내부의 부활과 외부의 침잠으로 자연스럽게 교차되고 연결되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한 인간의 일대기가, 그리 나아보일 것 없는 정복자의 평정으로 단순히 평가되는 마무리는, 단선적인 역사관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통렬하게 지적한다.
자기 내부의 연약함을 드러내면서도, 강인한 자부심을 드리우는 소설의 기법은 생경한 아프리카 소설 읽기의 매력을 한껏 고양시킨다. 또 아프리카 문화와 문학의 풍성함까지 맛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의 신을 버리고 당신들의 신을 따른다면 버림받은 우리 신과 조상님들의 화를 어떻게 면할 수 있는가요? 그대의 신들은 살아 있지 않으며 사람을 해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나무고 돌멩이입니다. 이것이 마을 말로 옮겨지자 비웃음들이 터져 나왔다...하지만 거기에는 이에 마음이 사로잡힌 한 젊은이가 있었다. 이름은 은워예로 오콩코의 장남이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삼위일체의 이상한 논리가 아니었다. 그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새로운 종교의 시, 뼛속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이 그를 사로잡았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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