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찬송이야기 - 은혜와 감동이 있는
김남수 지음 / 아가페북스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성의 의미와 존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가 찬송가가 아닐까.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고난과 절망에 다다랐을 때, 소소해 보이는 일상이 기적임 발견하고 평화를 누리는 기쁨을 새롭게 발견할 때 인간의 인식은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된다. 숱한 과학과 철학, 예술과 문학으로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영성으로 마주한 시공간에서 빚어지는 찬송가. 이 책은 찬송가 뒤에 숨겨진 작사가와 작곡가의 삶, 그리고 삽화 등을 통해 찬송가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영성의 가치를 조명한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내용은 인생의 역설 앞에서 탄생한 찬송가의 비화다. 사랑하는 자녀가 죽고, 아내와 남편이 떠나며 건강, 명예, 부와 권력이 떠나가서 절망의 끝에서 만난 주님은 놀랍도록 강건한 찬송가를 빚어가는 힘이 되어 주신다. 또 찬송가는 전쟁터에서, 죽음의 문턱에서, 혁명의 전선에서, 새시대의 포효와 함께 불리워졌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일례로 뜻밖의 사고로 죽음에 이른 젊은 더들리 팅 목서는 아버지에게, 일어나라, 예수님을 위해 일어나라,는 유언을 남겼고, 아버지 스티븐 팅 목사가 이를 기리기 위해 '십자가 군병들아' 찬송가의 모태가 된 시를 작사했다. 죽음에 굴하지 않고 주님 위해 일어서는 십자가 군병의 이미지는 어떤 격랑에도 흔들림 없는 믿음의 굳건함으로 승화된다. 절망과 공포를 딛고 분연히 일어서는 강직함에는 감성으로 점철된 어떤 후회나 좌절의 그림자도 없다. '어떤 상황이 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본분이 무엇인지 각성시키고 분명히 짚어준다. 


처칠과 루즈벨트 대통령이 조약 후 함께 찬송가를 부른 대목, 성부, 성자, 성령의 진리의 말씀을 명백하게 선포하는 찬양, 적군의 총부리를 앞에 두고 찬송가를 불러 목숨을 건졌는데, 집회에서 다시 만나 찬송가로 맺어진 인연, 독일군과 영국군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총을 던져두고 서로 예우하며 성탄절을 화합하며 보낸 삽화, 타이타닉 호의 침몰 시에 갑판 위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찬양한 찬송, 노예와 고아와 장애인을 뛰어 넘어 시대를 위로하고 갈 방향을 제시한 찬송가의 힘 등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언제든지 누구든지 진영과 계급, 시대와 국가를 뛰어넘어 하나의 찬송가를 통해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서양의 토대가 부럽기도 했다. 


영성의 회복에서부터 삶을 시작하고, 시대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온 서양 역사의 발자취를 생각하면서 문득 우리에게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함께 찬송가를 부를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또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항일 운동을 주도하고, 학교를 짓고 문학을 가다듬어 시대 정신을 주도하면서 우리의 찬송가를 지었던 선각자들의 노력이 자꾸만 후퇴하는 것 같아 독서 내내 부끄럽기도 했다. 

많은 찬송들이 삶의 고난 가운데 믿음을 지켜낸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찬송에 얽힌 이야기는 살아 있는 간증이므로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빛 사윌 때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 팬데믹으로 움츠렸던 세상이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고 싱싱한 생기가 되살아나니 저절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코로나 이전이었다면  여행을 떠나 진기한 광경을 보고 색다른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움을 한껏 고양하고 싶다는 소망에 들떴을 텐데, 무슨 까닭인지 잠잠히 일상을 성찰하며 이어지는 생의 소중함을 다시 돌아보고 싶어졌다. 코로나가 강탈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될 것 같던 일상이었기에, 의식 치르듯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에 빠져들자 허튼 소망은 어느새 속 타는 갈망이 되었다. 소박한 둘레길을 찾아 걷는 것이 꽤 근사한 일처럼 여겨졌고 자연스럽게 전국의 둘레길을 찾아보게 되었다. 


  돌아보면 어떤 운명처럼 임존성 둘레길을 마주한 것 같다. 내포 문화 숲길 백제 부흥군 길에 백제부흥운동의 최후 격전지였던 임존성이 펼쳐진 봉수산이 있고, 백제 사람들의 한과 투혼, 배신과 낙망이 서려 있다는 설명을 읽고 나자, 전투가 일상이었을 그들의 삶을 두고 나만의 평화로운 일상의 복구 의례 계획이 짐짓 부끄럽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백제부흥운동의 성쇠가 낯설게 다가와 호기심도 일었다. 역사 시간에 마주했던 숱한 암기의 조각들은 국가의 흥망과 사회상을 단 몇 단어로 일축했고, 그 숨겨진 이면의 삽화에 대해서는 들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책을 펼쳤을 때, 나는 근래에 보기 드문 집중력을 발휘하는 동시에 임존성 둘레길을 걸으면서 물참의 회고를 직접 듣는 것 같은 상상 속으로 곧장 빠져들었다. 


  이야기는 오서 가문의 서자이자 무사인 물참이 죽은 형의 주검을 찾아 떠나는 3일의 여정이 주요 외관을 이루지만, 그 과정에서 백제부흥운동의 서사, 배신과 불신으로 망한 백제, 당과 신라의 대립, 신라에 망한 고구려의 행보, 어머니의 죽음과 향로의 의미, 국가의 패망을 마주한 다양한 인간 군상 등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되고 증폭되면서 마침내 조국을 무너뜨린 대적, 신라와 손을 잡는 물참의 각성과 행동으로 이어진다. 


  물참은 백제 부흥을 위해 여러 전투에 참여했으나 나당 연합군에 나라를 잃은 후 갈 길을 잃고 허한 마음을 달랠 길 없던 터에, 고구려 군사들이 당이 오서악 자락에 짓고 있던 도독성을 빼앗을 때 당의 도독부 벼슬아치였던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물참은 형의 죽음에도 놀랐지만, 고구려가 나당에 망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평양성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땅까지 내려와 당의 도독부를 빼앗았다는 소식에 의아해한다. 또 회이포에서 떠돌던 배에서 고구려 장정들이 나와 도독성을 쳤다는데 이미 망한 나라인 고구려 배가 도대체 어디서 왔으며 왜 회이포에 머물렀는지 의문을 품으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읽으면서 먼저 주목한 것은 물참의, 전투 목표의 변화에 대한 대목이었다. 소학 대신 절에 보낸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삼국이 수백 년 동안 대립하는 상황에서 집안의 부흥을 위해서는 무공을 거듭 세워야 한다며 물참에게 군사가 되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아버지의 뜻대로 군사가 된 물참은 숱한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어쩌면 그는 처음에는 군사이니 당연히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면서도 어린 혈기에 무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로 여겼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을 마주하면서 물참은 점차 변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임존성 전투 얼마 후에 의자왕과 왕족, 아버지와 형 일가까지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전쟁에 패한 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삶을 두고 괴로워한다. 그럼에도 백제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죽어가는 많은 병사들을 보면서 당당히 죽기를 다짐했던 그는, 정무 좌평이 흑치상지 장군에게 남몰래 자신을 보냈을 때 충성을 다하지만, 흑치상지 장군의 배신과 조정의 갈등, 왕의 질투와 오판을 목도하면서 전쟁의 명을 내리는 엄위한 조국의 민낯을 마주한다. 


   전쟁으로 와해된 세계에서 그는, 어머니의 고향으로 떠나 그저 섬에서 하릴없이 젊은이 몇에게 글과 무기 다루는 법이나 가르치며 소일하는데, 명을 내릴 이들이 이제 없고 이로써 나라가 사라졌다고 믿었기에 더 이상 버틸 무언가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형의 주검을 찾으러 간 도독성이, 망했다던 고구려군에 의해 실제로 장악된 실상을 확인하고 고구려와 신라가 연합하여 당에 대항하는 형세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승을 만나고, 죽었다던 형과 천득, 수탈되는 백성 등을 마주하면서 새로운 인식에 눈을 뜬다. 당과 신라의 전쟁을 누가 이기든 상관없는 적들의 싸움이 아니라, 신라, 고구려, 백제가 함께 당을 물리치며 새로운 공동체로 거듭나는 전쟁으로 의미화하면서 자신의 전투로 변용하는 데까지 이른다. 날 선 현장에 선 물참의 의식이 한 개인과 가문을 넘어서서 마침내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후손에게까지 확장되는 과정은, 일상에만 열떠 있어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옅은 인식의 내게는 예리한 일침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한편 읽는 내내, 자연스럽게 국가란 무엇이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자맥질하듯 끊임없이 떠올랐다. 평소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의제였는데, 물참과 백제가 서 있는 끝자락에 함께 서고 보니 결코 비껴갈 수 없는 질문이었다. 역사는 국가가 마치 지배층의 전유물인 것처럼 마지막 전투에서 지고 지배층이 해제되자 백제가 패망한 것으로 확정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여전히 백제가 살아있다. 물참과 구디들, 그리고 백제의 백성은 멸망 이후에도 생을 이어 나가고, 물참 무리는 나당 전쟁에 백제의 이름으로 나아가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백성의 안존과 영속을 도모한다. 그들의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국가로 새롭게 인식한 이들의 생생한 분투는, 국가에 대한 관념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더불어 물참과 대척점에 섰던 형처럼 자기 재산과 가문을 지키는 데 국가를 이용하거나, 천득과 같이 당장 현의 이득을 셈하고 왜로 떠나는 이들을 위해 배 사업을 하면서 국가 따위야 어찌 되었든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 군상들을 훑으면서, 현재의 나 역시 그들의 주변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몰락한 백제의 현실, 고구려와 신라 연합의 정치적 지형이 물참의 각성과 결단을 불러온 현실적인 이유였다면, 그의 기치를 드높인 이상적 명분은 누가 뭐래도 소설을 관통하며 현실 이상의 그 무엇을 줄곧 이야기하며 지향한 어머니와 스승의 공로가 아닐까 싶다. 


  어머니는 목숨을 잃어가면서도 향로에 대해 집착하는데, 사람과 가까운 천지의 신령이신 검님들이 이루고, 또 사는 세상을 보여주는 신물이라고 일러준다. 어머니는 칼은 목숨붙이에 거역하는 물건일 뿐 신령은 만물을 어여삐 여기고 돌보시기에 작은 것에도 그들이 깃들여 있다고 굳게 믿는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으며 이를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전쟁에서 상처 입은 이들의, 보이지 않지만 맺힌 심상을 바로 보며 위로한다. 


  스승 역시 백제와 고구려가 한 핏줄이라면서도 복수를 주고받는 인과응보를 끊어야 하며 시절이 허락하고 마음이 모이면 누구든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일러준다. 묵자를 인용하면서 천하가 모두 하늘의 고을이고 사람도 모두 가림 없이 하늘의 신하 이며 나라도 얼마든지 없어지고 새로 생길 수 있기에, 사람이 구별한 나라의 이름에 집착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더 가지고 지배하려 드니까 싸우고 죽이지만, 약하고 작더라도 숨탄 것들을 알뜰히 보살피는 마음을 잃지 말라고 강조한다. 


  어머니와 스승은 전쟁의 허망한 본질을 꿰뚫어 보며, 국가를 넘어서서 생명을 소중히 하는 정신적 승화의 필요성을 물참에게 일깨운다. 다스림과 지배를 향한 탐욕에서 벗어나 생의 경이와 존중을 위해 보다 높고 숭고한 뜻으로 나아가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가르침은 결과적으로 백제, 고구려, 신라가 뜻을 모으고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는 근본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물참의 진격은 얕은 협잡의 발로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향한 위대한 전진으로 발돋움한다. 


  이는 자국 이기주의로 치닫는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북한과 마주 서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떻게 통일이 가능할까. 정치적 계산이나 현실적 판단을 뛰어넘어 먼저 군림의 욕망을 접고 새로운 한반도 공동체에 대한 소망을 함께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백제의 패망을 뛰어넘어 통일로 나아가는 물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서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일상의 새로운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의 끝없는 분투로 주어진 현재의 삶은 얼마나 놀라운 좌표인가. 또 무엇보다 생명의 선거움을 벼리 삼아 물참이 그러했듯, 더디더라도 이제 일상은 나에게서 너에게로, 그리고 공동체로 확산되는 단초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나라 역시 변한다. 세계화의 물결이 거센 오늘날, 나라 혹은 국가는 국경과 공동체 의식이 흐렸던 고대의 어느 시기와 비슷해져가고 있다. 지금 한국인은 또다시 나뉜 나라의 통일을 위해, 예전처럼 칼과 활을 들 것인가 - P2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녀의 꿈을 돕는 부모의 기도
차길영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위 일타 강사가 부모님을 위해 제시하는 신앙 교육법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내용은 부모님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직접 읽어보는 것이 좋을 정도로 선명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기도다. 특히 하나님과 같은 꿈을 꾸는 기도를 강조하고 있는데, 무엇이 되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며 나아가는 과정이 없는, 방향 잃은 맹목적 정진을 점검하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점에 방점을 둔다. 


또한 험악한 세상 속에서 자녀들이 곁길로 가기 쉬운 데 예배를 가르쳐야한다는 점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말씀을 읽고, 회개하며, 찬양하면서 기도하되, 기도 노트, 말씀 노트, 예배 노트 등을 기록하도록 권유한다. 


믿음을 통해 주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아름다운 말을 짓고, 주님을 사랑하며 기쁨을 누리도록 가르치며, 자녀가 우상이 되지 않도록 경계할 것도 권고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자, 구원자, 인생의 주관자이시고, 영생을 주셨으며, 우리의 진정한 즐거움과 만족은 주님께 있고, 모든 인간은 죄인이자 영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으며 믿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르치는 현장에서 숱한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부모님께  신앙인으로써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간결하지만 묵직하게 전달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지음을 받았고 그래서 사랑하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열심히 일도 하는 것입니다...중략...공동체 안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는 열심히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 P2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긍정적인 관계가 자녀의 잠재력을 깨운다 - 자녀에게 힘을 실어주는 부모의 역할
주디 볼스윅 외 지음, 박은주 외 옮김 / 디모데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를 마친 후 이 책의 제목을 다르게 붙였다면 어땠을까, 다소 엉뚱한 생각을 했다. 읽기 전에는 단순히 부모 역할과 관련한 교육적 훈계나 훈련과 관련된, 가벼운 개발서 같은 유형이 아닐까 의심했는데, 이론적인 배경과 성경적 토대, 거기에 저자들의 개인적 경험이 더해지면서 학술적인 에세이 같다는 느낌이 짙어졌다. 


더욱이 부모 역할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미성년 자녀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볍게 따돌리면서, 생애 주기 전반을 통해 부모와 자녀가 각각 갖추어야 할 관계 정립에 대해 심혈을 기울인 측면에서 보면, 저자들의 주장은 단순히 부모와 자녀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성장에 대한 점검과 더불어 인간 관계 전반을 통해 성숙으로 나아가야 할 여정과 성장점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미덕이 있다. 


저자들은 관계 및 능력을 일깨우는 부모 역할 모델(REP, Relatoinship-Empwerment Parenting)을 제시하면서 부모 역할의 두 가지 기본적 차원인 관계와 능력 일깨움을 개념을 활용한다. 이러한 모델을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으로 밀접한 부부관계, 유연성, 현실 가능성, 목표, 협력과 지지, 창조성과 본질에의 집중 등을 전제한다. 


약속과 해방을 위한 신학적 기초 하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언약, 은혜, 능력 일깨우기, 친밀감의 연속적이고 순환적인 관계 개념으로 도식화될 수 있는데, 여기에는 헌신이 매개체로 작동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언약의 관계에서 시작되고, 은혜는 사랑이 주는 안정감에서, 그리고 용납과 용서의 환경 속에서 지도, 준비, 격려, 지지 등을 통해 능력 일깨우기가 가능하며, 이러한 능력 일깨우기를 통해 부모와 상호 친밀감을 발전시키는 성숙함으로 나아가고 발전해 나간다. 


이러한 이론적 바탕과 더불어 에릭슨의 발달 이론과 접목하여 유아기, 아동기, 십대 초기, 십대 후기, 성인기 등 각각의 발달 단계 속에서 이루어져야야할 발달 덕목과 쟁점, 그에 대한 대처는 물론 영적인 의미와 효용적인 삽화 들을 제시하여 매우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조언을 마다하지 않는다. 


가족 치료 전문성이 십분 발휘되는 구체적인 저술 덕분에 책을 읽고 나면 생생한 가족 상담을 받은 느낌이 들 정도다. 특히 자녀를 기르는 과정에서 자녀를 잃기도 하고,  한국인 자녀를 입양하여 직접 기른 경험까지 더해져 이론과 실제의 균형, 그리고 사랑의 실천에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어른이 된 자녀들을 친구로 가지게 된 우리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고 느낀다. 우리는 서로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함께 성장했다..중략..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며느리와 사위 그리고 손자들에게까지 넓어졌다. 우리는 그들의 인생에 항상 능력을 일깨워주는 존재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결혼 생활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자녀들이 부르면 언제든지 도와주며 우리의 남은 역할을 다할 것이다 - P3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사랑한 화가들 -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정우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술이 주는 가장 큰 기쁨은 색조, 화풍, 의미, 가치 등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아닐까 싶다. 물론 학문적으로 정립된 이론과 지식 체계가 있지만, 그런 이해가 없더라도 직관적으로 보는 즉시 전달되는 느낌과 감성은 오롯이 작가와 작품, 그리고 보는 나 사이에 만들어진 독립된 삼각 구도를 이루면서 안달복달하는 현실에서 깔끔하게 분리시킨다. 


여기서는 화가의 삶과 작품을 함께 소개하면서 작품에 대한 감상을 더욱 풍성하게 이끌어준다. 저자는 사랑을 추구한 화가들, 자존을 위해 모든 시련을 감수한 화가들, 세상의 냉대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화가들 등 세 가지 주제의 분류를 표방하면서 각각을 대표하는 화가들을 뽑아 도열한다. 


기존에 미술 수업 등을 통해 익숙한 화가도 있고, 그림을 본 적은 있지만 작자를 잘 몰랐던 경우, 그리고 작품도, 화가도 처음 접해 생소한 경우가 균형 있게 배치되어 적당한 친숙함과 인식적 호기심을 독서 끝까지 누릴 수 있어 즐겁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알폰스 무하는 단정하면서도 화려한 화풍 때문에 눈길을 끌었다. 곡선, 여성, 꽃 등을 중요하게 여겼던 아르누보 작가였던 무하는 가난한 사람들도 즐길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신념으로 포스터를 그려 길거리 자체를 전시장으로 삼았다는 데서 흥미로웠다. 광고 포스터 뿐만 아니라 성당의 그림까지 섭렵했으면서도 50대에 부와 명성을 넘어 서서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슬라브 서사시 연작은 작은 지면으로 보아도 웅장한 느낌이 들었다. 나치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장에 10만명의 슬라브인들이 모였다고 하니 체코의 별이 아닐 수 없다. 


툴루즈 로트레크는 종종 다른 곳에서도 단편적인 삽화와 작품을 보기는 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온전히 그의 일생과 작품의 배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귀족 출신이지만 장애를 갖게 되면서 아버지의 외면 속에서 오히려 천재성을 발견한 그의 미술 입문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다는 생각을 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간파하고 단순화하면서도 현실을 미화하지 않으면서 하층민의 일상을 담았기에 더욱 매력적이랄까. 


에곤 실레는 TV 프로그램에서 그의 작업이 이루어졌던 마을을 다루었던 적이 있어서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민망할 정도로 솔직하고 담대한 시선, 고집스럽고 까다로워 보이는 터치와 색감은 볼품없고 흉측해보이지만, 자유로우면서도 도발적이다. 갈등과 추문의 문제적 화가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은 오히려 그의 인식 세계 속에서 다양성의 천착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투쟁의 기록을 미술의 주제로 삼은 케테 콜비츠나 메말라 비틀어지는 베르나르 뷔페의 표현 기법도 흥미로웠다.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면서 작가와 작품의 특징을 읽다보면 굵직한 전시회 몇 개는 다녀온 기분이 들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 

그림은 화가의 언어입니다. 화가가 살면서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따라 그의 언어는 달라집니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보고 그려도 화가마다 다른 그림을 완성하지요. 자신의 생각과 말과 경험을 포함해, 일일이 표현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화가입니다. 그들의 인생을 따라가는 것은 어쩌면 그 화가의 언어를 배우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P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