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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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자 마자 바로 책을 찾아보았다. 불안과 불화, 불확실성과 혼돈이 침착된 세계는 여전히 출렁이는데, 문학은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호기심도 일었고, 내게는 생소한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라는 이력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놀랍게도 작가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살아감과 죽어감이 무엇인지 요한네스라는 인물을 통해 대담하게 그려냈다. 의미와 이유를 찾는 데 익숙해진 현대인이 정말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가르치기라도 하듯 작가는 소박한 어부의 일대기를 통해 의미가 아니라 존재를, 이유가 아니라 생과 사의 근원을 탐색하면서 자의식 과잉 탓에 존재 자체가 어려워진 의식의 틈새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1장에서는 요한네스의 탄생이 그려진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요한네스는 올라이의 아들로 태어나는데,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와 분리되어 추운 세상으로 혼자 나와 모든 사람들과 분리되어, 언제나 혼자로 살면서 모든 것이 지나가면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리라는, 올라이의 독백 속에서 탄생한다. 올라이는 태어나서 살고 죽어가는 그 모든 것이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무 이상의 무엇이 드리워지는데 그것이 신의 영혼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요한네스의 탄생 순간, 공간을 파고드는 소리와 고요함은 뒤섞여 서로 연결되면서도 떨어져 새로운 고요한 소음으로 나아간다. 작가는 생명의 탄생 시점에 드리워진 일상의 소리들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표현하면서 서로 어우러지면서도 독립적으로 배치되는 시공간의 역설적인 질서를 명민하게 드러낸다. 


2장에서는 어느 날 요한네스가 침대에서 일어나 겪은 기묘한 일상이 주제가 된다. 평소와 달리 몸이 가볍다고 느끼는 요한네스는 오랜 친구 페테르를 만나고 꽃게를 사러 올라오는 안나를 마주친다. 또 오래 전 죽은 아내 에르나와 조우한다. 소천한 게 확실한 페테르센을 만나는 가 하면, 젊어 세상을 떠난 누이 마그나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주변인들과의 만남 뒤로는 요한네스의 어부로서의 삶이 배경이 된다. 그는 지나온 모든 일상 속에서 그들을 다시 일상의 한 단편으로 만나게 된다. 살아 생전 서로 머리를 잘라주었던 페테르와 다시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방금 보였던 에르나가 갑자기 사라지는 데 놀라고 막내 딸 싱네가 자신을 모른 채 스쳐 지나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막내 딸 싱네가 죽은 요한네스를 발견하고 의사를 부르고 사위를 부르는 동안 요한네스는 다시 찾아온 페테르를 만난다. 


페테르는 죽음을 지각한 요한네스를 배로 이끌어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는 인물로 현신하는데, 이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새로운 몸을 잠깐 돌려받았다고 고백한다. 페테르는 다음 세상은 어떤 장소가 아니며 너와 나의 구분이 없으면서도 요한네스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거기에서는 언어가 사라지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모든 것이 하나이면서도 서로 다른, 그러므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담백한 줄거리를 더욱 진중하면서도 웅장하게 진동시키는 문학적 재미는 아무래도 문체일 것 같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마침표를 찍지 않고, 대화나 생각은 쉼표로 구획하면서 주인공의 일대기, 즉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는 문장으로 이어나간다. 독서의 재미를 더하는 장치는 제목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요한네스의 삶을 그리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종결하고 낮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럼에도 요한네스의 낮은 일곱 남매를 키우고 아내와 사별하며 친구와 마을 사람들과의 일상이 반복되는 시간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요한네스의 삶에서 낮은 그저 지나가는 시간이었을 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살고 죽는 그 과정은 요한네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생의 전환 과정에 포섭되므로 낮 시간 동안의 그의 삶은 존재 양식에 충실했던 것으로 이해되어 어떤 알 수 없는 충만감이 가슴에 차오른다. 


살고 죽는 것의 숭고함이 타자화 되고 삶에 대해 지나친 의미화를 추구하는 천착이,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요즘, 이 책이 주는 울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유별난 구석이 있었지만,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걸 저도 알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속을 게워내야 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요,싱네는 생각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하늘에 흰 구림이 떠간다, 그리고 오늘 바다는 저리도 잔잔하고 푸르게 빛나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요한네스,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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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덕의 기술
벤자민 프랭클린 지음, 조지 L. 로저스 엮음, 정혜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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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체득하는 한 가지 진리는 선포하는 것과 증명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영역이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주장대로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진실하고 온전한 삶이 있을까 생각하던 터에 우연히 <덕의 기술>을 읽게 되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인쇄공에서 출발하여 신문 발행인이 되었고, 작가, 과학자, 정치가, 교육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덕의 기술>을 써서 선한 삶을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지만, 워낙 방대한 일들을 처리해야 했기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의 삶에 깊이 공감한 저자가 그의 편지, 메모, 수필, 콩트 등을 읽으면서 프랭클린이 의도했던 바와 매우 유사한 이 책을 펴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삶의 매 단계를 거치면서 행운이나 횡재를 바라는 대신 선한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성실과 정진으로 나아갔고, 자신 앞에 놓은 과제를 진득하게 성취해 나갔다. 그야말로 말과 행동을 일치하는 삶을 끊임없이 희구했다. 


그는 선하게 살라고 구호만 외치는 대신 명확한 방법과 대안을 설정해서 실천했기에 자신이 터득하고 증명한 덕의 원칙을 세워 가르침을 준다. 그가 일생을 통해 세운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은 덕 있는 삶,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 때만 행복하다. 둘째, 덕을 쌓기 위해서는 좋은 계획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사람들은 진정한 이익과 정반대의 길로 갈 때가 많다. 넷째, 올바르게 번 돈은 은혜일 수 있지만, 그 반대는 항상 재앙이다. 닷섯째, 올바르게 생각할 때 올바르게 행동이 나온다. 여섯째, 건강은 되찾기보다 지키기가 훨씬 쉽다. 일곱째, 행복은 마음에서 솟아난다. 여덟째, 진실과 정직이 부족하면 모든 것이 부족하다. 아홉째, 이웃과 잘 지내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인생이 훨씬 만족스럽다. 열번째, 모든 인간 관계 가운데 가장 지속적이고 만족스러운 관계는 가족이다. 열한번째, 덕 있는 삶의 열매는 늙어가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열두번째, 신앙은 행위를 규제하는 강력한 기준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위와 같은 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 덕목을 13가지로 정하고 이를 지키고 평가할 체크표를 만들어 다이어리처럼 체계화했다는 것이다. 매일 자신이 정한 실천 덕목의 실행에 대하여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스스로 평가하면서 삶을 내실 있게 다녀나간 것. 


그가 덕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정한 13가지 덕목은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근면, 진실, 정의,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으로, 각각의 덕목을 대표하는 실천 사항을 정했다. 


먼저 그는 과식과 과음을 삼가고, 타인과 자신에게 이로운 것 외에는 말을 삼가도록 훈계했다. 또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정돈하고 모든 일은 정해진 시간을 지키며 해야 할 일은 하기로 결심하고, 결심한 일은 반드시 행하도록 강조했다. 타인과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 외에는 지출을 삼가고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고 항상 유익한 일을 행하며 필요없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경계하는 한편 남을 일부러 속이려 하지 말고 순수하고 정의롭게 생각하면서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고 구체화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응당 돌아갈 이익을 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극단을 피하고 원망할 만한 일을 한 사람조차 원망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가르쳤다. 몸과 옷차림, 집안을 청결히 하고, 사소한 일, 일상적인 사고, 혹은 불가피한 사고에 불안해하지 말며 건강이나 자녀를 갖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성 관계를 삼가도록 원칙을 정했다. 마지막으로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랭클린은 독자적으로는 이러한 개인적인 원칙을 성실히 다져가면서도  동시에 절친들과 함께 전토라는, 서로의 발전을 지향하는 작은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도덕, 정치, 철학에 대한 토론을 나누면서 삶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나갔다. 


그의 탁월한 점은 개인을 넘어서 사회 공동체를 통해 선한 삶의 선순환 체계를 만들어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삶을 철저하게 종교와의 일치에도 조준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만물을 만든 한 분의 신이 계시고 선한 사람이 되고 선행을 하는 것이 영원한 영혼을 가진 인간이 신을 기쁘게 하는 방편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그의 믿음은 그의 말과 행동,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강력한 규제이자 기준이 되는 척도가 되었다. 


그는 과학자의 특성을 살려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 이성과 철학의 관점에서 자신만의 신앙관을 만들어가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지만, 여전히 인간의 일에 활발하게 개입한다고 논증하는 등 성찰적 믿음을 견지했다. 


그는 선한 삶의 목표를 세우고,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균형 잡힌 삶의 원칙을 정한 후 실천해야 할 덕목을 추출해 끊임없이 평가하고 피드백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정갈하게 정돈하면서도 선한 지적 공동체와의 꾸준한 교류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 대한 통찰적인 식견을 갖출 수 있도록 삶의 체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칫 물질적이고 단편적인 삶으로 표류할 수 있는 원칙과 덕목의 원천을 신앙으로 잇대어 견고히 함으로써 절도 있는 삼각 구조를 설립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을 통해 왜 그가 미국인이 존경하는 인물인지, 그리고 치열한 삶을 살아낸 영웅이 어떤 토대 위에서 초기 미국의 체계를 세워나갔는지 가늠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자기 계발서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훌륭하게 담아내고 있다. 

나는 어려움을 극복할 때 종이를 반으로 나눠 한쪽에는 찬성, 다른 쪽에는 반대라고 적습니다. 3-4일 정도 생각을 하면서 여러 가지 동기에 따라 짧은 생각을 적습니다. 그렇게 찬성과 반대의 이유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면 각각의 무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 무게가 같은 것끼리 지웁니다. 찬성하는 이유 하나와 반대하는 이유 두 가지의 무게가 같다면 이 세 가지를 지웁니다..중략..이렇게 무게가 같은 것끼리 지우고 나서 하루 이틀 정도를 더 생각합니다. 새로운 이유가 떠오르지 않으면 결정을 합니다. 비록 이유의 무게를 판단하는 게 어려울 수 있지만, 각각의 이유를 비교해서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것이 확실히 보여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급한 마음도 줄어듭니다. 실제로 나는 이런 등식에서 큰 장점을 발견했는데 나는 이것을 ‘도덕의 대수학‘이라고 부릅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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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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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구상하면서 어떤 성경 말씀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까, 책을 덮고 난 후 엉뚱한 상상은 빌라도로 이어졌다. 누군가 내게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지 묻는다면 나는 빌라도의 질문으로 답을 대신할 것 같다. 진리가 무엇이냐. 도대체 진리가 무엇이길래 30대의 젊은 청년이 죽음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고 지극히 이성적이면서도 예리한 정치적 판단을 바탕으로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언도한다. 


사탄의 집요하고도 끊임없는 훼방의 목적은 바로 '죄인인 인간의 실존을 깨달아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각성하지 못하게 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며 회복되는' 진리를 외면하게 하는 데 있다. 


믿음의 여정에서 마주하는 사탄은,  그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그저 윤리나 도덕의 타락을 인도하는 정도로만 이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윤리나 도덕적으로 크게 지탄받을 일 없이 그런대로 인간적 덕성을 유지하는 한, 그 앞에서 죄인된 인간의 실존에서 출발하는 영혼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괜한 분란만 일으키는 논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력을 다해 휴머니즘의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데, 느닷없이 죄인이라니 가당하기나 한 말인가. 저자는 사탄의 전략을 풍자하면서, 역설적으로 진리와 함께 진정한 기독교인이 나아가야 할 바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조카 사탄 웜우드를 가르치는 삼촌 사탄 스크루테이프는 조카가 맡고 있는 인간-인간을 환자라고 부른다-이 진리에 다다르지 못하도록 다루는 법을 가르치면서 31편의 편지를 쓰는데, 가장 먼저 인간이 실존에 눈을 뜨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데 최선을 두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감각적 경험의 흐름에 시선을 고정하고,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실제의 삶이라고 인식하도록 독려할 것을 주문한다. 참과 진리를 따지지 않도록, 눈 앞에 매일 펼쳐지는 일상성에 매몰되어 미지의 존재를 믿지 못하며 사색하지 못하도록 붙들라고 충고한다. 


  환자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교회의 건물에 관심을 갖거나 교인들의 결점을 보면서 겸손을 배우지 못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회심을 일종의 심리상태로 간주하도록해야 한다고 첨언한다.  기본적인 의무도 등한시하면서 내면 생활에만 집중하고  주변인들의 죄를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도록 몰아야 하며 또한 율례를 실제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만 들여다보면서 의지로 감정을 만들어 내도록 종용할 것을 주문한다. 


  전쟁의 발발 속에서 죽음을 예감하는 곳에서 죽는 것은 오히려 원수-사탄 입장에서는 예수 그리도-쪽에 선 인간들에게는 완전한 준비를 갖추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되니,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값비싼 요양원에서 마지막까지 제대로 죽음을 환기하지 못하게 하고 죽음이 은폐된 곳에서 맞이하는 죽음이 더 낫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영생으로 나아가야 할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게 하니 최고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계속되는 편지를 통해 삼촌 사탄은 세부적인 지침을 일러준다. 이웃에게는 악의를 품고 미지의 사람들에게는 선의를 갖게 할 것, 생명력, 성 숭배, 정신 분석 등을 통해 영의 존재를 부정하고 힘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을 숭배하도록 할 것, 그리고 악마나 사탄을 희극적인 모습으로 상상하여 그 영향력을 가볍게 여기도록 할 것,  균형을 잃고 극단적인 소집단 속에서 내부인끼리만 서로 칭찬하고 추앙하는 온실 관계를 발전시키는 한편 외부에 대해서는 교만과 증오를 키우도록 할 것, 믿음의 기복을 거치는 순간을 노릴 것, '단계'같은 전문 용어를 활용해 영적 저기압 상태를 진보, 발전, 역사적 관점 같은 몽롱한 환상으로 점철하면서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킬 것, 교제권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도록 할 것, 경박함을 드리워 미덕이 우스운 것인 양 떠들도록 훈련시킬 것, 아무리 사소한 취미라도 뿌리 뽑아서 순수함, 겸양을 갖거나 몰입하지 못하도록 할 것,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버리고 다른 데 관심을 쏟도록 할 것, 겸손은 재능이나 가치를 낮게 보는 것이라고 잘못 인식하도록 할 것. 


허영심과 거짓 겸손을 갖추고 교회를 일종의 사교 클럽으로 여기게 할 것, 자기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다니도록 하고, 설교자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을 재단하여 가르치게 할 것, 일상에서 제대로 되는 게 없다는 불만을 주입하여 '제대로'를 찾는 여정이 마침내 탐심으로 이어지도록 할 것,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과 별개-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식-의 지옥의 철학을 설파하면서 경쟁을 내세울 것, 영성의 제거가 안된다면 부패하도록 수단을 강구할 것, 기독교를 수단으로 이용하도록 할 것.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르다는 식의 잘못된 자긍심을 갖도록 해 불신자들의 말을 우습게 여기도록 할 것, 변함 없는 것에 대해 질색하고 새로운 것에만 빠져들게 만들 것, 형식적이고 명목적인 것을 붙드는 비이기주의를 표방하도록 할 것,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적인 교제를 나눈다면서 일용할 양식과 아픈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외면하는 거짓 영성을 추구하게 할 것,  풍요로운 중년기를 보내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을 갖도록, 그러므로 과학이든 심리학이든 학문의 발전을 통해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 날이 올 것이라고 믿게 하면서 경험이 착각의 어머니인데도 모르게 할 것, 소명을 버리고 비겁해지며 미신에 기대게 할 것, 거짓 희망을 갖게 하고 지금까지의 믿음은 환상이라고 착각하도록 할 것, 물리적 사실만 실제라고 믿고, 영적인 것은 주관적인 것이라고 믿게 할 것. 


한 편씩 꼼꼼히 읽다보면  죄의 세밀하고 정교한 그물에 포획된 인간에게 왜 구원이 필요한지 더 명료해지는 것만 같다. 게다가 상당 부분 기독교인으로 입문한 이후에 나타나는 죄의 구체성과 입체성을 기술하고 있어 쓰라린 심정으로 신앙의 좌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네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자가 현세의 일들을 원수에게 순종할 기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목적으로 만들고 믿음을 수단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환자를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세속적 명분이야 어떤 걸 추구하든지 상관없다. 집회, 팜플렛, 강령, 운동, 대의명분, 개혁운동 따위를 기도나 성례나 사랑보다 중요시하는 인간은 우리 밥이나 다름없어. ‘종교적‘이 되면 될수록(이런 조건에서는) 더 그렇지. 이 아래에는 그런 인간들이 우리 한가득 득실거리는 판이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보여주마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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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아버지의 4차원 영재교육
현용수 지음 / 쉐마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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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철학, 방법 등도 시대와 사회에 따라 유행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디폴트값처럼 변하지 않고 인용되는 실례가 있다면 유대인 교육일 것이다. 실생활의 지혜를 강조한다, 질문을 통해 사고의 영역을 넓힌다, 소통을 통해 답을 찾아간다 등등 유대인 교육의 단편적인 특징을 설명한 단견은 많지만, 정작 정통 유대인 교육의 실체를 직접 체험하고, 그 구조와 방식을 교육학적으로 정리한 경우가 흔하지 않기에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빛나지 않나 싶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가정교육인데,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역할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성경적 가치에 따라 유대인은 아버지는 사상, 힘, 권위의 상징을 가지면서 지식과 사상의 영역을 담당하고, 어머니는 사랑, 정서, 동정의 상징으로 정서의 영역을 관할하는데, 가정의 희망이 되는 자녀들을 위해 아버지는 공급자, 보호자, 인도자, 교육하며 훈계하는 자로, 히브리어는 규정한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일차적 스승으로 가정에서 기본적으로 토라를 중심으로 교육하는데, 식사 기간, 절기 교육 등을 통해 공동체의 건강한 일원으로 자라나도록 집중한다. 저자는 직접 유대인 가정 등에서 교육 방법을 관찰하여 정리한 내용을 전달하는데, 아버지는 자녀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시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진지함을 가지고 있으며, 인성교육과 예절교육은 식탁에서 이루어지고, 귀납적 질문 교육 방법을 주로 사용하며, 교사이자 동시에 아버지로서 친근하면서도 부드러운 자세를 가진다고 제시하고 있다.


한편 유대인들은 배움을 중시하고, 공부하는 목적이 뚜렷한데, 첫째는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주신 말씀을 자손 대대로 전수하기 위함이며 둘째,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더 선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분명하다고 증언한다. 


또 다른 유대인 교육의 특징은 4차원 교육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지적 교육, 즉 영재교육은 4차원으로 이루어지는데, 1차원 영재교육은 일반학교에서의 세상 학문 교육, 2차원 영재교육은 유대인의 질문식과 탈무드 논쟁식 교육을 통한 IQ 계발, 3차원 영재교육은 영리함, 현명함을 기르는 교육-악인을 피하는 등 실용지식과 관련된 교육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4차원 영재교육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교육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다층적 차원의 교육은 오히려 높은 단계에서 낮은 단계로 이루어진다. 성경의 율례와 법도를 배우고 실천하면서 스스로 자기 훈련을 강화하고, 질문과 토론식 교육방법을 통해 그 율례와 법도가 만들어진 이유, 배경, 실천 방법 등을 모색하면서 사고의 깊이와 넓이가 폭발적으로 증강한다. 질문과 토론의 궁극적 결론은 배움의 목적과도 연결되는데, 가령 윤리적 행동의 이유도 하나님의 성품이나 창조의 목적과 연결되면서 생명존중, 공동체주의 등을 학습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이 된단. 이와 동시에 각 과목이나 학문의 구체적인 철학, 내용도 성경의 토대 위에서 이해하면서 구체성과 확장성을 더해간다. 토론이나 질문식 교육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언어 발달을 촉진하면서 재치와 순발력, 논리 등을 개발하도록 하므로 자연스럽게 몰입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저자의 주장과 연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일반적인 지식 학습이라고 할 수 있는 수평적 교육과 가치관, 윤리 등을 학습하는 수직적 교육이 매우 적절하게 교차하고 있고, 특히 가정, 학교, 종교(사회, 문화)의 교육이 각각의 역할을 존중하고, 긴밀하게 연계되어 획기적인 교육적 성과를 성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는 우리에게도 가치관, 지혜를 강조하던 수직적 교육 문화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 무너지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넘쳐나는데,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교육의 근간이 흔들리고 지식교육마저 입시에 포획되면서 공회전하고 있는데다, 사회나 문화의 교육은 자취를 감추고 있는 이때, 우리의 교육 철학과 기반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체계화하도록 시사점을 준다. 

유대인 부모는 자녀에게 세상 학문인 학교교육부터 시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가장 높은 제4차원의 지혜교육을 먼저 하고, 다음에 제3차원 단계인 슈르드교육을 시키며, 다음 담계에서 제2차원의 질문과 탈무드 논쟁식 IQ계발교육을 한 다음 맨 마지막 단계에서 제1차원의 학교교육을 시킨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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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지음, 전형준 옮김 / 창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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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너무 유명해서 모두가 읽은 것 같지만, 막상 읽은 이를 돌아보면 손에 꼽을만큼  적은 작품은 수도 없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루쉰의 소설들이 아닐까 싶다. 학창 시절 한 번쯤은 문제풀이용 주제 분석이나 작품 해설을 접한 터라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다는 착각 탓에 각을 잡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결과적으로 우연한 기회에 반 강제적으로 읽게 된 행운을 새삼 감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아Q정전>을 대표로 루쉰의 소설을 모아 놓은 소설집인데, 현대 초기 중국 사회의 모습을 묘사했는데도, 우리의 현재 모습을 이전 시대에 미리 다른 각도에서 문학적으로 예견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독성과 재현성이 탁월하다. 역사는 결국 돌고 도는 것이고, 지혜자의 표현대로 삶의 굴레는 반복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현재의 좌표를 진단하는 내비게이션 같다고 할까. 


<광인일기>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먹으려 한다는 생각을 전개해 나간다. 의사, 심지어는 가족들, 그리고 나아가서는 자신도 식인의 습속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하면서 우리 안의 '식인성'을 고발하고 아이들을 구하라는 메시지로 매듭을 짓는다. 


<쿵이지>는 퇴락한 지식인의 모습과 이를 비웃는 사람들의 대조가 주를 이룬다. 새로운 물결에 편승하지 못하고 밀려난 서민들은 낡은 지식에 대한 조롱을 쿵이지에게 쏟아내면서, 은연중에 그나마 술이라도 한 두 푼 지불할 수 있는 자신들의 우위를 자랑한다. 가치의 전복이 이루어지는 단면을 작가는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약>은 일종의 스릴러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아들의 폐병을 고치고자 한 아버지가 옛 비방대로 극비리에 사람의 피에 적신 만두를 구해 먹이지만, 아들은 죽게 된다. 한편 한 어머니의 아들이 혁명에 가담하는데, 그 아들은 결국 처형-이 시점에서 아버지는 누군가의 피에 적신 만두를 구한다-을 당하고 어느 무덤에 묻힌다. 이 두 아들의 어머니가 같은 무덤에서 만나게 되는데, 죽은 두 아들은 같은 무덤, 반대편 위치에서 만나게 된다. 구습과 혁명의 대조가 피와 죽음을 매개로 얽히면서 비극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고향>은 혁명을 꿈꾸던 지식인이 고향으로 돌아와 옛 친구를 만나지만, 어릴 때는 평등했던 친구가 계급적 지위 때문에 옛 우정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면하게 되는 이야기. 순수했던 친구는 어느새 봉건 문화에 충실한 전형적인 군상으로 변모해 있고, 자신 역시 어정쩡하게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아이들에게 막연하게 희망을 거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Q정전>은 성경의 말씀을 빗대어 말하자면, 근대인의 형상은 갖추었으나 그 내용은 없는 혹은 태생적으로 갖추기 어려웠던 인물을 형상화 하고 있다. 아Q는 새로운 사회적 맥락에 맞게 제대로 된 연애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희롱의 모습으로 구현한다든지, 계급적 한계와 설움을 혁명의 겉모습에 기댄 채 타파할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하지만, 결국은 기득권의 만용과 혁명의 이론적 또는 이념적 체현의 미흡성으로 오히려 엉뚱한 결말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복을 비는 제사>는 자녀를 잃은 샹린댁에게 지식인으로서 사후 세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자신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을, <술집에서>는 한 때 혁명을 꿈꾸었던 지식인으로서 고향에 돌아와 남동생의 이장을 진행하지만 유골은 아무 것도 남지 않았고, 한 때 챙겨주려 했던 아순마저 모함에 빠져 죽게 된 사실들을 확인하면서, 한껏 진보를 향해 달렸지만 제 자리를 돌고만 있는 것 같은 상실감과 허무감에 대해 묘사한다. 


<비누>는 보수적인 주인공이 유교에 따른 윤리적 행동을 고수하면서도 자신의 아들에게는 영어를 배우라고 종용하며, 순결을 강조하면서도 거지 소녀에 대한 성적 환상으로 비누를 사서 아내에게 주는 이중성을 고발한다. 


<홍수를 다스리다>는 학문주의와 관료주의의 폐해를 풍자하면서, 홍수를 다스리는 방법이 어떻게 왜곡되고 굴절되는지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학자의 논평과 분석은 관료들과 연합하여 엉뚱한 사실을 생산하는데, 여기에서의 백미는, 일상의 언어를 학문과 관료의 언어로 치환하는 방법을 모르는 주인공이 얼결에 민중의 대표로 뽑혀 상황을 설명하지만, 소통이 되지 않아 결국은 학문과 관료에 포획되기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는 현장에 대한 진단과 평가의 대목. 이러한 맥락에서 홍수에 대한 진실과 사실은 권좌 앞에서 새롭게 재구성므로, 제대로 된 대처가 될 수 없다. 


<관문 밖으로>는 공자에게 가르침을 주고 그의 행보를 예측할 정도로 뛰어났던 노자를 청빙하여가르침을 받겠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정작 노자가 떠나자, 그 내용과 뜻도 모르면서 그가 만든 목찰을 참깨나 만두, 콩처럼 이득을 위해 바꾸어 먹는 데 이용하려는 관료들의 몰이해를 풍자한다. 


루쉰은 사회의 변혁기에 민중, 혁명가, 지식인, 체제의 변환, 지식에 대한 대응 등이 어떻게 변하고 이해되는지 소소한 상징과 소박한 이야기 속에 대담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지점은 어떻게 성찰되어야 하고 재평가되어야 하는지 분명한 해답도 제시한다. 

사천 년의 식인의 이력을 가진 나는, 처음에는 몰랐었지만, 이제는 알겠다, 진짜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사람을 먹은 적이 없는 아이들이, 혹시 아직 있을까? 아이들을 구하라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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