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힘 -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지리의 힘 1
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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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주장에 빗대어 본다면 이 책의 저자는 지리, 즉 땅이 우리의 정치, 경제, 역사 등 삶의 좌표를 상당 부분 결정한다고 단언한다. 산맥, 하천망 등 지리적 요인은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는 것이며, 기후, 인계, 통계, 문화, 지역, 천연 자원에 대한 접근성 등 또한  총체적으로 지정학적인 지리적인 요인에 포섭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요인들을 바탕으로 국제적 현안을 접근할 때 현상의 실체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책 전반에 걸쳐 사례를 들어 실증한다. 


저자는 해양 강국을 꿈꾸며 다양한 민족을 통합하고 영유권 분쟁을 마다 않는 중국의 속내, 지리적으로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한편 막강한 해군력, 에너지 자급 자족 등을 내세우며 패권을 휘두르는 미국, 지리의 이점과 단점에 따라 이합집산하면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유럽연합, 넓은 지형과 풍부한 천연 자원이 있어 주변국을 상대로 경제 전쟁을 필살기로 내세우지만 부동항이 없어 해상권 장악에서 미흡한 러시아, 높은 산맥과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발전이 저해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된 후 풍부한 자원과 광활한 지리적 요건이 오히려 분쟁의 요건이 되고 있는 아프리카, 종교와 지리, 강대국의 계산속 때문에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중동,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과 경쟁에 영향을 미친 지리적 특성, 북극을 둘러싼 각국의 첨예한 경제 및 외교의 실상 등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지정학적 세계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한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입장은 아무래도 눈길을 뗄 수 없었다. 한반도의 위치와 군사 기지 등의 지정학적 현실을 살피다보면 한반도 긴장에만 집중할 수 없는 것이 대만과 중국의 갈등이 가시적으로 촉발되는 시점에서 제주도를 기점으로 강대국 간 전선이 우리 나라에서 형성될 수도 있다는 추론마저 들었다. 북한의 위협 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긴장 상태를 면밀하게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각성할 수 밖에 없다. 


저자가 2편을 통해서 드러낼 지정학적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통찰력 있는 대담한 시각과 근거 중심의 설득력 높은 자료들이 어떤 하모니를 보여줄 것인지 기대된다. 또 저자가 책의 도입부에서 언급했듯이 단순히 지리뿐만 아니라 인구 특성, 기후, 문화 등의 지정학적 측면을 고려할 때 세계 각 지역의 운명을 어떻게 예측하고 진단할 수 있을 것인지 보다 총체적인 연구서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실제로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오늘날 국제 문제를 다룬 보고서들에서 자주 도외시되는 것이 바로 국내외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물리적 현실이다. 확실히 지리학은 무엇 못지 않게 왜 라는 질문의 근간을 이룬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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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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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삶에 대한 희구가 어느 때보다 높게 솟구치는 요즘인데, 우리가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고 있다니 저자의 진단은 얼핏 보면 어떤 도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은 이미 상당히 진척되기라도 한 것처럼 "왜"일까 그 이유를 따져 물으니 도저히 책을 펼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도처에서 '고통스럽다'는데, '고통을 추방하고 있다'는 지적은 열뜬 이상주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우리의 생에서 자연스럽게 배태되는 고통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나아가 성과주의와 결합하면서 어떻게 각색되고 재편되는지 명확하게 기술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고통을 피해야 한다는 공포에 휩싸여 고통을 감수할 용기를 잃어버리고 삶의 영역에 드리워진 고통을 외면하는 데 놀라운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해 당사자 간의 고통을 피하려는 움직임은 진통 정치로 이어져 탈민주주의를 가속화하고, 권력을 스마트하게 변모시킨다. 물리적인 힘으로 대표되던 권력의 속성은 푸코가 지적한 규율과 감시 제도 속에서 고통 없는 권력을 행사한다. 여기에 더해 성과주의를 덧입은 개인은 스스로를 규율하고 감시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내면의 독재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 


또 고통을 직면하여 그 의미를 일깨우고 성찰적 삶을 돌아보도록 추구해야 할 예술과 문화는 소비 및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적당한 즐거움만 주는 데서 그치면서 동일한 것의 변주만 생산해내고 있다고 소개한다. 


긍정 심리학은  고통 회피의 사명을 충실하게 실천한다고 본다. 즉 모든 초점을 기분과 감정에 맞추고 그 궤도에서 일탈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힘껏 몰아낸다. 덧붙여 디지털 아비투스를 갖춘 현대인은 머무름이나 성찰, 서사를 통해서 고통에서 만들어내는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미미해져 모든 것들을 타자화하면서 마침내 무감각한 상태로 나아간다. 이러한 무감각은 현대인의 최고 목표인 행복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방해물 같은 존재이기에 기분의 고양을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탐닉하고 더 큰 자극을 추구하며 마침내 중독의 험로로 나아간다는 것. 


니체가 고통 속에서 더 나은 건강을 찾은 것과 달리 우리는 고통을 피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보니 우리의 고통은 육체적 의미로만 축소되고 고통의 문제는 결국 의학의 문제인 것처럼 한정된다고 진단한다. 작가는 고통을 피하려는 노력 탓에 건강은 지상 목표가 되어가고 진통과 마취는 당연한 건강 기제로 작동한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바이러스가 나타나자 코로나 사회 속에서 삶의 모습은 순식간에 면역을 앞세우며 생존의 삶으로 변모했다고 서술한다. 오직 생존을 위해서 바이러스의 고통을 피하려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면서 건강 전문가가 현상의 진단을 독점하는 한편 삶은 생과 사의 측정 가능한 도식 내지는 데이터로 치환되었다는 점을 또렷하게 인식시킨다. 


저자는 고통의 억압과 은폐는 삶의 변화, 발전, 창조의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사랑, 소통, 연대, 공감을 하지 못하도록 작동하기에 결국 우리는 상실하며 고립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고통의 추방은 더 좋은 삶에 대한 고민을 위축시키고 삶의 의미는 오로지 죽음이 아니라는 것으로 안심한다는 역자의 후기야 말로 고통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다루는 전략이 가져오는 가장 큰 폐해일 것이다. 


고통의 포효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대상화하므로 고통을 은닉하고 회피하기 때문이라는 지적, 가슴을 후벼파는 일갈이다. 

행복장치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사회의 탈정치화와 탈연대화를 초래한다. 각자가 스스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행복은 사적인 문제가 된다. 고통 또한 개인적인 실패의 결과로 해석된다. 그래서 혁명 대신 우울이 있다...중략..진통사회는 고통을 의학적 문제로, 사적인 문제로 만들어 탈정치화한다. 이를 통해 고통의 사회적 차원을 억압하고 은폐한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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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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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자 마자 바로 책을 찾아보았다. 불안과 불화, 불확실성과 혼돈이 침착된 세계는 여전히 출렁이는데, 문학은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호기심도 일었고, 내게는 생소한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라는 이력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놀랍게도 작가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살아감과 죽어감이 무엇인지 요한네스라는 인물을 통해 대담하게 그려냈다. 의미와 이유를 찾는 데 익숙해진 현대인이 정말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가르치기라도 하듯 작가는 소박한 어부의 일대기를 통해 의미가 아니라 존재를, 이유가 아니라 생과 사의 근원을 탐색하면서 자의식 과잉 탓에 존재 자체가 어려워진 의식의 틈새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1장에서는 요한네스의 탄생이 그려진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요한네스는 올라이의 아들로 태어나는데,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와 분리되어 추운 세상으로 혼자 나와 모든 사람들과 분리되어, 언제나 혼자로 살면서 모든 것이 지나가면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리라는, 올라이의 독백 속에서 탄생한다. 올라이는 태어나서 살고 죽어가는 그 모든 것이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무 이상의 무엇이 드리워지는데 그것이 신의 영혼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요한네스의 탄생 순간, 공간을 파고드는 소리와 고요함은 뒤섞여 서로 연결되면서도 떨어져 새로운 고요한 소음으로 나아간다. 작가는 생명의 탄생 시점에 드리워진 일상의 소리들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표현하면서 서로 어우러지면서도 독립적으로 배치되는 시공간의 역설적인 질서를 명민하게 드러낸다. 


2장에서는 어느 날 요한네스가 침대에서 일어나 겪은 기묘한 일상이 주제가 된다. 평소와 달리 몸이 가볍다고 느끼는 요한네스는 오랜 친구 페테르를 만나고 꽃게를 사러 올라오는 안나를 마주친다. 또 오래 전 죽은 아내 에르나와 조우한다. 소천한 게 확실한 페테르센을 만나는 가 하면, 젊어 세상을 떠난 누이 마그나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주변인들과의 만남 뒤로는 요한네스의 어부로서의 삶이 배경이 된다. 그는 지나온 모든 일상 속에서 그들을 다시 일상의 한 단편으로 만나게 된다. 살아 생전 서로 머리를 잘라주었던 페테르와 다시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방금 보였던 에르나가 갑자기 사라지는 데 놀라고 막내 딸 싱네가 자신을 모른 채 스쳐 지나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막내 딸 싱네가 죽은 요한네스를 발견하고 의사를 부르고 사위를 부르는 동안 요한네스는 다시 찾아온 페테르를 만난다. 


페테르는 죽음을 지각한 요한네스를 배로 이끌어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는 인물로 현신하는데, 이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새로운 몸을 잠깐 돌려받았다고 고백한다. 페테르는 다음 세상은 어떤 장소가 아니며 너와 나의 구분이 없으면서도 요한네스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거기에서는 언어가 사라지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모든 것이 하나이면서도 서로 다른, 그러므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담백한 줄거리를 더욱 진중하면서도 웅장하게 진동시키는 문학적 재미는 아무래도 문체일 것 같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마침표를 찍지 않고, 대화나 생각은 쉼표로 구획하면서 주인공의 일대기, 즉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는 문장으로 이어나간다. 독서의 재미를 더하는 장치는 제목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요한네스의 삶을 그리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종결하고 낮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럼에도 요한네스의 낮은 일곱 남매를 키우고 아내와 사별하며 친구와 마을 사람들과의 일상이 반복되는 시간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요한네스의 삶에서 낮은 그저 지나가는 시간이었을 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살고 죽는 그 과정은 요한네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생의 전환 과정에 포섭되므로 낮 시간 동안의 그의 삶은 존재 양식에 충실했던 것으로 이해되어 어떤 알 수 없는 충만감이 가슴에 차오른다. 


살고 죽는 것의 숭고함이 타자화 되고 삶에 대해 지나친 의미화를 추구하는 천착이,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요즘, 이 책이 주는 울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유별난 구석이 있었지만,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걸 저도 알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속을 게워내야 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요,싱네는 생각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하늘에 흰 구림이 떠간다, 그리고 오늘 바다는 저리도 잔잔하고 푸르게 빛나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요한네스,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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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덕의 기술
벤자민 프랭클린 지음, 조지 L. 로저스 엮음, 정혜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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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체득하는 한 가지 진리는 선포하는 것과 증명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영역이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주장대로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진실하고 온전한 삶이 있을까 생각하던 터에 우연히 <덕의 기술>을 읽게 되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인쇄공에서 출발하여 신문 발행인이 되었고, 작가, 과학자, 정치가, 교육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덕의 기술>을 써서 선한 삶을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지만, 워낙 방대한 일들을 처리해야 했기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의 삶에 깊이 공감한 저자가 그의 편지, 메모, 수필, 콩트 등을 읽으면서 프랭클린이 의도했던 바와 매우 유사한 이 책을 펴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삶의 매 단계를 거치면서 행운이나 횡재를 바라는 대신 선한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성실과 정진으로 나아갔고, 자신 앞에 놓은 과제를 진득하게 성취해 나갔다. 그야말로 말과 행동을 일치하는 삶을 끊임없이 희구했다. 


그는 선하게 살라고 구호만 외치는 대신 명확한 방법과 대안을 설정해서 실천했기에 자신이 터득하고 증명한 덕의 원칙을 세워 가르침을 준다. 그가 일생을 통해 세운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은 덕 있는 삶,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 때만 행복하다. 둘째, 덕을 쌓기 위해서는 좋은 계획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사람들은 진정한 이익과 정반대의 길로 갈 때가 많다. 넷째, 올바르게 번 돈은 은혜일 수 있지만, 그 반대는 항상 재앙이다. 닷섯째, 올바르게 생각할 때 올바르게 행동이 나온다. 여섯째, 건강은 되찾기보다 지키기가 훨씬 쉽다. 일곱째, 행복은 마음에서 솟아난다. 여덟째, 진실과 정직이 부족하면 모든 것이 부족하다. 아홉째, 이웃과 잘 지내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인생이 훨씬 만족스럽다. 열번째, 모든 인간 관계 가운데 가장 지속적이고 만족스러운 관계는 가족이다. 열한번째, 덕 있는 삶의 열매는 늙어가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열두번째, 신앙은 행위를 규제하는 강력한 기준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위와 같은 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 덕목을 13가지로 정하고 이를 지키고 평가할 체크표를 만들어 다이어리처럼 체계화했다는 것이다. 매일 자신이 정한 실천 덕목의 실행에 대하여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스스로 평가하면서 삶을 내실 있게 다녀나간 것. 


그가 덕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정한 13가지 덕목은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근면, 진실, 정의,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으로, 각각의 덕목을 대표하는 실천 사항을 정했다. 


먼저 그는 과식과 과음을 삼가고, 타인과 자신에게 이로운 것 외에는 말을 삼가도록 훈계했다. 또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정돈하고 모든 일은 정해진 시간을 지키며 해야 할 일은 하기로 결심하고, 결심한 일은 반드시 행하도록 강조했다. 타인과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 외에는 지출을 삼가고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고 항상 유익한 일을 행하며 필요없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경계하는 한편 남을 일부러 속이려 하지 말고 순수하고 정의롭게 생각하면서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고 구체화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응당 돌아갈 이익을 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극단을 피하고 원망할 만한 일을 한 사람조차 원망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가르쳤다. 몸과 옷차림, 집안을 청결히 하고, 사소한 일, 일상적인 사고, 혹은 불가피한 사고에 불안해하지 말며 건강이나 자녀를 갖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성 관계를 삼가도록 원칙을 정했다. 마지막으로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랭클린은 독자적으로는 이러한 개인적인 원칙을 성실히 다져가면서도  동시에 절친들과 함께 전토라는, 서로의 발전을 지향하는 작은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도덕, 정치, 철학에 대한 토론을 나누면서 삶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나갔다. 


그의 탁월한 점은 개인을 넘어서 사회 공동체를 통해 선한 삶의 선순환 체계를 만들어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삶을 철저하게 종교와의 일치에도 조준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만물을 만든 한 분의 신이 계시고 선한 사람이 되고 선행을 하는 것이 영원한 영혼을 가진 인간이 신을 기쁘게 하는 방편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그의 믿음은 그의 말과 행동,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강력한 규제이자 기준이 되는 척도가 되었다. 


그는 과학자의 특성을 살려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 이성과 철학의 관점에서 자신만의 신앙관을 만들어가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지만, 여전히 인간의 일에 활발하게 개입한다고 논증하는 등 성찰적 믿음을 견지했다. 


그는 선한 삶의 목표를 세우고,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균형 잡힌 삶의 원칙을 정한 후 실천해야 할 덕목을 추출해 끊임없이 평가하고 피드백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정갈하게 정돈하면서도 선한 지적 공동체와의 꾸준한 교류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 대한 통찰적인 식견을 갖출 수 있도록 삶의 체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칫 물질적이고 단편적인 삶으로 표류할 수 있는 원칙과 덕목의 원천을 신앙으로 잇대어 견고히 함으로써 절도 있는 삼각 구조를 설립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을 통해 왜 그가 미국인이 존경하는 인물인지, 그리고 치열한 삶을 살아낸 영웅이 어떤 토대 위에서 초기 미국의 체계를 세워나갔는지 가늠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자기 계발서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훌륭하게 담아내고 있다. 

나는 어려움을 극복할 때 종이를 반으로 나눠 한쪽에는 찬성, 다른 쪽에는 반대라고 적습니다. 3-4일 정도 생각을 하면서 여러 가지 동기에 따라 짧은 생각을 적습니다. 그렇게 찬성과 반대의 이유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면 각각의 무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 무게가 같은 것끼리 지웁니다. 찬성하는 이유 하나와 반대하는 이유 두 가지의 무게가 같다면 이 세 가지를 지웁니다..중략..이렇게 무게가 같은 것끼리 지우고 나서 하루 이틀 정도를 더 생각합니다. 새로운 이유가 떠오르지 않으면 결정을 합니다. 비록 이유의 무게를 판단하는 게 어려울 수 있지만, 각각의 이유를 비교해서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것이 확실히 보여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급한 마음도 줄어듭니다. 실제로 나는 이런 등식에서 큰 장점을 발견했는데 나는 이것을 ‘도덕의 대수학‘이라고 부릅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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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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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구상하면서 어떤 성경 말씀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까, 책을 덮고 난 후 엉뚱한 상상은 빌라도로 이어졌다. 누군가 내게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지 묻는다면 나는 빌라도의 질문으로 답을 대신할 것 같다. 진리가 무엇이냐. 도대체 진리가 무엇이길래 30대의 젊은 청년이 죽음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고 지극히 이성적이면서도 예리한 정치적 판단을 바탕으로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언도한다. 


사탄의 집요하고도 끊임없는 훼방의 목적은 바로 '죄인인 인간의 실존을 깨달아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각성하지 못하게 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며 회복되는' 진리를 외면하게 하는 데 있다. 


믿음의 여정에서 마주하는 사탄은,  그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그저 윤리나 도덕의 타락을 인도하는 정도로만 이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윤리나 도덕적으로 크게 지탄받을 일 없이 그런대로 인간적 덕성을 유지하는 한, 그 앞에서 죄인된 인간의 실존에서 출발하는 영혼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괜한 분란만 일으키는 논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력을 다해 휴머니즘의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데, 느닷없이 죄인이라니 가당하기나 한 말인가. 저자는 사탄의 전략을 풍자하면서, 역설적으로 진리와 함께 진정한 기독교인이 나아가야 할 바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조카 사탄 웜우드를 가르치는 삼촌 사탄 스크루테이프는 조카가 맡고 있는 인간-인간을 환자라고 부른다-이 진리에 다다르지 못하도록 다루는 법을 가르치면서 31편의 편지를 쓰는데, 가장 먼저 인간이 실존에 눈을 뜨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데 최선을 두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감각적 경험의 흐름에 시선을 고정하고,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실제의 삶이라고 인식하도록 독려할 것을 주문한다. 참과 진리를 따지지 않도록, 눈 앞에 매일 펼쳐지는 일상성에 매몰되어 미지의 존재를 믿지 못하며 사색하지 못하도록 붙들라고 충고한다. 


  환자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교회의 건물에 관심을 갖거나 교인들의 결점을 보면서 겸손을 배우지 못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회심을 일종의 심리상태로 간주하도록해야 한다고 첨언한다.  기본적인 의무도 등한시하면서 내면 생활에만 집중하고  주변인들의 죄를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도록 몰아야 하며 또한 율례를 실제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만 들여다보면서 의지로 감정을 만들어 내도록 종용할 것을 주문한다. 


  전쟁의 발발 속에서 죽음을 예감하는 곳에서 죽는 것은 오히려 원수-사탄 입장에서는 예수 그리도-쪽에 선 인간들에게는 완전한 준비를 갖추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되니,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값비싼 요양원에서 마지막까지 제대로 죽음을 환기하지 못하게 하고 죽음이 은폐된 곳에서 맞이하는 죽음이 더 낫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영생으로 나아가야 할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게 하니 최고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계속되는 편지를 통해 삼촌 사탄은 세부적인 지침을 일러준다. 이웃에게는 악의를 품고 미지의 사람들에게는 선의를 갖게 할 것, 생명력, 성 숭배, 정신 분석 등을 통해 영의 존재를 부정하고 힘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을 숭배하도록 할 것, 그리고 악마나 사탄을 희극적인 모습으로 상상하여 그 영향력을 가볍게 여기도록 할 것,  균형을 잃고 극단적인 소집단 속에서 내부인끼리만 서로 칭찬하고 추앙하는 온실 관계를 발전시키는 한편 외부에 대해서는 교만과 증오를 키우도록 할 것, 믿음의 기복을 거치는 순간을 노릴 것, '단계'같은 전문 용어를 활용해 영적 저기압 상태를 진보, 발전, 역사적 관점 같은 몽롱한 환상으로 점철하면서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킬 것, 교제권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도록 할 것, 경박함을 드리워 미덕이 우스운 것인 양 떠들도록 훈련시킬 것, 아무리 사소한 취미라도 뿌리 뽑아서 순수함, 겸양을 갖거나 몰입하지 못하도록 할 것,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버리고 다른 데 관심을 쏟도록 할 것, 겸손은 재능이나 가치를 낮게 보는 것이라고 잘못 인식하도록 할 것. 


허영심과 거짓 겸손을 갖추고 교회를 일종의 사교 클럽으로 여기게 할 것, 자기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다니도록 하고, 설교자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을 재단하여 가르치게 할 것, 일상에서 제대로 되는 게 없다는 불만을 주입하여 '제대로'를 찾는 여정이 마침내 탐심으로 이어지도록 할 것,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과 별개-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식-의 지옥의 철학을 설파하면서 경쟁을 내세울 것, 영성의 제거가 안된다면 부패하도록 수단을 강구할 것, 기독교를 수단으로 이용하도록 할 것.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르다는 식의 잘못된 자긍심을 갖도록 해 불신자들의 말을 우습게 여기도록 할 것, 변함 없는 것에 대해 질색하고 새로운 것에만 빠져들게 만들 것, 형식적이고 명목적인 것을 붙드는 비이기주의를 표방하도록 할 것,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적인 교제를 나눈다면서 일용할 양식과 아픈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외면하는 거짓 영성을 추구하게 할 것,  풍요로운 중년기를 보내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을 갖도록, 그러므로 과학이든 심리학이든 학문의 발전을 통해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 날이 올 것이라고 믿게 하면서 경험이 착각의 어머니인데도 모르게 할 것, 소명을 버리고 비겁해지며 미신에 기대게 할 것, 거짓 희망을 갖게 하고 지금까지의 믿음은 환상이라고 착각하도록 할 것, 물리적 사실만 실제라고 믿고, 영적인 것은 주관적인 것이라고 믿게 할 것. 


한 편씩 꼼꼼히 읽다보면  죄의 세밀하고 정교한 그물에 포획된 인간에게 왜 구원이 필요한지 더 명료해지는 것만 같다. 게다가 상당 부분 기독교인으로 입문한 이후에 나타나는 죄의 구체성과 입체성을 기술하고 있어 쓰라린 심정으로 신앙의 좌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네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자가 현세의 일들을 원수에게 순종할 기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목적으로 만들고 믿음을 수단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환자를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세속적 명분이야 어떤 걸 추구하든지 상관없다. 집회, 팜플렛, 강령, 운동, 대의명분, 개혁운동 따위를 기도나 성례나 사랑보다 중요시하는 인간은 우리 밥이나 다름없어. ‘종교적‘이 되면 될수록(이런 조건에서는) 더 그렇지. 이 아래에는 그런 인간들이 우리 한가득 득실거리는 판이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보여주마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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