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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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구상하면서 어떤 성경 말씀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까, 책을 덮고 난 후 엉뚱한 상상은 빌라도로 이어졌다. 누군가 내게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지 묻는다면 나는 빌라도의 질문으로 답을 대신할 것 같다. 진리가 무엇이냐. 도대체 진리가 무엇이길래 30대의 젊은 청년이 죽음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고 지극히 이성적이면서도 예리한 정치적 판단을 바탕으로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언도한다. 


사탄의 집요하고도 끊임없는 훼방의 목적은 바로 '죄인인 인간의 실존을 깨달아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각성하지 못하게 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며 회복되는' 진리를 외면하게 하는 데 있다. 


믿음의 여정에서 마주하는 사탄은,  그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그저 윤리나 도덕의 타락을 인도하는 정도로만 이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윤리나 도덕적으로 크게 지탄받을 일 없이 그런대로 인간적 덕성을 유지하는 한, 그 앞에서 죄인된 인간의 실존에서 출발하는 영혼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괜한 분란만 일으키는 논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력을 다해 휴머니즘의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데, 느닷없이 죄인이라니 가당하기나 한 말인가. 저자는 사탄의 전략을 풍자하면서, 역설적으로 진리와 함께 진정한 기독교인이 나아가야 할 바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조카 사탄 웜우드를 가르치는 삼촌 사탄 스크루테이프는 조카가 맡고 있는 인간-인간을 환자라고 부른다-이 진리에 다다르지 못하도록 다루는 법을 가르치면서 31편의 편지를 쓰는데, 가장 먼저 인간이 실존에 눈을 뜨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데 최선을 두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감각적 경험의 흐름에 시선을 고정하고,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실제의 삶이라고 인식하도록 독려할 것을 주문한다. 참과 진리를 따지지 않도록, 눈 앞에 매일 펼쳐지는 일상성에 매몰되어 미지의 존재를 믿지 못하며 사색하지 못하도록 붙들라고 충고한다. 


  환자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교회의 건물에 관심을 갖거나 교인들의 결점을 보면서 겸손을 배우지 못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회심을 일종의 심리상태로 간주하도록해야 한다고 첨언한다.  기본적인 의무도 등한시하면서 내면 생활에만 집중하고  주변인들의 죄를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도록 몰아야 하며 또한 율례를 실제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만 들여다보면서 의지로 감정을 만들어 내도록 종용할 것을 주문한다. 


  전쟁의 발발 속에서 죽음을 예감하는 곳에서 죽는 것은 오히려 원수-사탄 입장에서는 예수 그리도-쪽에 선 인간들에게는 완전한 준비를 갖추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되니,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값비싼 요양원에서 마지막까지 제대로 죽음을 환기하지 못하게 하고 죽음이 은폐된 곳에서 맞이하는 죽음이 더 낫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영생으로 나아가야 할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게 하니 최고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계속되는 편지를 통해 삼촌 사탄은 세부적인 지침을 일러준다. 이웃에게는 악의를 품고 미지의 사람들에게는 선의를 갖게 할 것, 생명력, 성 숭배, 정신 분석 등을 통해 영의 존재를 부정하고 힘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을 숭배하도록 할 것, 그리고 악마나 사탄을 희극적인 모습으로 상상하여 그 영향력을 가볍게 여기도록 할 것,  균형을 잃고 극단적인 소집단 속에서 내부인끼리만 서로 칭찬하고 추앙하는 온실 관계를 발전시키는 한편 외부에 대해서는 교만과 증오를 키우도록 할 것, 믿음의 기복을 거치는 순간을 노릴 것, '단계'같은 전문 용어를 활용해 영적 저기압 상태를 진보, 발전, 역사적 관점 같은 몽롱한 환상으로 점철하면서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킬 것, 교제권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도록 할 것, 경박함을 드리워 미덕이 우스운 것인 양 떠들도록 훈련시킬 것, 아무리 사소한 취미라도 뿌리 뽑아서 순수함, 겸양을 갖거나 몰입하지 못하도록 할 것,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버리고 다른 데 관심을 쏟도록 할 것, 겸손은 재능이나 가치를 낮게 보는 것이라고 잘못 인식하도록 할 것. 


허영심과 거짓 겸손을 갖추고 교회를 일종의 사교 클럽으로 여기게 할 것, 자기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다니도록 하고, 설교자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을 재단하여 가르치게 할 것, 일상에서 제대로 되는 게 없다는 불만을 주입하여 '제대로'를 찾는 여정이 마침내 탐심으로 이어지도록 할 것,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과 별개-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식-의 지옥의 철학을 설파하면서 경쟁을 내세울 것, 영성의 제거가 안된다면 부패하도록 수단을 강구할 것, 기독교를 수단으로 이용하도록 할 것.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르다는 식의 잘못된 자긍심을 갖도록 해 불신자들의 말을 우습게 여기도록 할 것, 변함 없는 것에 대해 질색하고 새로운 것에만 빠져들게 만들 것, 형식적이고 명목적인 것을 붙드는 비이기주의를 표방하도록 할 것,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적인 교제를 나눈다면서 일용할 양식과 아픈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외면하는 거짓 영성을 추구하게 할 것,  풍요로운 중년기를 보내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을 갖도록, 그러므로 과학이든 심리학이든 학문의 발전을 통해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 날이 올 것이라고 믿게 하면서 경험이 착각의 어머니인데도 모르게 할 것, 소명을 버리고 비겁해지며 미신에 기대게 할 것, 거짓 희망을 갖게 하고 지금까지의 믿음은 환상이라고 착각하도록 할 것, 물리적 사실만 실제라고 믿고, 영적인 것은 주관적인 것이라고 믿게 할 것. 


한 편씩 꼼꼼히 읽다보면  죄의 세밀하고 정교한 그물에 포획된 인간에게 왜 구원이 필요한지 더 명료해지는 것만 같다. 게다가 상당 부분 기독교인으로 입문한 이후에 나타나는 죄의 구체성과 입체성을 기술하고 있어 쓰라린 심정으로 신앙의 좌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네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자가 현세의 일들을 원수에게 순종할 기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목적으로 만들고 믿음을 수단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환자를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세속적 명분이야 어떤 걸 추구하든지 상관없다. 집회, 팜플렛, 강령, 운동, 대의명분, 개혁운동 따위를 기도나 성례나 사랑보다 중요시하는 인간은 우리 밥이나 다름없어. ‘종교적‘이 되면 될수록(이런 조건에서는) 더 그렇지. 이 아래에는 그런 인간들이 우리 한가득 득실거리는 판이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보여주마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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