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의 나
아사오 하루밍 지음, 이수미 옮김 / 북노마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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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토)

여자 셋이서 꽃구경을 왔다. S사의 K씨와 초면인 카메라우먼, 그리고 나. 벚꽃이 활짝 핀 강가에 포장마차가 세워지고 보통 가게에서도 문 앞에 나와 판매하니 거리가 꽤 북적였다. 무엇을 살지 자꾸 눈이 쏠린다. 마실 것으로 맥주를 산 다음, 야키소바를 살까, 다코야키를 살까, 볶음쌀국수는 별로지요? 라며 고르는 사이에 그만 포장마차도 보이지 않는 외진 곳까지 걸어와버렸다. 이건 마치 세 여자의 인생을 암시하는 듯하다.-106쪽

4월 4일 (일)

오늘도 꽃구경을 나왔다. 요요기 공원. 벚나무 아래. N군의 타로점이 인기를 끌고 있다. S씨는 "올해도 결혼 못하겠네"라는 말에 "나는 반드시 하고 말 거야!"라고 되받았다. 이제 내 차례다. 지금 내 고민은 일에 관한 것밖에 없다. 일 외에는 상담하고 싶을 만큼의 정열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말고 다른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내겐 없는 모양이다.-107쪽

7월 4일 (일)

가마쿠라의 G씨 집에 가지고 갈 잠옷이랑 갈아입을 옷을 가방에 넣고 있다. 매일 똑같은 벽과 천장을 보고 있으면 내가 게 통조림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숨이 막힌다. 큰맘 먹고 G씨에게 연락하여 재워달라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 마을을 빠져나가 강을 건너 요코하마에서 한 번 갈아타고 가마쿠라에서는 에노덴. 역에서 내려 찻집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마신 다음, 해변 길을 따라 한 바퀴 돌고 나서 G씨의 집으로 향한다. 밭에 싱싱한 오이가 파랗게 매달려 있다.-203쪽

7월 5일 (월)

쇼난 신주쿠 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가면 또 똑같은 천장이라 생각하니 배가 아파지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아파트 아래층 집, 이사 나간 후 변화 없음.-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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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생활의 권유 - 하루에 하나씩 실천하는 마음 씻는 법
마스노 슌묘 지음, 김혜진 옮김 / 더난출판사 / 2013년 3월
품절


'시작'은 중요합니다. 마음속에 자기만의 '문'을 만들어두세요. 예를 들어 집이 속한 땅이 첫 번째 문입니다. 이 문을 빠져나가면 조금씩 일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전철의 출입문이 두 번째 문입니다. 이곳을 통과하면 오늘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문인 회사의 출입구로 들어서면, 그때부터는 일에 집중할 순간입니다. 그리고 업무가 끝난 후에는 다시 한 번 첫 번째 문에 도달할 때까지, 일에 대한 것은 완전히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 뒤에는 오로지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합니다. 가족만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분명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입니다.-111쪽

그렇습니다. 망설인다면, 심플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사실입니다. 오로지 한 가지에 매진한다는 뜻의 '일행삼매(一行三昧 : 우주의 모든 만물의 현상은 평등하고, 한 모양인 줄로 보는 삼매)'라는 선어가 있습니다. 이것에도 저것에도 손을 뻗지 않고,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충실감이나 만족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오므하야시가 먹고 싶었다면, 그것을 관철하는 것이 만족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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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접시 위에 놓인 이야기 5
헬렌 니어링 지음, 공경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9월
구판절판


음식은 몸의 연료이다. 옥탄을 과하게 주입하거나 엔진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해야 한다. 소화하기 쉬운 적당량의 음식을 몸에 공급해야 한다. 철철 흘러 넘치게 공급하면 (위는 말하자면 카뷰레터이다) 엔진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것이다. 내연 기관이 역화하거나 아예 출발도 못하게 된다.-14쪽

이 요리책은 '들어가지 않는' 게 많은 책이다. 물론 고기나 생선, 닭고기류가 들어가지 않는다. 또 백설탕, 흰 밀가루, 베이킹소다와 파우더가 들어가지 않는다. 후추와 소금(다만 천일염은 예외이다), 달걀과 우유도 들어가지 않는다. 또 폭신한 빵과 파이, 페이스트리도 없다. 그럼 남는 게 뭐냐고 물을 것이다. 다 빼고 남는 걸로 음식을 만들기 어려울 거라고들 생각하리라. 무엇이 남는가? 온갖 과일과 야채, 건강에 좋은 곡물이 있다. 유익한 것이 너무 많아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다. 지면만 충분하다면, 이 책에 내가 쓰려는 조리법의 두 배는 게재할 수 있다. 분명히 말하건대 우리는 집에서 굶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잘 먹고, 심지어 과식하기도 한다.-86~87쪽

이 책이 마치 모든 사람에게 먹을 것이 풍부해서 우린 가장 영양가 높은 것으로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에는 기아 상태에 있거나 그 직전 상태에 처한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있으며, 그들은 빈속을 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먹으리란 것을 나는 잘 안다. 누가 그들에게 에밀리 디킨슨이 어느 시에 쓴 것처럼 "음식이 굶주린 사람에게 의미하는 것처럼 중차대한"이라는 냉소적인 형용사를 사용할 수 있을까.-88쪽

소박하게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단조로운 식단을 구성할 필요는 없다. 매일 매끼 다양하게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마음에 드는 것을 찾으면 계속 그것을 고수하자. 인생이나 요리에서 다양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다양한 음식이 있으면 과식하게 된다. 이것저것 손대다가 다시 처음 것으로 돌아오고, 처음부터 다시 먹기 시작해서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기 십상이다. 제대로 씹지 않고 그냥 목구멍으로 넘겨 버리게 되고. 먹을 때처럼 요리할 때도 가짓수가 줄어들면 그것에 집중하게 되고 그것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8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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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 - 천 가지 성공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
조지 레너드 지음, 강유원 옮김 / 여름언덕 / 2007년 9월
구판절판


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히 머리로 계획하고 말로 실천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정신과 육체는 서로 분리된 물건들이 아니다. 각각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나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혼신의 힘을 기울이면 몸은 진한 액체를 뿜어내고 그것이 정신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수백 번, 수천 번의 행위를 통해 습득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습관'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일생에 걸쳐 하는 일이란 어쩌면 그런 과정을 통해 습관을 만드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6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에게는 '안다'는 것이 '할 줄 안다'는 것을 뜻했다고 한다. 그들은 분명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과 인간을 보았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바탕으로 세상과 인간을, 아니 자기 자신을 보고 있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분명히 '할 줄 안다'고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이 책을 다 읽은 다음 스스로에게 이런 것들을 물어 보았다. 딱 잘라서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그저 인생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겸손이 '자기계발'의 진정한 출발점일 것이다.-6~7쪽

일단 달인의 길에 들어서면 숯돌에 칼을 갈듯이 부지런히 연습해서 웬만한 역량까지는 습득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대개는 어쩔 수 없이 정체상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는 달인으로 가는 길에서 누구나 부딪히는 냉혹한 현실이다. 아무것도 얻는 게 없어 보일지라도 연습을 계속해야만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중략) 그렇다면 달인이 되는 과정에서 최선의 방안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부지런히 연습하고 심지어는 연습 그 자체를 위해 연습해야 한다. 정체상태에서 좌절하지 말고, 비약단계를 즐기듯 그 상태를 즐겨야 한다.-25~27쪽

명사로서의 연습은 우리 삶의 불가결한 부분으로서, 규칙적으로 뭔가를 연습하는 일이다. 또 뭔가 다른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스포츠도, 무술도 될 수 있다. 정원 가꾸기, 요가, 명상, 공동체 봉사활동도 마찬가지다. 의사는 의학을, 변호사는 법률을 연습하듯이, 모두가 자기 나름의 연습을 행한다. 그러나 그 연습이 단순히 환자와 고객의 집합, 삶을 사는 방식을 규명하는 일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달인의 연습이 아니다. 달인에게 길을 따라 얻어지는 보상은 순수한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보상이 달인의 길에 나서는 주요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달인과 달인의 길은 하나다. 그리고 달인의 길에 나선 여행자가 운이 좋다면, 다시 말해 그 길이 충분히 복잡하고 심원하다면, 그 여행 가까이에 목적지가 있다.-82~83쪽

아무 목적이 없을 때조차도 정기적으로 연습을 한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 번거롭다. 그러나 결국에는 연습이 우리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 되는 날이 온다. 시간에 신경쓰지 말고 세상의 격동 따위는 잊은 채 편안한 의자에 앉듯이 연습에 몰두하라. 내일도 연습이 있을 것이다. 이를 그만두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88쪽

생각, 이미지, 느낌은 진짜다. 에너지는 질량과 속도와 관련있다는 아인슈타인의 생각(E=MC2)은 결국 놀라운 힘을 폭발시켰다. 이 같은 생각을 마음과 충격으로 변형시키는 일은 길고도 끈기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107쪽

매일 아침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달인의 원리를 직업이나 주요한 관계에도 수월하게 적용한다. 연습은 습관이다. 그리고 정기적인 연습은 새로운 항상성을 만들어주며, 변화의 불안정한 시기에 안정적인 토대를 제공한다.-126쪽

인간은 오래 사용해도 닳지 않는 일종의 기계다. 물론 한계를 가지는 만큼 건강한 휴식도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에너지를 얻는다. 육체적으로 지쳐 있을 때 가장 좋은 처방은 30분 정도 운동을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권태는 단호한 행동이나 명쾌한 결심으로 치유된다.-128쪽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우리 삶과 세계에서 수정할 필요가 있는 부정적 요인들과 상황의 존재를 부인하면 된다. 동양의 철학자들과 서구의 종교들, 그리고 유사 종교들이 실제로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악과 잘못은 환상일 뿐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개종자들을 편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더러 인격적인 실재를 부인하고 세상의 부정의에 대한 냉담함을 초래한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는 에너지를 억누르는 반면, 진실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것을 분출하게 만든다. 실제로 심각한 타격도 우리를 정면으로 강타해 무기력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함으로써 여분의 에너지를 선사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충격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에너지를 얻는 일은 불가능하다. 부정적인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우는 소리를 하라는 게 아니라, 진실과 대면해 움직이라는 뜻이다. 인생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좋은 친구에게 이야기한다고 치자.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생기지 않던가.-133~134쪽

잠재 에너지를 사용하려면 그 전에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하게 결정해야 한다. 결정을 내릴 때는 늘 소름 끼치는 한 가지 사실과 직면하게 된다. 어떤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다른 방향의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목표를 선택한다는 것은 수많은 다른 목표들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137쪽

궁극적으로 해방은 한계의 수용을 통해서만 성취된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할 수 있다. 또 그러고 나서는 다른 것을 할 수 있다. 에너지의 측면에서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쁜 선택이라도 하는 게 낫다. 일단 우선 순위를 적는 일에서 시작해보자. (중략) 우선 순위는 늘 이동하고 언제든 바꿀 수 있지만, 그것을 적어두기만 해도 우리 삶은 보다 명료해지고, 그 명료함이 에너지를 창출한다.-138~139쪽

사실상 세계의 많은 침체와 불만족, 그리고 심지어 범죄와 전쟁을 초래하는 악한 행위들도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사용하지 않은 에너지, 발산되지 않은 잠재력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에너지가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사람들은 약물 등을 원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있음을 느끼지 위해 전쟁터로 향한다. 모두 건설적이고 창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직도 충분하다. 지금 당장 시작함으로써 우리 에너지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141쪽

'흐름'을 하나의 행복한 상태로 간주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외과의사들은 수술을 할 때마다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손을 씻고 가운을 입는다. 그를 통해 외부의 관심사를 끊고 자신들의 주의를 당면한 과제에 집중시키기 위해서다. 불일치는 연습 시간을 잃게 할 뿐만 아니라 연습할 때 당면하는 모든 것들을 더 어렵게 만든다. 물론 몇 번의 연습을 놓쳤다고 연습 전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달인의 길에는 많은 굴곡과 전환점이 있으며 때로는 전략과 행동의 유연성이 요구된다. 지속성은 본질적인 것이다. 그러나 에머슨의 말처럼 어리석은 지속성은 '소심한 마음의 도깨비'다.-149~150쪽

굳이 세계 최고의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너무 높은 기준을 설정한 나머지 모두들 그 고지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이보다 창의력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 우리는 달인이라는 것이 완벽함과 관련된 개념이 아님을 간과하게 된다. 그것은 과정에 관한 것이며, 하나의 여행이다. 달인은 날마다 그 길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달인은 자신이 살아있는 한 기꺼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사람이다.-151쪽

우리의 움직임은 모두 신체 전체에서 비롯되며, 특히 배꼽 아래 1인치에 있는 단전에서 나온다. 그 움직임 속에서 고도의 우아함, 효율을 챙겨야 한다. 성급한 행동을 삼가는 것이다. 일을 끝내고 다른 것을 할 때도 그 순간과 그 순간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무엇보다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서두르지 않아도 보통 때보다 훨씬 빨리 일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깨달음을 얻고 나면 일이 끝났을 때 기분이 좋아질 확률도 높아진다.-156~157쪽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잠재력이 비상하게 뛰어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어린이처럼 순진한 행동 특성을 보인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제2의 순진함'이라고 칭했다. 애슐리 몬태규는 모차르트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들을 설명하기 위해 '네오타니neoteny(신생아neonate에서 나온 말로 '새로이 태어난'이라는 뜻을 가진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친구 또는 스스로를 바보 같다고 여겨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그저 천재가 괴짜 짓을 하는 거겠거니 웃어넘기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바보스러울 수 있는 자유는 천재의 성공을 위한 열쇠, 심지어는 말하기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기본적인 것이다.-184쪽

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는 늙어서 죽음이 가까워지자 제자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죽으면 흰 띠를 둘러 묻어달라고 했다. 세계 최고의 유도 고수가 죽음에 임박해서 초심자의 상징을 요구했다니 그 얼마나 겸손한가.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가노의 이야기는 겸손이라기보다는 현실이다.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전환의 순간에는 누구나 흰 띠다. 그리고 죽음이 우리를 초심자로 만드는 것이라면 인생 역시도 마찬가지다. 달인의 비밀스러운 거울에는 최고 성취의 순간에도 새로 입문한 학생의 모습이 있게 마련이다. 즉 그는 지식을 추구하며 바보처럼 열심히 하는 것이다. 달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누구나, 그 길이 아무리 멀어도 가노의 요구를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물음, 항상 새로운 도전으로 간직한다. 당신은 기꺼이 흰 띠를 맬 수 있겠는가?-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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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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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우선 비(非)독서라 할 수 있다. 삶을 온통 독서에 바치는 대단한 독서가라 할지라도, 어떤 책을 잡고 펼치는 그 몸짓은 언제나 그것과 동시에 행해지는, 그래서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그 역(逆)의 몸짓을 가린다. 즉, 그 책 외의 다른 모든 책들, 어떤 다른 세상이었다면, 선택된 그 행복한 책 대신 선택될 수도 있었을 다른 모든 책들을 잡지 않고 덮는 몸짓을 가리는 것이다.-26쪽

교양을 쌓은 사람들은 안다. 불행하게도 교양을 쌓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나, 교양인들은 교양이란 무엇보다 우선 '오리엔테이션'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교양을 쌓았다는 것은 이런 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내부는 외부보다 덜 중요하다. 혹은, 책의 내부는 바로 책의 외부요, 각각의 책에서 중요한 것은 나란히 있는 책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책을 읽지 않았다는 건 교양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비록 그가 그 책의 '내용'을 정확히 모른다고 하더라도, 종종 그 책의 '상황', 즉 그 책이 다른 책들과 관계 맺는 방식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의 내용과 그 책이 처한 상황의 이러한 구분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양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별 어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덕택이기 때문이다.-31쪽

교양을 쌓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책들 속에 파묻히게 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자신이 창작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런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컨대,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내지 못한 아나톨 프랑스는 독서 때문에 망친 작가의 전형이요, 우리는 발레리가 그의 글을 인용하거나 그의 작품을 환기시키지 않은 것은 물론 그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으려 한 이유가, 그랬다가는 그 역시 바로 그런 자기 상실의 과정에 동참하게 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이해하게 된다.-49쪽

그렇다면 망각은 풍요화의 또 다른 일면이라 할 수 있다. 몽테뉴가 읽은 것을 서둘러 까먹는 것은 그것을 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 경우 책은 마치 어떤 비개인적인 지혜의 일시적인 수탁물일 뿐,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후, 즉 자신의 메시지를 양도한 후 곧바로 사라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망각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게 아니라고 해서 모든 문제들, 특히 망각과 결부된 심리적인 문제들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아무것도 기억 속에 고정시킬 수 없다는 사실에 따르는 고뇌-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해주어야 하는 일상의 필요성에 의해 더욱 더 가중된다-가 해소되지도 않는다.-80쪽

이상에서 보듯, 몽테뉴에게 있어 독서는 단순히 기억의 결함하고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독서에서 비롯되는 자아 분열에 따른 광기에 대한 두려움과도 연관되어 있다. 독서는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해줌과 동시에 탈(脫)개성화 작용을 발생시킨다. 텍스트의 어떤 내용도 고정시킬 수가 없으므로, 독서는 자기 자신과 합치될 수 없는 어떤 주체를 부단히 야기하기 때문이다.-87쪽

우리의 개인적인 여러 가지 전설들과 각 개인 특유의 환상들로 짜인 이 개인적인 내면의 책은 우리의 독서 욕망 속에, 다시 말해서 우리가 책을 구하고 읽는 그 방식 속에 작용한다. 이 내면의 책은 독자가 일생을 통해 추구하는 환상적 대상이다. 독자가 생을 통해 만나게 될 최고의 책들이란 단지 책 읽기를 계속하도록 그를 자극하는 이 내면의 책의 불완전한 조각들에 불과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작가가 하는 일이란 바로 자기만의 이 내면의 책을 추구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자신이 마주치는 책들이나 자기 자신이 쓴 책들-아무리 완성도가 높다 할지라도-에 대해서도 언제나 불만족스러워 하면서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부단히 추구하고 다가가지만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완벽한-다시 말하면 자신에게 부합하는- 책에 대한 그러한 이상적 이미지가 없다면 어떻게 글쓰기를 시작하고 또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겠는가?-121쪽

그래서 분신(分身)의 문제가 시냑의 소설에서 강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놀랍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책이라고 말하는 책을 자신의 책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도솅은 자기 분열 현상에 직면하고 있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작가들도 종종 사람들이 자신의 책에 대해 말할 때, 어떤 '다른 책'에 대해 말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분열은 우리에게 내면의 책이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이 내면의 책은 어느 누구에게도 전달될 수 없고 어떤 책과도 겹쳐질 수 없다. 우리를 절대적으로 독특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이 내면의 책은 우리 내면에서, 표면상의 모든 동의를 떠나 소통 불가능한 동일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137쪽

우리가 앞에서 열거한 다른 예들과는 역으로 구성된 이 <<사랑의 블랙홀>>은 복합적인 내러티브 장치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책에 대해, 즉 자신들 자체에 대해 상실하는 것 없이 의사소통을 하는 두 존재를 무대화함으로써 투명성과 충만함에 대한 환상을 제시하고 있다. 타자에게 깊이 각인된 책을 결국 자기 자신의 책이 될 만큼 세세하게 탐구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바로 문화에 대한 진정한 대화의 조건이자 내면의 책들이 완벽한 일치를 이루는 조건일 것이다.-147~148쪽

군데군데 유머가 돋보이는 상황들이 펼쳐지긴 하지만, 필이 리타를 유혹하기 위해 취하는 그 방식에는 뭔가 끔찍한 것이 있다. 그것이 언어의 비결정성 부분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타자'에게 끊임없이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들만 한다는 것, 언제나 정확히 그가 기대하는 존재이고자 한다는 것,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타자'로서의 그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타자 앞에 연약하고 불확실한 하나의 주체로 서기를 중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49~150쪽

결국 비평은 작품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때 자신의 이상적 형식에 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와일드의 패러독스는 비평을 매체가 없는, 혹은 매체를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버리는 자동사적 활동으로 만드는 데 있다. 뭔가를 다르게 말하고자 하는 비평의 대상은 작품-플로베르에게 어느 시골 부르주아라도 상관이 없듯이, 비평가에게는 어떤 작품이라도 상관이 없다-이 아니라 비평가 그 자신이다.-226쪽

비평은 영혼의 목소리요, 비평의 심층 대상은 바로 이 영혼이지 이 탐구의 매체로 쓰이는 일시적인 문학작품들이 아니라는 얘기다. 발레리와 마찬가지로 와일드도 문학작품을 하나의 장애로 여기지만 그러나 그 이유는 서로 다르다. 발레리에게 작품은 문학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 문학의 우연적인 한 현상일 뿐이다. 와일드는 주체를 비평 수행의 존재 이유로 여기는데, 작품은 바로 이 주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잘 읽는 것이란 작품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견해가 일치한다.-227쪽

독서의 패러독스는 자기 자신을 향한 길이 책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저 통과만 하고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각각의 책이 자기 자신의 일부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훌륭한 독자, 그런 독자에게 책들에 멈추지 않는 지혜가 있다면 아마도 그는 바로 그런 '책 가로지르기'를 행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가 발레리라든가 롤로 마틴스, 혹은 나의 학생들 같은 아주 다양하고 영감에 찬 독자들에게서 살펴본 것도 바로 그런 식의 가로지르기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개략적으로 알고 있거나 아니면 전혀 모르는 어떤 작품의 일부 요소를 파악하여, 나머지 내용에 개의치 않고 자기 고유의 성찰 속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시각을 놓치지 않고자 했다.-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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