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본격적인 결혼준비에 앞서 한바탕 책 정리를 했었다.
그 전에도 부지런히 사고 읽고 정리해온 터라 알라디너 세계에선 책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건만
그래도 내 방에서 이불 펴고 잘 자리를 확보하기 힘들 정도는 되었다.
대대적인 책 정리를 결심하게 된 건 새똥님의 절약글과 아래 책들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지식만 추구할 뿐, 진정 지혜로운 인간이 되지 못하는 내 모습에 신물이 난 게 컸다.
책 좀 버리고 더!더!더! 채우려는 탐욕도 버리고,
이미 머리로는 알고 이해하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에 집중해야 겠다 결심했다.
그래서 책을 분류하고 알라딘 중고샵에 부지런히 내다판 결과
친정집 내 방도 싹 비우고 (그 방은 올 가을이 되면 작은 올케가 옷방으로 쓸 예정이다 ^^)
부수적으로 신혼여행 다녀오고 선물 살 돈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고도 약 이백 권의 책(전공서적, 추억의 고시 수험서, 영어책, 사전류 등은 제외)이 남았는데
그 선에서 남은 책들이 하나같이 판단하기 애매한 책들이라 '아… 여기까지인가보다' 하며 작업을 관두었다.
그러다 지난 금요일, 무더위에 기진맥진 늘어져있다가 느닷없이 삘 받아 또 다시 책 정리에 돌입했다.
사진에 있는 책들은 팔 것으로 분류된 것인데 (버릴 책들은 이미 폐지상 불러 정리해서 사진에 없음)
다 정리하고 보니 남은 건 칠십 권 정도… 그 책들은 명전급이라 적어도 당분간은 버릴 일이 없을 것 같다.
꺼내기 힘들게 두 줄, 세 줄 겹쳐 쌓지 않고도 책장에 널널하게 진열할 수 있고
내가 가진 책을 한 눈에 쏙 들어올 수 있게 정리 가능하단 사실에 너무나 기쁘다!
예산짜면서 안방, 부엌 가구에 힘주느라 서재 가구는 따로 사지 않고 결혼 전에 쓰던 걸 그대로 들고 왔는데
책장은 어릴 때부터 쭉 함께 한 학생용 h형 책상세트에 붙은 5단 책장만 갖고 왔다.
(우리 나비를 위한 캣타워 기능을 탑재한 책장을 구입할 계획으로 적금을 들어놨다!)
그 동안 책들은 알라딘 박스에 담긴 채 벽장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젠 남기기로 한 책들로 여유있게 세 단을 채우고 (군데군데 소품도 장식하고~ ^^)
제일 큰 가운데 단에 A4/B4 파일들과 키다리 책을 세우고 표지 예쁜 책으로 꾸미고
나머지 한 단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과 정리할 책을 꽂아두기로 했다. (책을 사는 만큼 정리도 계속 할 테니)
-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푸른숲 98년판)> 뒷표지
뭐, 분류하면서 한 권 한 권 제목을 읽다보니 그에 얽힌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긴 하는데
어쩐지 그 모든 것이 지나간 일에 불과할 뿐 더는 열정의 대상일 수 없다는 단호한 마음이 고개를 치켜들더라.
이 지나간 사랑들을 억지로 지우려던 노력들이 헛짓에 불과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헤어질 시간임을 마음이 알려주는데 말이다.
그것도 이토록 쉽고 간단한 이별로 말이다, 하하하!
(책들을 문학/철학/예술/기타로 나눠 한 무더기로 쌓고 한 권 한 권 분류하는 데 세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더욱 가벼워졌다! *^0^*
ps. 지금처럼 비가 오는 날 옛 책들이 생각나면 알라딘 구매리스트를 참조해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으면 그만이다.
인근 공공도서관에 없어서 국립중앙도서관까지 달려갈 만한 정도의 열정을 일깨우는 책이라면 그때 다시 사면 되는 거고!
이미 품절/절판되어 더는 구입할 수도 없는 책이라면 우리의 인연이 거기까지였을 뿐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