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 내 삶과 세상을 바꾸는 페미니즘
김현미 지음, 줌마네 기획 / 반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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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선 전부 다 밑줄을 긋고 싶지만 ^^

그런데 이런 경험을 하는 여성들이 대다수이고 일을 쉽게 그만두지 않을 것이며 능력도 있다면, 우리는 이제 게임의 룰을 바꾸는 데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요? 구조화된 여성 불평등은 이미 여러분이 다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여성으로서 우리 삶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한순간을 만들어보는 것. 즉 삶의 미학화, 일상의 미학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가 조금만 더 흔들려보고 조금만 더 다른 방식으로 이동해보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일과 노동, 우정과 연대, 취향과 살림살이와 경제력을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잘 결합해서 자존감 있는 노동자가 되고, 활력 있는 일상을 꾸려갈 것인가를 논의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여성들의 일 경험이 이미 바닥을 쳤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바로 거기서 뛰어오를 수 있어요. 바닥에서 뛰어오르는 활력과 힘을 믿어보면서 일터와 삶터를 재배열하고 변화시켜보자고 제안합니다. - P86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선택지로서 탈근로주의는 미래의 판타지입니다. 흔히 우리는 현재 몸담고 있는 현실과는 매우 다른 미래를 통해서 희망을 갖거나 변하겠다는 다짐을 하죠. 저도 <효리네 민박>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유롭게 동물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며 사는 삶에 미래의 제 모습을 투사하기도 하지만, 이런 미래주의는 문제가 많습니다. 현재의 문제를 미래의 어떤 시점이나 희망적 이미지에 투사함으로써 현재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 행위이자 ‘바로, 여기서’라는 페미니즘의 직접행동주의 모토를 지속적으로 유보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래주의’로, 미래주의에 대해서는 차차 더 다루겠습니다. - P108

페미니스트로서의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적 대안들은 각종 미래주의의 불안으로부터 거리 두기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놀고, 무엇을 하며 여가를 보내고, 어떻게 자율노동을 하는지에 관해서 스스로 시간적, 공간적 재배열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능동적인 주체 감각을 어떻게 회복할까요?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고, ‘너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너는 일자리가 없어질 거야. 애 안 낳으면 국가가 얼마나 미워할지 알지?’라는 식으로 협박하는 사회에서 말입니다. 이 불안이란 딱히 가해자가 없어 보이지만 이미 정형화되어 있는 사회적 공포입니다. 특정한 사람이 날 때리거나 협박해서 불안한 게 아니라, 친구와 가족이, 미디어와 디지털 회로망에서, 국가와 기업이 끝없이 만들어내는 불안입니다. - P224

그렇다면 덜 소비하며 생겨나는 기쁨과 즐거움의 감각, 덜 파괴적인 생태주의적 전망 같은 것은 페미니즘에서 그저 유토피아적인 제안으로만 남겨지는 걸까요? 직접 밥을 하고 돌봄노동을 하면 젠더 억압을 환기하는 걸까요? 요즘 페미니스트들은 서로 간섭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일하려고 만났으니 일만 하고 ‘쿨하게’ 정리하자고 합니다. 삶의 재배열을 위한 이동이란 서로에게 시간을 쓰고, 서로를 봐주고, 돌보고, 위기 상황에서 상호 지원 체제를 가동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성해가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음식을 나누면서 인간 노동은 사라질 수 없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지털 테크놀로지 만능주의나 남성 중심주의적 리비도 경제와 거래하지 않으면서도, 생존 가능하고 창조, 분배, 소비가 가능한 먹고살기의 공동체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질문하고 싶습니다. - P225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은 상당 부분 소비자본주의와 연동되어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을 먹고 입으며 어떻게 나를 보여주느냐가 곧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선택이라고 보며, 소비자본주의를 통해 이를 실현하는 것이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이라면, 제가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은 살아냄과 살아내기에 더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라는 새로운 정체성의 획득에 기뻐하고, 이런 상태를 건강하게 지속하기 위해 어떻게 가치를 통합하고 연대를 모색하고 관계를 이어갈지 고민하는 생활 방식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여성 억압적 체제와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등에 의한 불평등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부정의(injustice)에 맞서 싸우고자 ‘사는 방식’을 바꾸고, 관계를 맺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을 페미니스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선택을 통해서 삶의 통합성을 이루려 하고,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고 노력해서 대안적 삶의 양식을 구성하려 합니다. 그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이를 달리 보면,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은 당사자에게는 정의를 건 싸움이지만 즉각적인 성취와 만족, 행복감을 약속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성 개인이 자신의 참조 체계라 여기는 주변 여성들 다수가 참여할 때만 집단적 흐름이 되어 가시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 P254

우리는 평생 내 옆에 있는 여성들을 ‘곁눈질’로 너무 많이 봅니다. 엄마도 보고, 딸 옷차림도 살피고, TV나 SNS로 여자 연예인도 보고, 동네 여자들을 보고, 길에서 스치는 여자들의 머리 모양이나 친구들의 화법도 살펴보지요. 그녀들은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때로는 정말 무관한 존재처럼 보이죠. 당장은 옆에 있다 해도, 가족 관계라고 해도, 현재 동료나 친구라고 해도 이 여성과 내가 미래를 함께 할 수 있을지, 우리는 같은 장소에 있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이런 고민들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이런 현실에서 이동해서 곁눈질이 아니라 ‘곁불’로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행위, 최소한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행위, 서로를 위안하고 공감해주는 행위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여성들 간의 관계를 재배열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익숙한 생각과 행동에 대해 먼저 떠올려보겠습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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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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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제정신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달라」
(2011년 12월 8일, 교토세이카대학 강연)를 요약한 기본 주기 21개 中

20. 우리는 예술에 의해 만들어졌고, 우리는 예술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예술을 펼칠 것이다. 고로 우리가 작품을 만드는 작업은 우리 아이들과 우리 부모를 동시에 구원한다. 이는 우리 부모들이 좋은 예술을 갖고 있으며,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예술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버팀목도 없는, 실로 위험천만한, 어떤 보증도 바랄 수 없는 도박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다.-181쪽

21. 우리는 강인하게 만들어졌음을 증명해야 한다. 제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앞 세대 중 일부가 비열하기 그지없는 자기기만에 빠져 이런 참화를 불러왔다 하더라도, 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증명할 수 있다. 이 대지진 이후에 뛰어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그것을 보고 후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지옥 속에서 그녀/그들은 이런 것을 만들었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문학이나 예술이 무력하다는 뻔한 말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우리는 훌륭하게 '제조'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를 만든 사람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작품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이 참화의 나날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음을.-181~182쪽

이미 파괴, 학살, 재난 이후를 살고 그 자의성과 나른함을 산다. 그 거부와 광기를 살고 죽음과 애도를 산다. 성性의 교분, 임신, 육아를 살며 동시에 그 위험을 산다. 찰나의 자기 '집'을, 전망 없는 가정을 살고 그 붕괴를 신경증적인 손길로 수선하는 나날을 산다. 즉 살아남는 것 자체를 산다. 그러나 이를 통틀어 낙천樂天으로, 기쁨으로 읊고 노래하며 춤춘다. 후루이 요시키치는 재난 이후의 영원, 우리의 짧은 영원을 쓰는 작가다.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읽혀야 할 작가다.-263~264쪽

(주석 153) "'아이들은 건강하지? 꿈속에서 들떠 노래하길래 왕생했어'라고 말하더니 쓰다듬던 등의 경련이 멈추고 미소가 떠올랐다. 밤새도록 두 여자아이의 톤 높은 목소리가 엉켜, 멀리서 들려왔다. 아이들을 부르고 싶지만, 방향은 물론 위아래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에선가 겨우, 비스듬하게, 여기에 누워 있는 몸과 아이들이 서 있는 평면이 교차하고 있다.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맘 놓고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도 만약 이쪽이 몸 움직임 하나라도 잘못하면 그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 공중에서 헤매는, 자의恣意에 가까운 이 장소를 한순간 한순간 유지해야 한다. 노래가 계속되는 한 영원도 두렵지 않다."-273~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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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쓰지 마라 - 하루보다 한달, 한달보다 1년이 중요하다
최영균 지음 / 모멘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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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는 마치 다시 보지도 않을 거면서 회의 시간에 습관적으로 무언가를 적는 직장인들의 회의 노트와 같습니다. 회의 때마다 쓰긴 쓰지만 그저 열심히 쓴 시간의 기록일 뿐, 삶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죠." (중략) "그건 아니에요. 가계부를 매일 써서 돈을 모으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다만, 매일 가계부를 써서 하루의 현금 흐름은 파악했지만 한 달의 현금 흐름, 그것이 모인 일 년의 현금 흐름은 놓쳤기 때문에 민주 씨는 돈을 꽤 모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러지 못한 거예요. 엄밀히 말하자면 못 모은 게 아니라 못 모으게 된 걸 파악하지 못한 거죠."-75~77쪽

"돈을 관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재무제표와 현금흐름표를 작성해서 순자산을 파악하고 매년 돈의 흐름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 관리의 핵심 포인트 두 가지는 첫째, 하루 돈의 흐름보다 매월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보다 매년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콩나물 값 아껴가면서 어렵게 만든 건강한 재정의 성이 이벤트성 목돈 지출로 한 방에 무너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입니다."-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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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 예찬 시리즈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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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떤 아름다운 음악가, 한 마리 우아한 말, 어떤 장엄한 풍경, 심지어 지옥처럼 웅장한 공포 앞에서 완전히 손들어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그와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우정은 함께 예찬하는 가운데서만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한계, 모자람, 왜소함은 눈앞으로 밀어닥치는 숭고함 속에서 치유될 수 있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말했듯이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신에 대한 우리의 불경을 위로해준다. 아니 이렇게 덧붙여도 좋으리라. 우리의 하찮음은 성서를 읽는 가운데 사라지고 우리의 외설스러움은 바티칸 궁전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몸들을 보면 육체적 사랑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폴 발레리의 <노트>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빛나는 지성으로 바꿔놓는다.-6쪽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이 고양이다. 주인에 대해서 철저하게 독립적이고, 다정하지만 그 애정을 매우 간헐적으로 표시하며, 까닭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졌다가는 신비스럽게 다시 나타나고, 책들과 잉크병 사이를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는 고양이야말로 작가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모든 자질을 골고루 갖추었다. 그 누구보다도 고양이에 관하여 탁월한 글을 쓴 사람은 바로 보들레르였다. 이곳에는 아주 많은 고양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그들의 독립성을 해치지 않았다. 고양이는 그냥 있을 뿐이다. 먹고 자고 어디론가 간다. '사제관 고양이'라기보다는 '동네 고양이'다. 우리 집에서 밤을 지내는 법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아침이면 어김없이 와서 나와 아침식사를 한다. 한 번에 꼭 한 마리씩이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패거리를 아주 싫어한다. 고양이를 불행하게 하고 싶으면 그에게 라이벌을 만들어주라. 당신의 고양이를 행복하게 하고 싶으면 그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라.-203~204쪽

천사들의 모든 기능들 중에서 음악이야말로 틀림없이 그들의 천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신비주의자 앙젤뤼스 슈와즐뤼스는 이렇게 썼다. '음악가 천사들은 신을 위해 의식을 집행할 때면 바흐를 연주한다. 그러나 천사들끼리 있을 때는 모차르트를 연주한다. 그러면 신이 문간에 와서 엿듣는다.'-268쪽

러시아 정교회는 자기들의 대표를 베들레헴에 보내지 못한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전설에 따르면, 러시아의 한 왕자가 선물을 잔뜩 가지고 길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먼 곳에서 출발한 데다가 길을 가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적선을 하게 되어 끊임없이 지체되는 바람에 그는 너무나 늦게, 그것도 수중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후 그는 33년 동안 예수를 찾아 헤매고 난 다음, 바칠 예물이라고는 오직 자신의 영혼뿐 가진 것이 없는 빈손이 되어 결국 성 금요일 날 십자가 아래서 겨우 예수를 찾아냈다. (…) 러시아의 눈 덮인 스텝 지대를 거쳐 순록이 끄는 썰매에 선물을 가득 싣고 길을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선물을 나누어주는 사람…. 동방 정교회의 신화가 만들어낸 이 네번째 동방박사의 초상,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찾는 산타클로스가 아닐까? 그가 이천 년 동안이나 아기 예수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서 그저 자신이 만나는 모든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을 잔뜩 나누어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 그것으로 그 인물 확인은 충분할 것 같다.-282쪽

우리 몸의 근육들은 휴식하기 위하여 하루 평균 여덟 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된다. 그중 단 한 가지 근육만이 이 불연속성의 법칙에서 제외되는데 그것이 바로 심장근이다. 이 근육은 일생 동안 쉬지 않고 박동한다. 그렇다면 이 근육이 절대로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근육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휴식할 것이다. 심장의 비밀은 그것이 두 번의 박동 사이의 아주 짧은 한 순간 동안 휴식한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심장의 휴식, 잠, 바캉스는 분산되어가지고 그것의 노동과 긴밀하게 뒤섞여 있는 것이다. 심장처럼 노동하라. 너무나도 재미있고 창조적이며 다양한, 그리고 특히 일상생활에 너무나도 잘 편입되어 있고, 노력과 성숙의 국면들이 너무나도 리드미컬하게 교차하는지라 그 자체 속에 휴식과 바캉스를 내포하는 그런 노동을 하라.-299~300쪽

그러니까 육체적인 노력은 그것이 유용하고 노동에 의해 요구되는 것일 때는 몸을 추하게 만들고 반면에 그것이 무용하고 스포츠에 속하는 것일 때는 몸을 아름답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새로운 발견이지만 그 단초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옛날 사람들은 운동선수의 고상한 몸짓과 노예의 작업이 보여주는 추한 모습을 대립적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운동선수의 몸이 햇볕에 쪼여서 황금빛으로 그을린 모습을 찬양하는 고대의 텍스트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눈에 띄지 않는다. 모파상도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어서지 못 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뱃놀이꾼들의 몸이 햇볕에 '검게 탔다'니까 말이다. 왜 황금빛으로 물든 것이 아니라 검게 탄 것일까? 역시 그 이유는 같다. 즉 그들은 의도적으로가 아니라 우연히 햇볕에 몸을 노출시켰을 뿐이기 때문에 검게 탄 것이다. 그들은 일종의 봉헌 행위인 진정한 일광욕을 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남자와 여자는 일광욕을 통해 저 거룩한 태양에 자신들의 몸을 봉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신령한 별은 청동상의 광휘를 그들에게 하사함으로써 그들을 축복하여준다.-307~308쪽

현실은 본래부터 천연색이 아니라 흑백, 다시 말해서 근본적으로 회색인 것이다. 현실에다가 색깔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들의 눈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눈은 회화에 의하여 이런 방향으로 교육받았기 때문이다.-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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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을 권하다
다카무라 토모야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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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퍼는 자신의 설계방식을 '뺄셈 스타일'이라 부른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며 원하는 걸 자꾸 보태고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먼저 적당한 집을 상상하고 거기에서 불필요한 설비나 공간 따위를 가능한 만큼 최대한 제외해나가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뺄셈 설계에 관해 설명하면서 생텍쥐페리의 문장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완벽한 디자인이라는 건 그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제거해야 할 뭔가가 없을 때 비로소 달성되는 법입니다."-29쪽

동서고금을 통틀어 지나치게 큰 집에 대해 뭔가 잘못됐다거나 의문스럽다는 말들을 한 사람은 많지만, 그 어떤 역사 속 위인의 말보다 셰퍼가 툭 내뱉은 이 말이야말로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올 것이다. "너무 큰 집은 집이라기보다 채무자의 감옥입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건 우주만큼의 크기가 아니라 자신이 책임을 갖고 관리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다. 평수가 얼마나 됐든 내 집, 나만의 우주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그곳에 광활한 세계가 펼쳐지는 곳, 그런 곳이라면 집의 크기는 중요치 않다.-61~63쪽

집으로 새로이 맞아들인 물건은 그것에게 자신의 소중하고도 제한된 공간을 나눠줄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과 생활을 함께할 정도로 가치가 높은 물건은 무엇인가? 대략 이와 같은 관점으로 바라보면 된다. 소유하는 공간 자체를 줄이고 쓸데없는 물건을 상대할 시간은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명심하라. 없으면 생활에 지장을 줄 만한 최소한의 물건과 진심으로 나와 함께하고 싶은 물건만이 마지막까지 남게 될 자신의 친구다. 이것이 바로 심플 라이프의 법칙이다.-66~67쪽

'소유한다'는 것은 곧 필요할 때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세상은 언제라도 거리로 나가면 필요한 서비스는 거의 모든 면에 있어 준비되어 있다. 개인이 반드시 소유해야 할 물건으로서의 의미가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상업 서비스나 공공 서비스에 적당히 의존함으로써 자신의 주변은 훨씬 더 가벼워질 수가 있다.-69~71쪽

윌리엄스는 스몰하우스에서 생활을 시작하고서부터 물건을 거의 사지 않았다. 그녀는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의 수를 정확하게 헤아려 그 수를 '300'에 맞추는 것을 규칙으로 하고 있다. 문구류, 옷, 책, 신발, 그릇 등 모두 합쳐 300개까지 제한을 둔다. 하지만 이는 친구들과 노는 마음으로 즐기는 일종의 게임 같은 것이지 강박적으로 하는 일은 아니다. 그녀는 게임의 룰에 따라 티셔츠도 한 장을 사면 한 장은 처분한다고 한다. 그녀에겐 물건의 수를 줄이는 일이 자유를 향한 길이었다.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쓸데없는 물건을 사러 가겠다고 나서지는 않겠지요?"-99쪽

셰퍼는 여러 곳을 거치며 스몰하우스에서 살게 된 동기를 묻는 질문에 그때그때 다양한 대답을 해왔는데, 아마도 다음의 '자기중심적'인 대답이야말로 그의 속내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집에 사는 주된 이유가 지구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돈을 절약하겠다는 실천적인 면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나는 그저 큰 집에 쓸 시간과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을 뿐이지요."-100쪽

기술과 지식은 틀림없이 진보해왔고, 우리는 지구가 몇억 년 동안 비축한 석유를 물처럼 사용하는 중이다. 그런데 인간은 왜 아직까지도 쉴 새 없이 죽어라 일을 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살아가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 외에 드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증가해왔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란 예컨대 물과 식량이고, 주거와 일용품이며, 정보와 교통 인프라 정비이고, 의료 시스템 확립 정도다. 거기에 모든 것의 근간을 이루는 교육과 연구 등이 있다. 그렇다면 '그 이외의 것'은 뭘까? 대표적인 것으로는 쓸데없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들 수 있겠다. 파친코나 슈퍼카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필요 이상의 음식과 제품, 필요 이상의 주거 공간, 필요 이상의 교통 인프라도 그렇다. 의료나 교육에서조차 본래 목적을 초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이런 것들을 뭉뚱그려 '사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129쪽

수요와 공급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조르는 이러한 경제는 차라리 '쳇바퀴'라고 표현하는 편이 어울린다. 풍요로워졌다, GDP가 늘었다, 돈이 늘었다고 하면 듣기야 좋겠지만 실제로 증폭하는 건 욕망과 시기심 그리고 지루하고 가혹한 장시간의 노동뿐이다. 쳇바퀴 경제는 일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욕망이나 시기심에 떠밀린 노동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없다. 이러한 모든 것을 '경제 효과'니 '소비 향상'이니 하며 좋은 것으로 취급하는 행태가 바로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람을 '활기차게' 만드는 것은 마구잡이 소비를 향상시키는 일이 아닐 것이다. 소비예찬론이 무조건 이야기의 결말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는 무엇에 의해 무엇을 목적으로 경제가 돌고 있는지가 중요해지는 시대다.-130~131쪽

보통 사람이 긴 세월 동안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얻어지는 자유를 누리려 할 즈음엔 그의 인생이 만년으로 접어들기 십상이다. 하물며 빚을 내서 물건을 사는 행위는 미래의 시간까지 구속하는 일이므로 아무리 호화로운 것을 산다 해도 그걸 자유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편 적은 돈으로 생활해내갈 궁리를 함으로써 자유를 획득하는 방식은 좀 더 현실성이 있다. 이 '경제로부터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돈 같은 건 많이 필요치 않다. 정작 필요한 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생활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기존 경제에 현혹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 그리고 그 이상의 짐이 되는 일을 자신의 생활 영역에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정신력뿐이다. 하지만 이 '얼씬도 못하게 하는' 일이라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다. 우리는 오락이나 사치 혹은 보통의 생활수준이라 불리는 '부담스러운 짐'을 태어나면서부터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필요한 순간이 와도 그 짐을 내려놓을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도 잦다.-138~139쪽

비행선의 곤돌라 안이나 지붕이 딸린 배 위, 호숫가 오두막 같은 공간에서 자기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만을 가지고 들어가 자신의 우주를 만들어 살고 싶다고 (적어도 어린 시절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가. 그런 상상 속에서는 작은 공간이나 얼마 안 되는 물건들과 더불어 활짝 열린 자신의 의식을 인식하면서 내가 이 세상의 주역이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라는 인간이 틀림없이 하나의 온전한 존재이고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이며 계속 변화하면서 나아가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실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 평온함으로 내 안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마주친 모든 것에 대해, 나와 마주쳤다는 단지 그 이유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 기쁨으로 내 마음은 꽉 채워질 것이다.-149~151쪽

시간이 없다거나 돈이 없다는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쳇바퀴 경제의 진짜 죄목은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교묘하게 지배하여 돈벌이나 소비에 관한 절대적인 예찬의 윤리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시기심에 불타 소비 행동으로 치닫거나,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한 톱니바퀴가 되거나, 그렇게 하여 손에 넣은 큰 차를 타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이런 것이 이 사회의 진짜 문제가 아닐까.-151쪽

어찌 보면 스몰하우스에 들어가는 건 동물로서의 육체보다 인간으로서의 정신 때문이다. 자신의 의식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을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만의 전용 우주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혼자만의 의식이 팽창하여 우주 전체에 닿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고, 그 우주에 마음껏 몰입하여 지낼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공간이 적당히 좁은 것이 좋고, 조종실처럼 몸에 딱 맞는 느낌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쓸데없는 물건, 낯선 물건이 놓여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손과 눈이 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쉽사리 남의 시선을 받거나 타인이 불쑥불쑥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어서도 안 된다. 스몰하우스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이처럼 폐쇄적인 공간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153~154쪽

우리는 어느 순간 내가 있는 바로 이곳을 중심으로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기억과 경험과 상상의 세계,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자유, 그리고 그것들을 묶어 한 인간으로서의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자아'라는 존재를 문득 깨닫는다. 동시에 그 자아를 억압하고 사고 형태를 획일화하려는 외부의 압력과, 내적인 세계 따위는 없다는 듯 내 주위에 접근하고 있는 거대한 사회의 존재를 감지하기도 한다. 그러한 사회에 항거하듯이 어린이는 종이상자로 아지트를 만들고 어른들은 스몰하우스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폐쇄적인 작은 공간을 통해 얻는 저 신기한 감각은, 보호받고 있다는 동물적인 이유보다도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나머지 평소에는 신경 쓰지도 않았던 자신의 의식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스몰하우스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154쪽

다이애나는 '생활을 단순하게 하기 위한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내게 있어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의도적으로 지워나가고 필요한 것만을 남기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이성이 이루어내는 업이지요. 또 하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으로 생활을 채우고 그 외의 것들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기를 기다리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이루어내는 업입니다." (…) 다이애나처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외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생활방식은 분명 이상적이고 누구나가 동경할 만하다. 반면 현실적인 사회 안에서 생활을 단순하게 하려면 자신을 바깥쪽에서 객관시하고 불필요한 것을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노력을 해야만 할 때가 종종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166~167쪽

우선 이 세상은 시작부터가 단순하지 않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온갖 물건과 정보, 규칙과 채무, 그리고 인간관계 등에 의해 뒤죽박죽이 되어 있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라고, 직관을 믿으라고 하지만 그 역시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속에서 단순해지려면 결국 하나하나를 자신에게 묻고 선별하는, 그런 이성적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단순함'이라는 개념에 유독 관심이 가는 때는 주로 자신의 생활이 복잡해지거나 쓸데없는 것이 눈앞을 어지럽게 하는 경우다. 그 '쓸데없는 것'을 끌어들인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런 자신의 가지와 잎을 일부러라도 자연을 향해 뻗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때로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허망함을 인정하고 부분적으로나마 과거를 놓아버릴 필요도 있다. 과거에 질질 끌려가지 않기 위해 자연적인 감정보다 이성을 우선하고 현재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것을 의도적으로 정리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167~168쪽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게 더 단순한 삶인지 모르지만, 인류의 그토록 긴 역사 속의 극히 부분적인 이데올로기 안에서 미련하게 춤추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는 속삭임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사후 세계가 있다고 믿고 사는 게 더 단순할지 모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건 가짜의 삶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말고도 이슬람교가 있다는 걸 알아버린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그리스도교만을 무조건 유일하게 믿으며 인생의 지침을 거기서만 찾아내기 힘들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범주의 지식을 넘어서 내가 보는 세상, 다시 말해 자신의 시야와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준별해나가는 과정은 사람의 성장 과정과 병행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이 태어나 자란 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다른 사람은 다른 집에서 마치 그곳이 우주의 중심인 양 자란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집을 그렇게 보듯이 그들은 나의 집을 지극히 익명적인 다수의 집 가운데 하나로 본다.-175~176쪽

(이어서) 그렇게 깨달은 것은 이윽고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로, 나라로, 지구로 넓어지면서 동시에 자신을 중심으로 한 주관적 삶에 대한 믿음은 약해진다. 생활을 단순하게 하는 하나의 목적은, 단순히 '생활한다'는 것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세계의 객관적인 모습과 그 세계 안에서 지금이라는 시대와 나라는 존재의 위치를 다시금 바라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바라는 '단순한 생활'은 이 세계를 단순하다고 믿어버리고서 거만한 얼굴로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단순하지 않은 복잡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서 세계를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삶이 아닐까.-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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