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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호랑이 - 저승이야기 ㅣ 우리 문화 그림책 12
김미혜 글, 최미란 그림 / 사계절 / 2008년 3월
평점 :
옛이야기인듯 하지만 옛이야기가 아닙니다. 옛이야기처럼 지은 동화입니다.
옛사람들은 모든 동물은 죽으면 저승에 가고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지요. 불교철학에서 출발해서 이미 우리의 고유의 사상 속으로 스며든 윤회사상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윤회에 대해 먼저 알고서 이야기를 읽어야 합니다.
이 책 속의 호랑이도 죽어서 저승사자에게 잡혀 저승으로 향합니다. 전래동화속에 나오는 오누이의 엄마에게 떡을 빼앗아먹고 죽인 후에 오누이마저 쫓아 하늘로 올라가다 썩은 동아줄에서 떨어져 죽은 바로 그 호랑이입니다.
호랑이는 저승에 가서 이승에서 어찌 살았는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모두 보았습니다. 다음엔 저승대왕들 앞에서 죄의 무게를 재는데, 죄값이 너무 무거워서 저울대가 휘청거릴 정도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의 가짓수만큼 벌을 받는 지옥 곳곳을 모두 들러야 합니다. 사람을 죽인 죄는 물이 설설 끓는 가마솥지옥에서 받아야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죄는 얼음지옥에서 받고, 거짓말을 한 죄는 혓바닥을 쭈욱 뽑은 뒤에 황소가 혓바닥을 쟁기질하는 벌입니다. 그 외에도 호랑이는 약한자를 괴롭힌 죄를 받는 칼산지옥, 남의 것을 빼앗은 벌을 받는 독사지옥까지 거친 뒤에야 겨우 마지막 심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생에도 호랑이로 태어난 호랑이는 이번에는 나무꾼한테 형님소리를 들은 착한 호랑이로 살아서 그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났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호랑이가 등장하는 전래동화를 흡수해서 이야기의 한장면으로 짜맞추면서 이야기를 유연하고 재미있게 펼쳐나간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고유정신을 생생하게 담아낸 점은 전래동화에서 느낄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그림과 글이 아주 잘 어울어진 것도 높이 살만합니다. 그림 역시 우리나라 사원들에서 볼 수 있는 시왕도나 감로그림이 보여주는 색채와 교훈을 잘 이해하고 차용하여 더욱 해학적이고 유쾌한 현대적인 일러스트로 발전시켜 재현해냈습니다.
그림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그림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동화 속의 주인공들입니다. 자세히 보면 저승지옥에는 동화책 속의 마음씨나쁜 주인공들이 다 있답니다.
드라큐라백작, 할머니 옷을 입은 늑대, 구미호, 백설공주를 못살게 군 여왕, 팥쥐엄마와 팥쥐, 돈을 훔친 도둑, 등에 '차카게 살자' 문신 혹은 용문신한 아저씨들, 나무주걱을 든 놀부마누라, 투명인간, 피노키오...동서양 전래동화 속의 주인공이 어떤 죄목의 지옥에서 벌을 받는 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답니다.
거짓말 하는 자들이 벌을 받는 곳에는 피노키오가 자신의 길어진 코를 톱으로 잘라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장면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수록한 윤회사상에 대한 설명과 윤회의 길인 육도 저승에서 사람들을 판단하는 열사람의 왕의 모습을 담은 시왕도 등에 대한 내용은 아이들이 전혀 접해보지 못한 좋은 내용인 것 같습니다.
참 오랫만에 아이가 킥킥대면서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재미있는 장면을 설명해주고 싶어서 몇번이나 엄마에게 책을 펼쳐들고 웃으면서 다가오는 책을 만났습니다. 참 훌륭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