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리즈카와 용산과 강정 그리고 ‘재현’ 그 사이 어딘가.
1. 강정
(전략) 무인도인 범섬과 제주월드컵경기장, 한라산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는 강정마을은 600여 가구에 1900여 명이 모여 사는 전형적인 농어촌 마을.
이 지역 주민들은 해군기지 논란을 지켜보다가 지난달 26일 마을 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다.
-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수용>, 《동아일보》, 기사입력 2007-05-15 03:01:00 기사수정 2009-09-27 08:27:39
제주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건설지역으로 결정된 5년 전 그 날 《동아일보》가 실은 기사를 보면 지금 강정마을을 뒤덮고 있는 “해군기지 반대” 깃발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을 총회”를 거쳐, “만장일치”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다면서 왜 뒤늦게 반대를 외치는가? 이런 의문은 위 기사와 현재의 상황 사이의 모순을 감안할 때 분명 합리적이다. 그리고 이 합리적 의문은 ‘전문시위꾼’이라고도 불리는 ‘시민단체’, 혹은 ‘종북좌파’ 세력의 공작에 의해 주민 일부가 반대를 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거나, 더 심하게는 주민들은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데 육지에서 날아들어온 ‘외부세력’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답으로 해소된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지식인 서비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답변이다.
<그림1> Ⓒ박건웅, <안보입니까?> 중 한 컷. http://ppuu21.khan.kr/146
그런데 <그림 1>은 이 “만장일치” “마을 총회”를 달리 그리고 있다. 만화는 “마을 총회”가 아닌 “마을회의”라 표현하며, 그 “마을회의”에 “80여명만이” 모여서 “2시간 만에 졸속으로 결정”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물음표를 머리 위로 띄운 “마을회의” 건물 밖 사람들도 그렸다. 이 그림과 《동아일보》 기사 사이에 꽤나 큰 거리가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물론 사실관계로만 따지면 둘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동아일보》가 말했듯 “마을 총회”는 열렸고, 그 회의 결과가 해군기지의 유치를 “만장일치”로 결의하는 것으로 나온 것도 사실이다. 단지 그 회의에 모여 만장일치로 결의한 사람의 수가 “1900여 명” 가운데 단 “80여명만”이었다는 사실을 《동아일보》가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의미상으로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림 1>이 추가적으로 제공한 정보로 인해 “80여명만”의 “만장일치”가 되면서 ‘강정마을 전체가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다’는 의미는 거부되고 만다. 마을 전체의 민의가 아닌 일부의 민의만이 반영된 결정이었음이 폭로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림 1>과 《동아일보》가 아닌 다른 자료들에서는 조금 더 자세한 내용도 발견할 수 있다. 마을 향약은 주민총회를 하려면 7일간 공고를 하도록 정하고 있으나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내린 총회는 고작 4일간만 공고를 했다거나(그러니 “마을 總회”가 아닌 “마을회의”인 것), 수시로 하게 되어 있는 안내방송도 몇 차례 하지 않았다거나, 공고된 총회의 내용도 ‘해군기지 관련 건’이었다가 정작 회의 때는 ‘해군기지 유치 건’으로 바뀌었다거나 하는.(<제주에 해군기지가 결정됐다?>, 《한겨레21》 제664호, 2007년06월14일) 이쯤 가면 《동아일보》가 “마을 총會”라는 표현으로 담으려 했던 의미, 곧 절차적 정당성까지도 부정되고 만다.
이제 마을의 ‘찬성’이 마을 사람들 일부만의 찬성임이 드러나고 그 과정까지도 정당하지 못했음이 폭로되니, ‘뒤늦은 반대’에 대한 의문은 더 이상 제기할 수가 없다. 의문이 정당하지 않으므로 그 의문에 대한 답이었던 ‘외부세력’의 개입을 주장할 논리적 개연성도 사라진다. 이런 논리적 선후관계를 따질 필요도 없이 《한겨레21》 기사의 내용을 주장한 인물이 마을 주민이니 ‘외부세력’ 운운은 기각될 수밖에 없지만.
2. 산리즈카
재현(re-present)된 것은, 재현되기 전의 실재(존재, presence)와 다른 무엇이 되고 만다. 문자든 그림이든,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이든 매체(medium)을 거치는 한 그 변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동아일보》 기사에서처럼 변이와 함께 정치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의미가 재현 과정에서 삽입된다. 마치 영화 <라쇼몽>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처럼, 우리는 말하면서 왜곡한다. 따라서 만약 ‘진실’을 추구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한 재현이 얼마나 실재에 가까운가를 확인하는 불가능한 작업이 아니라 재현(들)을 통해 실재에 최대한 근접하려 노력하는 심판관(<라쇼몽>의 마을 원님)의 태도일 것이다. 우리가 세 가지 재현들을 통해 강정마을의 회의에 담긴 진실을 어느 정도나마 확인했던 것처럼.
일본 산리즈카 마을의 공항건설 저지 투쟁을 담은 만화 <우리마을 이야기>(오제 아키라, 길찾기)는 이러한 재현의 문제를 뚜렷한 문제의식으로 담아낸 재현이다. 그 재현은 ‘진실’을 찾는 자에게 ‘진실일 수 있는’ 재현으로서 다가가기 위해 실재를 가정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마을 이야기>는 실재와 재현의 차이를 계속해서 그려내는 재현 방식을 통해 진실이 어디에 있는가를 드러내려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권력관계가 뚜렷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림 2>는 재현이 어떻게 실재를 대하는가를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화자인 소년 뎃페이는 마을 주민으로, 만화 속에서 실재로 가정된 인물이다. 만화 안에서만큼은 뎃페이와 마을주민들이 실재이자 진실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 뎃페이를 신문이 날아와 때린다. 그것도 입을 막으며 때린다. 실재의 발화를 막으며 실재의 현실을 재현하는 신문기사 제목은 통계적 수치와 분위기를 간결하게 전달하고 있다. 수치로만 존재하는 30%의 피폐한 삶과 반대 의지는 삭제한 체로, 현지 분위기가 “호전”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뎃페이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재현이다. 그에게 공항건설은 “기정사실”이 아니지만, 신문은 그렇게 전하고 있다. 뎃페이는 그런 신문을 손에서 놓아버릴 수밖에 없다.
(1-156~7쪽)
<그림 3>에 이르면 실재와 재현 사이의 간극은 더 확연하게 벌어진다. 반대동맹은 공청회에서 반대의사를 분명히 전했으며, 공청회 후 거리에서 반대 퍼레이드를 벌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신문기사는 공청회가 “무사히” 마쳤다고만 전할 뿐이다. 이 재현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재현 주체에 따라 “無事”에 담는 의미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의 입장에서는 몸싸움이 벌어지거나, 부상자가 나오는 일이 없으면 충분히 무사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일이다. 반대로 반대주민의 입장에서는 공청회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버린 것 자체만으로도 “무사”한 일이 아니며, 공청회 전후의 반대활동과 대표의 반대발언이 모두 “事”에 해당할 테지만 말이다. 이런 반대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공청회가 “무사”히 끝났다는 신문의 재현은 17쪽에 걸쳐 그려진 주민들의 공청회 전후 사정을 모조리 삭제해 버리는 허탈하고 폭력적인 일이 되고 만다. 공청회 전에 반대주민들은 공청회를 기대하며 들떴고, 방청석에 반대동맹원은 한 명도 들어갈 수 없게 된 사실에 분개해 항의했지만, 이런 모든 주민들의 이야기도 재현되는 과정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1-200쪽)
(1-204쪽, 1-206쪽)
1권의 이런 에피소드처럼 마을주민들의 실재와 신문 속의 재현을 대비하는 장면들이 <우리마을 이야기>를 관통한다. 온도 차이는 있다. 초반에 실재와 재현의 간극에 분노하던 인물들은 시간이 갈수록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기 시작하며 심지어는 이용하기까지 한다. 요컨대 자신들이 재현당하는 처지에 있음을 분명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재현하려 노력한다. 마을신문을 만들고, 선전지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과정들을 그려낸 <우리마을 이야기>는 그 자체가 재현의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재현의 폭력성을 재현해내고 있다.
산리즈카와 강정은 폭력적인 재현의 피해자라는 면에서 40여 년의 시간과 지리상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가까이 있다. 오히려 먼 것은 실재와 재현 사이의 거리이다. 196~70년대 산리즈카와 2천 년대 강정을 그린 동시대의 재현은 실재와 너무나 멀다. 언론의 보도는 시간적으로 사건과 가깝지만, 그 입장으로 인해 실재를 폭력적으로 재현하며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문정현 신부의 말대로, 산리즈카와 강정은 “너무도 똑같다.” 재현의 폭력에 희생당한다는 면에서까지도.
너무도 똑같다.
이 만화에서 그려지는 산리즈카 마을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나라 제주의 강정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너무도 닮았다. 아니다. 새만금과 부안 핵폐기장, 미군부대에 땅을 내준 평택 대추리에서 서울 용산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에 의해 고통받았고 또 지금도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로 그것과 다르지 않다. - 문정현 신부의 추천사 첫머리
3. 용산
<우리마을 이야기>의 재현 전략이 마을주민인 뎃페이를 중심으로 한 가정된 실재를 중심으로 하고 있음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이는 마을주민보다 우위에 있는 권력의 폭력적 재현을 비판하며 다른 재현을 도모하기 위해 취해진 선택이었다. <내가 살던 용산>(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 보리)도 주민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유사하다. 하지만 <우리마을 이야기>처럼 신문의 재현을 주민들의 가정된 실재와 부딪히게 만들며 대비하는 방식보다는 그저 철거민들의 삶을 재현하는 데 집중한다. 실재를 가정하며 언론의 재현과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달리 해 다른 재현을 펼치는 것이다. 크게 보아 이는 산리즈카 마을 농민들의 저항과 언론보도가 매우 긴 시간 동안 이어졌던 데 반해 용산 철거민들의 저항은 단지 ‘용산사태’로만 보도되었다는 차이에서 기인한다. 단 25시간 동안 펼쳐졌고 순식간에 불타올라버렸던 2009년 1월 20일의 용산사태 직후 재현된 언론보도는 대부분 남일당 망루를 배경으로 한 철거민들의 저항과 특공대의 진압, 그리고 그 모두를 종결시킨 화재 사건만을 다루었다. 반면 <내가 살던 용산>은 철거민 희생자 5인 한 사람 한 사람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사건 앞뒤로 배치하며, 폭력적 재현을 재맥락화 했다.
재맥락화 한 용산 철거민들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진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왜 희생자들이 망루에 올랐는가’ 하는 기초적인 사실이다. 희생자들이 철거민이 되기 전의 삶과 그 후의 삶 사이의 낙차를 통해 그 사실의 배경이 드러나고, 그들이 철거민으로서 져야 했던 경제적 부담과 용역과 경찰력으로부터 당해야 했던 물리적 폭력을 상세히 재현하는 것을 통해 그 불가피함이 설명된다. 언론이, 특히 보수언론이 ‘사건’만을 부각하며 외면하려 했던 삶을, <내가 살던 용산>은 용산에 살았던 사람들을 재현하는 것을 통해 복원해 내는 것이다. 그것이 없었던들 철거민 희생자들은 단지 대테러 임무를 주로 하는 경찰특공대에 진압당한 ‘테러리스트’이며 ‘폭력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 범죄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러한 재맥락화와 더불어 강조해야 할 것은, <우리마을 이야기>와 <내가 살던 용산>이 함께, 종결된 줄만 알았고 이미 모든 재현이 마무리된 것만 같았던 대상들의 사연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 만화들은 언론보도로 인해 은폐되는 것으로 끝났을지 모를 국가와 사기업의 이미지와 탄압당한 자들에 대한 이미지를 다시금 들여다 볼 수 있는 대안적 재현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특히 <내가 살던 용산>이 아니었던들, 국가 폭력은 그 가공할 위력을 뽐내며 보통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했을 테지만, 또 사기업의 용역 폭력은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을 것이지만, 이 만화 덕에 국가 폭력의 부당성과 사기업 폭력의 치졸함이 부각되어 일반 사람들의 입방아를 탈 가능성이나마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서울인권영화제 폐막작이었으며 극장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영화 <두개의 문>도 ‘테러범’으로 판결이 나버린 망루 위 철거민들과 ‘대테러’ 작전을 펼친 경찰특공대의 25시간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권력자의 재현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그와는 다른 재현을 제공하는 일이며, 재현물을 보는 독자들이 ‘진실’에 다가설 숨통을 틔어주는 일이다.
<두 개의 문>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2_doors
4. 다시 강정
어떤 비극적 사건으로 일단락이 나지 않은 강정은 여전히 폭력적 재현 아래 현재진행형이다. 강정에 대한 폭력적 재현의 주체들은, 심지어는 재현하지 않는 폭력까지도 일삼고 있다. 지금 강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하는 ‘비재현’의 폭력은 강정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면서 진행되어 온 시공사의 불법‧탈법과 용역의 광포, 공권력의 과잉진압 등을 은폐한다. 강정이 이슈가 되지 못하게 하여 사람들이 강정에 힘을 보태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천부터 차단한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에서도 강정 사람들은 사진과 SNS와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강정을 재현해내고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산리즈카가 시대적으로 누리지 못했던 혜택을, 용산이 공권력의 급작스러운 투입으로 인해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던 대안을 강정은 누리고 시도하고 있다. 가능성은 열려있는 가운데, ‘만화’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강정은 또 하나의 큰 가능성을 껴안고 있다. <우리마을 이야기>와 <내가 살던 용산>이 모두 산리즈카와 용산에 연대한 작가들에 의해 뒤늦게 만화로 재현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강정의 만화적 가능성은 특별하다. 사건이 끝나고 나서야 재현되었던 다른 두 지역과 달리 현재 많은 웹툰 작가들이 강정에 연대하고 있는 것(<그림 6, 7>(<"구럼비 발파 안돼", 만화가들도 화났다>, 《머니투데이》, 입력 : 2012.03.07 19:13)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도 물론 고무적이지만, 다른 엄청난 강점이 강정에는 있다.
<그림 6> 출처: 김한조씨 블로그(http://sanchokim.khan.kr/123)
<그림 7> 출처=강풀씨 트위터(@kangfull74)
바로 강정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몸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만화가가 넷이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 두 명은 이미 프로로 활동했던 만화가와 에니메이터이다. 이들, 고권일과 김민수는 그들이 직접 겪은 일을 각각 만화와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낼 계획이라고 하니, 그들의 재현이 선사할 진실이 기대된다. 하루빨리 강정의 투쟁이 승리로 마무리되어, 투쟁하느라 만화 그릴 여력이 없는 강정 만화인들이 작품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강정에 이미 한쪽 발을 들여놓은 나도, 그 날이 오면, 늘 재현당하기만 하던 실재들이 스스로를 재현하는 즐거운 일을, 기꺼이 비평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