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012년 3,4월호 신간 소개
<오늘>에서 책 소개를 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은 딱딱한 글투를 고집했는데요, 새해를 맞으면서 뭔가 변화를 주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1‧2월호는 12월에 마감이니까, 정작 글 쓰는 저는 새해 맞는 기분도 안 나고 해서 그냥 그대로 갔어요. 허나, 이제 3‧4월호에서는 꽃피는 봄을 맞는다는 핑계와 함께 좀 부드럽게 써보려 합니다. 독자분들 반응이 좋으면 계속 부드럽게 가려고요. 오홍홍.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 2
CBS 기획 | 생각을담는집
문체를 바꾼 만큼, 첫 책도 뭔가를 ‘바꾸는’ 걸로 소개할게요. 원래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은 기독교방송 CBS에서 기획하는 강연 및 방송 프로그램 제목입니다. 줄여서 <세바시>라고 하죠. 열정과 끈기, 또 새로운 생각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분들을 모셔서 15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인데요, 이걸 책으로도 묶어 내고 있습니다. 저는 1권은 읽지 못했고 이번에 출간된 2권부터 읽었어요. 홍세화(<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박총(<복음과 상황> 편집장, <욕쟁이 예수> 저자), 하종강(노동운동가) 등 23인의 이야기가 마치 풍성한 뷔페처럼 펼쳐진 <세바시> 2권을 읽고 나니, 세상엔 아직 멋진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GO 운동가, 사회적 기업 대표, 예술가, 학자 등의 생생한 이야기가 언론에서 주로 만나는 별로 멋지지 않은 사건·사고 이야기와 너무 비교되는 거 있죠. 그래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마냥 <세바시>에 더 푹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글로 읽는데도 강연자가 얘기하는 걸 직접 듣는 듯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고, 맘에 쏙 드는 꼭지는 첨부된 URL 인터넷 주소와 QR코드를 통해 동영상으로 만나기도 했어요. 영상과 비교해 보니 책은 더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면이 좋았어요. 어쨌든 책으로든 영상으로든 꼭 맛보시길 바랍니다. 짧고 강하게 그냥 “강추”합니다. <세바시> 뷔페 메뉴 중 반 이상은 정말 맛나서 감동하실 거예요.
떠날 수 없는 사람들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심흥아, 유승하, 이경석 | 보리
앞서 소개한 책은 “세상을 바꾸”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그런데 그들은 왜 “세상을 바꾸”려 할까요? 가장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이유는 세상에 ‘바꿀 구석’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이 ‘바꿀 구석’은 ‘이상’과 ‘현실’을 기준으로 발견됩니다. 정말 좋은 무언가가 있어서 그 이상적인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을 수도 있을 테고요, 현실이 너무 지옥 같아서 바꾸고 싶을 수도 있을 테지요. 둘은 얽혀 있어서 명확히 나누기는 어렵지만, <세바시>는 전자에 해당하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힘차고 희망차죠. 꿈꾸는 사람들을 보니 기분도 막 좋아지면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져요. 그런데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반대의 이유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집니다. 이 책은 ‘또 다른 용산,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만화 모음집이에요. 여기 참여한 만화가들 중 다수는 <내가 살던 용산>이라는 제목의 책에서도 용산 참사를 만화로 그렸던 분들인데요, 이번 책에서는 재개발 상황 속에서 고통 받는 다른 지역민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그렸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용산 참사’는 재개발로 인한 여러 갈등과 문제가 돌출된 한 부분일 뿐이란 거죠. 만화를 보니 고양시 덕이동, 부천시 중3동, 성남시 단대동 등 여러 재개발 지역들이 용산과 닮은꼴이더군요. 이 닮은꼴이 가장 비극적인 경과를 밟으면 지역 이름 뒤에 ‘참사’라는 꼬리말이 붙게 될 테지요. 이 책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막자’고,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자’고 그림으로 말하는 듯합니다.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바꾸자고 하는 대신에 지금도 어딘가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우리 이웃의 아픔과 괴로움을 그림 속에 담아내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콩고, 콩고
배상민 | 자음과모음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도 비슷한 맥락에서 얘기해 볼 수 있어요. 앞의 두 책이 논픽션인데 반해 이번 책은 픽션이라는 차이는 있죠. 하지만 이건 읽기에 따라 큰 차이가 아닐 수도 있어요. 허구도 실제 세계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서는 탄생하지 못하니까요. 아무리 <콩고, 콩고>가 서기 1만년을 무대로 해 막을 여는 SF 소설이라 해도 작가와 독자가 사는 실제 세계가 집필과 독서 과정에 끊임없이 개입할 수밖에 없죠. 특히 <콩고, 콩고>의 작가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SF의 얼개를 빌어 현대 세계의 인간사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소설 이야기는 길게 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짧게 배경과 인물에 대해서만 말씀드릴게요. <콩고, 콩고>는 크게 두 시대, 즉 2000년대 전후의 현대 세계와, 그 8000년 후의 미래 세계를 오가며 진행됩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2000년대 전후의 현대인들이지요. 단, 평범한 현대인들은 아니에요. ‘부’와 ‘담’은 그들 스스로 진화된 인류라고 믿고 있는 꽤나 부담스러운 아이들이거든요. 김연아 같은 체형의 ‘부’는 유서 깊은 사창가 집안에서 태어난 똑똑한 여자아이고, 아이큐 테스트를 할 때마다 78을 기록하는 머리 큰 아이 ‘담’은 미혼모의 아들이에요. 창녀의 딸이라고 또 바보라고 세상에 왕따 당하는 이들 ?‘담’과 이‘부’는 작당하여 세상을 왕따 시킵니다. 체형부터가 미래 인류의 형상을 한 그들은 마치 영화 <X맨>의 돌연변이들처럼 진화한 미래인류이니 보통 사람들과는 ‘종種’이 다르다나요. 과연 더 진화한 이들 ‘담’과 ‘부’는 세계를 어떻게 바꾸려 할까요? 소외된 이들의 입장에 서서 ‘바꿀 구석’에 대해 ‘현실’과 ‘이상’ 어느 한 쪽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입심 좋게 이야기하는 소설, <콩고, 콩고>입니다. 가볍게 읽는데 가슴은 무거워지는, 쓴웃음 나는 경험도 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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