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의 소설이 세련되지 않았던 순간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이천년대 초반에 데뷔한 작가는 2013년에 이르기까지, 항상 최첨단 감성을 유지했다. 1994년, 반포로 돌아간 정이현의 소설은 그 시절, 끝내 헤어져야만 했던 세 친구의 우정에 대해 더는 뺄 것이 없는 날렵한 문장으로 치밀하게 고증해낸다.

 

   1994년 김일성이 죽었다. 폭염으로 인해 3384명이 죽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을 살았다. 스무살이 되려면 1997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세 아이들, 졸부의 손녀이자 결손가정의 딸인 세미와 무엇이든 기억하는 아이 지혜, 뚜렛 증후군 때문에 반복적으로 욜설을 내뱉는 아이 준모. 이들은  '모종의 비밀'을 나누고 그 시절과 작별하기까지, 애틋한 우정을 이어나간다.

 

  "이 한해가 지나면 준모와 지혜 그리고 나는 정말로 먼 타인이 될지도 몰랐다."(215쪽) 아름다운 시절에도 기어이 끝은 찾아오고, 대부분의 끝은 어떤 기미도 없이 급작스럽게 다가온다. 이후, 한때 친구였던 그 애의 삶은 조각난 이미지로 전해진다. 강남역의 나이트클럽에서 술에 엉망으로 취해 마스카라가 번진 얼굴로 거울을 보고 있었을 세미, 국산 중형차에 놓인 카시트를 의아하게 보는 지혜에게 "여섯살이야, 이제 주니어용으로 바꿔주어야 하는데 내가 게을러서..."(224쪽)라고 말하며 머쓱해했을 세미. 세미와 지혜 사이, 불현듯 찾아오는 간격을 상상하면 마음이 아프다. 정이현의 이미지들은 세밀한 재현으로 애틋한 정조를 재생시킨다.

 

자신만은 특별한 사람인줄 알았던 소년소녀는 오래지 않아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삶은 특별하지 않고, 그래서 썩 슬플 것도, 기쁠 것도 없는 거라는 걸. "유년 시절엔 누구나 한번은 상상해보았을 것이다. 나의 탄생이,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위태로운 비밀에 연루되어 있을지 모른다고."(정이현, 21쪽)라고 서술했던 소녀가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김애란, 비행운 중 <서른>)라고 중얼거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나날을 세미처럼, 지혜처럼, 준모처럼 곱씹어야 했을지를 상상하면 쓸쓸해진다. 그러나 세미와 지혜가 그랬듯, 다들 살아갈 것이다. 계속. 소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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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 숙녀의 기분



  이 시집 속 풍경, 굴욕은 도처에 있다. “<On Style>채널이라면, 안약이랑 감자칩만 있으면 되니까, 말도 못 하게 머리가 아플 정도로 들여다볼 수도 있는데” (24시간 열람실) 현실은 도서관이다. 불철주야 공부하면서도 너무나 아름다운, 진정한 숙녀들을 보며 ‘열폭’하기도 하고, “점심은 가방이랑 먹어요 오늘은 아무도 날 몰라봤으면” (학생식당) 하고 간절하게 빌어보기도 한다. “내일은 버스를 타고 더 먼 숍으로 가자 갖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행복해”(나의 여학생부) 탐욕마저 애처로운 소녀의 중얼거림은 또 어떨까. 세련되고 구차한 삶이 가능할까. 블로거 인기 아이템과 케이블티브이 핫스폿을 찾아다니면서 소셜커머스와 할인쿠폰을 놓치지 않는 영리하고 쪼잔한 삶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그러나 이 시집,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경쾌하고 당혹스럽고 졸렬하고 창피한 순간. 젠틀맨과 숙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굴욕플레이를 주고받는다.

  “내가 시험 떨어졌다고 이러는 거니?” “그러지 말랬지 그런 마이너스 사고방식” 어린 연인들의 대화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기숙사 커플) “이 술 마셔. 그래야 날 이해할 수 있다.” 허섭스레기 같은 멘트를 쏟아대며 나를 쏘아보는 남자, ‘선생님’을 보며 그의 타버린 토스트 가루 같은 블랙헤드를 세어보는 (쉽게 질리는 스타일) 희극적인 풍경은 어떨까. “나는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렸어 발레파킹 아저씨도 나한텐 안 이래”(기대)라고 무심한 남자친구에게 쏴댄 후, 미안하다고 내 이름을 부르며 외치는 남자를 두고 느끼는 낭만적인 기분. 만국의 소녀들은 스스로 굴욕을 생산하고, 그 수치스러움이 곧 사랑스러움의 원천이 된다.


  그들은 진실게임을 한다. 구직활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차이고, 또 차고, 다시 연애를 시작한다. 우리라는 ‘거룩한 속물들’의 부끄러움의 풍경을 기록한 이 시집. “큐티 큐티 큐트 샤라랑” 과장된 어법이 일상을 위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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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청소년문고 자료집의 일부를 발췌해 <파란 아이> 속 작가의 더 깊은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창비청소년문학 8

완득이

김려령 장편소설


영화화에 이어 뮤지컬까지! 

60만 독자를 웃기고 울린 

활력만점 도완득의 청춘일기





『완득이』 속 말*말*말


똥주한테 헌금 얼마나 받아먹으셨어요. 나도 나중에 돈 벌면 그만큼낸다니까요. 그러니까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이번 주에 안 죽여주면 나 또 옵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정윤하가 울었다. 손수건을 꺼내 코를 풀고, 코를 푼 손수건을 반 접어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가방에 넣었다. 안 버리고 또 쓸 생각인 모양이다. 생각보다 더러운 애다.



정윤하가 나를 뭐 하러 좋아해. 아이, 자꾸 신경 쓰이네. 하여간 똥주. 오는 길에 보니까 구름이 다 찢어져 있던데. 괜히 우습네. 무슨 구름이 찢어져 있냐. 구름은 원래 뭉쳐 있는 거야. 이히히. 원 투, 원 투 쓰리, 투 원 투, 원 투 원 투, 원 투 쓰리 포. 원 투, 차차차. 쓰리 투, 차차차.



나는 싸움을 싫어한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리지만 않았다면 싸우지 않았다. 그건 싸움이 아니었다. 상대가 말로 내 가슴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고, 나도 똑같이 말로 건드릴 자신이 없어 손으로 발로 건드렸을 뿐이다. 상처가 아물면 상대는 다시 뛰어다녔지만 나는 가슴에 뜨거운 말이 쌓이고 쌓였다.



“한 번, 한 번이 쪽팔린 거야. 싸가지 없는 놈들이야 남의 약점 가지고 계속 놀려먹는다만, 그런 놈들은 상대 안 하면 돼. 니가 속에 숨겨놓으려니까, 너 대신 누가 그걸 들추면 상처가 되는 거야. 상처 되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니 입으로 먼저 말해버려.”



“완득이 봐라. 신체조건, 욱하는 성질, 주변 환경, 어디 하나 조폭으로도 모자람이 없다. 낫 놓고 기역 자는 몰라도 낫으로 지를 줄은 아는 천부적인 쌈꾼이 될 것이다. 잘 되면 나 잊지 마라.”





선생님이 읽은 이 책


나도 똥주 같은 선생 되고 싶다


재밌다. 우스워 죽겠다. 만화 보는 기분이다. 아니다. 영화다. 인물들이 살아서 펄떡펄떡 내 앞에 나타난다. 이뻐 죽겠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재미만 아니다. 가슴에 ‘쿵’ 내려앉는 무엇이 있다. 늘 변두리를 떠돌아야 하는 가난한 우리 이웃들과 이들보다 더 아픈 외국인 노동자의 삶, 이들과 함께 신명 나는 판을 벌이는 똥주…… 그러나 우리의 학교에는 똥주가 없다. 아예 존재가 불가능할 것이다. 완득이도 없고 정윤하도 잘 없다. 그렇지만 꿈도 못 꾸나. 그 꿈이 살아나길 바라지도 못하나. 그렇게 바라다 보면 진짜 이런 사람들이 학교에 생겨날지. 그래서 살맛을 찾아갈지.


하지만 현실은 살벌하다. 달라진 교육부가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썩 나타나 점잖게 말한다.

“0교시, 심야 보충, 우열반, 너거 알아서 다 해라. 이름 하여 자율이다.”

이런 썩을 데가 있나. ‘자율 학습’에 속아 묶여 있은 지 십 년에 또 자율이라고? 자율이란 이름으로 경쟁만 시켜 놓으면 알아서들 죽자고 뛰어갈 테니 자기들은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다 이 말이지.

교직 삼십 년. 오매불망 우리 아이들과 살맛 나는 학교 만들고 싶었다. 싸우기도 하고 기도도 했다. 그러나 될 듯하다가는 도루묵이 되고, 다시 살아날 듯하다가는 쓰러지고 말더니, 급기야 이젠 구렁으로 내몰리고 있다. 참담하다. 어디서 힘을 얻나. 이런 중에 완득이를 만났다. 아니 나는 똥주를 더 반갑게 만났다.

쓰는 말투 하는 행동이 어쩜 이렇게 리얼하면서도 멋있냐. 똥주 같은 담임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아주 사실적이고도 바람직한, 꿈에 그릴 만한 선생 모습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담임들 좀 많았으면 얼마나 세상 밝아졌을까. 작가는 아주 아름다운 선생 하나 탄생시켰다.


나도 똥주 같은 선생 되고 싶다. 그런데 나는 이미 꼰대 냄새가 난다. 따라 하려고 해도 안 된다. 자꾸 근엄해진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이러니 될 일도 안 된다.

완득이 같은 제자 하나 만나면 원이 없겠다. 그런데 요새는 다들 스스로 공부 기계가 되겠다고 앞장선다. 아니면 스스로 자기를 죽여 버린다. ‘나 같은 놈이 뭘 해! 대강 살다 가는 거지.’ 이런 식이다. 깡다구가 없다. 아이들은 청춘을 다 바치고 어른들은 등골을 다 바쳐 아등바등했지만 결과가 이렇다. 학교 현장 문제 가운데 가장 큰 일이 이거 아닌가? 그런데 『완득이』에서는 이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작가에게 부탁한다. 다음에는 0교시에 죽어나는 아이들, 심야 보충에 허덕이는 아이들, 우등반 열등반으로 갈려 신음하는 아이들 다 데리고 나와 한바탕 썰을 풀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그렇게 짓밟혀도 어떻게 살아나는지. 또 똥주 같은 담임 만나 어떤 힘을 얻는지. 그들에게 바싹 다가서서 그 마음 헤아려 보기 바란다.

이 책, 어른들한테 주자. 어쩌면 어른들이 더 좋아할지 모른다. 자기들이 지나온 고등학생 시절, 잃어버린 청춘을 다시 생각하면서 내 아이한테는 청춘을 돌려주자, 대오 각성할지도 모른다. 선생들 반드시 읽어야 한다. 똥주 같은 담임한테 배워야 한다.


우리 아이들 이 책 읽고 뭐라고 할까? “이런 똥주 같은 담임이 어딨어요. 이건 딴 나라 얘기예요. 이런 꽁이 어딨어.” 이럴까? 이러면서도 똥주를 기다리게 될 거다. 아니면 스스로 똥주로 나설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1920년대 30년대 소설 골라 주며 “여기서 시험 문제 많이 나와. 읽어!” 협박하지 말자. 꼰대들의 인품 잡는 교훈도 제발 그만두자. 어른들 언제 아이들 마음으로 생각해 봤나. 늘 자기 말만 옳았지. 정해진 길만으로 따라가자 윽박질렀지. 이러니 아이들은 죽을 지경이다.

이제 아이들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자기들 세상 얘기에 재미 붙이고 난 뒤 고전을 읽게 되면 옛 어른들 이야기에서 또 다른 맛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아, 옛날 어른들은 우리와 달리 이런 생각을 하였구나.’ 하고 소통하게 될 것이다. 요즈음 아이들의 삶을 싹 무시하고 고전만을 들이밀며 “보약이니 먹어.” 하는 식의 독선, 이제 그만두자. 

-부산 양운고 교사 이상석








창비청소년문학 15

나는 죽지 않겠다

공선옥 소설집


씩씩하고 명랑한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소설가 공선옥의 응원!






작가가 말하는 나의 청소년기


얘들아, 방황 좀 해라 


아무리 돌아봐도 내게는 사춘기가 없었다. 나는 사춘기라는 말도 모르고 사춘기를 지났다. 부모는 너무나 먹고살기가 바빴고, 자식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는 생존을 위한 돈을 버는 데 아버지의 모든 역량을 다 바쳤고, 어머니는 우리에게 신경 쓰기에는 너무나 힘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 혼자 컸다. (그리고 모든 자식들은 다 저 혼자 컸다고 말한다.) 정말로 나는 나 혼자 큰 것만 같다. 특히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는 말이다. 


나는 정신적으로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정신적인 갈급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시골 중학교는 책도 없고 문화적인 그 무엇도 접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그 선생님들 가운데 한 분이 내게 도시의 집에서 책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책다운 책을 구경했다. 그것은 시인 고은이 쓴 『이중섭 그 예술과 생애』라는 책이었다. 그 이전에 나의 독서 이력은 참으로 빈약한 것이었다. 교과서 이외에 기껏해야 『새농민』 같은 마을회관으로 오는 잡지를 읽은 게 전부였다. 나는 늘 집에 오면 부모님이 일하고 있는 논으로 밭으로 나도 일하러 갔다. 친구들 중의 몇몇이 연애를 하는 것 같았으나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무념무상으로 학교를 다니고 일을 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니 정말 내가 그때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늘 불안해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 집의 간당간당한 생계가 불안했고,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나의 존재가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늘 침울했던 것 같다. 말도 없이 말이다. 고등학교 때 나는 방황했다. 시골 아이가 도시에 오니 적응하기도 힘들뿐더러 집안의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나는 공부는 거의 하지 않고 뒷골목을 헤매며 돌아다녔다. 책 살 돈이 없어 책도 읽지 못했고, 그때는 이미 하도 책하고는 거리가 멀어져서 책에 대한 갈급증도 잊어 먹어 버렸다. 대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나는 주변의 껄렁껄렁한 아이들 뒤꽁무니에 붙어서 시내를 배회하고 다녔다. 한번은 그 애들하고 기차를 타고 보성 벌교까지 간 적도 있다. 그 애들이 어쩌다 폭력 사태에 연루되는 통에 나까지 경찰서에도 갔다.


내가 고등학교 때 방황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가난과 정치적 혼란 때문이었다. 우리는 분명히 ‘살인마’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인 것이 나는 참 이상했다. 그리고 세상이 이상했다. 나는 정말로 우리나라 같은 나라가 끔찍하다고 여겼다. 


우리 부모님은 백날 뼈가 빠지게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방황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사는 건 참으로 암울하고 슬펐다. 중학교 때 나는 내게 책을 가져다준 선생님의 영향으로 곧잘 글을 쓰기도 했다. 거의가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과 노동에 대한 헌사였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사계절에 대한 묘사다. 봄이면 불태운 저수지 둑에서 뽀얀 쑥이 돋아나고 그 쑥을 뜯는 내 마음을 적고, 여름이면 고구마 밭을 매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거기 미루나무 이파리가 팔랑거리는 것이 아름다웠다, 라는 식의 글을 써서 식구들이 돌려 가며 읽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가면서 나는 자연과 노동으로부터 멀어지고 도시의 뒷골목 문화에 빠르게 흡수되어 버렸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내 절친했던 짝이 나중에 광주 운천저수지에 투신했다. 아버지는 진압군 책임자였고 오빠는 시민군이었다. 나는 대학을 가긴 갔지만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아서 학사 경고를 받았고 곧 휴학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대한민국에서의 내 정규 학력은 끝났다. 이후에 나는 고속버스 안내양으로도 일하고 잡다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는데, 그러면서 나는 세상과 사람을 배웠다. 내 친구는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읽으며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최초로 하고 인간이 무엇인지를 배웠다고 하는데, 나는 책 한 권 읽지 않고도 대충 인간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에게는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 담배도 뻑뻑 피우면서 인간과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 핏대를 올렸던 한 시기가 있었다. 어느 한시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은 때가 없었는데도, 나는 희한하게도 한 번도 진실로 생계를 걱정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걱정은 안 하지만 늘 배가 고팠던 건 사실이다. 중학교 때는 삶의 고달픔을 자연 속에서 위안받았지만 고등학교 때는 위안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연탄이 없으면 냉골에서 이불 뒤집어쓰고서 잘지언정 시골집에 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떠날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돌이켜 보면 청소년 시기의 경험이란 그 어떤 경험도 다 쓸모가 있는 것 같다. 공부도 그렇거니와 방황도 그렇다. 학교 공부만이 공부는 아니다. 그 시기에는 거리에서의 경험도 얼마든지 공부가 된다. 나는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학교에서 배운 공부는 이미 다 까먹어 버렸다. 그러나 거리에서 한 공부는 지금도 생생하다. 보따리에 수세미를 가지고 다니며 팔았던 적도 있다. 나는 그것이 재미있었고, 돈을 벌어 쌀을 사고 동생 운동화를 사 준 게 보람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래서 청소년 시기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왜 그 소중한 청소년 시기에 공부만 하고 있느냐. 아깝다, 아까워. 소설가 공선옥







창비청소년문학 16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장편소설


당신에게도 

되감고 싶은 시간이 있습니까? 

위험한 소원이 이루어지는 곳,

위저드 베이커리





달콤하고 잔인한 성장소설


책을 덮는 순간 빵이 먹고 싶어졌다. 부욱 찢어 입에 넣는 순간 초콜릿 향이 확 올라오는 빵 오 쇼콜라가 좋다. 혹은 이 사이로 바스라지며 머리가 아찔하도록 설탕의 단맛이 터져 나오는 마카롱도 괜찮다. 야밤 독서의 허기를 달래며 마술까지 부릴 수 있는 케이크 한 조각이라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 문제는 집 근처 빵집들이 밤 10시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다. 책 읽기를 끝낸 시간은 자정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노트북을 열고 조심스레 자판을 두들겼다. Wizardbakery.com.


단아한 웹사이트가 튀어나왔다. 별나지 않게 생긴, 뚫어지게 바라봐도 색다른 점을 찾을 수 없는 빵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메이킹 피스 건포도 스콘이라. 나이가 들면 사람은 조심스러워진다. 사과하고 싶은 사람을 만들 만큼 경솔한 일도 저지르지 않는다. 브로큰 하트 파인애플 마들렌이라. 실연의 상처를 잊게 도와준다고? 사랑에 빠져 본 게 대체 몇 년 전이더라. 도플갱어 피낭시에. 이건 좀 끌렸다. 도플갱어를 대신 회사에 보내고 하루 종일 노닥거리고 싶다. 하지만 정말로 원했던 건 단 하나였다. 타임 리와인더. 달콤한 머랭 쿠키 모양새를 한 이 물건은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되감아 준단다. 


주문으로부터 도착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머랭 쿠키를 입 안에 넣었다. 그 순간 나는 그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학 친구였던 그녀는 내가 영국으로 떠나 있는 동안 정신 분열증을 얻었다. 귀국해서 만난 그녀는 얼굴이 핼쑥했다. 겁이 났다. 그녀가 내뱉는 말들은 어순도 논리도 맞지 않는 횡설수설이다.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병원으로 면회를 가겠다는 약속도 차일피일 미루었다. 어느 날 그녀의 가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는 자살했다.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지금 죽은 그녀가 전화를 걸고 있다. 받아야 한다. 전화 한 통과 면회 한 번으로 그녀가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끝내 내 손은 수화기를 들지 못했다. 살아남은 그녀의 삶을 책임질 만큼 내가 훌륭한 인간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 Wizardbakery.com으로 접속했다. 빵도 마술사도 없는 저자의 블로그가 튀어나온다. 방명록에 글을 하나 썼다가 지웠다. “사실 처음 절반은 오락가락했어요. 아동 성폭행과 유아 유기로 가득한 현대 한국의 현실과 마술 쿠키를 파는 마술사라는 판타지가 좀처럼 붙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주인공의 내면은 지나치게 어른스럽습니다. 머랭 쿠키를 먹은 미래와 먹지 않은 미래의 챕터를 따로 분리해서 책을 끝맺은 것은 정말 흥미롭습니다만 작가가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습니다. 하지만 누군들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단 한 번도 책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달콤하고 잔인한 성장소설입니다. P.S. 머랭 쿠키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사실 이 서평은 썼다 지운 방명록의 글 같은 모양새여야만 한다. 하지만 『위저드 베이커리』 앞에서 개인적인 기억을 끄집어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책은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도망치느냐 혹은 그것을 껴안느냐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독자의 오래된 기억을 환유한다. 달콤한 케이크의 단맛을 기대했다가 질 좋은 효모로 빚은 호밀빵을 목으로 삼킨 기분이다. 

-씨네21 김도훈 기자



작가가 말하는 나의 청소년기


움푹 파인 자리


내게 있어서 청소년기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숟가락으로 시간을 떠내고 남은 빈자리와 같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텅 비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그 시간을 살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을지 모른다는 느낌. 그 시간을 잘 살아 견뎠다는 증거가 지금 내게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적어도 상중하 세 권 분량인 개인사를 접어 두고, 세상 그 어디보다 닫힌 공간이라고 아직도 믿고 있는 학교 안에서의 날들만 떠올려 보자면 사뭇 단순하며 전형적인 그림이 나올 것이다. 시험 때 되면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입시를 앞두고서는 대학 커트라인 자료집을 뒤적이며 대부분의 시간은 두발 규제와 교복에 불만을 품으며 보내는. 

아마 그때 학교에 문예 창작반이라는 동아리가 있었다면 좀 더 충실한 시절을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무언가를 주도해서 만든다는 건 꿈도 꿔 보지 못했다. 주도한다는 건 책임지는 것이고, 해가 바뀌어 후배들이 생겼을 경우 돕거나 이끌어 준다는 걸 의미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런 무게 있는 일은 감당이 안 되었다. 


대학 문학 특기생을 만들기 위한 입시 과외가 흔한 요즘과는 달리, 인터넷도 없고 소통의 방식 자체가 부재했던 그때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또래를 제한된 공간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선생님들에게 있어서는 ‘공부 안 하는 짓’과 등가 관계를 이루었고, 대학 입시에 올인하는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시간이 많이 남아돎’과 같았다. 그런 상태에서 배짱도 별로 없고 활동력도 크지 않은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혼자 읽고 쓰는 일뿐이었다. 


나는 아마도 스프링 유선 공책에 한 자 한 자 샤프로 눌러쓰며 지금 아닌 다른 것만을 꿈꾸었고, 지금 머무는 자리는 내 영혼이 임시로 세낸 쪽방이며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이라고 느끼는 감각이 강했던 모양이다. 그 시기는 어서 빨리 벗어 버리고 싶은 매미 허물 같은 것. 그러나 정해진 시간을 채우지 않으면 벗을 수 없는. 내가 조금만 더 삶을 폭넓게 바라볼 용기가 있었다면, 그 시간을 좀 남다르게 채웠을 터다.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을 하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노선을 지지하거나.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 시간을 버릴 생각만 했고, 남들이 다 따라가는 길을 똑같이 밟았다. 머리로 다른 세상을 꿈꾸면서 몸은 표준과 상식이라는 그릇에 접어 넣었다. 그 사이에서 불거지는 감정들은 공책에다 한 글자씩 먼지처럼 털어놓았고, 풀리지 않는 실마리는 책 속에서 찾아 위안을 얻으려다 대부분은 더 큰 의문만 남곤 했다. 


그러니까 이건, 사람의 자유와 의지가 오로지 머리카락 길이나 치마 길이 같은 것에 달려 있다고 믿었던 어떤 시절의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추억’이라는 말은 내가 이 세상에서 믿지 않는 몇몇 낱말들의 목록에 들어가 있다. 



모든 지나간 시간은 유의미하다는 낭만적인 믿음이 내게는 없다. 그래서 실은 이런 질문이 가장 곤혹스럽다. 당신의 청소년기는 어떠했나요? 청소년기에 어떤 추억이 있어서 이런 소설을 썼지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자니, 그런 마음가짐으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독자에 대한 배신이나 우롱으로 간주되므로 슬그머니 말을 돌리거나 아낀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시절을 보낸 사람만이, 또는 생사의 기로와 밀접하게 관련된 고통의 기억을 담담하게 풀어 놓을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시절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내가 만일 이름을 붙이기에 편리한 어떤 사건들과 시절을 함께하여 그것들과 울고 웃거나 뒹굴었다면, 그것을 다만 응시하지 않고 거기 뛰어들었다면, 나 자신은 청소년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하면서도 묻어 두었든, 기억이 왜곡되거나 지워졌든, 그 시절에 영(0) 하나만을 그렸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며 천천히 알아가고자 한다. 소설이 뭔지 너무나 잘 안다면 소설을 쓸 필요가 없을 거고, 지금 쓰는 행위는 그게 뭔지 알고자 하는 노력이며 그 주어의 정체는 세상을 떠날 때나 되어야 알 듯하다. 그 괄호에 소설 대신 청소년이나 다른 무엇을 넣어도 마찬가지다. 

-소설가 구병모









창비청소년문학 22

우아한 거짓말

김려령 장편소설


잔인한 세상을 그만 등지고 

싶은 유혹에 시달릴 때, 

이 책을 꼭 읽어 주세요







작가와 나눈 이야기



『우아한 거짓말』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소설을 쓴 동기가 후기에 나와 있듯이 개인적인 체험이나 주변의 사례에서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저도 어린 나이에 생을 내려놓으려 한 때가 있었고, 안타깝게도 천지보다 더 어린 나이에 스스로 떠나간 어린 지인도 있습니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에도 저는 지인을 한 분 더 잃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셨지만, 그분도 스스로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제 개인적 체험 때문만은 아닙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합니다. 청소년 자살률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요. 단 한 사람의 자살이라도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자살 방지를 위해 많은 선생님들이 일선에서 청소년들에게 이성적 호소를 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작가인 저는 감성과 무의식에 호소하여 그분들의 교육을 뒷받침하고 싶었습니다. 제발 생을 내려놓지 말라고.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주인공 천지는 오랜 시간 자살을 준비하는데 그 과정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차분하게 행동합니다. 일관성 있는 그 태도에 혹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두려움과 갈등은 삶에 대한 미련이 교차되는 과정이지요. 하나의 털실 뭉치를 완성한 뒤 또 다른 털실 뭉치를 만드는 과정이 일관성 있는 행동처럼 보일지라도, 천지는 자신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미루고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 한 장의 유언장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떠났겠지요. 안타깝게도 마지막 털실 뭉치를 만들 때까지 아무도 천지를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아무도 천지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겁니다. 결국 천지는 떠났지요.



화연이가 천지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 섬뜩합니다. 아이들 간의 이런 괴롭힘의 모습을 어떻게 이렇게 세밀하게 그려 낼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천지가 다른 이들에게 봉인된 용서의 편지를 보낼 정도라면 천지는 이미 상처를 견뎌 낼 만한 힘이 있고 자존감이 있는 아이 같은데 이런 아이가 자살을 한다는 설정은 혹시 너무 과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너무 몰라서 섬뜩한 행동을 하곤 합니다. 자신의 행동의 파장을 생각지 못하고, 현재 위치만 보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지요. 화연의 행동은 제 경험과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또, 천지가 용서의 편지를 남긴 것이 과연 상처를 견뎌 낼 힘이 생겼기 때문일까요? 천지는 살면서 많은 용서를 했고 또 배신을 당했습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그런 일이 또 반복될까 봐 겁이 나지는 않았을까요? 용서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용서. 혹은 남은 자들을 위한 용서가 아니라 떠나는 자신을 위한 용서는 아니었을까요? 그만큼 천지는 몸이 아니라 영혼이 아픈 아이였습니다. 떠나는 자이기에 가능한 용서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훌훌 털어버리고 가고 싶은 마음. 제가 과거에 그 자리에 있었을 때 그랬거든요. 용서가 꼭 상처를 극복할 힘이 있을 때 하는 걸까요? 용서를 하면 정말 상처가 다 아물까요? 스스로 떠난 많은 아이들이 자존감이 없어서 떠난 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천지의 자살이 가엾기도 하지만 곱게 보이지도 않는데요. 남은 자를 용서하고 떠난 게 아니라 괴로움을 겪어 보라고 죽은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을 용서했다면 자살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보는데요. 이런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질문과 비슷한 독자 서평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용서가 아니라 무서운 복수로 보셔도 좋습니다. 여러 각도로 해석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작품이거든요. 독자마다 다르게 읽어 주셨으면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작품 속 인물들도 그러합니다. 천지가 자신에게 복수하려고 남긴 편지라고도 볼 수 있고, 진정으로 용서했기에 남긴 것으로도 볼 수 있겠지요. 용서를 했으니 자살하지 않아야 했다는 건 우리의 바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지가 용서를 해도 주변 사람들이 변하지 않으면, 그 용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용서입니다. 용서하는 행동이 오히려 만만하게 보여 다시 반복됐던 괴롭힘. 천지는 이미 그런 경험을 많이 하고 떠났지요.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떠난 아이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남은 사람들. 누군가 그렇게 아프게 떠났을 때,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얼마나 힘든지 그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떠난 사람만 아픈 게 아니라 보낸 사람도 많이 아프다는, 그 말을 하고 싶었어요.



'우아한 거짓말’이란 무엇일까요? 작가의 답을 듣고 싶습니다. 


우아한 거짓말은, 자신은 타격을 입지 않으면서 상대를 가격하는 거짓말입니다. 숨은 의도는 명확하게 각인시키되, 자신은 혹시 모를 구설수에서 빠지는 것이지요. 악의적인 의도는 숨기고 겉으로는 우아하게 포장해서 말하는 교활한 언어이기도 합니다. ‘예쁘긴 한데, 은근히 촌스러운 면도 있어.’라고 할 경우, 말하는 사람이 꽤 중립적 시선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요. ‘나도 들은 말인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며 헛소문을 퍼뜨릴 수도 있고, ‘혼자 두면 불쌍하잖아.’식의 착한 이미지를 남기고 곁에서 괴롭힐 수도 있지요. 



청소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사는 게 참 녹록지 않습니다. 특히 그 시기에는 어른들이 정한 테두리와 규칙이 왜 그렇게 많은지, 숨 막히게 갑갑할 때도 많을 것입니다. 자율이라는 것이 규칙 안에서의 자율이니 선택의 폭도 넓지 않을 것입니다.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지 못한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저는 청소년 여러분들이 저 테두리와 규칙을 넘어 모험을 하길 바랍니다. 모험은 이탈이나 반항과는 다릅니다. 테두리와 규칙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보다 더 나은 길이 있는지를 찾아 철저하게 준비하고 떠나는 게 모험입니다. 방황과 방탕이 다르듯이, 무조건 반항이 아닌 더 나은 자신을 찾기 위한 모험이길 바랍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도 좋고 큰 성과 없이 돌아와도 좋습니다. 시도 자체가 여러분을 발전시켰을 것이며 그리하여 여러분의 가슴과 눈이 더욱 깊어졌을 테니까요. 굳건하게 자신을 믿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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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1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출간 이후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봄의 제주도’를 기대하고 갔으나 내내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술만 마시다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는…… 대부분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책 읽고 글 쓰는 생활의 지속입니다. 쓸데없는 해찰도 하면서.   




이번 작품을 탈고하신 후 기분이 어떠셨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 모르겠습니다. 덤덤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좀 복잡하다고나 할까요. 그렇습니다. 




물론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을 테지만 그중에서도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독자가 있다면 어떤 분들일까요?


- 어떤 분들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내 소설을 읽고 사람들이 ‘삶이 그러함에도 그 속에서 소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습니다. 삶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멸균’적인 것이 아니고 온갖 균들이, 곰팡이가 창궐하는 곳에서도 아름다움은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작품을 쓰게 된 계기랄까, 그런 일이나 시점이 있었는지, 또 그 후의 집필 준비 과정이 궁금합니다.


- 이 소설은 어쩌면 제가 작가가 되기 훨씬 이전, 거의 3,40년 전부터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많이 슬프거나 억울하거나 답답한 일이 생기면 늘 들었던 생각이 ‘나중에 내가 글로 써버리고 말거야’였지요. 그런 생각이 들면 덜 슬프고 덜 답답하고 덜 억울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집필 준비 과정은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살았던 시대가 어떠했는가만 잘 살피고 제 마음만 잘 다스리면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글을 쓰다가 지나치게 감정을 쏟아부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 때문에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목이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입니다. 소설 속 정애는 슬플 때나 고통스러울 때 노래를 부릅니다. 그럴 때는 마치 고통받는 현장에서 자신의 영혼을 분리시킨다는 느낌도 받았는데요, 이 작품에서 ‘노래’란 무엇일까요?


- 눈물이겠지요. 우는 대신, 노래 부르는 겁니다. 가슴속에 쌓인 원한, 미움, 증오, 답답함, 슬픔 같은 것들을 노래로 승화시켜버리는 것이 바로 이 땅의 ‘가장 슬픈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장 오랜 삶의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그럼 정말,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요?


- 저는 혹시 누군가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라고 묻는다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도 나오듯이 되묻고 싶어집니다. 정말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요? 각자가 자신에게도 한번씩 물어보면 좋을 듯합니다.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 물음을 묻는 순간, 뭔가 가슴 한켠의 움직임이 느껴질는지도 모릅니다.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어느 부분일지, 또 그 이유가 무엇인지 간단히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정애가 승천하는 장면. 그리고 의외인지는 모르겠지만, 묘자가 박용재의 거처인 삼아여인숙에서 바깥의 소음과 불빛에 귀와 눈을 모으는 장면이라든가, 용순이 묘자집을 청소하면서 돈을 슬쩍하는 장면 같은 사소한 장면들도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소설에서 “미치지 않은 세상은 언제였을까”라는 구절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책을 덮고 난 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말이기도 했고요. 이 말을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물음이겠지요?


- 나는 모든 사람들이 한군데로 몰려가는 세상이 미친 것 같았습니다. 그런 나를 보고 누군가가 미쳤다고 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세상이 미쳤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으로부터 이제야 겨우 ‘자리를 잡은’ 세상이 시작될 듯도 하고 말이지요.  




9정애가 사라지는 장면은 이 작품 전체 중 가장 서정적으로 읽혔습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고요. 바로 이런 대목에서 공선옥 작가의 힘이 느껴집니다. 공선옥 작가의 작품은 늘 해학과 활기, 그리고 희망이 있죠. 아프고 처절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활력이 깃들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정말 말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남도’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를 키웠던 고장, 그 고장 사람들, 우리 동네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어른들 중 정말 ‘학교 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먹어본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세상에서 알아야 할 것은 다 알았습니다. 그리고 학교 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먹어본 사람들보다 훨씬 그 말과 행동에 활력이 있었지요. 제가 아마 그런 고장에서, 그런 어른들 밑에서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설에 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집필하시는 동안 가장 정이 많이 간 인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애일 수도 묘자일 수도 있겠고 혹은 숙자일 것도 같은데, 누구일까요?


- 물론 정애와 묘자입니다. 소설을 쓴 사람으로서 의외의 단역들에게 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소설의 첫 장에서 정애가 뽕 따가는 것을 야단치러 왔다가 고스란히 정애 말을 들어주고 앉아 있던 산 임자도 정이 가는 인물이었지요. 




소설 결말부의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잡힌 묘자와 또다른 한 여자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여자의 몸에서는 이 세상 모든 냄새가 나고 또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는 문장이 이 작품의 주제를 담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소설의 결말을 쓸 때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는지요?


- 사실은 결말 부분을 미리 다 써놓고 다른 결말들을 계속 써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애초에 써놓았던 것으로 돌아왔지요. 그렇게 하는 과정 속에서 ‘그런 결말’을 내는 게 가장 순리에 맞는다는 확신이 굳어진 셈입니다. “이 세상 모든 냄새가 나고 또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말해주듯, 이 세상의 모든 노래는 실은 이 세상의 모든 ‘진창’을 다 끌어안으면서도 또 그 모든 진창의 세상을 정화시켜주기도 하지요.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어쩌면 저 높은 곳,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곳에 있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는 우리 생의 가장 밑바닥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럴 것입니다. 




‘세살 정애, 열살 정애, 열다섯살 정애, 서른살 정애’와 같은 표현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요, 시적으로 읽히기도 하는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삶을 살아갈 때도 한 개인의 내부에 여러 나이대가 공존한다고 생각하시는지?


- 저에게는 아이가 셋 있습니다. 지금은 다 컸는데, 한참 클 때 보니, 그 아이들 속에 얼마나 많은 아이와 또 어른이 공존하던지요. 어린아이는 한없이 어린아이가 아니고 어른 또한 한없이 어른이지만은 않습니다. 사람은 모두 제 속의 아이와 어른을 함께 품고 삽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누구나. 




마지막 질문입니다. 살아가면서 지속적으로 약자의 삶에 눈을 두는 것은 분명 괴롭고 힘든 일일 텐데요, 앞으로의 작품활동도 이 같은 괘를 이어갈 예정이신지 궁금합니다.


- 제가 어떤 글을 쓸지는 저도 모릅니다. 일반론적으로 얘기하면 작가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쓸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문학시장의 침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에 꾸준한 애정을 보여주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사람들이 제 소설을 안 사주면 출판사에서도 저를 찾아주지 않겠지요. 그러면 저는 글쓰기 직업을 포기하고 다른 생계거리를 찾아야겠지요. 아아, 그럼에도 또 저는 이 세상의 삶을 글로 쓰고 싶어 하겠지요.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한권의 소설책이 이 세상에 무슨 좋은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그 시대 사람들이 한편의 시도, 한권의 소설도 읽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한국문학에 꾸준한 애정을 보여주는 독자’가 있는 한 한국은 그런대로 ‘한국’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이 한국이 될 수 없겠지요. 한국문학에 애정을 보여주는 독자가 있어 한국에 한국문학이 있을 수 있고 한국문학이 있는 한은 한국이 한국일 수 있는 것입니다. 경제만 있고 문학이 없는 나라, 생각하면 쓸쓸한 일입니다. 그런 가공할 쓸쓸한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 사람의 독자는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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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동안 작가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변두리의 인물을 데리고 우스꽝스럽고 위트 있는 서사로 슬픈 정경을 그려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에서는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말과 말 사이의 간극을 표현하거나, 서사나 문장으로 감정 자체에 푹 빠지게 만들고, 그로 인해 이전보다 더 감성적인 부분이 풍부해지고 장난기가 많이 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런 변화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독자 @manic_dodo 님


Q. 초기의 유쾌하고 밝은 느낌의 소설과 달리 최근 소설들은 무겁고 진지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작가로서의 시선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독자 @zancid 님



A. 저는 무거운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대체로 러블리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때론 이상한 인물들이 저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인상을 박박 쓰고 있을 때도 있고, 실실 실성한 듯 허공을 바라보며 웃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되도록 그 사람들을 재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소설을 쓸 뿐입니다. 변화가 좀 있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쉽게 말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이건 뭐 한두 개여야죠. 다만 이전 소설을 쓸 때보다 더 구체적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거, 뭐 그 정도로 답변을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 그런데 이렇게 답변을 하다 보니, 제가 정말 김 박사가 된 듯합니다.   





Q. 주인공들의 이름은 어떻게 생각하시고 지으시나요? 글이 막힐 때 돌파구는? 

-독자 @soulvinstella


A. 주인공 이름은 옥편을 보면서, 뜻풀이까지 하면서 짓는 편인데, 결과적으론 튀지 않는, 캐릭터에 맞춤한 쪽으로 갑니다. 그래서 좀 촌스러울 때가 많아요. 글이 막힐 땐, 풀릴 때까지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버팁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면서... 그래서 쉽게 지칩니다. 





Q. 지금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방 속 혹은 주머니 속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은 뭡니까? 

-소설가 이은선


A. 잘 지내시나요? 우리 페친이지요? 저는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아서… 주로 책 같은 건 손에 들고 다닌답니다. 주머니엔 담배와 라이터가 전부고요… 이거 참 아무것도 없네요. 그래서 이런 소설밖에 못 쓰는가 봐요. 아마, 안될 거예요, 저는…





Q. 소설집 출간을 축하합니다! ‘윤리적인 팬티 한 장’을 입고 담배를 사러 나간 청년이 꼭 이기호 작가 본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질문. 만약에 글쓰기에 윤리가 있다면, 그건 어떤 것일까요?

-시인 오은


A. 최근 시집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축하드립니다. 글쓰기 윤리까지는 모르겠으나, 소설 쓰기의 윤리는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쓰지 않는 거지요. 저로부터 조금 멀어지는 글쓰기입니다. ‘윤리적인 팬티 한 장’의 주인공은 저와 가장 가깝지만, 사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이기도 하답니다.





Q. 죽을 때까지 익명이 보장된다는 가정하에 소설을 한 편 쓴다면 어떤 내용의 소설을 쓰고 싶으신가요?

-소설가 정용준


A. 뭘 이렇게 어려운 걸 묻고 그러냐? 그냥 전화해라. 우리에게 익명이 보장된다면... 그 대상은 아마도 아내님들 아닐까? 





Q. ‘김 박사’가 누구인지 답해야 하는, 혹은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더불어 앞으로의 작품 계획까지. 

-문학과지성사 편집부


A. 글쎄요, 꼭 답을 하라는 뜻은 아니고요, 작은 의도가 있었다면 독자들도 함께 소설을 쓰자는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소설 쓰는 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작가란 사람들도 그렇게 대단한 별종은 아니고요… 하지만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그 누가 되었든 조금 다른 인간으로 변하는 건 맞는 거 같습니다. 조금 구제되는 느낌도 들고요. 그 느낌을 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미리 약속드리지 않고, 부지런히 쓰겠다는 말, 그게 전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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