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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주희>로 2017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박민정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괜찮은 사람> 강화길 작가의 목소리로 전합니다. 인터뷰 원문은 문학동네 94호에 실렸습니다. 





  열아홉 살 때의 일이다. 서울의 어떤 백일장에 참가했다 돌아오던 내 손에 무언가 들려 있었다. 아쉽게도 상장은 아니었고, 전년도 수상자들의 작품을 묶은 책이었다. 나는 그 작품집을 꽤 오랫동안 보관했다. 좋아하는 작품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봄밤의 나그네」라는 소설로 장원은 아니었고 3등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나는 그 소설을 여러 번 읽었다. 심사평에 따르면 제법 괜찮은 작품이었고, 내 관점으로 말하면 정말 좋은 소설이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곳에는 그네를 타는 소녀가 있다. ‘나’는 아이가 부럽고, 마음이 조금 아프다. 왜냐하면 ‘나’는 다리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빠는 집을 나갔는데, ‘나’는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롭고 힘들다. 이야기의 말미, ‘나’는 소녀를 데리러 온 나그네를 본다. 그가 소녀를 업어주는 장면을 ‘나’는 뚫어지게 본다.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발 일어나기를 바랐던, 간절히 원하며 몰래 간직해왔던 ‘나’의 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소녀는 ‘나’ 자신이다. 봄밤, ‘나’는 아빠의 등에 얼굴을 고요히 묻는다. 이 글은 박민정에 관한 것이므로, 「봄밤의 나그네」를 쓴 작가가 누구인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재미있는 건 내가 그 사실을 아주 오랫동안 몰랐다는 것이다. 어느 시점엔가 나는 그 책을 잃어버렸고 다시는 읽지 못했다. 당시에는 작가 이름을 기억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조차도 잊어버렸다. 나이도 이름도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했다. 



  박민정의 집 작업실에는 책상과 노트북만 있다. 그녀는 장비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스탠드도 잘 쓰지 않는다. 그나마 돈을 써서 구한 장비가 헬로 키티 키보드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카페를 많이 전전했다. 카페 생활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시기가 길다보니 지겨워졌다. 그리고 월세를 허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제는 그냥 집에서 글을 쓴다. 그래도 나름 필요한 것들을 갖추고는 있다. 설명하자면, 그녀의 노트북에는 어디선가 구해온 ‘보안’이라는 글자 스티커가 붙어 있다. 책상 위에는 펜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연필꽂이가 있고, 샛노란 튤립 한 송이가 담긴 꽃병이 있으며 벽에는 메모지와 그 밖의 이런저런 것들이 잔뜩 붙어 있다. 그리고 책상 아래에는 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상자 두 개가 있는데, 감귤 상자와 사과 상자다. 최근에 패브릭을 얹어서 약간 꾸미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냥 과일 상자다. 그녀와 절친한 천희란 작가는 그 상자들 덕에 박민정 작가가 힘을 얻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두 상자에는 그녀가 대학 시절 모은 시즌 베스트 작품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성의 상자라고 명명한 쪽에는 발제문들이 들어 있고, 감성의 상자에는 시와 소설들이 들어 있다. 다시 읽는 것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기에 꺼내 보는 일도 없지만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 한 편도 버리지 않고 모두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어쩔 수 없이 정리해야만 했기에, 그 시절 정말 좋아했던 작품들만 남겨뒀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던 작품들을 간직한 공간에서,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쓴다. 그건 그녀가 원래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그녀는 초등학교 오학년 때 일본인 친구와 펜팔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받은 스티커를 아까워서 손도 못 대다가 이제 겨우 하나씩 쓰기 시작했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친구들의 작품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천희란 작가 말대로 그 상자들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걸 조금은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술적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그녀는 내게 프랑스 자수를 배운 솜씨로 부두 인형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건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릴 수 있는 인형인데, 내가 언니 그건 좀 언피시하다고, 나를 괴롭히는 기운을 대신 받아주는 인형을 만들어주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언니는 그게 왜 언피시한 거냐고 반문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했다. 



  「세실, 주희」는 하나의 문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방인은 필연적으로 진보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2012년이었다. 당시 그녀는 문화 연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다. 출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는 어디선가 이 문장을 읽었고 옳다고 생각했다. 자국에서 극우적인 사람도 외국에 나가면 소수자의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으니까. 정치적 약자는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 그녀는 이 문장이 불어나는 걸 느꼈고, 소설로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음의 구상은 지금의 결과물과는 달랐다. 원래는 힙합 음악이 좋아서 일본에 간 한국인이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정치에 아무 관심이 없고, 오직 사적인 이유로 외국에 간 화자가 외국인 신분으로 일본의 반정부 집회에 참여한다는 것. 그 위험함과 혼란스러움이 박민정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2012년에 바로 쓰지 않은 이유는 당시 작업중인 다른 소설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구상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구상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이다. 틈틈이 메모를 해뒀다가 주기적으로 정리해가면서 구조를 짠다. 그 과정에서 정보도 수집하고, 설정을 구체화시키거나 바꾸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틀이 잡혔다 싶으면 작업을 시작하는데, 이 작품은 그 시기를 만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중간에 설정을 바꿔야 했던 것이다. 그 이유를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외국에서의 삶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그녀가 알고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그건,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을 지켜보는 삶이었다. 그것도 소외된 경험이 있는 입장에서. 소설은 그렇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정치적 관심도 없는 일본인 세실이 주희라는 한국인과 함께 수요 집회에 휩쓸리게 되는 이야기로. 

그러나 박민정은 이십대 초반의 일본인 여자애가 한국에 올 만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워킹 홀리데이? 유학? 어학연수? 굳이 한국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긴 고민 끝에 그녀는 세실에게 강렬한 동기 하나를 부여한다. 그리고 주희는 세실의 이 동기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좋아하는 연예인 하나 때문에 타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는 삶. 고작 유노윤호 하나 때문이라니.’ 

  이 소설의 설정이 과장이 아니라는 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이 나라의 문화 산업은 그렇게 굴러가니까. 어처구니없고 의미 없어 보이지만, 지극히 당연하고 확고한 이유로. 아마 주희의 반응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큼이나, 세실의 동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박민정의 경우는 세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런 선택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편에 속했다. 그것은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엄청나게 많은 아이돌의 데뷔와 해체를 신물나게 봐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방신기 때문에 한국에 온 일본인 여성과 가까이 지낸 친구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유를 찾자면 얼마든지 더 있었다. 그녀는 중국인 유학생이 늘어나던 시기에 대학원을 다녔고, 대만 유학생에게 과외를 해준 경험도 있었다. 그리고 박민정 작가는 ‘일제’를 좋아하는 외국인이기도 했는데, 특히 일본 특유의 레이스 장식과 색조 화장품을 정말 사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세실과 주희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세실을 소설 속으로 불러와 주희를 만나게 했을 뿐,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알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박민정은 구상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하지만, 소설을 쓰면서 메모를 더 많이 한다. 작업에 들어가면 동기만으로 알 수 없는 것, 흐릿한 골격만으로는 정리할 수 없는 것들이 소설 내부에서 부딪히며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낯선 나라의 이방인이 뜻도 모르는 집회에 참여하게 되는 소설을 쓰려 한다는 건 알았지만, 오키나와 출신으로 “할머니는 지금 야스쿠니 신사에 있습니다”라고 천진하게 말하는 세실이 명동 한복판에서 수요 집회를 마주했을 때의 부딪힘이 어떤 것이 될지는 몰랐다. 그리고 박민정은 집회의 성격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기에, 주희의 설정에 대해서도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불리는 광장, 그러나 그곳에는 분명 여성 혐오적 요소들이 뿌리내리고 있다. 포르노 사이트에 신상이 올라간 여성이 광장에 등장한다면? 나아가 이 두 사람이 함께 나란히 서 있게 된다면? 그녀는 의문과 고민을 좇아 계속 메모했다. 세실의 가계도를 그렸고, 주희의 신상을 만들었고, 사진과 영상을 정리했고, 썼던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플롯이 구체화되면서 메모의 양도 계속 늘어났다. 그러면서 이 소설은 작가가 여전히 동의하고 있고, 그래서 이야기를 출발시킬 수 있었던 “이방인은 필연적으로 진보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는 문장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백합의 간호사. 위안부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 포르노. 외국인. 광장. 집회. 화장품. 아이돌. 그 익숙하고 흔한 현상. 그러나 기괴하고 변태적인 충돌. 

  그러니까 세실, 주희로.



  언니와 나는 2012년에 처음 만났다. 그녀가 「세실, 주희」를 구상하던 그해 말이다. 나는 그때 등단했는데, 어느 술자리에 놀러갔다 그녀를 만났다. 이후 우리는 몇 번 연락을 주고받다가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만 본다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계속 친하게 지낸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그뒤로 몇 년간 안 만났다. 연락도 안 했다. 그녀가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를 출간한 후 내게 보내주기도 했고, 그 소설집이 너무 좋았던 내가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기도 했고, 언니가 내 소설을 좋아했다는 말을 전해 들을 때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물을 때도 있었지만,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밥을 먹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그랬다. 그때 우리가 왜 그랬느냐 하면, 그냥 간단히 말하면 감정적으로 너무 메말라 있어서, 돈이 없어서, 이곳에서 친구를 만든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러워서, 가끔은 살아 있는 것조차 버거워서, 서로에게 다가갈 겨를이 없어서 그랬다. 우리의 이십대는 그랬다. 

  박민정은 「세실, 주희」에서 처음으로 작가로서 그녀의 나이보다 한참 어린 인물들을 만들었다. 세실, 주희는 91년생, 93년생이다. 얼마 전 그녀는 어떤 독자의 ‘그 나이대의 여성으로서 「세실, 주희」에 공감이 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서 안심했고, 매우 감사했다. 그녀의 나이와 떨어진 세대의 이야기를 한 건 처음이었는데, 자연스러웠다는 뜻이었으니까. 동시에 기묘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를 그녀 또래를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썼어도 비슷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친구들, 삼십대 여성들은 이십대 초반과 다를 바 없는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삶은 의미화되지 못한 것들 투성이였다. 내게도 여전히 불안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너무 불안하다. 

  아마 그건 내가 뭔가를 해냈고, 앞으로도 뭔가를 해내리라는 느낌을 받기가 힘들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 이것조차 조금은 사치스런 말이다. 그냥 온전한 성인으로, 사람 구실을 하며 살고 싶은데 그게 너무 힘겹다. 타인과의 관계는 그래서 특히나 어렵다.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과연 이곳에서 누군가와 무언가를 제대로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게 될지 자신이 없다. 혼자 서 있는 이들에게 다가갈 자격이 있는지 계속 되묻게 된다. 내가 세실과 주희에게 도움은 고사하고 언캐니한 존재로 남지 않을 수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결국은 이 모든 태도가 다 변명 같은데, 그래서 이걸 극복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싶고, 힘에 부친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 어느 밤, 언니가 내게 다시 연락해온 것이 어쩌면 굉장히 용기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인데, 그녀는 추모 집회에 갔다가 교보문고에 들러 내 소설을 읽었다고 했다. 언니는 그때를 돌이키며 “결국 참지 못해” 연락했다고 농담했다. 나는 그게 정확한 표현 같다고 느낀다. 이십대와 다름없는 삼십대를 맞이하고, 써왔던 것을 계속 쓰고, 긴장하고, 부유하지 않기 위해 부유하면서 그 모든 걸 계속 견디다보면, 두 번밖에 만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는 걸 목격한다면, 더는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 참을 수 없어진다. 



  「아내들의 학교」도 그랬다. 이 소설을 쓰기 전까지 박민정은 자신이 쓰고 싶은 걸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첫 소설집인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를 묶는 동안에도 그랬고, 출간한 직후에도 한동안 그랬다. 그건 글쓰기에 대한 믿음과는 다른 문제였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글을 썼고, 백일장에 나갔다 하면 상을 타오는 아이였다. 엄마는 그런 민정이에게 책을 엄청 사줬고, 학교에 제출하지 않고 혼자 쓰고 간직하는 일기장을 사줬고, 글쓰는 노트, 만화 그리는 노트도 사줬다. 그녀는 존 어빙, 나보코프, 이사벨 아옌데를 좋아했고,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하나씩 배웠다. 대학 때 심취했던 박상륭에게서도. 

  다만 그녀는 ‘문학적’이라는 말에는 의심을 품었다. 스물한 살 때, 개인적인 고민으로 휴학한 채 집에 틀어박혔던 그녀는 문득 자신의 상황을 문학적으로 사유하고 있다고 느꼈다. 아마 오랫동안 글을 써왔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그런 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훈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화가 났다. 타인의 잘못으로 상처를 받은 순간에 왜 자신을 대상화해서 바라봐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건 뭔가 잘못된 방식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학대하는 대신 지금까지 읽었던 작품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녀가 좋아했던 작가들의 작품에 여성 혐오적 성향이 짙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이제껏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 그것을 문학적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꼈다. 이후 그녀는 자기 자신과 ‘문학적’인 어떤 것들이 부딪치는 순간을 계속 경험했고, 그건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만드는 동시에 어떤 제한을 경험하게 했다.  

  이렇게 쓸 수밖에 없어서 쓰는 것인데, 이것을 문학적이라고 부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녀에게 소설쓰기는 인정투쟁이 아니었지만, 계속 쓰기 위해서는 어쨌든 평가라는 것이 필요했고, 만일 자신이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고민스러웠다. 그녀는 좋은 작품을 쓰면 언젠가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자신하지는 못했다. 내가 쓰는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이런 식의 부딪힘은 그녀의 삶에 끊임없이 파문을 던지곤 했다. 그녀는 강남 8학군에서 나고 자랐지만 친구들에 비해 가난했다. 친구들은 백화점에서 망설임 없이 옷을 샀지만, 그녀는 그들과 떡볶이를 먹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부자 동네에서 가난한 집 아이로 성장한다는 것. 그 감각이 그녀의 마음 안에 또렷하게 남았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 문화 연구로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그곳에서 소설가가 왜 문화 연구를 하냐는 말을 무수히 들었고, 문단에서는 문화 연구를 하면서 왜 소설을 쓰냐는 말을 들었다. 고등학교에 출강하면서는 자신이 선생님들 세대에 가까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가깝지도 않다는 걸 알았다. 일상에서 글쓰기의 영역까지, 첫 책을 묶는 오 년 내내 이런 일들을 반복해서 겪었다. 무력했고 고독했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의심한 건, 문학을 둘러싼 어떤 상황들이었지 글쓰기 자체는 아니었으니까. 고립된 시간이 길어진 만큼,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쓰고 싶은 방식대로 쓰고 싶다는 욕망. 실제로 그렇다. 그건 사실 참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시의성이나 응답이나, 해석할 여지나 예술적 의미, 정치적 올바름 같은 건 사실 소설과 아무 관계 없다. 소설의 특성은 온전히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순간에 만들어진다. 그 순간에 작가는 자유롭다. 설사 이 이후에 다시 무력하고 고독하고 변명뿐인 삶으로 돌아갈지라도, 상관없다. 그 순간에 아직 살아 있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 박민정은 「아내들의 학교」를 그렇게 썼다. 



  나는 종종 「봄밤의 나그네」를 생각했다. 나는 좋아하는 책을 여러 번 읽는 편인데, 항상 그러는 건 아니고 사는 게 힘들다 싶을 때 그렇게 한다. 그런 순간에는 신간을 읽는 것보다 좋아하는 책을 다시 보는 게 편하다. 어느 시점까지는 그 소설도 목록에 있었다. 책을 잃어버려 다시는 읽을 수 없게 된 이후부터는 그냥 기억을 했다. 정확하게 떠올릴 수는 없었지만,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책을 반복해 읽거나 기억하는 행위 자체가 내게는 일종의 부두 인형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인형을 갖고 있었던 셈이고, 그 소설은 아주 오래된 천조각 중 하나였다. 

  언니가 내게 연락을 다시 한 이후 우리는 가끔 만났고 통화했고, 서로의 시상식에도 갔고, 각자의 책이 나오던 즈음 축하 파티도 했다. 그런 사이가 됐다. 그러다가, 이번 겨울이 시작되던 무렵일 것이다. 그날도 언니와 카톡으로 수다를 떨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언니가 그 백일장에서 상을 탄 적이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반가워했다. 그리고 말했다. 어쩌면 내가 수상작품집에서 언니 작품을 읽었을 수도 있겠다고. 동시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그 소설을 떠올렸다. 나는 계속 말했다. 내가 굉장히 좋아한 작품이 있었고, 그래서 안부가 궁금한 작가가 한 명 있었다고. 그래? 언니는 그렇게 반문하고는 아직도 그 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뒤 잠시 사라졌다. 나는 또 말했다. 지금도 그 작가를 생각한다고.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고. 오랜 세월, 나는 혼자라고 느낀 적이 많았다. 어린 시절, 만일 작가가 되면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더는 외롭지 않게 되리라 믿기도 했다. 내 또래의 누군가가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를 썼고, 이 세상에 그 사람이 여전히 글을 쓰며 살고 있으리라는 사실은 이후 또 오랜 세월 내게 위로가 됐다. 정말로 그랬다. 그래서 나는 계속 말했다. 샤워를 할 때, 밥을 먹을 때, 비가 내릴 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닷없이 그 사람을 생각할 때가 있다고. 아직도 글을 쓸까. 소설을 쓰고 있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 순간, 언니가 책을 들고 돌아왔다. 나는 언니 소설의 제목이 뭐냐고 물었다. 박민정 작가가 대답했다. 응, ‘봄밤의 나그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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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xc1030 2018-04-01 00: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나 그 백일장에 그해 전해 모두 참여했던 것 같아요.
저는 박민정 작가님이 봄밤의 나그네라는 작품으로 3등을 수상했을 때, 한 학년 아래였었어요. 함께 나란히 백일장에 참여했던 것 같아요. 너무나도 강렬한 이야기였다고 기억하고 있는 작품인데, 흐릿하게 다리가 아픈 아이가 떠올랐고 가끔 저도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그 작품이 떠오르는 날들이 더러 있어요. 이 글을 읽고나니 시간이란 것이 아주 훌쩍 거슬러 올라 열일곱, 그 즈음으로 저를 데리고 가는 것 같아서 벅차오르네요. 박민정, 나그네, 라는 두 단어만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가 봄밤의 나그네였다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글 잘 보았습니다. 혹시나, 제가 쓴 댓글을 그럴리 없겠지만 박민정 작가가 보게 된다면 함께 여러 번 백일장에 참여했던 동생이자 적극적인 독자로 요즘 언니의 소설을 읽는 것이 제겐 너무도 벅찬 일이며 기대하는 일이라고 전하고 싶어요. 항상 서점에서 혹은 이렇게 인터넷 서점 포털 사이트에서 박민정이란 이름만 봐도 흐뭇하다고요. 언니, 저 수선이에요. 제가 고3이었던 시절, 언니 학교로 찾아가 만난 날이 우리가 얼굴을 마주한 마지막 날이어었던 것 같아요.
전 언니의 소식을 새로운 책으로, 또 수상 소식으로 들어요.
십대, 그 즈음부터 지금까지도 늘 치열하게 이야기를 써가는 당신을 멀리서 한 명의 적극적인 독자로서 응원합니다.
 





2016년 제7회 젊은작가상의 대상을 김금희 작가가 수상했습니다. 김금희 작가와 정영수 작가가 소설에 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자유롭게 틀을 넘나드는 대화를 소개합니다. | 문학동네 출판사 제공












우리는 때때로 즐겁고 

매일 슬프고 늘 화가 나

―그러니까 우리는 ‘해방의 글쓰기’를 하는 게 어떻겠니?



정영수 




아무래도 이 인터뷰는 망한 것 같다. 내가 어쩌다 이 인터뷰를 맡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금희 선배와 길고 긴 대화를 나눈 후 ‘특별히 재미난’ 인터뷰 글을 써야 하는 처지가 되어서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노트북 앞에 붙박여 앉아 있게 되었을까…… 시간을 거슬러오른다…… 이 일의 시작은 내가 미국에서 돌아온 날, 마침 항공기의 앞바퀴가 인천의 안개 자욱한 활주로에 닿았을 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 라고 쓰면 있어 보이겠지. 하지만 사실이 그러한 것이다. 그 전화에서 들려온 한 여인의 목소리는 “영수씨 있잖아요, 그러니까 올해 젊은작가상……”이라며 말을 시작했는데 그래서 나는 내가 그 상을 받게 되었다는 줄로 알고 아주 짧은 순간 애써 설레는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번에 대상을 수상한 김금희 작가의 인터뷰를 맡아달라는 얘기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젊은작가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가정(?)해보았을 때보다 더 놀라고 말았다. 아니, 대체 내가 왜…… 그 인터뷰는 전통적으로 전년도 대상 수상자가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번에는 콘셉트가 달라졌나…… 그러니까 전년도 수상자가 아니라 내년도 수상자가 올해 수상자를 인터뷰하는 것으로…… 예상표절과 같은 원리인 것인가…… 양자역학 같은 건가……라는 미친 생각을 한 건 아니고…… 아무튼 지면이 지면이니만큼 헛소리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나도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금희 선배가 인터뷰어로 나를 지목했다는 것이다. 선배와 만나자마자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한 사정이 있었고 ○○○○하고 ○○○○하고 ○○○○한 이유도 있지만 그것보다 왠지 내가 인터뷰 글을 재미있게 잘 쓸 것 같아서, 라고 대답했다(듣고 싶은 말만 들어버렸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재미있게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혀버리고 말았는데 그러니 이 글이 이상해진다면 어느 정도 금희 선배 탓도 있는 셈이다.




나는 선배와 이른바 ‘트친’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실제 만남에서 나눈 대화보다 트위터에서 나눈 대화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를 ‘금희님’이라고 부르고 그녀는 나를 ‘수수님’(내 트위터 닉네임이다)이라고 부른다. 물론 그녀와 실제 세계(?)에서도 몇 번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자리여서 심도 깊은 대화는 거의 나눠보지 못했고 서로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는 정도의 피상적인 대화만 나눴을 뿐이다. 그러나 트위터에서는 위트 있는 멘션과 웃짤과 귀여운 동물짤과 ‘마음’을 주고받는 이른바 ‘트절친’(내가 방금 만든 말이다)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 생각해보면 인터뷰를 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래서 수요일 저녁, 서교동 모 일본풍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함박스테이크와 닭다리살톳파스타를 나눠 먹으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이 글의 서두에서 이 인터뷰가 망한 것 같다고 말한 이유는 그녀와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었던 나머지 내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질문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쩌다가 글쓰기라는 이 쾌락적이면서 고통스러운 주이상스적 숙명에 빠져들게 되었나, 또 당신은 어쩌다가 「너무 한낮의 연애」를 쓰게 되었으며 그것을 쓸 때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무엇인가, 젊은작가상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과연 젊은작가상은 계속되어야 하는가, 정영수의 소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매우 필수적이며 중요한 질문들 말이다. 나는 능숙한 인터뷰어가 그러하듯이 처음에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인터뷰이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대화를 이끌었는데 한 시간 반이나 되는 식사시간 동안 이곳에는 쓸 수 없는 정말로 쓸데없고 사적인 이야기만 잔뜩 나누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나는 그동안 그녀에 대해 꽤나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녀가 겉보기만큼(그리고 어쩌면 그녀의 소설만큼?) 부드럽고 유순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녀의 소설은 인간에 대한 온정 어린 시선과 깊은 관심, 유머러스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문체 같은 걸로 가득차 있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그녀는 자기는 늘 화를 품고 있으며 매우 공격적이며 누구에게라도 적개심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거기다가 감정 기복도 심해서 사실상 조울증 말기에 가까운 정신 상태로 살아가고 있단다. 나는 나 또한 그랬기 때문에 반가워서 호들갑을 떨었고 우리가 삶에 대해 느끼는 이 분노의 근원과 분출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저녁식사 시간이 다 지나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게 내 안에 있는 분노와 적개심과 파토스를 소설로 해방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고 나는 그녀에게 홍대입구역 인근에 있는 친절한 정신과의원을 추천해주었다. 선배는 이미 한약을 많이 먹어보았다고 했는데 나는 그것이 왠지 그녀와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인간이 있는데 양방을 믿는 사람과 한방을 믿는 사람이다. 나는 철저히 양방을 신봉하며 선배는 철저히까지는 모르겠으나 한방의 보다 내밀하며 근본적인 접근 방식을 믿는 듯했다. 선배의 소설 또한 양방보다는 한방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막 포스트모던하고 그런 스타일은 또 아니니까……). 나는 여전히 현대 의학의 신속하고 강력한 힘을 신뢰하는 편이지만 그녀의 길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소설 이야기를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저녁식사를 하며 주로 나눈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몇 줄 위에 언급한 바 있는 ‘해방’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선배에게 등단 직후의 글쓰기와 지금의 그것 사이에 가장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게 바로 그 ‘해방’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단 그 이야기부터 하기로 하자. 그녀는 말했다. 한마디로…… 소설을 막 쓰게 됐어. 무슨 뜻인지…… 알지? 나는 선배에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무슨 뜻인지 아마도…… 알겠지…… 여하간 나는 그녀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인터뷰의 제목대로, 우리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때때로 즐겁지만 자주 슬프며 늘 화가 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소설을 쓰려고 앉으면 뭔가 정갈하고…… 품격 있고…… 절제되었으며…… 미학적으로 탁월하면서도…… 웅숭깊은…… 소설만 쓰게 된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라는 게 결론이었다(몰라, 되는대로 막 말해버리자). 나도 막 흐트러지고 품격 없고 무절제하고 음험하면서도 파토스 넘치고 되바라지고 발칙하면서도 위험한 소설을 쓰고 싶다! 하지만 나의 동방적으로 예의 바르고 신사적인 성정이 그렇게 하지를 못하게 나를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해방시키고 싶어, 라고 내가 말하자 선배는 마치 민중-권력-쟁취-투쟁, 같은 구호식으로 해방! 해방! 하고 외치며 나를 독려해주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어. 내가 선배에게 물었다. 뭔데? 나는 굳이 가방에서 「너무 한낮의 연애」의 복사본을 꺼내 그중 한 부분을 짚어 보였다. 미리 밑줄을 그어둔 구절이었다. “무언가가 오고 있었다. 그래, 쓰나미, 쓰나미, 실연의 쓰나미!” ……그러니까…… 이런 문장을 쓰는 게…… 해방이라는 거라면…… 선배…… 난 아무래도 못할 것 같아…… 그거…… 해방…… 금희 선배는 말했다. 맞아, 그게 해방이야. 그게 와야 돼. 쓰나미, 쓰나미, 해방의 쓰나미!




우리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합정역 메세나폴리스 쪽으로 향했고, 지하에 아주 넓은 공간이 있는, 새로 생긴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알고 보니 우리는 일본풍 레스토랑에서 함박스테이크와 닭다리살톳파스타를 앞에 두고는 문학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기품 있는 카페에 와서 김이 뽀얗게 피어나는 레몬티와 향기로운 피스타치오 마카롱을 앞에 두고 앉으니 본격적으로 우리의 고품격 문학 이야기가 시작된 것을 보면 말이다. 정말로 고품격……이었는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어쨌든 나는 곧 문학동네에서 출간될 금희 선배의 두번째 소설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문학동네에서 제공한 자료를 살펴보면 2014년과 2015년 두 해 사이에 단편소설을 아홉 편 발표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선배의 말을 들어보니 실제로는 열 편을 발표했단다. 나는 조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재고가 많은가봐? 라고 물었는데 그녀는, 내가 말이야…… 없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재고야…… 라고 대답했다. 이게 바로 해방의 힘인가? 해방의…… 발표의 쓰나미! 선배는 물론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들지 않는 것도 있는데 대체로는 발표하고 나면 다들 이번에도 망했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나? 하고 내게 말했는데 나는 딱히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배도 정말 망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1990년대(계속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녀는 이 나라 문학의 벨 에포크가 바로 그 시기였다고 여기는 듯했다) 자신을 전율케 했던 작품들에 비하면 자신의 발표작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는 겸손의 말이었다. 나는 그 시절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금희 선배의 소설도 충분히 좋다고 생각해, 라고 생각만 했는지 진짜로 말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질문을 이어가 그렇다면 「너무 한낮의 연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내심 대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묻지는 않았고 다른 소설에 비해 특히 더 나은 것 같으냐는 질문을 했다. 선배는 사실 자신은 「세실리아」에 더 마음이 간다고 했다. 「세실리아」는 「너무 한낮의 연애」를 발표하기 두 계절 전에 발표한 단편인데 거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풀어놓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소설가는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지 않나? 자신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들어간 소설에 애정을 준달까? 나도 그런 의미에서 내가 최근에 발표한 「하나의 미래」에 제일 애정이 간다고 말했다. 선배는 인터뷰하다 말고 왜 뜬금없이 네 소설 얘기니? 라고 하지 않고 다정한 말투로 그 소설을 읽었으며 심지어 좋았다고 말해주었다. 자기는 그 소설이 재미있으면서도 슬펐다고 했다(라고 이야기한 것을 나는 확실히 기억했을뿐더러 심지어 여기에 쓰고 말아버렸다……). 그래서 나도 「세실리아」를 읽고 슬펐다고 했던가 안 했던가, 그래서 너도 울고 나도 울고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었던가 안 되었던가. 아무튼 나는 「너무 한낮의 연애」를 발표 직후 읽었다. 『21세기문학』 2015년 가을호에 실렸는데 누군가가 먼저 읽고 좋다고 내게도 읽어보라고 했던 것이다. 나는 읽고 나서 정말로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내 마음에 든 부분은 양희가 필용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것도 그다지 적절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타이밍에 “나 선배 사랑하는데”라고 무심하게 말한 부분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필용은 양희에게 별 관심이 없었지만 마치 그 말 자체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매일 그녀에게 ‘지금도 사랑함’을 재확인하고 양희는 매일 “사랑하죠, 오늘도”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어제도 사랑했고 오늘도 사랑하지만 내일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수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내게는 지극히도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선배에게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딱히 영업 비밀은 아니었는지 그녀는 순순히 말해주었는데 어느 날 자신과 별로 친하지도 않은 어떤 사람이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나 김금희씨 소설 좋아하는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이미 그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었을 테지만 자신에게는 묘한 울림이 남았단다.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것이…… 호감의 표현인 것은 같은데 뭔가 시원치도 않고…… 기억이 분명하진 않지만 평론가였던 것 같다는데, 나는 그가 지금도 금희 선배의 소설을 좋아하는지도 궁금해졌다. 나중에 어떻게든 정체를 밝혀낸 뒤 만나서 물어봤는데 소설 속 양희처럼 “아, 금희씨 나 안 해요, 사랑”이라고 대답하면 재미있겠지, 킬킬킬, 하고 혼자 좋아해버리는 것이다……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흘러흘러 자정을 향해가고 있었기에 나는 마무리 느낌으로 선배의 소설관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면이 지면이니만큼 이 정도 거시적인 질문으로 마무리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선배에게 우리가 하는 일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던져버리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대체로 이것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늘 궁금해하고야 만다. 마음 같아서는 소설을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고 있는 행위의 정체를 물어보고 다니고 싶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소설관을 열심히 실토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금희 선배가 말하는 자리이니 그녀의 답을 듣기로 한다…… 선배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사명감을 품고 있고 소설이라는 매체에도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출판시장이 아주 오래전에 비하면 찌부러지긴 했지만(그녀의 표현이다) 소설은 여전히 적은 돈으로 가장 빨리,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쓴다는 행위가 자신에게 내적 성찰과 해방감을 가져다줌은 물론(오늘의 테마는 누가 뭐라 해도 ‘해방’인 것이다!) 읽는 이에게도 쾌감과 함께 깊은 사유의 온기를 전해주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이렇게 말한 금희 선배는 꽤 잘 살고 있는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런 일을 매일 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마지막으로 두 질문만 더 하고 싶었다. 그런데 카페 종업원이 와서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었다고 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 넓은 카페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우리 둘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준비한 질문지의 마지막에 적어둔 추상적이면서도 거창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선배가 곰곰이 생각을 가다듬고는 무언가 대답을 하려 했을 때 다시 종업원이 찾아와서 더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다고 했다. 하긴 우리가 얼마나 거시적인 대화를 나누든 그들도 퇴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퇴근은 소중한 것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자정이 다 된 시간, 밤거리로 나왔다. 어쨌든 우리는 집으로 가야 하므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하는 건널목 앞에 서서 파란불이 두 번 켜지는 동안 또다시 매우 사적이며 음험한 이야기를 나누고는 가야 하는 길을 갔다. 못다 한 거시적인 이야기는 내년에 다시 만나서 했으면 좋겠다고, 여운을 남기며. 예상표절적으로…… 아니면 양자역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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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솜 2016-05-08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인지 막걸린지 하다가도 금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글.
 




최선의 삶 / 임솔아 / 문학동네 / 2015.07


시도 쓰고 소설도 쓰는 '젊은' 소설가의 시작. 가장 깊은 곳에서 끄집어낸 진실한 이야기를 날렵한 문장으로 전하는 소설가. 문학동네 대학문학상의 2015년 수상자인 임솔아 작가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 문학동네 출판사 제공

















∎ 짧은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임솔아라고 합니다. 피터팬의좋은방구하기에서 성실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중고나라에서 열심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제 방 책상에서 성실하고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하고 있어요. 




∎ 2013년 시로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셨을 때와 이번 대학소설상을 수상하셨을 때의 느낌이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시가 당선되었을 때는 ‘시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랐어요. 모르는 세상에 갓난아기로 태어난 느낌이었어요. 근데 설렌다기보다는 앞이 캄캄하고 두려웠어요. 대학소설상을 받았을 때는 반대로 ‘끝’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랐어요. 좀비처럼 자꾸 되살아나는 전생을 잘 묻어주고 토닥토닥 장례식을 치러주는 느낌이었어요. 근데 끝났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벅찼어요. 어떤 시작은 끝처럼 막막할 수 있고 어떤 끝은 시작처럼 두근거릴 수 있다는 걸 믿게 되었어요.




∎ 『최선의 삶』을 완성해서 수상까지 한 이후에는 기나긴 ‘악몽’에서 벗어나셨나요?


제가 반복해서 꾸는 악몽이 몇 가지 있는데요. 그 악몽이 악몽 중에서 왕이라고 해야 할까, 제일 오래되고 제일 생생하고 제일 끔찍한 악몽이었거든요. 이제 그 악몽은 안 꿔요.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게 되었어요. 소설을 고칠 때까지만 해도 그 악몽을 꾸었는데 말이에요. 단행본 출간을 위해서 퇴고본을 보내고 나자 그 악몽이 사라졌어요. 진짜 이제 끝인가봐요. 




∎ 작품이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전에는 책에 대한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쓰는 게 중요하지 물질화되는 걸 목표로 잡으면 수단하고 목적이 헷갈리게 된다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꿈’은 현실에 없는 거잖아요. 머릿속에만 있는 건데 그게 현실화되어 악몽이 물건이 돼서 나온 결과물을 보고 싶었어요. 가끔 상상을 해 보았어요. 언젠가 이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다면, 내가 꾸는 악몽이 물건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전달된다면 느낌이 어떨까 하고요. 요즘은 그게 자꾸만 불편해요.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제 친구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도 염려스럽고, 엄마가 책을 읽고 자꾸 우시는 것도 그렇고요. 소설로조차 부모한테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 소설 속에도 등장하고 실재하기도 한 읍내동과 전민동은 작가님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읍내동은 제가 자란 동네예요. 저는 그 사실을 누가 물어볼 때만 말했어요. ‘읍내동’이라는 동네 이름만 들어도 ‘너네 집 읍내냐’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대전 사람들조차 ‘읍내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전에 읍내가 어디 있냐면서 웃었어요. 대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낙후된 동네였고, 지금도 그런 동네예요. 전민동은 제가 중학교 삼학년 때에 전학을 간 학교가 있던 동네예요. 읍내동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동네라는 걸 처음으로 가르쳐준 동네였어요. 대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좋은 동네였고, 지금도 아마 그럴 거예요. 읍내동 친구들하고는 오백원에 한 접시 주는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를 먹었는데, 전민동 친구들하고는 이천오백원에 한 접시 주는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를 먹었던 게 기억이 나네요. 읍내동에서도 전민동에서도 저는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렸는데요. 읍내동에서 만난 제 친구들은 아르바이트생이 되거나 휴대폰이나 중고차 판매원이 되거나 주부가 되었는데, 전민동에서 만난 제 친구들은 사장이 되거나 명문대생이 되거나 유학생이나 모델이 되어 있어요. 

어느 동네에서든 저는 이방인과 다름없었어요. 읍내동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진 것이 너무 많은 사람으로, 전민동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애들이 가진 게 너무 많다고 느끼는 사람으로 살았어요. 저는 이 두 동네 모두에 염증이 있어요. 벗어나고 싶어해요. 그런데 전민동에는 애정이 전혀 없는데 읍내동에는 애정이 남아 있어요. 읍내동 친구들로부터 도망을 갔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요. 




∎ 24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에 입학하셨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배우시기 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방을 얻은 동네가 신설동이었어요. 매일 지하철을 타고 명동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는 막차를 타고 돌아왔는데요. 지하철역에는 밤마다 소리를 지르는 여자가 있었고, 방이 있던 골목은 으슥했고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그 길 중간에 동대문도서관이 있었어요. 그 동네에서 그 건물만 바퀴벌레가 없을 것처럼 멀끔해 보였어요. 다른 세계의 건물처럼 보였죠. 좋아 보인다, 저기 가보자, 그래서 친구랑 들어갔어요. 그런데 최근에 다시 가봤더니 제 기억과 다르게 굉장히 낡았더라고요. 어쨌든 그때는 황홀한 기분으로 도서관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주민등록등본상 지역주민이 아니면 대출을 안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책을 훔쳐서 읽었어요. 

그러다 중고 노트북을 오만원 주고 사서 글을 썼고, 플로피디스크에 차곡차곡 모았어요. 짧은 건 시, 한 장 정도는 일기, 80매 이상은 소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한국에서 저만 알베르 카뮈를 알고 있는 줄 알았어요. 제 친구들은 모두 몰랐으니까요. 




∎ 한국문학보다는 해외문학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하신 것으로 아는데, 어떤 해외문학 혹은 해외작가를 좋아하시나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지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건 사르트르의 『구토』예요. 열아홉 살에 처음 읽었어요. 거의 닳도록 읽었어요. 




∎ 시와 소설을 다 쓰시지만 ‘글을 쓴다’는 하나의 개념으로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작가님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에는 글을 쓰는 걸 웬만해선 숨겼어요. 친구들이 하도 놀려대서요. 숨긴다고 티가 안 나는 일이 아니어서, 꽤나 놀림감이 되었죠. 하루는 친구가 연애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연애편지를 잘 써주면, 글을 쓴다는 것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열심히 써줬어요. 근데 친구가 다른 친구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더라고요. 제가 쓰지도 않은 감탄사까지 섞어서 “오, 넌 나의 달이여” 하면서요. 절 놀리려고 작정을 했던 거였어요. 글쓰기란 제게 그런 거였어요. 놀림감이 되는 거. 아무도 진심으로 읽어줄 리 없는 거. 하지만 글을 읽고 쓰고 있는 저만이 제 마음에 들어요.  




∎ 『최선의 삶』을 어떤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세요?


저 같은 친구가 읽어주기를 바라요. 저 같은 애들이 세상에 되게 많거든요. 또는 어린 나 같은 아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읽는다면 좋겠어요. 




∎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제가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제 글이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쓴 글이 고유명사가 되고 저는 대명사로만 살고 싶어요. 예전에 좋아했던 곰인형이 있었는데, ‘바람이’라고 불렀어요. ‘바람이’는 만화책에서 따온 이름이었어요. 그 만화 속에서 ‘바람이’는 진돗개였는데요. 어린이인 주인공이 위험에 빠지면 구해주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지만, 도움은커녕 말썽을 저지를 때도 있고, 어쨌든 주인공과 함께 있는 개였어요. 제 곰인형은 인형이라서 바람이처럼 용맹할 리는 없었지만, 내 옆에 가만히는 있었어요. 제가 매일 안고 잤어요. 어찌나 부비고 지냈는지 나중에는 털이 다 새까매지고 손도 귀도 다 뜯어졌죠. 저는 바람이한테 자주 말을 걸었어요. 대답을 들은 적은 없지만, 바람이랑 제일 친하다고 믿었어요. 누군가에게 제가 쓴 글이 바람이 같은 존재였으면 좋겠어요. 




∎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당신이 기다리던 글이었으면 좋겠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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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15년 5월 1일 출간 /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2015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정지돈 작가와 2014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황정은 작가가 대화를 나눴습니다. 문학동네 출판사의 도움으로 전문을 옮겨 싣습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젊은' 이야기를 읽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계간 문학동네 82호 - 2015. 봄> 中)








모든 크레타人은 거짓말쟁이

―어느 날, 에피메니데스


황정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서울에서 지돈을 만났다. 


  이야기를 마치고 보니 눈은 그쳤고 해는 졌고 길은 얼어붙었다. 나는 버스를 탔고 지돈은 아마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커피 한 잔과 물 한 잔을 연료 삼아 네 시간 정도를 이야기했다. 별로 묻지 않고 별로 대답하지 않는 자리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대단히 묻고 대단히 대답하는 자리가 되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소설 이야기를 하는 자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는데 루카치, 보리스 사빈코프, 케루악, 윌리엄 버로스, 블랑쇼, 장 콕토, 사사키 아타루에 장 뤽 고다르, 리얼리즘과 쉬르레알리슴, 포스트모더니즘 등등의 이야기까지 해버렸다. 이게 뭐야……라고 나는 생각했고 민나 도로보데쓰……라고 지돈은 말했다. 오늘까지 반년하고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나는 일정한 간격으로 지돈을 만나왔다. 9부 팬츠에 ‘있는 듯 없는 듯’이 모토인 페이크류의 덧신을 신는 지돈…… 정지돈씨는 어떤가요? 누군가 내게 그렇게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다. 지돈씨는요 발등 없는 양말을 신습니다. 최근에도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했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발등 없는 양말을 신습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발에 털도 많으면서……라는 대꾸를 듣게 된 것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근무하는 이모 언니의 대답이었는데 이 언니는 도대체 지돈의 발에 털이 많은지 적은지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따로 있겠지. 어쨌거나 여기저기에서 이상하게 발로 기억되는 남자…… 지돈이 대구에서 자랐으며 그 동네에서 꽤 유명했다는 이야기를 나는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뭐로 유명했어? 라고 묻자 지돈은 커피 한 잔을 더 시키더니 누나 나 진짜 노는 애였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혼자…… 노는 애였어, 라고 지돈은 말했다. 영화에도 관심이 많고 소설에도 관심이 많은데 그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었다. 대구에서 꼬마 지돈은 외로워서 소설을 읽었다. 처음엔 추리소설을 읽었는데 무척 재미있어서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신나게 시도도 해보았다고 한다. 그게 무슨 내용이었느냐면 누나…… 교장선생이 교단에서 훈화를 하다가 마이크를 쥐고 갑자기 죽어버려서 초등학생 탐정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추리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트릭을 만들어낼 수가 없었어. 꼬마 지돈은 꼬마였으니까…… 아직 덜 꼬인 인간이었으니까…… 추리소설은 단념하고 판타지로 넘어가 판타지를 읽고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무척 재미있어서 이 정도는! 하고 내가 판타지소설을 썼거든. 그런데 같은 반 애들이 그걸 되게 재밌게 여겼어. 자기들 이름이 나오니까. 내 짝 요한이는 검투사, 나는 마법사…… 제일 간지나는 걸 내가 하고…… 무협소설도 좀 썼는데 애들한테 그게 인기가 있었어. 이름도 뭐 있어 보이게 육지일마 김요한, 천하일검 정지돈 뭐 이런 식이니까…… 제일 간지나는 걸 내가 하고…… 그런데 이런 걸 말하니까 내가 너무 얇은 애 같잖아…… 누나 그런데 실은 내 별명이 얇지돈이야…… 왜 얇지돈이냐면 음……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 얼굴이네…… 됐어 나 예민하다…… 아무튼 그때가 중학교 일학년 때였는데 내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애들이 너도나도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 판타지소설 쓰기 붐이 일어난 거야, 우리 반에…… 그래도 나는 계속 혼자 노는 애였어…… 


  중학교 삼학년 때 IMF를 맞은 뒤로 지돈은 오랫동안 읽기도 쓰기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는 영화 연출을 전공했지만 편집 작업에 좀처럼 매력을 느끼지 못해 시나리오를 쓰다가 소설로 돌아왔고, 소설을 열심히 썼는데 등단이 되지 않아 출판사 창비에 입사했고, 그럭저럭 적응하며 지내다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려고 출판사에 사표를 제출했는데, 사표를 제출하러 출판사에 들른 날에 등단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지돈이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이자 등단 소식을 들은 날에 나는 그를 처음 보았다. 2013년 4월 어느 날, 나는 팟캐스트 <책다방>을 녹음하는 파주 녹음실에 머물고 있었는데 지돈이 이른 오후에 마지막 출근이라며 인사를 하러 왔다가 늦은 오후에 등단 연락을 받았다고 다시 인사를 하러 왔다. 지돈은 두 차례 모두, 김두식 선생에게는 인사를 하고 내게는 하지 않았다…… 나도 예민하다…… 기억해두겠다고 생각했고 기억해두었다. 오늘 같은 날이 드디어 도래했으니 오래 마음먹은 대로, 울려버리겠다…… 




  울려버리겠다……고 마음먹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데엔 딱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내가 소설을 마감한 뒤라서 육신이며 모든 것이 희박한 상태였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지돈의 소설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여행자들의 지침서」로 지돈의 소설을 접하고 다음 작품이 너무도 궁금해 빨리 다음 원고를 완성하라고 독촉하고 있는 입장이니 이 작가를 울려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여행자들의 지침서」에서 뭔지 모르게 케루악을 향한 애정을 감지한 나는 비트 세대의 문학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비트는 별로, 라고 지돈은 말했다. 그들의 작품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들의 애티튜드는 좋아한다고 지돈은 덧붙였다. 비트 세대의 어떤 애티튜드? 라고 묻자 지돈은,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의 싸움을 제대로 한번, 해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라는 이야기를 했다. 누나 나는 자기 장르에 대한 자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좋아…… 자기 미디어에 관한 의식 말이야. 애티튜드 애티튜드…… 


  언젠가 지돈은 어딘가의 인터뷰에서 조금 긴 소설을 쓰고 있다며 그 소설은…… 문학에 대한 문학인 동시에 정치적이고 사회 비판적이며 사랑과 섹스, 동성애와 죽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역사, 도시와 범죄, 망명과 머무름, 혁명과 밤에 대한,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오렌지에 대한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을 한 적이 있었고 나는 그게 지돈이 요즘 쓰고 있다는 장편일 거라고 짐작했지만 실은 「건축이냐 혁명이냐」였다고 지돈은 쑥스러운 듯 말했다. 지돈의 다른 작품들처럼 「건축이냐 혁명이냐」의 인물들은 한국적 맥락을 넘어 세계적 맥락으로 우연이자 필연인 것처럼 존재하고 있는데 지돈은 태어나 한 번도 한국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다. 가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이라는 전제를 붙이며 지돈은 말했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어. 파리…… 뉴욕…… 나는 그런 장소엔 가보지 않았지만 소설을 쓰는 데 그런 장소를 직접 가보는 게 반드시 효과적이진 않은 것 같아. 소설은 르포르타주가 아니니까…… 어떤 장소나 인물을 직접 보는 것보다는 그것을 적은 문장을 보는 게 훨씬 더 상상하게 만들어. 예컨대…… 내가 어느 날 삼청동 카페에서 어떤 남자를 봤거든. 이 남자가 계속 화장실에 머물면서 누가 문을 두드리면 일단 나왔다가 그 사람이 나오면 다시 들어가고 또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나와서 기다리다가 화장실이 비자마자 다시 들어가고…… 그걸 반복하고 있는 거야. 화장실 앞에서 화장실이 비기를 기다리면서도 거울 앞에서 뭘 계속 하고 있어. 저 사람이 도대체 뭘 하고 있나…… 하고 봤더니 되게 힙하게 입은 사람이었거든? 모자를 조금씩 돌려가면서 자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는 거야. 진짜 일 밀리미터씩…… 모자를 왼쪽 오른쪽으로 돌렸다 말았다…… 재킷 깃을 이렇게 만지작만지작…… 그걸 한 시간 반 동안 하고 있더라고…… 화장실 앞에서…… 진짜 특이한 광경이었는데 이런 광경을 직접 보는 건 별로 나를 상상하게 만들지 않아. 현실 이미지 자체가 너무 압도적이니까…… 그 광경을 묘사한 간접 텍스트가 훨씬 더 나를 상상하게 만들어. 내 경우 영화도 아니고 문장, 나를 가장 상상하게 만드는 게 문장이야…… 그러므로 내내 도래하지 않을 적절한 각도로 깃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라는 그 광경 자체보다는, 내내 도래하지 않을 적절한 각도로 깃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 라는 문장이 나를 더 상상하게 만드는 거야…… 텍스트는 현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텍스트도 현실이라고 나는 생각해. 장 뤽 고다르가…… 내가 이 아저씨 되게 좋아하는데…… 고다르가 영화는 현실을 잘 담아내야 한다는 주장에 맞서 한 이야기가 있어. 영화는 촬영된 현실이다…… 아마 그렇게 말했을걸? 누나가 지면으로 이 이야기를 재인용하려면 고생 좀 하겠다…… 자료도 찾고 좀 힘들겠어? 라고 지돈은 말했다……라고 적어버리겠다……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글쓰는 것이 좋으냐고 물었다. 지돈은 망설이는 척을 하면서 좋다고 대답했다. 글쓰는 거,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묻자 이번에 지돈은 진짜로 대답을 망설였다. 어떤 말로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글쓰는 거,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으면 말문이 막히고 마는데 그것은 왜냐하면 아마도 질문이 이미 답이라서. 그런데 지돈이 글쓰는 걸 좋아해서 다행이다. 다른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고, 소설 쓰는 걸 좋아해서 다행이다. 왜냐하면 내가 지돈의 소설을 좋아하니까. 더 읽고 싶으니까.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어디까지가 실재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인지를 궁금하게 여길 것이다. 허구와 실재가 따로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본다면 지돈의 허구 만들기는 무척 흥미로운 작업일 테고 그것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 말하기 시작할 테니 나는 지돈의 소설 포인트를 리듬에 두고 싶다. 「여행자들의 지침서」를 읽을 때 나는 처음에 담담했다가 이윽고 음독(音讀)하기 시작했고 마지막 문장을 읽고 책을 덮은 다음엔 이 작가의 다음이 몹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소리를 내서 읽은 문장들에 어떤 리듬이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난 뒤에도 그 리듬이 남아 짤깍 짤깍, 이 작가의 다음 그다음을 계속 읽고 싶게 만들고 그 리듬을 조금 더 타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었으니까. 맛있었다. 얼핏 평범한 문장이었지만 그 언어를 수집하고 배열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에서 지돈은 그 공을 더욱 닦아 “언뜻 봐서는 연관을 찾을 수 없는 다양한 이미지와 수집물로 가득하며 그러한 이미지는 통상 말하는 예술적인 무언가가 아닌 단순한 기록 사진과 사소한 물품이 뒤섞인 것들로 이를 통해 기획자들은 이미지의 도서관, 그러나 원하는 정보를 정확히 찾을 수 없고 고정된 정보가 존재하지 않으며 기묘한 확장성과 통일성이 있는 이미지의 궁전을 만들어냈”다. 짤깍 짤깍. 물론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라서 짤깍 짤깍, 리듬을 따라가다보면 문득 “유덕문은 부군당은 왕이 아니라 신을 모시는 곳이라서 그렇다고 대답했다”와 같은 놀라운 문장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서울에서 지돈을 만났다. 

  나는 이날 인터뷰를 마치고 다른 곳에 가볼 작정이었는데 지돈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보니 눈은 그쳤고 해는 졌고 길은 얼어붙었다. 나는 버스를 탔고 지돈은 아마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지돈을 만나고 돌아온 결과가 지금 내 책상에 있다. 








  어느 시점에 나는 지돈의 소설을 펼치고 지돈에게 밑줄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상상으로 적은 문장에 밑줄을 그려보라는 이야기였는데 거짓말에…… 밑줄을 그려보라고? 라고 지돈은 반문했다. 다소 어색하고 무례하고 이상한 부탁이라서 뺨을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지돈은 연필을 쥐고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아무데나 막 긋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지돈이 연필을 내려놓더니 소설을 내 쪽으로 밀어주면서 알다시피…… 이게 거짓말이라는 거짓말일 수도 있어……라고 내게 말했다. 그래……라고 대답하면서 나는 정지돈이라고 적힌 곳 아래 밑줄을 긋고 크레타人이라고 적어두었다. 









_『문학동네』2015년 봄호, 제6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자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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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5-13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정지돈 작가에게 관심이 갑니다. 이번 수상작품집 꼭 읽어야겠어요!!

원곡변 2016-01-08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상작을 다시 읽게 만드는 좋은 글이에요
 

국경시장 / 김성중 지음

2015년 2월 25일 발행


김성중의 두번째 소설집 작가의 말에는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내륙 국가인 볼리비아는 패전 후 영토를 뺏기고, 자신들의 지도에서 바다가 사라진 이후에도 해군을 해체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언젠가 바다로 향할 꿈을 꾸며 해군 훈련을 계속한다. 해발 삼천팔백십 미터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배멀미를 참고, 그 언젠가 막연한 희망을 위해 훈련하는 볼리비아의 해군의 모습. 어떤 작가에게 있어 소설쓰기는 이와 비슷한 것이리라.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명백한 비전 없이도, 멀미를 참으며 박력 넘치는 소설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노를 젓는. 



김성중의 소설 속, 유려한 상상의 세계는 독특한 미적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문장은 매끄럽고, 그가 상상해낸 세계는 각기 다른 독특한 맛을 낸다. 표제작 <국경시장>은 기억을 팔아 물건을 사는, 이국의 낯선 시장을 독자의 눈 앞에 차려놓는다. 기억을 모두 팔아 더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하는 여행자의 그 세계. 그가 하는 이야기는 진실일까? 국경시장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환상과 현실 속에서 이야기가 교차한다. 거대한 소설을 원하는 작가와, 기억을 팔아서라도 소유하고 싶은 소설의 욕망이 교차한다.


"강 상류에서 잡히는 물고기 비늘입니다. 열다섯 살 미만의 소년에게만 잡히는 진귀한 물고기들이지요. 산 채로 튀겨내면 비늘 하나하나가 곤두서서 떼어내기 좋은 상태로 변합니다. 듣자니 비늘만 쓰고 몸통은 버린다고 하더군요." (...) "이 물고기들은 세상의 어떤 화폐로도 환전해주지 않습니다. 오직 그 사람의 기억과 맞바꿀 수 있을 뿐이죠....."

(국경시장 中)




심술궂은 삶에 이제는 지쳐버렸다. 더이상 사람들의 결점을 찾아 음미하는 일이 즐겁지가 않다. 어릴 때는 똑똑하다고 따돌림을 받았고, 커서는 음침한 성격이라며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모두가 피서지로 떠난 여름에도 혼자 도서관에 앉아 모래 대신 잉크를 묻히던 청춘의 시간들. 

(쿠문 中)



<쿠문>의 세계도, 환상이 가루처럼 뿌려진 욕망의 세계이다. 쿠문을 얻는 자는 천재적 재능을 얻는 대신 짧고 고통스러운 삶을 얻는다. 천재인 동생을 질투하며 유년기를 뒤틀린 채 보낸 '나'는 선택지 앞에 놓인다. 쿠문을 얻는다면 놀라운 집중력으로 작곡, 그림, 저작, 무용 등 온갖 창조적인 작업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발진이 연달아 터지는 순간에도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환상에 매달린다. 그리고 5년 안에 고통스럽고 비참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선택지의 욕망 앞에서 소설 속 '나'도, 소설가도 머뭇댄다. 티티카카의 호수에서 배멀미를 참고 노를 젓는 해군처럼. 정확한 박자를 찾기 위해 손바닥이 터지도록 드럼을 두드리는 사악한 음악 훈련처럼.


꾸준히 젊은작가상에 이름을 올렸던 작가의 이름이 어느덧 일정한 신뢰감을 만들어 낸다. '젊은' 작가가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에서는 맵시있게 배치된 문장들만큼이나, 소설을 향한 야심이 눈에 띈다. 자기 자신마저 잃게될지라도 더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 국경도 규칙도 없는 소설의 세계에서 거대한 바다를 향해 배멀미를 참고 발을 내딛는 욕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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