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 숙녀의 기분



  이 시집 속 풍경, 굴욕은 도처에 있다. “<On Style>채널이라면, 안약이랑 감자칩만 있으면 되니까, 말도 못 하게 머리가 아플 정도로 들여다볼 수도 있는데” (24시간 열람실) 현실은 도서관이다. 불철주야 공부하면서도 너무나 아름다운, 진정한 숙녀들을 보며 ‘열폭’하기도 하고, “점심은 가방이랑 먹어요 오늘은 아무도 날 몰라봤으면” (학생식당) 하고 간절하게 빌어보기도 한다. “내일은 버스를 타고 더 먼 숍으로 가자 갖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행복해”(나의 여학생부) 탐욕마저 애처로운 소녀의 중얼거림은 또 어떨까. 세련되고 구차한 삶이 가능할까. 블로거 인기 아이템과 케이블티브이 핫스폿을 찾아다니면서 소셜커머스와 할인쿠폰을 놓치지 않는 영리하고 쪼잔한 삶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그러나 이 시집,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경쾌하고 당혹스럽고 졸렬하고 창피한 순간. 젠틀맨과 숙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굴욕플레이를 주고받는다.

  “내가 시험 떨어졌다고 이러는 거니?” “그러지 말랬지 그런 마이너스 사고방식” 어린 연인들의 대화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기숙사 커플) “이 술 마셔. 그래야 날 이해할 수 있다.” 허섭스레기 같은 멘트를 쏟아대며 나를 쏘아보는 남자, ‘선생님’을 보며 그의 타버린 토스트 가루 같은 블랙헤드를 세어보는 (쉽게 질리는 스타일) 희극적인 풍경은 어떨까. “나는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렸어 발레파킹 아저씨도 나한텐 안 이래”(기대)라고 무심한 남자친구에게 쏴댄 후, 미안하다고 내 이름을 부르며 외치는 남자를 두고 느끼는 낭만적인 기분. 만국의 소녀들은 스스로 굴욕을 생산하고, 그 수치스러움이 곧 사랑스러움의 원천이 된다.


  그들은 진실게임을 한다. 구직활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차이고, 또 차고, 다시 연애를 시작한다. 우리라는 ‘거룩한 속물들’의 부끄러움의 풍경을 기록한 이 시집. “큐티 큐티 큐트 샤라랑” 과장된 어법이 일상을 위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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