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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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그들의 표정인 것 같았다. 그것을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들은 너그럽고 친절하며 느긋한 동시에, 어디에도 매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말하자면 방관자와 같았다. 어쩌다 그 정비소 안에 발길을 들여놓게 되었는데 그냥 누군가가 손에 스패너나 렌치를 쥐여 준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일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노력은 물론이고 "나는 정비사"라는 자부심도 없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오후 5시만 되면, 또는 8시간의 근무 시간만 채우면, 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더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임을 누구나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근무 중에조차 벌써 자신들의 일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임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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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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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방석을 나란히 깔고 누운 제게 찬 보리차를 따라 주며 등을 가만히 쓸어주었죠. 그러다 문득 낮게 중얼거렸습니다.
"우리 딸이 아니어서 다행이야."-31쪽

넌 여기서 뭐하는 거니? 이런 때일수록 제일 똑똑한 네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해야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되겠니? 한심하게.
한심해, 한심해......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제 머리와 등을 연신 철썩철썩 때렸습니다. 전 울면서 "잘못했어요."하고 몇 번이나 빌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향해, 누구를 향해 비는지는 잘 알 수 없었습니다.-88쪽

그걸로 충분해요. 곰 가족에게는 그걸로 충분하다고요.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새언니 탓이 아니에요. 곰 가족이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잊고 분수에 넘치는 짓을 해서 벌을 받은 거라고요. 불행에 빠진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건 자기밖에 없다며 교만을 떨 것이 아니라, 곰한테 딱 맞는 건강하고 수더분한 상대를 만나 결혼했더라면 나름대로 귀여운 자식도 보고 좋았으련만. 그 아이도 모두 예뻐했을 텐데. 예쁘장한 아이가 곰의 집에 들어왔다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마냥 들떠서 좋아하다가 이런 중대한 사실을 다들 간과하고 만 거라고요.-166쪽

수사는 심야까지 이어졌다지만 난 9시쯤에 순경 아저씨와 함게 귀가했어요. 현관을 열고 순경 아저씨의 얼굴을 본 순간, 어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군요.
어머, 이거 미안해서 어떡해요. 그렇잖아도 지금 막 데리러 가려던 참인데. 초등학교에서 사고가 났다는 얘기는 시노하라씨한테 전화로 들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얘 언니가 몸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네, 천식이 아주 심하거든요. (...) 사람이 한 명 죽어 나갔다는데 생글생글 웃으며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어머니를 보자 눈물이 나더군요. 한심하다고 해야할지 슬프다고 해야할지.....-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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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문 -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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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실은 말도 못하게 희귀한 특수 체질이거나... 아니면 바로

재수가 없었다는 것.

늘 그랬다. 재수도..재주도 없었던 인생... 텅 빈 우유팩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는 담배를 주문한다.-15쪽

인간의 범주가 얼마나 넓은 것일가를, 머리채를 잡히고 폭행을 당하던 바로 그 순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주민등록증을 가진 괴물, 학생증이며 졸업증명서며 명함을 가진 괴물들이 가득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서로를 괴물이라 부르긴 좀 그렇잖아? 그래서 만들어낸 단어가 인간이 아닐까, 그녀는 생각했었다.-20쪽

그리고 실은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음.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나는 잠시 지나온 삶을 돌이켜본다. 내 삶은... 그러고 보니 삶이란 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물론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그것을 절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다.-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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