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시장 / 김성중 지음
2015년 2월 25일 발행
김성중의 두번째 소설집 작가의 말에는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내륙 국가인 볼리비아는 패전 후 영토를 뺏기고, 자신들의 지도에서 바다가 사라진 이후에도 해군을 해체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언젠가 바다로 향할 꿈을 꾸며 해군 훈련을 계속한다. 해발 삼천팔백십 미터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배멀미를 참고, 그 언젠가 막연한 희망을 위해 훈련하는 볼리비아의 해군의 모습. 어떤 작가에게 있어 소설쓰기는 이와 비슷한 것이리라.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명백한 비전 없이도, 멀미를 참으며 박력 넘치는 소설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노를 젓는.
김성중의 소설 속, 유려한 상상의 세계는 독특한 미적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문장은 매끄럽고, 그가 상상해낸 세계는 각기 다른 독특한 맛을 낸다. 표제작 <국경시장>은 기억을 팔아 물건을 사는, 이국의 낯선 시장을 독자의 눈 앞에 차려놓는다. 기억을 모두 팔아 더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하는 여행자의 그 세계. 그가 하는 이야기는 진실일까? 국경시장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환상과 현실 속에서 이야기가 교차한다. 거대한 소설을 원하는 작가와, 기억을 팔아서라도 소유하고 싶은 소설의 욕망이 교차한다.
"강 상류에서 잡히는 물고기 비늘입니다. 열다섯 살 미만의 소년에게만 잡히는 진귀한 물고기들이지요. 산 채로 튀겨내면 비늘 하나하나가 곤두서서 떼어내기 좋은 상태로 변합니다. 듣자니 비늘만 쓰고 몸통은 버린다고 하더군요." (...) "이 물고기들은 세상의 어떤 화폐로도 환전해주지 않습니다. 오직 그 사람의 기억과 맞바꿀 수 있을 뿐이죠....."
(국경시장 中)
심술궂은 삶에 이제는 지쳐버렸다. 더이상 사람들의 결점을 찾아 음미하는 일이 즐겁지가 않다. 어릴 때는 똑똑하다고 따돌림을 받았고, 커서는 음침한 성격이라며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모두가 피서지로 떠난 여름에도 혼자 도서관에 앉아 모래 대신 잉크를 묻히던 청춘의 시간들.
(쿠문 中)
<쿠문>의 세계도, 환상이 가루처럼 뿌려진 욕망의 세계이다. 쿠문을 얻는 자는 천재적 재능을 얻는 대신 짧고 고통스러운 삶을 얻는다. 천재인 동생을 질투하며 유년기를 뒤틀린 채 보낸 '나'는 선택지 앞에 놓인다. 쿠문을 얻는다면 놀라운 집중력으로 작곡, 그림, 저작, 무용 등 온갖 창조적인 작업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발진이 연달아 터지는 순간에도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환상에 매달린다. 그리고 5년 안에 고통스럽고 비참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선택지의 욕망 앞에서 소설 속 '나'도, 소설가도 머뭇댄다. 티티카카의 호수에서 배멀미를 참고 노를 젓는 해군처럼. 정확한 박자를 찾기 위해 손바닥이 터지도록 드럼을 두드리는 사악한 음악 훈련처럼.
꾸준히 젊은작가상에 이름을 올렸던 작가의 이름이 어느덧 일정한 신뢰감을 만들어 낸다. '젊은' 작가가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에서는 맵시있게 배치된 문장들만큼이나, 소설을 향한 야심이 눈에 띈다. 자기 자신마저 잃게될지라도 더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 국경도 규칙도 없는 소설의 세계에서 거대한 바다를 향해 배멀미를 참고 발을 내딛는 욕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