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삶 / 임솔아 / 문학동네 / 2015.07
시도 쓰고 소설도 쓰는 '젊은' 소설가의 시작. 가장 깊은 곳에서 끄집어낸 진실한 이야기를 날렵한 문장으로 전하는 소설가. 문학동네 대학문학상의 2015년 수상자인 임솔아 작가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 문학동네 출판사 제공
∎ 짧은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임솔아라고 합니다. 피터팬의좋은방구하기에서 성실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중고나라에서 열심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제 방 책상에서 성실하고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하고 있어요.
∎ 2013년 시로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셨을 때와 이번 대학소설상을 수상하셨을 때의 느낌이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시가 당선되었을 때는 ‘시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랐어요. 모르는 세상에 갓난아기로 태어난 느낌이었어요. 근데 설렌다기보다는 앞이 캄캄하고 두려웠어요. 대학소설상을 받았을 때는 반대로 ‘끝’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랐어요. 좀비처럼 자꾸 되살아나는 전생을 잘 묻어주고 토닥토닥 장례식을 치러주는 느낌이었어요. 근데 끝났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벅찼어요. 어떤 시작은 끝처럼 막막할 수 있고 어떤 끝은 시작처럼 두근거릴 수 있다는 걸 믿게 되었어요.
∎ 『최선의 삶』을 완성해서 수상까지 한 이후에는 기나긴 ‘악몽’에서 벗어나셨나요?
제가 반복해서 꾸는 악몽이 몇 가지 있는데요. 그 악몽이 악몽 중에서 왕이라고 해야 할까, 제일 오래되고 제일 생생하고 제일 끔찍한 악몽이었거든요. 이제 그 악몽은 안 꿔요.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게 되었어요. 소설을 고칠 때까지만 해도 그 악몽을 꾸었는데 말이에요. 단행본 출간을 위해서 퇴고본을 보내고 나자 그 악몽이 사라졌어요. 진짜 이제 끝인가봐요.
∎ 작품이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전에는 책에 대한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쓰는 게 중요하지 물질화되는 걸 목표로 잡으면 수단하고 목적이 헷갈리게 된다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꿈’은 현실에 없는 거잖아요. 머릿속에만 있는 건데 그게 현실화되어 악몽이 물건이 돼서 나온 결과물을 보고 싶었어요. 가끔 상상을 해 보았어요. 언젠가 이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다면, 내가 꾸는 악몽이 물건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전달된다면 느낌이 어떨까 하고요. 요즘은 그게 자꾸만 불편해요.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제 친구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도 염려스럽고, 엄마가 책을 읽고 자꾸 우시는 것도 그렇고요. 소설로조차 부모한테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 소설 속에도 등장하고 실재하기도 한 읍내동과 전민동은 작가님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읍내동은 제가 자란 동네예요. 저는 그 사실을 누가 물어볼 때만 말했어요. ‘읍내동’이라는 동네 이름만 들어도 ‘너네 집 읍내냐’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대전 사람들조차 ‘읍내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전에 읍내가 어디 있냐면서 웃었어요. 대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낙후된 동네였고, 지금도 그런 동네예요. 전민동은 제가 중학교 삼학년 때에 전학을 간 학교가 있던 동네예요. 읍내동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동네라는 걸 처음으로 가르쳐준 동네였어요. 대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좋은 동네였고, 지금도 아마 그럴 거예요. 읍내동 친구들하고는 오백원에 한 접시 주는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를 먹었는데, 전민동 친구들하고는 이천오백원에 한 접시 주는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를 먹었던 게 기억이 나네요. 읍내동에서도 전민동에서도 저는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렸는데요. 읍내동에서 만난 제 친구들은 아르바이트생이 되거나 휴대폰이나 중고차 판매원이 되거나 주부가 되었는데, 전민동에서 만난 제 친구들은 사장이 되거나 명문대생이 되거나 유학생이나 모델이 되어 있어요.
어느 동네에서든 저는 이방인과 다름없었어요. 읍내동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진 것이 너무 많은 사람으로, 전민동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애들이 가진 게 너무 많다고 느끼는 사람으로 살았어요. 저는 이 두 동네 모두에 염증이 있어요. 벗어나고 싶어해요. 그런데 전민동에는 애정이 전혀 없는데 읍내동에는 애정이 남아 있어요. 읍내동 친구들로부터 도망을 갔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요.
∎ 24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에 입학하셨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배우시기 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방을 얻은 동네가 신설동이었어요. 매일 지하철을 타고 명동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는 막차를 타고 돌아왔는데요. 지하철역에는 밤마다 소리를 지르는 여자가 있었고, 방이 있던 골목은 으슥했고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그 길 중간에 동대문도서관이 있었어요. 그 동네에서 그 건물만 바퀴벌레가 없을 것처럼 멀끔해 보였어요. 다른 세계의 건물처럼 보였죠. 좋아 보인다, 저기 가보자, 그래서 친구랑 들어갔어요. 그런데 최근에 다시 가봤더니 제 기억과 다르게 굉장히 낡았더라고요. 어쨌든 그때는 황홀한 기분으로 도서관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주민등록등본상 지역주민이 아니면 대출을 안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책을 훔쳐서 읽었어요.
그러다 중고 노트북을 오만원 주고 사서 글을 썼고, 플로피디스크에 차곡차곡 모았어요. 짧은 건 시, 한 장 정도는 일기, 80매 이상은 소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한국에서 저만 알베르 카뮈를 알고 있는 줄 알았어요. 제 친구들은 모두 몰랐으니까요.
∎ 한국문학보다는 해외문학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하신 것으로 아는데, 어떤 해외문학 혹은 해외작가를 좋아하시나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지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건 사르트르의 『구토』예요. 열아홉 살에 처음 읽었어요. 거의 닳도록 읽었어요.
∎ 시와 소설을 다 쓰시지만 ‘글을 쓴다’는 하나의 개념으로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작가님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에는 글을 쓰는 걸 웬만해선 숨겼어요. 친구들이 하도 놀려대서요. 숨긴다고 티가 안 나는 일이 아니어서, 꽤나 놀림감이 되었죠. 하루는 친구가 연애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연애편지를 잘 써주면, 글을 쓴다는 것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열심히 써줬어요. 근데 친구가 다른 친구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더라고요. 제가 쓰지도 않은 감탄사까지 섞어서 “오, 넌 나의 달이여” 하면서요. 절 놀리려고 작정을 했던 거였어요. 글쓰기란 제게 그런 거였어요. 놀림감이 되는 거. 아무도 진심으로 읽어줄 리 없는 거. 하지만 글을 읽고 쓰고 있는 저만이 제 마음에 들어요.
∎ 『최선의 삶』을 어떤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세요?
저 같은 친구가 읽어주기를 바라요. 저 같은 애들이 세상에 되게 많거든요. 또는 어린 나 같은 아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읽는다면 좋겠어요.
∎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제가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제 글이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쓴 글이 고유명사가 되고 저는 대명사로만 살고 싶어요. 예전에 좋아했던 곰인형이 있었는데, ‘바람이’라고 불렀어요. ‘바람이’는 만화책에서 따온 이름이었어요. 그 만화 속에서 ‘바람이’는 진돗개였는데요. 어린이인 주인공이 위험에 빠지면 구해주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지만, 도움은커녕 말썽을 저지를 때도 있고, 어쨌든 주인공과 함께 있는 개였어요. 제 곰인형은 인형이라서 바람이처럼 용맹할 리는 없었지만, 내 옆에 가만히는 있었어요. 제가 매일 안고 잤어요. 어찌나 부비고 지냈는지 나중에는 털이 다 새까매지고 손도 귀도 다 뜯어졌죠. 저는 바람이한테 자주 말을 걸었어요. 대답을 들은 적은 없지만, 바람이랑 제일 친하다고 믿었어요. 누군가에게 제가 쓴 글이 바람이 같은 존재였으면 좋겠어요.
∎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당신이 기다리던 글이었으면 좋겠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