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한국의 지방 도시 D시의 중학생 '나'는 남들과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오래 전에 자각한 십대 퀴어입니다. 젊은작가상 대상, 신동엽문학상 수상, 미국의 출판 전문 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2021년 가을 주목할 작가’에 선정한 그 작가, 박상영이 첫 장편소설을 선보입니다. 2020년대를 이끌어갈 한국문학의 얼굴들 코너에서 작가와의 5문 5답을 소개합니다. | 질문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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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ladin co.kr/events/wevent.aspx?EventId=225551





냉소적인 상태이긴 하지만, 전작의 현란한 유머와는 다른 감각을 가진 『1차원이 되고 싶어』의 주인공이 신선했습니다. 스스로가 늘 남을 속여왔다고 말하는 주인공이지만, 실은 십대답게 아직 완성 전인 상태라 그 위장이 어설프다는 느낌이었어요. 스스로를 ‘감추고 싶다’는 마음은 꼭 퀴어만의 것은 아니어서, 무늬에게, 윤도에게, 태리에게, 희영에게, 그들이 지닌 비밀에 각각의 독자가 각각의 기억으로 공감하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전의 소설들의 주인공들이 다소 위악적이고 들뜬 마음의 상태였다면,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이 조숙하며, 세상의 일을 꿰뚫고 있다는 (그야말로 십대다운) 자의식을 가지고 있어 이전 소설들의 화자들과는 다른 말투를 구사하는 것 같아요.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특히 십대는 자신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모든 게 부끄러운 때이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대로 십대 시절 스스로에 대한 ‘견딜 수 없음’은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며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전에 알라딘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이 빨라지니까 작가들도 그에 발맞춰서 왕성하게 생산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말씀대로 데뷔 이후 계속 바삐, 무언가를 하고 계신 모습을 여러 매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무엇이 이 ‘수성못’의 이야기로 작가님을 이끌었는지 궁금합니다.

(2019년 인터뷰 보러 가기 https://blog.aladin.co.kr/line/10772742 ) 

 

이번 소설은 저 자신이 왜 글을 쓰게 되었으며, 무엇이 저를 이토록 ‘열심히’ 살게 만들었는지, 저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되었지만, 저를 추동하는 원동력은 기쁨이나 자아실현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오히려 불안감이나 우울, 분노 같은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발걸음을 멈추면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과장된 공포감이나 강박 같은 게 항상 무의식적으로 자리하고 있었고요. 저 혼자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들 그런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 원인을 찾던 중에 자연스럽게 제 유년의 공간이었던 수성못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 속에 제가 숨겨놓았던, 저조차 모르고 지냈던 어떤 상처와 시대의 아픔까지 같이 섞여 들어간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잔인한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 시절에 학교를 다녔고, 우열반을 경험했고, 푸른새벽의 음악을 들으며 ‘야자’를 했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그렇게 잔인한 일’을 어떻게 무심히 넘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이 소설을 읽으며 했습니다.



정말, 그런 야만의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일들을 많이 겪었지요.


저희 때만 해도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의 육체적 정신적 폭력이 공공연하게 이뤄졌고, 학내 성희롱이나 성폭력 사건도 빈번했어요. 소설에도 썼지만 모의고사와 내신 시험을 칠 때마다 중앙 현관에 1등부터 꼴등까지 성적표를 붙이는 문화도 그렇고, 다름 아닌 학교에서 입시 실적을 이유로 학벌지상주의와 성적지상주의를 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주입했어요. 공부만 잘하면 다 괜찮다, 누군가를 이기고 1등에 올라서면 된다는 메시지가 모두에게 뼛속 깊이 새겨졌고요.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가정 재산의 규모를 묻는 설문을 공개적으로 했었던 기억도 나요. 주거 형태가 자가냐 전세냐 월세냐, 아파트에 사냐 주택에 사냐, 냉장고와 텔레비전은 몇 대이며, 자동차의 크기는 어떠한가 같은 거. 성인이 된 지금, 타인에게 묻는다면 큰 실례가 될 만한 것들,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을 아무렇지 않게 모두의 앞에서 공개하도록 강요한 충격적인 문화였달까요. 소수자를 다루는 무신경하고 폭력적인 태도 같은 것.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도 당연히 공공연하게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곤 했고요. 모두가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게 이상한지도 모르고 그저 괴로워하며 그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나고 나니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상처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때의 풍경들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윤도와 나란히 눕거나 서로의 무릎을 벤 채 읽던 만화들, 『원피스』 『타로 이야기』 『아름다운 그대에게』 『나루토』와 같은 목록에서 반가움을 느낄 독자가 많을 듯합니다. 야자와 아이의 만화처럼 ‘그 시절’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을 소개한다면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이미 소설 속에 다 써놓았는데요, 사실 『1차원이 되고 싶어』를 구매하시면 함께 알라딘에서 굿즈로 받을 수 있는 ‘코멘터리 북’ 안에 소설에 나오는 만화 작품 목록이 모조리 담겨 있답니다. 그 속에 있는 모든 작품을 재밌게 읽었고, 감히 모든 작품을 추천드립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을 딱 두 개만 꼽자면, 야자와 아이의 『나나』와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입니다. 상반된 의미로 정말 사랑하는 작품이에요.














지금도 “천장의 무게를”(‘작가의 말 중에서) 느끼며 살고 있을 사람들, 특히 소설 속 이야기와 같은 시기를 건너갈 십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얘기일까요.


(그 시절 많은 어른들이 제게 했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괜찮아진다는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십대에 제가 겪었던 문제들은 삼십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아직도 제 삶에 나이테처럼 새겨져 때때로 저를 괴롭게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을 지나면 갖게 되는 굳은살이나 근육 같은 것들이 삶을 조금은 더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작가가 된 것은 십대 시절 아무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마음을, 문학작품을 통해서 위로받은 경험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는 십대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는데 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자주 생각했어요. 그런데 세상 어딘가에 나처럼 고통받으며,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세상을 감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됐습니다. 작가로서 감히 『1차원이 되고 싶어』가 그런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무엇보다 이 세상의 모든 십대들이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고, 그저 자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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