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10년 이하의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젊은작가상'이 10회째의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대상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라는 인상적인 소설집을 통해 독자에게 자신을 알린 박상영 작가가 수상했습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출간을 앞두고 박상영 작가를 만나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인터뷰에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 및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의 줄거리에 관한 이야기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상영의 지금
2019년이 벌써 세 달 가까이 지났는데요. 올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제가 올 초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그리고 한달동안 미국 뉴욕에 여행을 다녀왔거든요. 그때 재충전이 너무 잘 됐어요. 진짜 거의 삼 년치를 다 논 거 같아요. 등단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거의 하루도 못 쉬고 글을 썼거든요. 너무 휴식이 절실했는데 연초에 쉬어서 그건 참 좋았고. 이제 또 두번째 작품집 낼 때가 다 되고, 운 좋게 상을 받게 되고 불러 주시는 데가 많아서 바빠졌어요. 수업도 나가고 있고요. 삼월 이후로는 단행본 정리도 하고, 한겨레에 에세이도 연재하기 시작했고, 청탁도 있어서, 무진장 바빠질 것 같아요.
두번째 소설집을 준비중이시라고요.
여름 지나서 창비에서 나오게 될 듯해요. 작년에 운 좋게 청탁을 많이 주셔서, 상반기에는 젊은 작가상 활동을 하고, 하반기엔 소설집을 내는 계획입니다.
일년 텀으로 작품집을 내시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요.
그렇죠. 거의 안 내시는데, 작가들도 예전과는 다르게 계절마다 내시고, 그런 분들이 추세인 것 같아요. 세상이 빨라지니까 작가들도 그와 발 맞춰서 왕성하게 생산해야 하지 않나 해요. 아직은 신인이고, 초기니까요. 첫번째 작품집이 제 예상보다 잘 되기는 했지만, 좀 더 대중에게 각인을 시키기 위해서는, 잊혀지지 않게 부지런히, 꾸준히 내고 싶어요. 소설이 됐든, 에세이가 됐든, 단행본을 일이년 주기로 꾸준히 내는 게 사실 목표입니다.
그럼 오늘부터 저를 우럭이라고 부르세요. 쫄깃하게.
문장이 무척 유머러스합니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는> 에서는, “기차는 매일 매시간 돌아오는데 도대체 무슨 개 같은 소리일까 생각하며” 같은 문장이 재미있게 읽혔어요. <부산 국제 영화제>의 “언제부터인가 눈물보다 콧물이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노화의 징후인가”(<…자이툰 파스타> 106쪽) 같은 장면도 재밌었고요.
말씀해주신 두 상황은 실제로 제가 생각했던 것, 느꼈던 바를 썼어요. 나이 들수록 울면 눈물보다 콧물이 나오고, 코가 막혀서 목소리가 안 나오고 그럴 때가 많더라고요. 또 팀장님이 헛소리할 때면 우리 모든 사원들이 속으로 다 딴생각 하잖아요. 저는 평소에 신랄한 사람이기도 하고, 위기이거나 슬픈 상황일 때 웃음으로 주로 극복하고 회피하는 사람이거든요. 작품에 그런 제 인간됨이 반영되어 드러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는 사랑하고 있는 두 사람의 대화의 활력이 좋았어요.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인데요.
−더 투명한 쪽이 광어입니다.
−네?
−둘 중에 살점이 더 투명한 쪽이 광어다, 생각하면 구별하기 쉬울 거예요. 더 쫄깃한 쪽이 우럭.
−그럼 오늘부터 저를 우럭이라고 부르세요. 쫄깃하게.
−맞고 틀려요. 당신이 맛보고 있는 건 우럭, 그러나 그것은 비단 우럭의 맛이 아닙니다. 혓속에 감도는 건 우주의 맛이기도 해요.
−네? 그게 무슨 (개떡 같은) 말씀이신지……
‘오늘 부터 저를 우럭이라고 부르세요. 쫄깃하게.’ 이 대사가 동해에서 실제로 나눈 대화의 일부라고 인터뷰하신 걸 문학동네 봄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보았습니다. 이런 대사가 나오게 된 상황들이 궁금합니다.
주로 남이 했던 재미있는 말들은 메모를 해요. 친구들하고 놀다가 웃긴 얘기 나오면 소설로 써도 되냐고 묻고 에버노트 같은 데에 적어 놔요. 제가 했던 말들은 평소 제 말버릇이라서, 소설로 쓰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플러팅의 장면은 트위터에서 리트윗도 많이 되고 언급도 많이 되더라고요. 제가 실제로 그런 얘길 했던 건 아닌데, 원래 제가 말장난 하는 거 좋아해서 그런 상황을 쓰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보다 말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말 잘한다는 말은 좀 들었어요. 어릴 적부터도 왜 ‘나대는 애들’이라고 하는, 좀 그런 스타일이었든요. (웃음) 반장하고 앞에 나서서 얘기하는 거 좋아하고. 사실 본래 성형은 내향적인 것 같은데요, 웃기기 좋아하고 무대적인 자아가 좀 있는 것 같아요.
말의 활력 때문에 글을 읽으며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하는 그 장면을 실제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 발화가 됐던 것들이 아닐지라도, 소설 쓰면서 그렇게 읽히기를 너무 바라면서 쓰거든요. 죽어있는 대화문을 제가 별로 안 좋아해요. 물론 그런 멋있는, 유려한 대화문이 좋을 때가 있는데, 저는 그런 소설보다는 진짜 옆자리에서 떠들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기를 항상 바라고 있어서, 그렇게 읽어주셨다는 말씀을 들으면 감사합니다.
사랑을 하는 상태에 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의 화자가 ‘형’을 귀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와 닿았는데, ‘그’의 캐릭터는 “그렇게 숨이 가쁜 채로 지하철역에 도착하면, 그가 한 번도 내 쪽을 바라봐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연유 없는 절망감 같은 것에 사로잡혔다” 같은 문장이 묘사하는 상대방의 모습 때문에 개인적으로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어요.
저의 독자들, 저의 동료 작가들도 이 소설의 ‘형’ 캐릭터에 대해선 그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인물이 못 그려졌다는 게 아니라 비호감이라고. (웃음) 그걸 의도한 거는 맞거든요. 사람이 워낙 상황에 몰리면, 좋지 않다는 걸 자기가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사람과 이 관계가 건강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의지하고 빠져들 때가 있잖아요. 그런 상황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나한테 좋은 사람 찾기가 저는 되게 어렵기도 하더라고요. (웃음)
첫사랑은 아니지만, 거의 첫사랑과 다름없는 감정을 그리고 싶었어요. 첫사랑이 미숙한 이유가, 경험치가 없기 때문도 있지만, 저는 실질적으로 처음으로 맺는 전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부모님과는 어떻게 보면 태어날 때부터 강제적으로 맺게 된 관계인데, 연애 관계는 내 처음과 끝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속성의 관계를, 인간 대 인간으로 전적으로 나를 열게 되는 관계를 처음 선택해서 맺게 되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미숙한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첫사랑의 미숙함 같은 것들을 두 사람 모두에게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실은 화자가 사랑한 나이가 많은 ‘그 형’도, 주인공 화자를 어떤 의미에서 이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기 스스로도 자기를 받아들일 수 없고, 감정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됐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스스로를 가둬온 시간이 길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주 : 박상영 작가의 소설에서는 아래와 같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제제는 단 한순간도 어딘가에 현혹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매일 사랑을 하고 살았는데 꼭 가당치 않은 대상들을 골라 사랑하는 재주가 있었다.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 중)
굳이 부정할 필요도 비관할 필요도 없는
인물들이 노는 것조차 참 열심히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생을 낭비하는 것조차 열심히 하는 인물들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그 밑바닥엔 허무함 같은 게 읽히는 것 같아요.
그게 제가 느끼는 시대감각, 저희 세대의 감각인 것 같아요. 좀 진부한 말이지만, 다들 ‘무한경쟁’사회 속에서 살고 있고,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 한 명도 없잖아요. 이 사회는 열심히 살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구조를 이미 갖고 있으니까요. 모두가 이유도 모르고, 방향도 모르지만 다들 열심히는 살아요. 근데, 그렇기 때문에 더 큰 허무가 오는 것 같아요.
사람에겐 관성이라는 게 있으니까, 하루 종일 시달리면서 매일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 그게 권장되어 온 사람들은 쉴 때도 그 관성을 버리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인지 저 역시도 놀 때도 치열하게 노는 편이에요. 진짜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술도 정말 끝까지 마시고요. 소설 속 사람들의 이런 모습은 제가 생각하는 이 시대의 삶의 모습과도 되게 닮아 있는 거 같고, 에너지가 많은, 내적 에너지가 많은 저의 모습과도 닮아있는 것 같고 그렇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 난리치고 연애해도 결국엔 아무 것도 남을 게 없다는 거, 그런 방향성을 애초에 가지지 못했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허무감 같은 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허무함과 이어지는 감정일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열심히 농담하고 치열하게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있었어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는 엄마가 화자에게 “너무 애쓰지 마. 어차피 인간은 다 죽어.”라고 말해줘요.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에서는 “너 그러다 죽어. / 너도 죽어. 언젠가.” 라고 서로 대화하기도 하고요. <부산 국제 영화제>의 소라, <햄릿 어떠세요?>의 곰곰의 자살시도도 서술되고 있어요.
맞아요. 그게 작가로서의 제 가치관인 건 거죠 사실은. 저는 실은 좀 그런 비관적인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삶에 회의적이기도 하고요. 윤상이 (노래 <달리기>에서) 노래하기를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그 노래가 저한테 위로가 되기도 해요. 지금 이렇게 연료가 끝나가는 것처럼 달리고 있는데, 이게 진짜 끝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사실 많아요. 이렇게 힘든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지, 생각하고 있으면, 어차피 인간은 다 죽는 거고,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다 똑같이 죽는다. 생각하면 그게 되게 위안이 될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는 건 허무와 함께 오는 필연적인 귀결인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죽음을 갈망하는 건 아닌데요, 죽음을 끝없이 생각하는 게 현실을 살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자, 지금은 이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서 사실 태도가 비관적으로 보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위로를 하는 맥락에서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도 있었고요.
남미의 죽음 축제(멕시코 축제 ‘죽은 자의 날’)도 그냥 축제잖아요. 애니메이션 <코코>에도 나오듯이요. 자살, 죽음, 이런 말은 끔찍하고 오지 말아야 될 상황으로 터부시되는 측면들이 좀 있었잖아요. 근데 오히려 그게 저는 생을 더 똑바로 바라보게 해주는 투명한 거울 같은 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굳이 부정할 필요도 비관할 필요도 없는.
굳이 리모와 캐리어를 쓰고, 굳이 파라다이스 호텔을 예약하는 사람들. 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궁금했습니다. 자이툰 파스타의 ‘왕샤’(왕샤넬의 줄임말로 서술되어 있습니다.)는 샤넬을 쓰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해요. “샤넬이니까. 나는 그런 게 좋아. 그냥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거. 다른 걸로 대체될 수 없는 것들.” (<…자이툰 파스타> 156쪽)
삶에 뭔가 중심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런 브랜드 같은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브랜드 산업이라는 게, 유일무이하다는 가치를 파는 거잖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고, 다 똑같은 캐리어고, 호텔이고, 신발인데도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하면 제대로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니까 그런 데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캐릭터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광고회사를 다녔었고,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기도 해서 브랜드에 대해 많이 알기도 하고, 브랜드 홍보도 어떻게 보면 스토리텔링이라 브랜드 자체에 관심도 많긴 한데요. 저는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은 사실 별로 안 해봤어요. 브랜드에 대해서는 실은 관조적인 시선으로, 관찰하고 재밌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주변에도 돈 많이 벌고, 브랜드 좋아하고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런 걸 관찰하는 게 재밌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브랜드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허무해 보이는 부분이 있었어요.
허무하죠.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잖아요. 사는 순간, 들고 있는 순간, 그 잠시의 쾌락일 뿐이지, 그게 내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끊임없이 갱신해주지 않는다는 걸 다 알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또 광고 만드는 사람이었으니까, 사고 싶게 만드는 게 ‘개수작’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요. 브랜드의 고급 이미지를 만들고 하는 게 자본주의의 끝이라고 생각해서요. 어떻게 보면 그런 의미에서도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 인간이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이렇게’가 중요하고 들렸습니다.) 출근하는 걸 다 싫어하는데도, 하고 있잖아요. 이런 욕망을 창출해내는 게, 구조를 끊임없이 유지하는 수단인 거라고 생각해요.
부정적으로 보면 되게 허상이고, 나쁘다고 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뭔가를 갖고 싶어하는 욕망도 사실 삶의 방편 중 하나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 퇴직한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출퇴근이라는 시스템이 돈을 벌기 위해, 생산성을 위해 만들어진 거기도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현대사회는 농경사회와는 구조가 다르니까, 직장이 있고 출퇴근을 하도록 해서, 삶에 있어 일상의 리듬을 부여하고, 의미를 만들어주는 게 사실 인간에게 필요한 거구나 싶어요.
글을 쓰면서 제가 하는 질문이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소설들을 계속 쓰는 것 같고요. 브랜드에 대한 욕망에 대해 쓰는 것도 역시 같은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상영과 소설 사이의 긴장
전작에서 보았던 에피소드가 비슷하게 나오는 게 재밌었습니다.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사이엔 노래방 리모컨을 훔치는 에피소드가 유사하게 등장하고요. <부산 국제 영화제>와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사이에는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엄마의 병간호를 하는 ‘백수’상태인 자식의 서사가 비슷하게 등장해요.
의도한 게 맞아요. 손보미 작가의 단편에서 <담요>에 나오는 인물이 <애드벌룬>에 나오고 그런 것처럼, 저도 다른 작가들이 쓴 작품이 바통터치를 하듯 연결이 되는 게 독자로서 재밌어 보였고, 작가로서도 소재며 인물을 연결해 활용하는 게 재밌었어요.
실제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쓸 때 병이 걸린 엄마에 대한 전사를 소설 속에 포함을 시켜 놨다가 분량이 너무 늘어나서 전사를 다 들어냈어요. 다른 소설 한 편을 통해 그 이야기를 전적으로 써보자는 생각을 했었고, 설정으로 남겨둔 후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작업에 들어갔죠. 그 전에도 이 이야기에 대한 복선 같은 얘기는 다른 작품에서 했었으니 이번엔 ‘암 투병을 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중요한 주축으로 삼아서,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저희 어머니께서 암투병을 오래 하셨고, 그 일화들이 20대의 저에게는 되게 깊게 새겨져 있는 것 같아요. 기독교에 천착한 가정 역시 제가 20대에 겪은 요소의 일부이고요, 기독교적 가치관의 영향권에 항상 놓여 있었고요.
노래방에서 마이크 훔치고, 리모컨 훔치고 이런 에피소드는 노래방을 좋아하고 재밌을 것 같아서 썼어요. <가만한 나날>이라는 소설을 쓴 김세희 작가와 제가 아카데미에서 스물 몇 살에 만나서 합평 모임을 만들었었는데, 그 모임의 이름도 ‘로얄 노래방’ 이었어요. 그 정도로 노래방이라는 공간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적인 공간이잖아요.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재밌는 요소가 많아서, 쓰는 게 재밌어요. 제 2집에(두번째 소설집) 들어갈 소설들도 전작의 어떤 요소들을 가져온 소설들이 많을 것 같아요. 연작 소설도 포함되어 있고요. 그러니까 많은 기대를… (웃음)
제가 한 인물을 만든 후 잘 떠나 보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사고도 길게 하고, 서사도 쭉쭉 뽑아 나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 소설이 단편으로는 분량이 넘치고 하네요. 올해부터는 장편 작업을 계속 하면서, 중장편 소설 위주로 계속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하반기에는 책도 낼 계획이고, 장편 연재도 문학동네 카페에서 할 예정입니다.
젊은작가상 수상 소감 중 “이 소설의 특정 장면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을 그대로 잘라 붙인 것이나 다름없어서 쓰는 동안 꽤 힘겨웠으며.” 라고 말씀하셨어요. (주 : <…자이툰 파스타>에서는 이런 재치있는 대사가 등장합니다. “박감독님은 요즘 뭐하고 사시나요. 네이버에 검색해봐도 펜싱 선수만 나오던데.”) 소설은 픽션이니 가공되는 부분이 많겠지만, 간혹 소설 속 인물이 작가 본인으로 읽힐 법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저는 커밍아웃을 한 적이 없는데, 그렇게 적는 기자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사실 소설은 소설인 거죠. ‘펜싱 선수’ 구절은 사실 웃기려고 쓴거 같아요. 독자들이 소설을 허구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갑자기 진짜인가? 생각하는 순간, 그 긴장감을 되게 좋아해요. 작가와 화자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다 헷갈리는 순간, 그걸 독자로서도 즐거워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작품에도 그런, ‘사소설’적인 요소가 있어요.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신경숙의 <외딴 방>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이런 작품들을 좋아해요. 기본적으로 소설을 이렇게 쓰는 게 저는 되게 재미있어요. 의미심장하게 받아 들여지길 바라는 건 아니고요, 소설을 쓸 땐 모니터에 비치는 나를 보며 쓰게 되는데, 내가 그런 나를 웃기려고 하는, 웃기려고 쓰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저를 위해 하는 작업이니까, 저에게 중요했던 시절이나 문제 같은 것들을 소설에 담아내서 쓰고 그러면 조금 해소가 되는, 해소까지는 안 될지라도 그 문제를 그대로 바라보고, 그 상황을 나 자신에게서 조금 떨어트려 놓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완전 잘 만들어진 가짜’라고 느껴지는 작품도 있지만, 리얼리티의 요소가 있다면 독자도 이입하기 좋으리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취향에 따라 이런 작법으로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박상영 작가의 소설이 첫 문장, 인물, 장면 등등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그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했어요. 모자가 조각공원에 앉아서 삶에 대해서 얘기하는, 올림픽공원의 그 장면이 저에겐 강렬했어요. 다른 작품은 다 달라요. 캐릭터에서 출발한 작품도 있고요. 저는 문장에서 출발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고, 캐릭터나 장면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캐릭터에서 시작하면 이야기가 길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항상 길게 썼다가 덜어내게 되는 편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기호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우럭 한 점’에서는 상대방을 귀엽게 느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평소에 어떤 사람을, 어떤 상황을 귀엽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좋다는 것에 대해 말할 때 ‘귀엽다’고 말할 때가 많아요. “걔 어떻게 생겼어?” “귀엽게 생겼어.”이런 식으로요. 사실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행동이라서 그게 귀여운 거죠. 좋은 사람이 머리 안 감고 나오면 그것도 귀여워 보일 때가 있잖아요. 눈꼽 껴 있고 이런 것도 허술해보여서 귀여울 때고 있고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 “저는 그냥 디바를 좋아하는 거예요. 게이들 다 그렇잖아요. 브리트니랑 비욘세 싫어하는 게이가 어딨어.”라는 대사가 나와요. <…자이툰 파스타>에서 왕샤의 플레이 리스트는 ‘듀스와 터보, 소찬휘와 채정안’ 이었어요. 소설 속에도 ‘디바’에 대한 묘사가 나오곤 하는데요, 최근 빠지게 된 ‘디바’가 있을까요.
‘디바’라기보다는 뮤지션이겠지만, 요즘은 백예린 씨를 좋아해요. 15&로 데뷔했을 때도 엄청 좋아했었어요. 기본적으로 제가 일상생활에서도 노래 잘하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요. 백예린은 나오는 순간부터 ‘물건’이라고 생각했어요. 작업을 진행하면 할수록 작곡도 더 잘하고 작사도 너무 잘하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도 본인의 100%를 다 보여준 것 같지도 않은데도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백예린을 되게 좋아하고요. 외국 아티스트들, 소위 말하는 솔로 여성 아티스트를, 1위하고 남들 다 좋아하는 그런 아티스트들을 다 좋아해요. 아리아나 그란데 좋아하고요.
넷플릭스 포함, 최근 본 영화/드라마 중 인상 깊었던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요즘엔 사실 예전 작품을 많이 돌려보고 있어요. <친절한 금자씨>를 개봉했을 때도 재관, 삼관 정도는 했던 것 같은데요. 주기적으로 보는 영화라서 얼마 전에도 다시 봤는데 또 좋았어요. 넷플릭스에서는 <포즈>라는 드라마와 시트콤 <원 데이 앳 어 타임>, 또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를 진짜 재미있게 봐서 여러 번 봤어요. 얼마 전 <원 데이 앳 어 타임>은 캔슬이 결정됐다고 해서 사실 지금 너무 슬픈 상황입니다… 최근 새로 본 영화로는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가 좋았어요. 쿨한 척 하지만 실은 되게 상처받았고, 티내지 않고 넘어가려고 하는 그런 모습들, 그런 온도가 저랑 딱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2019 젊은작가상 이후
작년에도 젊은작가상을 수상해 수상작품집에 작품이 실렸는데요, 올해는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젊은작가상’에 대한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1회때부터,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모두 사서 모았어요. 대학생때부터 봤었죠. (김중혁 작가가 대상을 수상한) 1호가 나왔을 때, 대학생 때였는데, 그게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이 나요. 습작생 때도 이런 상에 이름을 올리는 작가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죠. 사실 제가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거의 못해서, 작년에 받을 때도 되게 놀랐거든요. 또 작년에 받았으니까 올해 받을 거란 생각은 안 하고 있었죠. 대상에 대해서는 꿈도 못 꿨어요.
제가 받게 되어 너무 기쁜 마음이 크고, 지금까지 수상하신 분들 목록을 보면 대단하신 분들이라 부끄러운 마음도 큰 것 같아요. 같이 수상한 작가들, 저랑 동시대에 쓰고 계신 작가들도 정말 좋은 작품을 많이 쓰고 계시니까요. 문학이 이것보다 저것이 낫다, 이렇게 정해지는 건 아니지만, 상의 시스템에서 제가 선정이 된 거 잖아요. 처음 며칠은 너무 좋다가, 작품집이 나올 때가 되니 사실 걱정이 많이 돼요. 독자들이 ‘왜 이런 게 대상이야’하는 소리를 할까봐 두려운 것도 사실이고요. (웃음) 너무 이른 걱정이긴 하지만, 저 자신의 능력보다 이 상의 크기와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제가 이후 이 상에 걸맞은 작가로 남을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큰 것 같아요. 이제 어떤 걸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 제 소설의 ‘시즌 원’을 정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박소라 연작, 퀴어소설 연작의 연장선상에서 맞닿은 거죠. 작가로서의 퀴어 예술가, 이런 설정들이 모이는 지점이라서, 요즘은 그 이후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두번째 소설집에는 백 퍼센트 퀴어 소설만 들어갈 거 같고요, 그 이후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서사를 워낙 좋아해서 다종, 다양한 얘기를 쓰고 싶어요. 어릴 적 제가 정말 좋아했던 작가가 애거서 크리스티라서, 미스터리, 추리물에도 관심이 많고요. 아직은 더 쓰고 싶은 게 많아서, 실망시켜드릴 일, 기대를 배반할 것 같은 두려움이, 기대감이 사실 있죠.
출간 예정인 올 수상작품집 포함,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렸던 소설 중 인상적인 소설이 있었다면.
황정은 작가의 <상류엔 맹금류>를 좋아해요. 모두가 다 좋아할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함께 출간될 특별판에도 (주 : 수상작가들이 뽑은 베스트 7 -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10주년 특별판) 포함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상류엔 맹금류>는 (좋아서) 소름 끼친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어요. 제가 <파씨의 입문>이라는 작품집을 정말 좋아했는데, 그 세계를 딱 정리하면서 그 다음 시점으로 넘어가는 작품들이라고 생각해서, 그때 작품들이 정말 소름 끼치게 좋은 것 같아요. <양의 미래>, <상류엔 맹금류> 같은 작품을 진짜 좋아해요.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 <조중균의 세계>도 너무 좋았고. 이장욱 작가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도 되게 좋아하고요.
황정은 작가를 좋아해서, 작가와의 만남을 하실 때도 갔었거든요. 강지희 선생님이(주 : 평론가) 사회를 보셨는데, 제가 이전에 어떤 시상식 뒤풀이에서 강지희 선생님깨 황정은 작가 보신 적 있냐고, 저는 한 번도 못 뵈어서 황정은 작가는 ‘전설의 포켓몬’ 같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강지희 선생님이 제가 그 행사에 온 걸 모르고, 사회를 보시면서 ‘박상영 작가가…’하면서 그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너무 민망했었어요. (웃음)
작가님을 좋아해서 사인을 받으러 갔었는데요. 되게 멋있으셨어요.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한 세시간을 서있었던 것 같아요. 저만 이렇게 황정은 작가를 깊이 사랑하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죠.
소설의 미래
언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어요?
아주 어릴 적부터 소설, 이야기라는 장르를 되게 좋아했어요. <단추로 끓인 스프> 같은 작품, 계몽사에서 나온 디즈니 문학전집을 거의 외울 때까지 읽었어요. 초등학교 때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봤고, <해리 포터>를 읽으면서 자라난 세대고요. 항상 글쓰기나 책읽기를 워낙 좋아했던 것 같아요. 작가란 직업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건 고등학교 때 신경숙 작가의 <외딴 방>이라는 소설을 읽었던 때인 것 같아요. 고등학교때 수시준비를 하느라 저도 서울에 와서 혼자 ‘외딴 방’에서 수시 준비를 했는데요, 소설 속 인물이 고향에서 서울로 와서, 차가운 데서 무를 씻고 출퇴근하는 그 상황을 보며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방식의 교감이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에, 독자 누군가에게 소설로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이 직업이 되게 멋있는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도 내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아요.
대학 다닐 때는 진지하게 생각하진 않았는데도, 아카데미도 다녔었고, 대학문학상에 작품을 내서 상을 받기도 했어요. 대산 대학문학상에 응모도 했었고, 박완서 선생님께서 심사하셨던 계명문학상에서 차선 정도로 뽑혔던 적도 있어서 식사도 같이 하고 그런 경험들이 있는데요. 그런 경험들이 조금씩 저를 작가의 길로 끌어당긴 것 같아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잡지사 다니고, 광고회사 다니고 하면서 고생을 했죠. 글을 매일 쓰고는 있는데, 쓰고 있는 글이 지면, 보도 자료니까, 이런 글이 아닌 다른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내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문지문화원을 다니면서 되게 열심히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요, ‘소설을 더 열심히 공부해봐도 괜찮지 않겠니’ 하는 말을 들어서 힘이 됐죠. 동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 가면서 본격적인 습작의 길로 들어섰는데요, 세희(김세희 소설가)와 일주일에 한번씩 80매씩 소설을 쓰면서 열심히 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소설 쓰기라는 것, 소설 쓰기가 아니면 내 삶의 다른 방편이 없다는 생각을 사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굳혔던 것 같고요. ‘밥벌이의 괴로움’이 소설을 쓰게 한 거죠.(웃음)
최근 읽은 책. 알라딘 독자에게 함께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을 이미 많이 읽으셨으리라 생각해서, 다른 작품, <나의 사랑, 매기>를 말하고 싶어요. 저에겐 너무 좋은 소설이었어요. 금희누나 문학의 정수라는 느낌이 들어서 저는 너무 좋았고요. 정세랑 작가의 <옥상에서 만나요>도 너무 좋았고요.
소설 외로는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대안적인 가족의 형태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어요. 김승섭 작가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과 <우리 몸이 세계라면>도 되게 재미있게 봤어요. 잘 쓴 산문, 한없이 잘 쓴 학술서를 보면 문학적이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김승섭 선생님의 글은 사실 사회학 서적에 가깝잖아요. 그런데도 읽다 보면 홀라당 넘어가는, 그런 경지가 있는 것 같아요. 요즘 계속 소설을 쓰며 들춰보는 책은 김찬호 작가의 <모멸감>이라는 책인데요, 얇고 잘 읽히면서도 제가 직장생활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디테일하게 분석해주는 느낌이 드는 책이라, 소설이 막힐 때 한번씩 보면 ‘내가 그때 그런 감정을 느꼈지’ 하고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꾸준히 좋아하는 책입니다.
올 젊은작가상으로 다시 독자를 찾게 되었습니다. 알라딘 독자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항상 이런 답변이 어려운데요.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재밌게 잘 읽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예전에 제가 문학을 통해, 소설을 통해 일종의 ‘치유’를 경험했듯이, 누군가 다른 분들도 되게 힘든 상황에 있을 때 제 작품을 보고 일말의 가능성을, 소통이나 치유, 위로를 받으실 수 있다면 그걸로 저는 다 된 거 같아요. 작가로서 제 모든 소망이 다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고, 그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면 너무 감사해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때 인터넷 서점에 달린 댓글인데 ‘곁에 있어 주고 싶은 사람들’ 이라고 적어주신 평이 기억에 남아요. 그 수많은 댓글 중에서 그 얘기가 기억에 엄청 남는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게 그건 거 같아서, 그렇게 말씀해주신 게 너무 감사했어요. 저 역시도 곁에 있어 주고 싶은 사람이고, 독자의 곁에 있고 싶은 그런 소설, 그런 작가가 되고 싶고요. 여러분께도 그런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그런 소설을 제 힘 닿는 데까지 끊임없이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