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누가 영어를 잘하게 되고 누가 못하게 될까? 개인의 재능에 따라 예외는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는 계급 편차가 생길 거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래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은 언어적으로 분리가 된다. 실제로 필리핀 사람들 대다수는 자기 의사를 영어로 표현하지 못하며, 따라서 영어로 표기되며 발설되는 정부와 재계의 담론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그 결과, 지도자들은 단지 일반적이고 모호한 용어로만 대중들과 의사소통 할 수 있게 되었고 대중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쟁점들은 선거 기간이 아닌 때에는 물론이고 선거 기간 중에도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다." 1부 서론 ; 왜 우리는 영어에 사족을 못 쓰게 되었을까-24~25쪽
오히려 그것은 문화평론가 이택광의 지적대로 영어를 잘하는 이가 영어를 잘 못하는 이를 착취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겠다는 의지와 관련이 있다. 좀더 쉽게 말하면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에도 할 일을 찾지 못하는 강남의 젊은이들에게 비정규직 교사나 학원강사 자리라도 주려는 것이다. (중략) 영어 몰입교육을 지지하는 중산층의 욕망은 이 강남 아이들을 위해 작동하는 체제를 끝장내고 싶다는 평등주의의 욕망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욕망은 착취의 구조를 더욱 강화한다. 모든 이가 영어를 잘하는 세상에 대한 욕망은 실현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추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영어를 못하는 이들이 착취당하는 세상을 만들게 되는 거다. 1부 서론 ; 왜 우리는 영어에 사족을 못 쓰게 되었을까 -27쪽
그게 아니라 뉴라이트 학자들이 상정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한반도 전체가 레닌 치하에서 현실 사회주의 진영에 속하게 되었다면? 그래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분단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분단은 안 됐지만 그럼 한반도 전체가 북한처럼 됐을 거라고? 이것이야말로 뉴라이트 학자의 속내일 텐데, 솔직히 말하면 이건 야바위에 가깝다. 만일 분단이 안 됐다면 남과 북이 이처럼 극단적이고 순혈주의적인 자본주의/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17년 이후 통일된 정치체로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었을 그 세계에서 김일성은 국경을 넘어 주재소를 습격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테니 그의 이름이 장안에 회자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정치는 박헌영이나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온건좌파들이 주도했을 거다. 1부 4장 식민지 근대화론을 위한 최소한의 변명 -80쪽
식민지 근대화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식의 아이러니다. 일제의 통치체제에 순응한 아버지가 자식을 교육시켜 도쿄에 유학을 보내놨더니 사회주의 물을 먹고 독립운동을 하게 된 독립투사 이야기나, 조선 민족의 역량을 기르기 위해 일제 통치에 협력하여 실력양성을 추구한 친일파 지식인 이야기 같은 아이러니가 넘쳐난 시대가 그 시대였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아이러니는 우리 시대를 포함한 모든 시대, 모든 공간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류 민족주의 역사학은 그러한 아이러니를 거부하고 '일제+친일파vs독립운동가+민중'이라는 선악 이분법을 고수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일제를 규탄하고 친일파를 청산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그런 단선적인 인식이 억압할 수밖에 없는 사실들을 파헤친다. 4장 식민지 근대화론을 위한 최소한의 변명-89쪽
식민지 근대화론은 분명 수탈론이 설명하지 못하거나 은폐하려 했던 사실들을 드러내고 폭로하고 설명했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평가받을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을 이러저러하게 보아야 한다'는 그들의 '대한민국관'은, 사료가 이러저러하다는 사실명제가 아니라 우리는 이러저러한 관점을 지녀야 한다는 당위명제가 아닌가. 말하자면 그것은 민족주의자들이 민족을 역사의 실체로 가정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행위다. 1부 5장 '대안 교과서'는 매국노의 것인가-99쪽
나는 이러한 주장 자체에는 동의한다. 나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에선 나도 식민지 근대화론자다.) 왜냐하면 그런 주장이야말로 근대화나 자본주의 체제를 역사의 필연적인 발전단계로 생각하는 이론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세계관에서 근대라는 것은 서구에서 '우연히' 탄생하여 그 파멸적인 힘 때문에 전 세계로 파급된 체제다. 그것이 한번 탄생한 이후 우리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것은 필연적인 일도 아니었을 테고, 그렇다면 우리가 근대에 이르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닐 것이다. 1부 8장 탈민족주의 친일파 옹호론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157쪽
건국기의 중경 임시정부에 정통성을 두는 논의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당시의 상황을 잘 모르는 상식인들은 뉴라이트의 임시정부 정통성론에 대한 공격을, 김구를 흠집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무비판적으로 임시정부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뉴라이트의 의도에는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임시정부에 대한 뉴라이트의 공격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됨을 알 수 있다. 즉, 임시정부 봉대론은 해방정국에서 이승만에게 가장 유리하게 작용한 논변이었다는 것이다. 2부 1장 임시정부 정통론은 허구다-196~197쪽
그러나 해외에 나가 일본 지도층에게 폭탄을 던진 한국의 독립투사들은 자신이 이국에 있던 30년 동안 사람들이 전혀 다른 질서에 적응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1945년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행정권력은 이미 사람들에게 하나의 체제가 되어 있었다. 중일전쟁 이후의 중국인들이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프랑스인들이 들이미는 것과 같은 잣대로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를 처단한다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걸려드는 상황에 처해 있었던 거다. 2부 1장 임시정부 정통론은 허구다-201쪽
여운형은 삼천만 민중을 일제에 대항한 투쟁의 주체라고 말했다. 정치인의 수사다. 정확히 말하면 삼천만 민중은 투쟁의 주체이자 협력의 주체였다. 총독부에 적당히 협력하기까지 한 여운형은 이 사실을 이해했던 것 같다. 이것을 모순이라 불러도 좋고, 역설이라 불러도 좋다. 문제는 이 안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거다. 민족주의자들의 숙청론과 뉴라이트의 속죄론은 모두 이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차원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의 진실로 끌어안을 때, 우리는 조선총독부라는 이름의 '식민지 의제국가'가 자행한 국가폭력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2부 1장 임시정부 정통론은 허구다-209쪽
굳이 김구의 활동을 테러행위라고 표기하려는 그들의 의중은 임시정부 활동을 반체제적인 일로 묘사하겠다는 것일 게다. 하지만 임시정부의 활동은 반체제적인 것이기도 했지 않은가? 따라서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테러리스트라는 용어의 사용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반체제 활동을 은근히 폄하하는 이들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의식이, 국가권력의 '합법성'만을 강조하며 모든 종류의 불법시위에 대해 강경진압을 요구하는 자신들의 행동과 일치하는 점을 지적하는 게 더 중요하다. 반체제적이고 불법적이었던 임시정부가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합법적인 체제가 지닌 정통성의 근거가 되는 것처럼, 반체제적이고 불법적인 시민사회의 활동이 국가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인데,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그러한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믿는다. 2부 2장 김구는 테러리스트라고 말해선 안 되나?-228쪽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성이란 기본적으로 적합한 절차에 의해 국민의 의사를 담아낼 경우에 담보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기제가 작동하고 있을 때, 정당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국 당시에 잘 건국된 국가라도 그 기제가 어느 순간 훼손되었다면 그 국가는 지금 민주주의 국가로서 정통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건국 당시에 잘못 건국된 국가라도 그 기제가 어떤 방법을 통해 회복되었다면, 지금의 그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정통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뉴라이트는 설령 개혁 세력의 '제2건국'의 비판할 때라 하더라도, 굳이 대한민국이 잘 건국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 설령 대한민국이 잘 건국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개혁 세력이 주장하는 것이 문자 그대로의 '제2건국'이라면 그것은 비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이유는 아마도 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어느 정도 수준의 민주주의가 87년 6월항쟁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어서일 것이다. 2부 4장 정통성 논쟁과 학살의 건국사-261쪽
한마디로 북한의 정책은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내부의 계급적 갈등을 남한이라는 외부에 전가했다. 지주가 도망갈 수 있는 남한이라는 곳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껏 쫓아냈다는 것이다. 만일 통일국가가 이룩되었다고 하더라도 북한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했다면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의 킬링필드에 맞먹는 대학살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게 뉴라이트가 '만일 공산주의가 이땅에서 승리했다면!'이라고 우려하는 상황이겠지만. 소련군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했다 하더라도 그런일이 벌어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이 지주들의 도주를 방관한 까닭은 학살의 부담을 덜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북한 사회를 깨끗(?)하게 만들면서 남한 사회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당위적으로 봐도 한반도 전체에 실행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2부 4장 정통성 논쟁과 학살의 건국사-269~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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