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
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 모비딕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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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든 생각, 

"이 책을 중고등학교 때 읽었더라면?"


아마도 우리가 인간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달라졌으리라. 마치 학창시절 배운 한국 근현대사가 대학교 때 맞닥뜨린 진짜 근현대사로 뒤집어지는 듯한 경험이었다. 이후 난 <사피엔스>가 교과서 교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특히나, '농업혁명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는 대목에서는 슬픔마저 느껴졌는데, 현대사회에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을 갈아넣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 보이는 듯해서였다. 인간의 역사는 약탈의 역사이고, 누가 어떻게 약탈하고, 누가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는 테크노크라트가 가공할 힘을 더해가는 지금 더욱 절실한 문제가 되고 있다. 더구나 팬데믹이 지구를 뒤덮고, 우리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현실을 통과하는 지금은 더욱더.


재난이 우리를 뒤덮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

재난은 어떻게 작동하고 재난의 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팬데믹이라는 현실을 통과하며 머릿속을 채웠던 질문이다. 이 때 만난 두 책. 나오미 클라인의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와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 둘 다 발행된 지 꽤 된 책들이다. 다행히 레베카 솔닛 것은 절판이 되지 않았고,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은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로 다시 태어났다.


인간은 미친 듯이 이기적이고, 자기 먹을 것을 위해서라면 제 자식의 살점도 뜯어먹을 수 있는 존재라고 배웠다. 하지만 레베카 솔닛의 책을 통해 진짜 현실에서 목도하는 인간성은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자발적으로 서로를 돌보고, 자기 것을 내어주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특질이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다는 걸 탐사 취재로 밝혔다.


나오미 클라인은 한 발 더 나갔다. 그녀는 ‘재난의 세계사’를 통해 재난의 동학을 치밀하게 밝혀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얼마나 잘못된 역사인지 촘촘히 드러냈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는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세계 경제사를 신자유주의의 약탈경제로 갈무리한 탐사보고의 역작이다.


존 버거가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했을 때, 

재론의 여지 없이 엄지 척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유.


1998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를 모두 겪은 사람으로서, 신자유주의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전세계적으로 답 없는 자본주의의가 역사의 종말을 고했다는 걸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각자도생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는 코로나 시대, 끊임없는 불안으로 기약없는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또 팬데믹이라니!


코로나로 인해 자산이 있던 사람들은 벼락부자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벼락거지가 되었다고들 한다. 현실경제와 달리 주식과 부동산은 고공행진을 하고, 재산을 불리기 위해(혹은 낙오하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불안해 한다. 왜? 우리는 한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까닥 잘못하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다는 것, 그리고 조금만 똘똘하게 돈을 굴리면 누군가에겐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예전에도 그랬지만) 주식과 부동산 관련 콘텐츠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과연 그런 책이나 유튜브를 열심히 탐독하면 좋은 수익률을 낼 수 있을까? 도대체 세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무엇일까. 모두가 자기 재산을 불리기 위해서만 골몰하고 있을 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과거의 나를 알아야 미래의 나를 기약할 수 있듯이, 과거 인간의 역사를 알아야 우리의 미래를,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유발 하라리가 인류의 길고 긴 역사를 단 한 권의 책으로 요약했다면, 나오미 클라인은 지난 50년 동안 일어난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단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가 주류가 만들어낸, 혹은 주류가 세뇌시키고 싶어하는 역사인 걸 알아채는 순간이 중요하듯,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 틀렸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이 바로 변혁의 중요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부끄럽게도 나는 천안문 사태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지식인들과 그들을 탄압하고자 하는 중국 정부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 알고 있었다. 서구 언론들이 줄기차게 보도한 것들을 여과없이 수용한 탓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와 달랐다. 민주화 시위자들은 중국 정부가 국영농장과 공영농장을 보호하지 않고 규제없는 자본주의로 가려는 것에 반대한 것이었다. 등소평은 자신의 연설에서 ‘공산주의가 아닌 자본주의를 보호하고자 진압에 나섰다’고 밝혔다. 그 결과 중국은 국제적인 노동착취 공장이 되었고, 중국 억만장자들의 90퍼센트는 공산당원의 자녀들이 되었다.


만델라가 석방되고 아프리카 인종문제가 해결된 듯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백인 경제관리들이 만들어 놓은 촘촘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발목이 잡혔고, 결국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폴란드 자유노조 바웬사의 승리가 물거품이 된 것도 마찬가지. 우리가 알고 있는 ‘칠레의 기적’은 기실 폭압적인 살인정치를 바탕으로 국영기업과 민주주의를 말살해 얻은 결과일 뿐이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미얀마 사태가 80년 광주를 떠올리게 하듯 폭압적 살인정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만 응시해서는 알 수 없는 세계사의 흐름을 간과하면 안 되는 이유.


“시카고학파 경제학이 보기에 국가는 식민지적 개척지이다. 쇼크요법의 핵심은 거대한 이윤이 신속하게 창출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이 1950년대에 개시한 운동은 고수익이 생기는 무법의 개척지를 포획하려는 다국적 자본의 시도라고 보면 가장 좋을 것이다.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은 공공부문에서 수익성 좋은 새로운 개척지를 무자비하게 찾아낸다. 마치 아마존을 통과하는 새로운 수로를 확인하고 잉카 사원 내부에 숨겨진 금의 위치를 표시하는 식민지 시대의 지도 제작자를 보는 듯하다. 식민지 시대의 골드러시 때 그랬듯 개척지에서 부정부패는 늘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지난 30년 동안 살아온 세월은 바로 개척지 자본주의 시대였다. 개척지가 위치한 장소는 위기에서 위기로 계속해서 바뀐다. 그리고 법이 자리를 잡자마자 즉각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팬데믹을 맞아 거대 테크기업들은 물 만난 고기 같다. 마치 9/11 이후 국가 부문의 대부분을 민영화한 미국 정부를 다시 보는 느낌이다. 이 거대한 약탈의 시대, 그들은 새로운 식민지 개척지를 만난 것처럼 투지가 넘친다. 그들은 팬데믹을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관찰하고, 교육과 의료를 원격화하고, 삶의 대부분을 디지털화하는 명분을 주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나오미 클라인은 그런 테크기업들의 의도를 하나하나 깨부수며 외롭게 싸우고 있는 투사다. 그레타 툰베리가 가장 존경하고, <뉴요커>가 ‘미국 좌파 중에서 가장 뚜렷한 인물’이라고 추켜세워도. 전세계 지성들이 그녀의 업적과 활동에 감사하고 정력적인 활동에 박수를 보내도. 이상하리만치 우리나라에서 그녀의 책이 신통치 않게 팔리는 걸 보면 의아하다. 다만 예전 <쇼크 독트린>이 중고 시장에서 정가보다 훌쩍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는 걸 보면 알아보는 사람들은 알아본다는 건지.


얼마 전 쇼샤나 주보프의 <감시 자본주의>가 출간되었다. 나오미 클라인이 이야기하는 ‘팬데믹 쇼크 독트린’을 깊이 파기에 더 없이 좋은 책이라 여기지만 워낙 장황하게 설명하기 좋아하는 저자라 엄두를 못내고 있다. 반면 나오미 클라인은 어려운 내용도 쉽게 쓰는 재주를 갖고 있다. 벽돌책을 단숨에 읽어내리게 하는 재주. 분명 정치경제 관련 도서인데 소설책처럼 심장을 떨리게 하는 재주. 남다른 글쓰기 능력이 어려운 주제를 대중과 쉽게 만나게 하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문제는 과학이 아니다. 자본주의다.’라고 기후문제의 본질을 외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와 함께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부디, 이 여인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아서 계속 계속 책을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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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6-01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나뭇잎처럼 2021-06-0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감사하지요. 나오미 클라인은 책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던데, 나오미의 열정과 담력 그리고 용기와 실천을 전달할 방법이 미약하네요. 지금 꼭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아수라장에서 앞뒤를 분간하려면 말이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