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소녀시대 (문고본) 요네하라 마리 특별 문고 시리즈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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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에 요네하라 마리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지만 일단 샀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 마음산책 부스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데 이름은 왜 이렇게 매력적인지. 제목은 또 어떻고.

  쌓아둔 책 중에서 골라낸 읽은 건 작은 가방에도 쏙 들어가는 크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시작하고는 놓기가 어려웠다. 이 책은 작가가 프라하에서 보낸 소녀 시절의 친구들을 찾아가는 내용인데 문체가 힘차면서도 위압적이지 않고 빠짐 없이 지적이다. 나는 어쩐지 전혜린을 떠올렸는데, 둘의 공통점이라면  언어에 능하고 천재적이며 내가 그를 알았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여성이라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 살았고 내가 닿지 못한 곳까지 자유롭게 드나들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동경이 샘솟는다.

  요네하라 마리가 프라하에서 보낸 시절은 1960년대의 5년, 그 이유는 아버지가 공산당 정보지의 일본 공산당 대표로 선발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소비에트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그러나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친구들을 만났다. 시대가 시대이고, 나라가 나라인 만큼 이 이야기에서 지울 수 없는 배경은 세계현대사인데, 나는 그쪽에 굉장히 무지하고 지명을 알아보고 이미지나 떠올리는 정도이지만 작가의 요네하라 마리의 마음을 따라 읽다보면 지도와 연표 같은 것을 넘어선 역사가 차분히 정리된다. 그 안에는 사람이 담겨있고, 마음이 오가고, 소녀들은 자란다... 내게 숫자였던 것들, 교과서이거나 신문 지면이었던 것들이 모든 걸 담아내지는 못한다. 살아가는 것과, 그러다가 죽어가는 존재에 대해서 그러하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어제 같은 친구를 찾아나서는 요네하라 마리는 각 잡힌 냉철함 속에서도 그런 마음을 놓지 않고 살아왔을 것이다. 거기에 그가 있다는 믿음이 그녀를 시간을 넘어 다시 그곳으로 끌어당겼을 테니까. 간청하고, 만나고, 포옹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소녀시대에 마침표가 찍힌다. 기억하고, 기억을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다.

 

 

 



 

 

p.129
그래도 이때의 내셔널리즘 체험은 내게 이런 걸 가르쳐 주었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나른 나라 사람을 접하고서야 사람은 자기를 자기답게 하고, 타인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 자신과 관련된 조상, 문화를 이끈 자연조건, 그 밖에 다른 여러 가지 것에 갑자기 친근감을 품게 된다고. 이것은 식욕이나 성욕과도 같은 줄에 세울 만한, 일종의 자기보전 능력이랄까 자기긍정 본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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