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창비시선 457
김승희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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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무지와 베이컨에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공통점은 하나의 덩어리에서 얇게 저며져 식탁에 오른다는 것, 본체인 덩어리와 색과 결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진실함이 나온다. 하지만 진실의 중요성이 금과 은으로 흔히 비유되어온 것에 비교하면 단무지와 베이컨은 장기보존을 위해 가공되었음에도 변질될 수 있고 연약하다. 이것이 이 시집을 흐르는 진실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을까? 오히려 그 연약함은 진실의 생명력, 가변성을 보여준다. 얇게 저며진 씨뇨라/마담/교수님/미시즈/아줌마는 모두 가변성을 가진 진실이다. 통합의 순간을 그리워하든 마음에 들지 않는 조각이 섞여있든 결국 같은 색, 같은 결을 가진 진실들이다. 이것이 진실을 슬프게 한다. 그리하여 진실하지 않은 가해자는 피해자를 조롱하고 진실한 피해자는 진실의 닫힌 문에 갇히게 된다. 그러한 진실은 (강남역이나 구의역이나 기억보관소나)무거운 냉장고에 붙은 포스트잇에 적힌다. 잠깐 손을 맞잡은 두개의 물방울처럼 포스트잇은 진실과 진실로 서로를 통하게 하고 접착력을 잃는다. 진실은 바위에 새겨지지 않고 포스트잇에 적힌다. 그러므로 진실은 일면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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