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음성같이 옛 애인의 음성같이 - 김승희가 들려주는 우리들의 세계문학
김승희 지음 / 난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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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세계문학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이 이런 제목의 새 옷을 입고 재출간 되었다. 제목으로 사용된 구절은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삶으로부터의 세 이야기』편에서 신의 물음을 수식하는 말로 등장한다. 헤세의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글을 타고, 이 구절로 뒤를 밟으며 어떤 것이 어머니의 음성 같고 옛 애인의 음성 같은 것인지 생각해본다. 이미 들어보았고 너무 익숙하지만 아득한 것, 이제는 옆에 있지 않은 것. 애증과 향수와 추억이 뒤범벅인 것. 이는 또한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문학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이 책이 새로 제목을 정해야 한다면 정말이지 이 문장이 꼭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이전의 제목도 퍽 마음에 든다. 이 무시무시한 고전들을 들었다놨다 하면서 군살 없는 저런 제목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 게 바로 선생님의 글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목소리는 4년 반 정도 들은 게 전부지만 그 시절 그런 글에 사로잡힌 마음이 읽는 내내 되살아나 어떤 단어들은 선생님의 판서로 보이고 어떤 구절은 선생님 목소리로 들렸다. 진정 어머니의 음성같이 옛 애인의 음성같이 읽은 것이다.

여기 실린 총 52편의 세계문학을 앞에 두고 읽은 것은 반갑고 안 읽은 것은 안타깝고 모르는 것은 괴롭다. 얼마나 더 읽어야 충분할까? 그래도 각 글에 흐름을 따라갈 정도의 요약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예를 들면 아예 도전도 못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것. 특히 반가웠던 건 『왼손잡이 여인』 편인데 마음에 맞는 서평을 여태 읽어보지 못해서, 그리고 나 역시 해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읽지 않았거나 몰랐는데 알게 된 여러 소설들도 그런 반가운 마음으로 하나하나 찾아봐도 좋겠다. 신기하게도 고전도 시대에 따른 유행이라는 게 있는데 이 책이 원래 92년도에 나왔으니만큼 지금은 유행하지 않아 두루 읽히지 않는 소설도 다수 등장해서 오히려 신선할 듯하다.

*표지의 유화 진심으로 선생님 초상인 줄 알았는데 아님. 책날개 펴보고야 알았음. 근데 진짜 선생님 옆모습 같다.

보바리즘을 지닌 사람은 결국 자신의 환상과 욕망 때문에 숙명적으로 난파하는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추구하다가 결국 숙명의 덫에 치어 파산하는것, 그것은 보바리즘의 공포이면서 또한 피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체험이기도 하지 않을까?
- P87

이 황무지에선 죽음의 매장이 재생의 희망과 연관되지 못하고, 인간이 매년 되풀이하는 무의미한 죽음은 부활을 가져오지 못한다. 그러니 황무지의 인간에게 재생의 봄보다는 죽음의 겨울이 더욱 편안할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4월은 잔인한 계절이 되고, 만물이 부활하고 재생하는 뜨거운 혁명의 봄은 황무지의 사람들에게 위험과 위기와 신경질적인 혼란의 계절이 된다. 황무지의 현대인들은 차라리 죽음의 겨울 같은 생중사의 안일한 평화주의를 더욱 사랑하니까.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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