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4월 아이들과 주말 마다 집 가까이 차로 1-2시간 거리 반경으로 나다녔다. 거창한 목표나 목적도 없이 그저 물통에 물채우고 집에 남아 돌아다니는 과자부스러기 싸들고 도시락도 없이 나서는 당일 급조된 행선지만 분명한 그런 나들이다. 봄기운에 취해 봄 햇살을 놓칠 새라 아이들과 남편과 그렇게 봄 나들이를 했다.
결혼10년차 아이들은 10살, 7살. 너무 어리지도 너무 되바라지지도 않은 나이다. 제 두발로 힘들어도 어딜가든 걸어줄 수 있는 나이인 것이다. 결혼 10년동안 봄나들이라면 놀이공원 몇 번이 고작이었는 데 이제 제법 여행이라고 이름걸고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5월 초 3박4일 제주도 여행은 무작정 봄나들이에서 열외였지만 그것이 봄나들이 연속상에 있었으니 또한 빛이 났었다. 2월초부터 계획된 제주도여행은 남편의 회사 방침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다. 연차 휴가를 무조건 사용하라!는 그 사용시기를 미리 정하라는 강압으로 우리는 그 시기를 5월2일 일요일과 5월5일 어린이날을 앞 뒤로 정하였다. 부부의 비행기삯은 해외출장으로 얻은 남편 항공 마일리지로 하고 아이들 것만 결재하고 숙소는 회사를 통해 좋은 곳을 싸게 빌렸다. 추첨을 하는 것이었는 데 정말 운좋게 당첨되었다.
숙소가 결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제주도 여행은 불투명한 것이었다. 촉발된 마음에 제주도!가 떠올라 저지르듯이 비행기표 예매하고 숙소 추첨되기만을 기다리면서 당첨안되면 접자 그랬으니까.
그렇게 2월부터 계획하고도 도중에 가네마네 하면서 실랑이를 벌였다. 비행기삯이나 숙소는 다행히 큰 비용없이 해결되었지만 제주도에서 3박4일의 식사와 관광비용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3,4월의 무작정 주말 나들이도 주효했다. 암튼 집 나가면 가깝든 멀든 돈이 들기 마련이니까.
나는 돈이 많이 들면 아까운 주부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제주도라는 해외?여행이 그저 설래고 좋은 철부지들이다. 나도 이렇게 설램만 갖고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려~ 가십시다. 미친척하고.
미친척 간 제주도는 참 미치게 좋았다. 바다도 좋았고 나무도 좋았고 비도 좋았고 햇볕도 좋았고 식구들이랑 부대끼는 것도 이갈리게 좋았다. 아침은 숙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즉석우동 아니면 샌드위치로 해결하고 점심, 저녁도 한 두끼를 제외하고는 그냥 소박하게 때웠다. 우리는 제주도에 먹으러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여행 경로는 주로 아이들 위주로 짰다. 대학 때 졸업 여행, 3년전의 시댁 식구들과 동행한 제주도 여행으로 이미 유명 관광지는 둘러 본 상태 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 미처 보지 못한 곳이나 나중에 새로 생긴 곳을 다니고 마지막날에는 온전히 반나절을 바닷가에서 놀다가 공항으로 갔다.
거기서 바닷물에 발도 담그고 모래성도 쌓고 바다를 원없이 봤다. 아니 돌아서면서도 바다가 그리웠다. 원없이 본 것이 아니었나 보다. 곧 파도에 쓸려갈 모래성을 두고 가는 것도 섭섭했고 바다에서 놀던 아이들이 너무나 즐거워 해서 비행기 시간에 쫓겨 아이들을 서둘러 몰고 가는 거도 아쉽고 미안했다. 다음에 제주도 오면 관광지는 제치고 바닷가에서 실컷 놀게 해 줘야지 그랬다.
우리가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동안 여러사람이 왔다 갔지만 다들 한번 휘 둘러보고는 또 다른 행선지로 가버렸다. 제주도 아이들이 저만치서 오래 놀다 갔고 아침 일찍 나선 우리보다 나중에 와서는 우리보다 더 먼저 가버렸다. 우리처럼 아이들 데리고 온 부부가 있었는 데 그들은 좀 더 머물다 갔지만 역시 먼저 갔다. 비싼 비행기값에 비싼 숙박료에 수 많은 볼거리에 하긴 바닷가에서 한가로이 노닐다 가기엔 제주도는 사치스럽긴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제주도 바다를 두고 두고 잊지 않겠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와서는 엄마의 통이 커져 버렸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유럽일주를 하고 싶어진 것이다. 바람든 엄마의 마음을 알았는 지 알라딘에서 여행을 떠나는 이를 위한 32가지 이야기라는 이벤트를 한다. 미술 평론가 이주헌의 책이 가장 맘에 끌리는 데 이사람도 아이들 데리고 유럽 미술관 일주를 했다고 하지.
크던 작던 가족여행은 잔향이 길어서 좋다. 통장에 차곡차곡 모이는 돈이 아니어도 가족간에 시루떡처럼 켜켜히 쌓이는 다양한 고물이 될 이런 여행을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계획하여 실행에 옮겨 볼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