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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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식은

엄격히 구분짓는 잣대가 아니라

경계를 넘나드는 이해입니다.

말하는 쪽의 입이 아니라

듣는 쪽의 귀입니다.

책 속의 깨알같은 글씨가 아니라

책을 쥔 손에 맺힌 작은 땀방울입니다.

머리를 높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낮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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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ㅈ이 졸리다고 했다.

운전 경험이 일천한 나와 ㅎ와 o은 그녀의 잠을 쫓아주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이른바 '만약에'놀이였다.

자, 다들 한번 생각해봐.

"만약에 미래를 알 수 있는 상자가 눈앞에 있다면 열어볼 거니?"

"만약에 가까운 친척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면 어떡할 거야?"

"현재의 기억을 모두 잊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갈 거니?"

만약에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뭘 먹을 거야?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ㅈ은 언제 졸리다 했냐는 듯 신바람이 나서 대답을 이어갔다.

나와 ㅎ과 ㅇ도 마찬가지. 고만고만한 여자 넷이 끼어 앉은 좁은 승용차 안은

상상의 이스트를 먹고 한껏 부풀어 올랐다.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우리를 스쳐지나갔다.

누군가는 지도를 다시 펼쳤고 누군가는 얼굴에 선크림을 덧발랐으며

또 누군가는 신발 끈을 조였다. 여행의 끝에 이르러 우리는

상상 속으로의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던 셈이다.

상상하는 것은 즐겁다. 쓸데없지만 필요하고, 무익하지만 유용하다.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그 '만약에'의 대답 속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인공이 되고 세상을 다 가지고

영원한 삶을 누려보기 위해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서 늘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상상하기를 좋아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만약에, 내가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서울동굴가이드>(문학과 지성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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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창기
강운구 외 58인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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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덕분에 결혼후 아내가 친정에서 가져온 민중자서전을 3년만에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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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환상

 

여러분은 대학시절에 그러한 관념을 깨뜨려야 해요.

왜냐하면 아직도 여러분들은 이해관계와 유착이 안되어 있는 상태잖아요.

이때 자기 사고를 바로 세워놓는 것이 참 필요하다고 봐요.

외신이 어떤 건지, 코소보 사태의 실상이 어떤 건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먼저 해야되는 일이 자기자신과 우리 현실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공부, 즉 그 구조와 본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봐요.

IMF상황에서도 결국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해요.

 

IMF가 왜 일어났는지 지금 여기서 제가 설명 안해도 되죠. 여러분 너무 많이 아시죠.

그러나 두 가지 관점은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하나는 현대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1990년대에 도달한 현대자본주의 새로운 단계와 성격에 관해서.

그 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나라의 경제구조가 어떤 본질을 갖고 있는지에 대하여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 나라 경제구조가 세계경제질서의 하위에 매달려 있는

종속구조라는 사실입니다. 큰 톱니바퀴에 물려있는 작은 톱니바퀴입니다.

빨리 돌아야 되죠, 큰 톱니바퀴보다도 더 빨리.

자기 가족 돌볼 새도 없죠.

교통, 환경, 국토의 종합적 이용을 거론할 여유가 없는 거죠.

식량자급률 27%, 어떤 농업경제학자는 23%라고 주장합니다.

그나마 기름으로 짓는 23%입니다. 만약 기름이 없으면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지요.

에너지는 물론입니다. 이런 구조, 다시 말해서

외국의 기술과 원자재와 생산수단 들여와서 수출해야 돌아가는

이런 종속구조는 경제위기가 일차적으로 외환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거죠.

거기에다 70년대 이후 엄청난 자본축적으로 이미 제조업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엄청난 규모의 초국적 금융자본의 신속한 국제적인 이동을 보장하는 세계화,

이런 구조 속에서 우리가 장기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될 것인가.

바로 이것이 지금의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신영복 교수님의 어느 대학강연에서 (2000. 5)

 

* 메일에 고이 저장되어있던 글을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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