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ㅈ이 졸리다고 했다.
운전 경험이 일천한 나와 ㅎ와 o은 그녀의 잠을 쫓아주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이른바 '만약에'놀이였다.
자, 다들 한번 생각해봐.
"만약에 미래를 알 수 있는 상자가 눈앞에 있다면 열어볼 거니?"
"만약에 가까운 친척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면 어떡할 거야?"
"현재의 기억을 모두 잊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갈 거니?"
만약에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뭘 먹을 거야?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ㅈ은 언제 졸리다 했냐는 듯 신바람이 나서 대답을 이어갔다.
나와 ㅎ과 ㅇ도 마찬가지. 고만고만한 여자 넷이 끼어 앉은 좁은 승용차 안은
상상의 이스트를 먹고 한껏 부풀어 올랐다.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우리를 스쳐지나갔다.
누군가는 지도를 다시 펼쳤고 누군가는 얼굴에 선크림을 덧발랐으며
또 누군가는 신발 끈을 조였다. 여행의 끝에 이르러 우리는
상상 속으로의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던 셈이다.
상상하는 것은 즐겁다. 쓸데없지만 필요하고, 무익하지만 유용하다.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그 '만약에'의 대답 속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인공이 되고 세상을 다 가지고
영원한 삶을 누려보기 위해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서 늘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상상하기를 좋아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만약에, 내가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서울동굴가이드>(문학과 지성사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