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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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 공정무역 따라 돌아본 13개 나라 공정한 사람들과의 4년간의 기록
박창순 외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독일 북중부 항구도시 하멜른에는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하멜른의 쥐잡이 전설>. 로버트 브라우닝이 이 전설을 바탕으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쥐떼로 골치 아팠던 마을 사람들은 쥐를 잡아달라고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요청을 한다. 그는 피리를 불어 쥐를 모은 후 쥐들을 강물에 빠져 죽게 했단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약속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자 그는 피리를 불어 마을 아이들을 모조리 데리고 갔다는 이야기다.
한때 이 이야기와 유사하게도 레밍쥐(일명 나그네쥐)가 집단 자살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과연 동물도 자살을 하는가라는 문제로 과학계가 시끌벅적했다. 레밍쥐의 사례는 조작으로 밝혀지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를 원용하여 인간이 주류나 대세의 흐름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레밍 효과’라고 불렀다.
공정무역은 자유무역에 대한 대안이다. 자유무역이 지닌 폐해, 즉 국가간 무역을 통해 이익이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일부 국가에게만 쏠리는 불공정 현상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불공정한 무역을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레밍 효과’로 인류는 공멸할지도 모른다. 국가간 무역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날로 깊어지기만 한다. 공정무역이 비록 60년 남짓한 역사를 지녔다고는 하나 우리에겐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또한 공정무역은 지구 생태계를 생각하는 무역이다. 최근 지구촌은 이상한파와 이상폭염으로 몸살을 앓았다. 일부 과학자들이 지구 온난화 탓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하지만 산업화 이후 인류가 배출한 오염물질로 지구는 극심한 병을 앓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공정무역으로 거래되는 제품들은 유기농 상품이거나 화석연료를 적게 들여 생산한 제품들이 많다. 이 책에 언급된 스리랑카의 ‘코끼리 똥 종이’(420~422쪽) 경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근대 이후 인간이 만든 물건들은 자연으로 되돌리려면 오랜 세월이 걸리는 반자연적인 산물이다. 근대적 인간은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지만 인간 중심적 사고 탓에 인간 외의 생명체들에게는 무관심했다. 결국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태적 사고를 회복하는 길이 공정무역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닐까?
저자는 4년간 13개국을 돌아다니며 공정무역의 현장에서 겪은 체험을 소박하게 전하고 있다. 가장 이목을 끌었던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에서 만난 장하준 교수 인터뷰에서 왜 영국에서 공정무역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지난 20세기는 ‘제국과 식민의 시대’라 일컬어질 만큼 20%의 나라들이 80%의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았다. 그러한 뼈아픈 역사를 되돌아본 영국인들의 반성, 국제문제에 보여준 영국민들의 관심과 열의, 영국 공정무역가의 활발한 활동이 밑바탕이 되었단다. 공정무역 마을제도와 공정무역 대학도 설립되었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저변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학교에서는 공정무역 수업이 진행된단다. 입시 지옥에서 허덕이는 우리나라 청소년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국민들과 정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영국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한편 저자는 공정무역 현장을 견학하면서 국제 공정무역연합(IFAT)와 국제 공정무역기구(WFTO, IFAT의 새이름) 총회에 참석하여 나라별로 흩어진 공정무역을 아우르는 현장을 보며 국제 연대를 모색한다. 아직 우리는 걸음마 수준이지만 앞으로 이런 국제기구에서 세계인과 함께 일할 인재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렇게 저자를 따라 공정무역의 현장을 견학하다보니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2008년 말 IFAT의 공정무역 10원칙이 완성될 거라고’(409쪽) 했지만 이 책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지난 2009년 1월, 국제 공정무역라벨 기구(FLO)와 세계공정무역기구(WFTO) 가 <공정무역 원칙 헌장>을 발표했음에도 2010년에 발간한 이 책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또한 스위스 막스 하벨라르 재단에서 만난 재단 대표이자 FLO 이사 마틴은 한국이 일본이 아닌 뉴질랜드의 성공사례를 본받으라고 조언한다(388~389쪽). 하지만 뉴질랜드의 성공 사례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이 없어 못내 아쉬웠다.
다시 앞서 언급한 <피리 부는 사나이>로 돌아가 보자. 이 이야기는 약속을 어기는 행위에 따끔한 충고를 주고 있진 않을까. 약속은 약속 당사자끼리 서로 신뢰해야 할 수 있다. 공정무역도 역시 ‘공정무역 원칙’이라는 약속이 국가간 상호 신뢰가 없다면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수 있다. 생산자, 소비자, 유통업자 등 모두 이익을 얻으려면 신뢰가 밑거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자유무역으로 불공정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윤리적 소비자들이 자유무역의 폐해를 알고 이를 고치려 했던 것처럼 앞으로 우리 모두 소비자 주권을 활발하게 발휘하여 윤리적 소비자로 거듭나야 한다. 소비자가 바로 서야 무역이 바로 서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생태계를 생각하는 ‘살림의 무역’, 공정무역. 우리 선조들이 가을날 감을 수확하면서 겨우살이 하는 날짐승에게 먹이로 남겨놓은 ‘까치밥의 지혜’를 떠올려 본다. 모처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곧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온다. 올해는 공정무역으로 거래되는, 마음씨 고운 초콜릿을 사서 선물하는 이가 많기를 기대한다. 오는 3월 14일 화이트데이에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공정무역 천연 사탕을 선물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