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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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곳곳에서 우리는 별 뜻 없이 ‘죽고 싶다’는 푸념을 늘어 놓는다. 힘든 일이 끝간 데 없을 때면 여지없이 입에서 이 말을 불쑥 내뱉는다. 정작 죽을 작정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면서. 심지어는 맛난 음식을 먹고도 ‘죽인다’며 연신 입을 놀린다. 무심코 내던지는 이 말은 한 때 세간에 떠돌던 우스개 이야기에도 담겨졌다. 세상에 3가지 거짓말이 있는데 첫째는 처녀가 시집 가기 싫다는 말이고, 둘째는 장사꾼이 밑지고 파는 거라는 말이며, 마지막으로 황혼에 접어 든 어르신들이 빨리 죽어야지 하는 말이란다. 살아 온 날이 살 날보다 많은 분들조차 쉽사리 죽음을 꿈꾸지는 않을 테니까 거짓말이란다. ‘죽고 싶다’는 입버릇은 살고 싶다는 말을 에둘러서 힘껏 소리쳐 본 것은 아닐까?

   인생을 이러저러 하게 사는 게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물어 봐야한다. 당신은 그 정답대로 살고 있냐고.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아니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 <공무도하>는 독자에게 인생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제 목숨만큼 소중해서 가슴에 묻는다는 자식을 저승으로 떠나보낸 오금자와 방천석. 그들이 보인 이상한 행동에 선뜻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들은 결국 죽은 자식에 대한 위로금이나 보상금을 손에 쥘 수밖에 없었을 게다.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슬픔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지만 슬퍼만 해서는 살아낼 수 없기에.

   해망. 바다가 보이는 마을.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쉴 틈없이 비틀거리는 마을. 고향에서 사회운동을 하다 배신자로 낙인 찍혀 찾아 온 해망은 장철수에게 살아내야만 하는 곳이다. 뭍이 아닌 물 속에서 불발탄을 건져 올리면서. 고국 고향 바다를 떠올리며 타국에서 물질하는 베트남 여성 후에도 살고 싶어 도망쳐 온 해망. 불과 맞싸우며 물을 뿌려대던 소방관 박옥출 역시 백화점 화재 현장에서 슬쩍 훔친 귀금속을 팔아 해망으로 찾아온다. 다른 삶을 지키려다 신장병을 얻은 그가 선택한 길은 불법 장기 매매로 신장 이식 수술은 받는 것이다. 그네가 희망을 건져 올렸으면 좋으련만 희망은 아득히 멀리 있기만 하다.

   사건 사고 전담 기자 문정수는 취재 차 여러 차례 맵짠 인생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해망을 찾는다. 그는 진실을 쫓아 말하려 해도 본사 테스크에선 연신 욕지거리가 뒤섞인 게재 불가 판정이 내려질 뿐이다.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는 언론의 생리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연인 노목희에게 신문에 실리지 않는 삶을 얘기해 보지만 그녀는 내버려 두라고만 한다. 그녀는 상처로 남은 고향을 지우려고만 한다. 타이웨이 교수와 인연으로 유학길에 오르면서도 문정수에게 가볍고 무심한 인사를 남긴다. 그들은 정말 사랑했을까.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둘은 곁에서 맴돌기만 했을지도. 하찮고 사소한 생활 속에서 쭈빗거리는 사랑이기에 못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사랑하지 않고 후회하느니 사랑해 보고 후회하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사람살이에는 앓아 봐야 아는 것들이 있고 잃어 봐야 얻는 것들이 있다. 지푸라기라도 꽉 움켜쥐듯 살아내야만 한다. 그러면서도 섣부르게 희망을 꿈꾸지 말아야 한다. 희망은 맵짠 인생을 올차게 참고 견뎌낸 자에게만 주어지는 덤일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의 텃밭에 희망을 심는 사람들에겐 너무나도 낯선 충고일 게다. 늘 해피 엔딩을 꿈꾸는 우리들이기에 소설 <공무도하>는 시뜻하다. 허나 삶의 진실은 불편하기만 하다. 오늘도 인생의 쓴맛 오지게 맛보러 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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